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또렷해진 시선 사이로 멀리서 다가오다가 멈칫하는 해림이 보였다.얼굴이 발그스름해진 원유희는 가볍게 김신걸을 밀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김신걸은 차가운 눈빛으로 해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해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가왔다.“사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를 멈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돌려보내. 안 만나.”“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해림이 말했다.김신걸의 냉정하고 음침한 시선을 느낀 해림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원유희는 방문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거절하는 김신걸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누군데? 안 가봐도 괜찮은 거야?”김신걸은 눈썹을 치켜뜨고 그녀를 보았다.“나를 만나려면 사전 예약은 필수지. 예약해도 내 기분에 따라서 만날까 말까 하는데…….”세 꼬마가 깡충깡충 뛰어오더니 유담이 물었다.“무슨 기분이요?”“아빠, 엄마랑 무슨 비밀 얘기하고 있었더요?”“나도 알고 싶어!”원유희는 옆에 있던 수건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애들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비밀 얘기는 아니고, 그냥 수다 중인데…….”삼둥이의 주의력은 곧 테이블 위에 꽂혀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올라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디저트를 입에 한 조각씩 넣고 맛있게 먹었다.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원유희는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띠며 애들을 넌지시 바라보았다.“방금 다 봤떠요. 엄마 아빠 뽀뽀했잖아요!” 조한의 갑작스러운 발언에원유희의 얼굴이 수줍음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애들이 봤다니!화가 난 유희는 김신걸을 째려보았다.얼굴이 뜨거운 건지 김신걸의 얼굴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심지어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어른들의 일에 꼬마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원유희는 철면피의 김신걸에 다시 한번 놀랐다.삼둥이는 정말 자신과 무관한 일인 듯 촵촵거리면서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이때 김신걸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슬쩍 발신자번호를 확인한 그는 한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원유희는
고선덕은 원유희를 보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왔다.회사의 다른 사람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원유희는 그제야 회사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사에 오지 않으면 추궁하거나 따져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일이 있으면 모두 고스덕을 찾으니 말이다. 유희는 자신이 마치 어떤 틀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한 개의 점처럼.탈출의 유일한 실마리는 김신걸이다.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현재 그녀에게 있어 아이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그가 없으면 자신의 가치마저 없어지는 것 같은…….이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멍하니 있던 원유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설이었다.지난번에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봤었는데, 어쩐 일인지 볼 때마다 사람이 빛나는 것 같았다.“바빠? 방해한 거 아니지?” 윤설이 물었다.“……아니야.”윤설은 원유희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최대한 우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나 방금 신걸한테서 오는 길이야.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서. 나는 네가 범인인 줄 알고, 너에게 험한 말을 했었어.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제정신이 아니었어. 이해해 줘.”원유희의 마음이 움찔했다. 드레곤 그룹에 갔었다고?사과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웠다. 윤설은 따박따박 자신의 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면서 자신을 탓할 꼬투리나 여지를 내어주지 않았다.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은 것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그리고 당시 모든 증거는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유희야, 너 신걸에게 이혼 얘기 꺼냈어?” 윤설이 물었다.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기분이 다운되고 머리가 텅 비어서 이혼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윤설의 얼굴에 별다른 미동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원유희를 천만번 죽였다.어찌 기억을 잃어도 이렇게 뻔뻔스럽다니!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식적인 연기를 해댔다.“얘기 안 했다니 천만다행이다. 정말 이혼이라도 했더라면 내가 천고 죄인이 되는 거지……
그녀와 윤설이 동시에 어려움에 처했더라면, 김신걸은 틀림없이 윤설을 구할 것이다…….“엄마!”삼둥이가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원유희는 어리둥절했다.“너희들, 어떻게 왔니?”“엄마랑 같이 퇴근하려고 왔지요!” 유담은 유희 앞으로 깡충깡충 달리며 오동통한 작은 두 손으로 한 쪽 다리를 잡았다.개구쟁이 조한은 어느덧 의자에 올라와 유희의 목을 껴안았다.상우는 유희의 다른 한쪽 다리에 매달렸다.원유희의 몸에 갑자기 아이가 세 명 자라난 것 같은 형상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엄마 퇴근했더요?” 유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퇴근했지. 가자, 강아지들, 우리 집에 가자.” 원유희는 유담의 통통한 볼살을 살짝 꼬집었다.“엄마, 우리 밖에 가더 놀아요.” 조한이 기대로 가득 찬 눈빛으로 유희를 바라보고 있었다.“엄마랑 놀고 싶어요!” 상우도 합세했다.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아직 저녁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다.“좋아.”어른 한 명, 꼬마 세 명, 네 사람은 차를 타고 번화가로 나갔다. 원유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유희가 유담을, 유담은 상우를, 상우는 조한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모습이 참으로 훈훈하고 귀여웠다.그들이 간 곳은 차 없는 거리로 비교적 안전하다.삼둥이는 여기 저기 둘러보며, 마치 애어른처럼 아이쇼핑을 즐겼다.“엄마! 더기요!” 조한이 감격에 겨워 작은 손가락을 가리켰다.조한이 가리킨 곳을 따라가 보니 탕후루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간판에 아주 크고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과일로 만든 탕후루가 진열되어 있었다.“엄마, 우리 여기에 왔덨어요. 너무 맛있더!”유담이 말했다.“어? 너희들 여기 왔었니?” 원유희가 물었다.“네!” 유담은 주먹 불끈 쥔 작은 손으로 턱에 괴고 있었다. 예쁘고 큰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엄마, 내가 엄마 사줄게요!” 상우는 작은 손으로 치마를 졸라맸다.원유희는 웃으며 그들에게 이 기회를 주었다.“너희들, 돈 있니?”“네!” 유담은 몸을 돌려 유희에게
