윤설 앞에서, 자신은 먼지 같은 존재란 말인가?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감옥에 구속되는 것보다 더 괴롭고 슬픈 일이다.“유희 씨!”원유희가 차에 오르려고 할 때, 어디선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멈칫하며 얼굴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먼 곳에 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차 옆에 우아하고 점잖았게 생긴, 안경 쓴 남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자기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원유희의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눈빛을 보니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했다.표원식은 원유희 쪽으로 오려고 했지만,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유희 씨, 제성에서 가장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표원식은 그녀가 듣지 못할까 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녀의 마음을 달래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원유희가 수감된 이후, 그녀를 위해 나선 첫 번째 사람이다. 여러 번 쳐다보며 그 사람을 눈에 담아두었다.마음 속의 의구심은 더욱 깊어졌다. ‘대체 누구지?’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그에게 옆에 있던 형사가 이송차량에 타라고 재촉했다.다시 한번 표원식을 보고는 차에 올랐다.구치소로 가는 길에 그녀는 마치 의식을 잃은 사람 같았다. 그 어떤 미동도, 반응도 없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고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희망도, 미련도 그 어떤 것도 없는…….구치소에서는 그녀에게 독방에 수감되도록 하였다. 거실과 화장실이 따로 분리된 독방, 거기에는 미니 냉장고와 텔레비전 및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나름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 구치소 내부 모습을 본 원유희는 조금 의아했다. 입소하는 길에 교도관의 삼엄한 감시와는 달리 독방은 나름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작은 창문이 하나 있긴 하지만, 키 높이보다 높게 있어서 의자를 놓지 않고는 밖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원유희는 가슴속에서 휘몰아치는 갑갑함과 씁쓸함을 애써 참았다. 하지만 절망
원유희를 무너뜨리는 게 자기 일생일대의 소원이다.원유희가 죽어야만 김신걸이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제 곧 김씨 집안 사모님으로 행복하게 살날만 남았다.어차피 엄마는 돌아가셨으니 되살릴 수도 없고, 차라리…… 원유희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지도 모른다.윤설은 핸드폰을 제자리에 두었다. 라인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라인은 일어서서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이제 앓던 이가 빠진 셈이니 너도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이게 가장 중요하지. 앞으로 우리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것이고…….”“너도 나랑 같은 거 아니었어? 사실 너도 마음속으론 이미 계산 끝냈잖아.”“그럼…….”“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야?”윤설이 물었다.원유희가 또 누구에게 꼬리 쳤는지 궁금했다. 이를 빌미로 다시 양념을 쳐서 김신걸 앞에서 원유희를 비방하고 폭로하려는 심산이었다.“그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라인의 말을 듣고 있던 윤설은 그녀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자,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인의 느낌적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윤설을 바라보았다.“네가 나를 배신하는 거야?”“배신이라니? 무슨 소리야?” 밑도 끝도 없는 라인의 말에 윤설은 어리둥절했다.라인은 윤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점을 부인하였다. 그렇다면 김신걸에게 꼬리를 잡힌 게 분명했다.그녀는 즉시 앞으로 가서 방의 불을 껐다.“뭐 하는 거야?”“쉿, 우리 포위됐어!” 윤설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누구한테?”윤설의 집이 감시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다만 라인의 직감이 너무 늦게 작동했을 뿐이다.라인은 윤설을 꽉 잡고 그녀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러고는 곧바로 욕실로 갔다.……차는 모두 별장의 외곽에 세웠다. 김신걸은 바로 차 옆에 서 있었다. 