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는 눈빛을 약간 위로 들었다.“당신이 죽였어요?”“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 경찰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원봉은 안색이 어두웠다. 눈빛도 매서웠다.“경찰 조사에 협조하길 바랍니다. 아는 바를 모두 얘기해주세요.”김명화는 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아 관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난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원봉, A시 사람, 거물에게 밉보여 제성으로 좌천됐죠? 다른 곳으로 또 전근 가고 싶은가 봐요.”원봉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나는 경찰입니다. 악행을 없애기 위해 제 반드시 소임을 다할 것이고요. 나는 내 직업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합니다. 김명화 씨, 당신의 비협조적 태도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김명화는 냉담하게 쳐다보며 말을 아꼈다.원봉은 일어섰다.“할 얘기가 없다면, 우리 스스로 조사할 수밖에 없네요. 48시간 뒤에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때 보내 드리겠습니다.”김명화의 안색이 어두웠졌다.취조실 문이 닫혔다. 그는 원봉이 진짜 제대로 깐깐한 사람임을 알았다.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는 지금에야 왜 김신걸이 원유희를 여기에 두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원봉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어디서 이렇게 꽉 막힌 고집불통이 나타난 거야?김명화는 48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경찰들이 별다른 증거가 확보하지 못하자 그를 풀어주었다.경찰서를 나와 차로 걸어가는 김명화는 얼굴색이 칙칙하고 어두웠다.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현재 모습이 얼마나 낭패한지 알 것 같았다.“김명화!”고개를 돌려 보니 표원식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설마 여기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유희는 지금 어때?”표원식이 물었다.“무죄 석방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야?”“너, 아직 이러고 있니? 참으로 안 됐다. 불쌍하다. 아니, 지금 유희는 김신걸이랑 결혼해서 사모님 소리 듣고 있는데, 너는 뭐하냐? 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김
괜찮아, 그냥 며칠 갇혀있었을 뿐인데 뭐…….원유희는 자기보다 훨씬 오래 수감되었던걸?윤설은 자신이 말을 아낀 것에 대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라인과의 이전 파트너 관계를 얘기했더라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지금처럼 이렇게 쉽게 풀려날 수는 없었을 테니.정말 아쉽다! 원유희가 무기징역을 살았어야 하는데…… 실형은 고사하고 풀려나다니,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녀와 원유희는 고양이와 강아지와 같은 사이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출소한 지도 어언 며칠이 되었다. 원유희는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드래곤 그룹에 별일이 없을 때면 김신걸도 거의 집에 있었어.모든 것이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유희 이전에 비해 훨씬 침묵했다.아이들과 함께 할 때도, 조용히 앉아 애들을 지켜보기만 했다.애들이 그녀를 찾아야만 비로소 같이 놀아주거나 얘기를 주고받았다.김신걸은 서재 창문 앞에 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잔디밭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원유희를 지켜보았다. 책상 위에 간식거리가 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고 애들이 노는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느끼고서야 유희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김신걸은 옆에 앉아 그녀의 의자 등에 손을 걸쳤다.“왜 안 먹어?”원유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디저트를 보았다.“…… 있다가 애들이랑 같이 먹으려고.”“쟤들은 알아서 잘 먹어. 신경 쓰지 마.”“사실, 나도 배고프지 않아. 있다가 먹을게.”원유희가 말했다.김신걸은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검은 눈동자는 마치 그녀의 몸을 통과하려는 것처럼 예리했다.“방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어?”“……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원유희는 망연한 눈빛으로 김선걸을 쳐다보았다.“어디 아픈데 없어?”“아니, 나 괜찮아.”원유희가 말했다.김신걸은 원유희가 고분고분하
점점 또렷해진 시선 사이로 멀리서 다가오다가 멈칫하는 해림이 보였다.얼굴이 발그스름해진 원유희는 가볍게 김신걸을 밀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김신걸은 차가운 눈빛으로 해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해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가왔다.“사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를 멈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돌려보내. 안 만나.”“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해림이 말했다.김신걸의 냉정하고 음침한 시선을 느낀 해림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원유희는 방문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거절하는 김신걸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누군데? 안 가봐도 괜찮은 거야?”김신걸은 눈썹을 치켜뜨고 그녀를 보았다.“나를 만나려면 사전 예약은 필수지. 예약해도 내 기분에 따라서 만날까 말까 하는데…….”세 꼬마가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유담이 물었다.“무슨 기분이요?”“아빠, 엄마랑 무슨 비밀 얘기하고 있었더요?”“나도 알고 싶어!”원유희는 옆에 있던 수건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애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비밀 얘기는 아니고, 그냥 수다 중인데…….”삼둥이의 주의력은 곧 테이블 위에 꽂혀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올라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디저트를 입에 한 조각씩 넣고 맛있게 먹었다.