“나도 아빠처럼 키가 많이 클 거예요!” 조한은 까치발을 하고, 한 손을 자기가 들 수 있는 최대의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그럼 그래야지, 그렇고말고.”원유희는 이 상황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애들은 지금 이 남자를 뭐라고 부른 거야? 아빠? ‘아빠’는 김신걸인데? 어떻게 된 거지? 유희의 머리 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그나저나 이 ‘아빠'의 정체는 뭐야?자리에서 일어선 표원식은 원유희의 아리송한 표정을 보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다.가까이 다가가자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유희를 보고 바로 안심시켰다.“나,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마요.”원유희도 이 남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삼둥이가 아빠라고 친근하게 부르지 않았을 테니.“죄송해요,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애들이 왜 아빠라고 부르죠?”“…….”“우리 무슨 사이인가요?”“예전에 김신걸 씨가 아이의 존재를 몰랐을 때, 유희 씨 혼자서 애들 셋 케어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가끔 애들을 학교에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알게 되었고요…….”낮고 온화한 표원식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애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없다 보니…….”“아, 그랬군요…….”원유희가 웃었다.그녀의 얼굴에 비춰진 청아한 미소를 보며 표원식은 살짝 혼을 뺏긴 듯했다.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예컨대 겪었던 감정적 갈등들, 약혼 준비, 많은 추억들…….하지만 지금 상황에게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큰 심적 부담을 줄게 뻔했다.“지난번에, 고마웠어요. 전 이제 괜찮아요.”“그럼 됐어요.”“혹시 선생님이신가요?”원유희가 물었다.표원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삼둥이가 다가왔다. 조한이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는 교당 선생님이에요!”“아…… 교장 선생님……”원유희는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교장을 알고 지냈던 거에
“밥 먹으러 가자.” 김신걸은 화를 억누르고, 원유희와 삼둥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원유희는 삼둥이가 이상하게 얌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차를 타고서도 늘 조잘거리던 세 녀석이 웬일로 자기한테 기대어 찍소리하지 않고 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애들처럼 온순하기 그지없었다.유희는 영문을 몰랐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원유희는 아이들에게 물었다.세 꼬마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매섭게 애들을 째려보았다.“피곤했나 봐!”조한은 빨갛게 상기된 작은 얼굴을 하고 말을 꾹 참고 있었다.다른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피곤하다는 뜻을 밝혔다.원유희는 얼굴을 돌려 김신걸을 보았다. 얼굴색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짙게 드리운 어두운 안색은 왠지 모르게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어전원에 도착한 다섯 식구는 주방에서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화장실에 갔다.세 녀석도 따라가려고 하자 김신걸이 불러 세웠다.“동작 그만.”원유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살펴보았다. 기억을 잃은 뒤 사고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너희들도 화장실에 갈 거니?”“안 간대.” 김신걸이 대신 답했다. “다녀와.”원유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몸을 돌려 화장실로 갔다.화장실 문이 닫히자, 검은 그림자가 세 아이에게 다가왔다. 삼둥이들은 벌벌 떨었다.“아빠…….”“오늘은 애교 안 통해. 스리슬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 김신걸의 위엄이 드러났다.합죽이가 된 세 꼬마는 작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너희 둘, 서재에 가서 벽 보고 반성해.” 김신걸이 조한과 상우에게 말했다.“우…… 우리 달못 없더요.”김신걸의 기에 주눅 들지 않고 조한은 승복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너희들에게 표원식 아저씨와 만나지 말랬지? “김신걸이 위압적으로 물었다.“아빠, 오늘 우연히 만…….” 상우가 상황 설명을 시도했다.“우연하게 만났다고 같이 쇼핑하고 놀아?”김신걸은 엄하게 다그쳤다.“서재 안 가
조한은 즉각 자극요법에 반응했다. 그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못하긴요? 우리 할 수 있떠요!”상우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좋아, 10장 베껴 써.”말을 마친 김신걸은 일어나 서재를 나왔다.김신걸이 나가자, 상우가 괴로워했다.“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간단한 한글밖에 못 쓰잖아…….”“암튼 난 할 거야!” 조한은 쉽게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사리손으로 펜을 들고 낑낑거리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좋아, 부적이라도 그려보지.“못생겼어!” 상우가 평을 내렸다.“…….”조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방으로 돌아온 김신걸은 원유희가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혼자 방에서 멍때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뭔 생각하고 있어?”