옆에는 원봉도 있었다. 귀에는 무선 헤드셋을 끼고 부하들에게 별장의 포위망을 좁혀가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원봉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다년간의 사건 처리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몸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그는 김신걸을 옆으로 들이받았다.“조심해요!"김신걸은 원봉에게 부딪혀 뒤로 물러났다. 슈욱, 슈욱 총알은 귓가를 스쳐 방금 서 있던 차체에 푹, 푹, 박혔다.원봉은 재빨리 헤드셋에 소리를 지르면서 총을 들고 달렸다.“동쪽에 있다! 서쪽은 인질이야! 쫓아!”경호원이 다가와 물었다.“사장님, 괜찮으십니까?”“그놈 잡아. 잡지 못하면 니들 나한테 뒈질 줄 알아!”김신걸의 얼굴은 어둡고 차가웠다.“네!”라인은 윤설을 이용해 경찰인력들을 따돌리고 반대쪽에서 도망쳤다.창가에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 옆에 서 있는 김신걸을 주의했다.그녀의 진짜 타켓은 원유희가 아니다. 김신걸의 목숨을 원했다.그래서 창밖으로 뛰쳐나올 때 김신걸에게 총을 겨누었다.땅에 떨어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잠시 지체할 틈도 없이 바로 뒤편의 숨겨진 별장 중심부로 빠르게 달려갔다.사격하고, 숨기를 반복하며 죽는 힘을 다해 달렸다. 이쪽으론 차가 들어올 수 없으니 두 다리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원봉이 앞장서서 형사들을 데리고 바짝 뒤쫓았다.그림자가 산비탈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원봉은 곧 달려가서 아래로 사격했다.하지만 나뭇가지에 가려서 사람을 제대로 조준할 수 없었다.뒤따라 뛰어내렸다.형사들이 쫓아 내려왔을 때쯤 라인은 이미 차를 타고 도주했다.형사들의 차가 다가오자, 원봉 등은 재빨리 차에 올랐다.“쫓아!”이곳은 비교적 외딴 지역이어서 차가 잘 다니지 않았다.도로에 간혹 차가 몇 대 있긴 하지만, 라인의 차가 질주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앞에서는 라인이 달리고, 뒤에서는 경찰들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앞에 한 대, 뒤에 열 대.라인은 현재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그녀는 급히 김명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울려서야 통화 연결되었다.“명화, 김신걸 사람들이 날 죽이려고 해. 나 좀 도와
총알이 퓨웅, 퓨웅 머리 위의 차 문에 맞았다. 중력으로 인해 차 문이 계속 아래로 처졌다.라인은 이를 악물고 등을 구부린 채 발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곧이어 롤스로이스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김신걸은 아직 최후 발악 중인 라인을 보고 더욱 사납게 돌변했다.곧 총을 꺼내 라인을 겨누곤 피스톨을 튕겼다. 펑-“어흑!” 등에 총상을 입은 라인의 입에서 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다.땅바닥에 뒹굴면서 방패 삼았던 차 문도 바닥에 떨어졌다.라인은 몸을 돌려 다른 사고 차량 뒤에 숨었다.상공의 헬리콥터가 차 뒤의 라인을 조준하려 했다. 하지만 위치상 헬리콥터가 방향을 틀어야만 가능했다.눈앞에 가드레일이 보였다.일순, 라인은 이것이 그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기회를 틈타 온 힘을 다해 가드레일로 달려갔다.“도망가려고?”김신걸의 총이 다시 라인을 겨누었다.라인은 한 손으로 가드레일을 받치고 뛰어내렸다.김신걸의 총알도 동시에 발사되었다.퓨웅! 퓨웅! 퓨웅!“아흑!”세 발 모두 라인의 몸에 맞았다.가까스로 차 안에서 빠져나온 원봉이 가드레일 쪽으로 갔을 때는 라인이 강물로 떨어진 뒤였다.강물 속에 빠진 라인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이곳은 수역이 큰 데다 물살도 세고 유동적이어서 시체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경호원은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 총알 네 발을 연달아 맞았으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물에 빠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김신걸은 경호원에게 총을 던지며 말했다.“뒷마무리는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그러고는 원봉 등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롤스로이스에 올랐다.원봉은 롤스로이스와 다른 부하 차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사격기술이 대단하군.”제성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인물을 맞닥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조수석에 앉은 진선우는 물었다.“사장님, 원봉 쪽은…… 어떻게 처리할까요?"“그의 자료입니다.”진선우는 자신