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원유희는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띠며 애들을 넌지시 바라보았다.“방금 다 봤떠요. 엄마 아빠 뽀뽀했잖아요!” 조한의 갑작스러운 발언에원유희의 얼굴이 수줍음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애들이 봤다니!화가 난 유희는 김신걸을 째려보았다.얼굴이 뜨거운 건지 김신걸의 얼굴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심지어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어른들의 일에 꼬마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원유희는 철면피의 김신걸에 다시 한번 놀랐다.삼둥이는 정말 자신과 무관한 일인 듯 촵촵거리면서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이때 김신걸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슬쩍 발신자번호를 확인한 그는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원유희는
고선덕은 원유희를 보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왔다.회사의 다른 사람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원유희는 그제야 회사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사에 오지 않으면 추궁하거나 따져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일이 있으면 모두 고스덕을 찾으니 말이다. 유희는 자신이 마치 어떤 틀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한 개의 점처럼.탈출의 유일한 실마리는 김신걸이다.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현재 그녀에게 있어 아이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그가 없으면 자신의 가치마저 없어지는 것 같은…….이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멍하니 있던 원유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설이었다.지난번에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봤었는데, 어쩐 일인지 볼 때마다 사람이 빛나는 것 같았다.“바빠? 방해한 거 아니지?” 윤설이 물었다.“……아니야.”윤설은 원유희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최대한 우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나 방금 신걸한테서 오는 길이야.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나는 네가 범인인 줄 알고, 너에게 험한 말을 했었어.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제정신이 아니었어. 이해해 줘.”원유희의 마음이 움찔했다. 드레곤 그룹에 갔었다고?사과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웠다. 윤설은 따박따박 자신의 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면서 자신을 탓할 꼬투리나 여지를 내어주지 않았다.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은 것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그리고 당시 모든 증거는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유희야, 너 신걸에게 이혼 얘기 꺼냈어?” 윤설이 물었다.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기분이 다운되고 머리가 텅 비어서 이혼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윤설의 얼굴에 별다른 미동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원유희를 천만번 죽였다.어찌 기억을 잃어도 이렇게 뻔뻔스럽다니!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식적인 연기를 해댔다.“얘기 안 했다니 천만다행이다. 정말 이혼이라도 했더라면 내가 천고 죄인이 되는 거지……
그녀와 윤설이 동시에 어려움에 처했더라면, 김신걸은 틀림없이 윤설을 구할 것이다…….“엄마!”삼둥이가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원유희는 어리둥절했다.“너희들, 어떻게 왔니?”“엄마랑 같이 퇴근하려고 왔지요!” 유담은 유희 앞으로 깡충깡충 달리며 오동통한 작은 두 손으로 한 쪽 다리를 잡았다.개구쟁이 조한은 어느덧 의자에 올라와 유희의 목을 껴안았다.상우는 유희의 다른 한쪽 다리에 매달렸다.원유희의 몸에 갑자기 아이가 세 명 자라난 것 같은 형상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엄마 퇴근했더요?” 유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퇴근했지. 가자, 강아지들, 우리 집에 가자.” 원유희는 유담의 통통한 볼살을 살짝 꼬집었다.“엄마, 우리 밖에 가더 놀아요.” 조한이 기대로 가득 찬 눈빛으로 유희를 바라보고 있었다.“엄마랑 놀고 싶어요!” 상우도 합세했다.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아직 저녁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다.“좋아.”어른 한 명, 꼬마 세 명, 네 사람은 차를 타고 번화가로 나갔다. 원유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유희가 유담을, 유담은 상우를, 상우는 조한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모습이 참으로 훈훈하고 귀여웠다.그들이 간 곳은 차 없는 거리로 비교적 안전하다.삼둥이는 여기 저기 둘러보며, 마치 애어른처럼 아이쇼핑을 즐겼다.“엄마! 더기요!” 조한이 감격에 겨워 작은 손가락을 가리켰다.조한이 가리킨 곳을 따라가 보니 탕후루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간판에 아주 크고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과일로 만든 탕후루가 진열되어 있었다.“엄마, 우리 여기에 왔덨어요. 너무 맛있더!”유담이 말했다.“어? 너희들 여기 왔었니?” 원유희가 물었다.“네!” 유담은 주먹 불끈 쥔 작은 손으로 턱에 괴고 있었다. 예쁘고 큰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엄마, 내가 엄마 사줄게요!” 상우는 작은 손으로 치마를 졸라맸다.원유희는 웃으며 그들에게 이 기회를 주었다.“너희들, 돈 있니?”“네!” 유담은 몸을 돌려 유희에게