그녀의 앞에 선 김신걸의 늘씬한 몸매는 강한 압도감을 주었다.원유희는 일어서서 약간 허탈한 눈빛으로 물었다.“화났어?”“쉽지 않네. 티 났어?”원유희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정말 화가 났다. 왜?“설마…… 그 교장선생님 때문에?”“무슨 얘기했어?” 김신걸이 물었다.“…… 무슨 말을 할까 봐 두렵니?” 원유희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김신걸의 숯검댕이 눈썹이 틀어지면서 얼굴은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온몸의 카리스마가 더욱 강한 압도감이 느껴졌다.원유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은 별말 안 했어……. 예전에 내가 아이를 학교에 맡겼다는 얘기만 했어.”“앞으로 연락하지 마.”김신걸이 말했다.“알았어……. 나 씻으러 갈게.”원유희는 몸을 돌려 욕실로 갔다.그녀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자신과 김신걸의 신분 차이를 잘 알고 있고, 김신걸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도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단지 아이들에게만 중요할 존재일 뿐이다.지금 이 처지에 어전원에서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다.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사치였다. 예컨대 그녀를 좋아해 준다는 거…….표원식이 한 이야기가 이 문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김신걸은 윤설을 좋아하고 또 윤
“아빠,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에요? 다음에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게요!”조한이 패기 있게 말했다.“우리도 알고 있더요. 우리 아빠는 한 명뿐이에요.”상우가 말했다.김신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부르지 마. 앞으로 그 아저씨 만나면 안 돼!”“아빠, 억지쟁이!”조한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베끼고 싶어?” 김신걸이 협박했다.조한과 상우의 작은 얼굴이 공포에 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싫어요!”김신걸이 이 녀석들을 못 잡을 리 없다.“방에 들어가 자.”꼬마 녀석들이 부리나케 서재를 빠져나와 짧은 다리를 빨리 움직였다.원유희는 아이들이 처벌받은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삼둥이도 유희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도 아빠가 두려웠기 때문이다!어쩌면 또 그렇게 어려운 글자를 베껴 써야 할지도 모르니!……김신걸은 요 며칠 비교적 바빴다. 원유희는 대부분 시간을 어전원에서 보냈고 외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표원식을 찾아 지난 일을 물어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때로는 모르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다만 이런 일상의 평온함이 또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녀를 우울하게 했다.원유희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혼자 거실로 돌아갔다.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한창 방송되고 있는 연예계 뉴스를 보았다. 피아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윤설은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사진에 응하고 있었다. 조명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아해 보였다.새로 구입한 피아노와의 대면식 같은 이벤트였다.“윤설 씨,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네요. 연예계 비주얼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미모면 미모, 재주면 재주,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네요. 다음 주에 A시에서 연주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요?”환하게 웃고 있는 윤설의 모습이 유난히 눈부셨다.“호호, 역시 일간지 기자님들이라 그런지 소식이 참 빠르시군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윤설 씨, 옆에 있는 이 피
“길면 이틀.”입술을 앙 다운 원유희의 숨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했다.다음 날 오전 김신걸은 A시로 떠났다. 원유희는 여전히 어전원에 있었다.바로 오후, 인터넷에는 윤설이 A시에서 피아노 연주 행사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심지어 A시에서 윤설이 호텔을 드나드는 모습도 매체에 찍혔다.잔디밭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지나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우는 모습을 애들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현재 김신걸도 A시, 윤설도 A시, 설마 둘은 지금 함께 있을까?’원유희는 자신이 내뱉는 모든 숨결마저 떨리고 슬프게 느껴졌다.흐릿한 시선 속에 비친 결혼반지는 마음을 옥죄이는 사슬같이 볼수록 더 괴로웠다.저녁 먹고 원유희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침 침대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렸다. 김신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원유희가 받았다.“여보세요…….”“잤어?”“아직…… 일 다 봤어?”원유희가 힘없이 물었다.“뭐, 거의……. 내일 돌아가. 나 보고 싶었어?” 김신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들어왔다.귀가 간질간질했다. 그녀는 가볍게 응, 하고 수긍했다.전화 저편, 김신걸의 침묵.“저기…….”뭔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김신걸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잠깐만, 여기 일이 생겼어. 좀 늦게 전화할게.”원유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는 이미 끊겼다.김신걸의 베개를 베고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김신걸의 전화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원유희는 잠이 들 때까지 김신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김신걸은 밤을 꼴딱 샜다. 진강 기슭을 따라 시작된 수색은 아침 7시까지 진행되었다. 아침에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내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했다.이렇게 바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휴대전화를 들어 원유희에게 전화해야 할지 고민했다. ‘시간이 너무 이르네. 괜히 아침 단잠을 깨울 필요는 없지…….’진선우는 수색할 일을 고민하는 줄 알고 입을 열었다.“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