김신걸은 그녀를 안고 방을 나왔다.그들을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밖에 있는 롤스로이스 외에도 다른 경호원은 차량들이 정차되어 있었다.원봉과 상사가 문 앞에서 배웅해 주었다.상사는 원봉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화가 났다.“이제야 네가 왜 A시에서 쫓겨났는지 알겠네! 정신 좀 차려라? 김선생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어서 다행인 줄 알아.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또 어느 촌구석으로 좌천됐을지도 몰라!"“내가 성공적으로 사건을 해결했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원봉이 의아한 듯 물었다.“너…….”상사는 하마터면 피를 뿜을 뻔했다. 왈가왈부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차 타고 가버렸다.사실 원봉도 왜 자신이 ‘공공의 적’이 됐는지 잘 알고 있다.출세의 방법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쁜 놈들과 한 패거리가 되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차에 탄 원유희는 시종 침묵으로, 차창 밖의 어둠을 멍하니 지켜봤다.그녀의 이상 반응을 본 김신걸을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왜? 기분 안 좋아?”“아니, 그냥 내가 구치소를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그녀의 턱을 잡은 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영혼으로 파고들 것처럼 깊고 예리했다.“진짜 법인을 잡았으니 당연히 나와야지.”“누군데? 누가 죽였어?”원유희가 물었다.“라인.”원유희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현재 머릿속 메모리에는 없는 사람이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응.” 김신걸은 가까이서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감히 너를 모함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지…….”“내가 이전에 그 사람에게 미움을 산 적 있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큰 원한이길래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그녀를 모함한단 말인가?“아니, 그런 인간 신경 쓰지 마.”김신걸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작은 입술에 키스했다.이렇게 많은 날을 참고 견뎠으니, 그도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그 생사를 모르는 여자의 아이큐가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김신걸이 키스에도 기분이 별로 나아지지는 않았다.왜 신경 쓰지
그녀는 자기 몸이 더럽다고 느껴졌다.씻고 또 씻고…… 몸에 피부가 벗겨질 것 같은데…….이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내가 씻겨줄게.”물기를 머금은 원유희의 눈동자를 가볍게 떨렸다.“내 탓하는 거 아니지?” 김신걸은 거친 손바닥으로 그녀의 몸을 스치며 물었다.“아니…….”원유희는 눈을 내리뜨며 말했다.“당신이 범인을 찾았잖아.”무슨 자격으로 그를 탓한단 말인가? 아니다.그는 애들을 위해 그녀와의 결혼을 택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탓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몸을 돌려 김신걸을 마주한 그녀는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정말?”김신걸이 물었다.“응.”원유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난 널 믿어.”“날 봐봐.”김신걸은 그녀의 턱을 들었다.원유희는 그 깊이가 보이지 않는 그의 검은 눈과 마주했다. 강렬한 눈빛은 그녀로 하여금 눈동자를 움츠리게 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오늘 한잠 푹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을 거야.”김신걸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매만지며 말했다.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턱이 그의 손바닥에서 통제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작은 소리로 응얼거렸다.“걱정 마, 너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다.입술을 깨물고 있던 원유희는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 입을 뻥긋했다가 다시 다물었다.“응? 궁금한 게 있어?”“왜…… 나랑 결혼했어?”원유희가 물었다.“왜냐하면…… 뭘까?”어떤 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물어본 자신이 바보였다.물어보고 나서 후회했다.만약 그가 사실대로 대답했다면, 그녀도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김신걸은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왜 그녀와 결혼했냐고?이유가 뭐냐고?그윽한 외모에 반해 그는 초조했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다만 그때 생각으로는 포맷된 그녀의 기억 메모리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김신걸은 그녀를 품에 안고 수면등을 켰다.