“나도 아빠처럼 키가 많이 클 거예요!” 조한은 까치발을 하고, 한 손을 자기가 들 수 있는 최대의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그럼 그래야지, 그렇고말고.”원유희는 이 상황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애들은 지금 이 남자를 뭐라고 부른 거야? 아빠? ‘아빠’는 김신걸인데? 어떻게 된 거지? 유희의 머리 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그나저나 이 ‘아빠'의 정체는 뭐야?자리에서 일어선 표원식은 원유희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다.가까이 다가가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유희를 보고 바로 안심시켰다.“나,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마요.”원유희도 이 남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삼둥이가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지 않았을 테니.“죄송해요,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애들이 왜 아빠라고 부르죠?”“…….”“우리 무슨 사이인가요?”“예전에 김신걸 씨가 아이의 존재를 몰랐을 때, 유희 씨 혼자서 애들 셋 케어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가끔 애들을 학교에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고요…….”낮고 온화한 표원식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애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없다 보니…….”“아, 그랬군요…….”원유희가 웃었다.그녀의 얼굴에 비춰진 청아한 미소를 보며 표원식은 살짝 혼을 뺏긴 듯했다.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예컨대 겪었던 감정적 갈등들, 약혼 준비, 많은 추억들…….하지만 지금 상황에게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큰 심적 부담을 줄게 뻔했다.“지난번에, 고마웠어요. 전 이제 괜찮아요.”“그럼 됐어요.”“혹시 선생님이신가요?”원유희가 물었다.표원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삼둥이가 다가왔다. 조한이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는 교당 선생님이에요!”“아…… 교장 선생님……”원유희는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교장을 알고 지냈던 거에
“밥 먹으러 가자.” 김신걸은 화를 억누르고, 원유희와 삼둥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원유희는 삼둥이가 이상하게 얌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차를 타고서도 늘 조잘거리던 세 녀석이 웬일로 자기한테 기대어 찍소리하지 않고 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애들처럼 온순하기 그지없었다.유희는 영문을 몰랐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원유희는 아이들에게 물었다.세 꼬마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매섭게 애들을 째려보았다.“피곤했나 봐!”조한은 빨갛게 상기된 작은 얼굴을 하고 말을 꾹 참고 있었다.다른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피곤하다는 뜻을 밝혔다.원유희는 얼굴을 돌려 김신걸을 보았다. 얼굴색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짙게 드리운 어두운 안색은 왠지 모르게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어전원에 도착한 다섯 식구는 주방에서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화장실에 갔다.세 녀석도 따라가려고 하자 김신걸이 불러 세웠다.“동작 그만.”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살펴보았다. 기억을 잃은 뒤 사고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너희들도 화장실에 갈 거니?”“안 간대.” 김신걸이 대신 답했다. “다녀와.”원유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을 돌려 화장실로 갔다.화장실 문이 닫히자, 검은 그림자가 세 아이에게 다가왔다. 삼둥이들은 벌벌 떨었다.“아빠…….”“오늘은 애교 안 통해. 스리슬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 김신걸의 위엄이 드러났다.합죽이가 된 세 꼬마는 작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너희 둘, 서재에 가서 벽 보고 반성해.” 김신걸이 조한과 상우에게 말했다.“우…… 우리 달못 없더요.”김신걸의 기에 주눅 들지 않고 조한은 승복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너희들에게 표원식 아저씨와 만나지 말랬지? “김신걸이 위압적으로 물었다.“아빠, 오늘 우연히 만…….” 상우가 상황 설명을 시도했다.“우연하게 만났다고 같이 쇼핑하고 놀아?”김신걸은 엄하게 다그쳤다.“서재 안 가
조한은 즉각 자극요법에 반응했다. 그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못하긴요? 우리 할 수 있떠요!”상우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좋아, 10장 베껴 써.”말을 마친 김신걸은 일어나 서재를 나왔다.김신걸이 나가자, 상우가 괴로워했다.“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간단한 한글밖에 못 쓰잖아…….”“암튼 난 할 거야!” 조한은 쉽게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사리손으로 펜을 들고 낑낑거리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좋아, 부적이라도 그려보지.“못생겼어!” 상우가 평을 내렸다.“…….”조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방으로 돌아온 김신걸은 원유희가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혼자 방에서 멍때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뭔 생각하고 있어?”그녀의 앞에 선 김신걸의 늘씬한 몸매는 강한 압도감을 주었다.원유희는 일어서서 약간 허탈한 눈빛으로 물었다.“화났어?”“쉽지 않네. 티 났어?”원유희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정말 화가 났다. 왜?“설마…… 그 교장선생님 때문에?”“무슨 얘기했어?” 김신걸이 물었다.“…… 무슨 말을 할까 봐 두렵니?” 원유희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김신걸의 숯검댕이 눈썹이 틀어지면서 얼굴은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온몸의 카리스마가 더욱 강한 압도감이 느껴졌다.원유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은 별말 안 했어……. 예전에 내가 아이를 학교에 맡겼다는 얘기만 했어.”“앞으로 연락하지 마.”김신걸이 말했다.“알았어……. 나 씻으러 갈게.”원유희는 몸을 돌려 욕실로 갔다.그녀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자신과 김신걸의 신분 차이를 잘 알고 있고, 김신걸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도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단지 아이들에게만 중요할 존재일 뿐이다.지금 이 처지에 어전원에서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다.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사치였다. 예컨대 그녀를 좋아해 준다는 거…….표원식이 한 이야기가 이 문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김신걸은 윤설을 좋아하고 또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