“겁내지 마, 내가 있잖아, 괜찮아.”정신이 좀 든 원유희는 김신걸의 품을 떠났다.“나…… 애들 보러 가고 싶어.”“애들 자는데…… 내일 아침에 보러 가자.”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한 원유희는 또 김신걸의 품에 누워 잠을 청했다.“여기는 구치소가 아니라 우리 집이야.”원유희는 그의 품에 안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신걸은 짙은 눈썹을 미간에 모았다. 검은 눈동자는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역시 그녀를 혼자 구치소에 두는 게 아니었어……. 그때 그 상황에서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지만.자기도 모르게 품속의 여인을 더욱 꼬옥 끌어안았다.방금 출소한 지라 아직 몸과 마음이 힘들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것이다.……윤설은 취조실에서 밤새 취조받았다. 새벽 1시쯤 원봉이 나간 뒤, 이어서 동료에게 취조를 계속 받았다.‘아침에 다시 취조해야지.’원봉은 하품하며 취조실에 들어갔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당연하다, 두 시간 쪽잠 자고 왔으니 잠이 부족한 게 당연하다.윤설도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원봉은 책상에 놓쳐진 서류 파일로 책상을 탁, 쳤다.“자, 일어나서 일합시다!”화들짝 놀라 깨어난 윤설은 고개를 들어 원봉을 보며 말했다.“이제 가도 되나요?”“아니요.”의자에 앉아 컴퓨터에 기록된 어젯밤의 심문 결과지를 본 원봉은 이마를 찡그렸다.“당신과 라인 외에 다른 공범들이 있습니까?”“무슨 공범이요?”윤설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여태껏 이렇게 피곤한 적도, 낭패를 본 적도 없었다. 입이 바싹 마르고 목구멍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내가 말했잖아요, 나는 라인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기껏 서너 번 정도 왕래했을걸요? 그녀가 한 짓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저 몰라요. 나…… 김신걸 만나야겠어요. 만나게 해주세요. 만약 내가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구하러 올 거예요! 나, 그 사람 약혼녀예요!”“라인이 누구와 접촉했는지 알아요?” 원봉
김명화는 눈빛을 약간 위로 들었다.“당신이 죽였어요?”“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 경찰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원봉은 안색이 어두웠다. 눈빛도 매서웠다.“경찰 조사에 협조하길 바랍니다. 아는 바를 모두 얘기해주세요.”김명화는 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아 관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난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원봉, A시 사람, 거물에게 밉보여 제성으로 좌천됐죠? 다른 곳으로 또 전근 가고 싶은가 봐요.”원봉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나는 경찰입니다. 악행을 없애기 위해 제 반드시 소임을 다할 것이고요. 나는 내 직업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합니다. 김명화 씨, 당신의 비협조적 태도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김명화는 냉담하게 쳐다보며 말을 아꼈다.원봉은 일어섰다.“할 얘기가 없다면, 우리 스스로 조사할 수밖에 없네요. 48시간 뒤에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때 보내 드리겠습니다.”김명화의 안색이 어두웠졌다.취조실 문이 닫혔다. 그는 원봉이 진짜 제대로 깐깐한 사람임을 알았다.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는 지금에야 왜 김신걸이 원유희를 여기에 두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원봉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어디서 이렇게 꽉 막힌 고집불통이 나타난 거야?김명화는 48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경찰들이 별다른 증거가 확보하지 못하자 그를 풀어주었다.경찰서를 나와 차로 걸어가는 김명화는 얼굴색이 칙칙하고 어두웠다.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얼마나 낭패한지 알 것 같았다.“김명화!”고개를 돌려 보니 표원식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설마 여기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유희는 지금 어때?”표원식이 물었다.“무죄 석방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야?”“너, 아직 이러고 있니? 참으로 안 됐다. 불쌍하다. 아니, 지금 유희는 김신걸이랑 결혼해서 사모님 소리 듣고 있는데, 너는 뭐하냐? 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