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에요? 다음에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게요!”조한이 패기 있게 말했다.“우리도 알고 있더요. 우리 아빠는 한 명뿐이에요.”상우가 말했다.김신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부르지 마. 앞으로 그 아저씨 만나면 안 돼!”“아빠, 억지쟁이!”조한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베끼고 싶어?” 김신걸이 협박했다.조한과 상우의 작은 얼굴이 공포에 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싫어요!”김신걸이 이 녀석들을 못 잡을 리 없다.“방에 들어가 자.”꼬마 녀석들이 부리나케 서재를 빠져나와 짧은 다리를 빨리 움직였다.원유희는 아이들이 처벌받은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삼둥이도 유희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도 아빠가 두려웠기 때문이다!어쩌면 또 그렇게 어려운 글자를 베껴 써야 할지도 모르니!……김신걸은 요 며칠 비교적 바빴다. 원유희는 대부분 시간을 어전원에서 보냈고 외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표원식을 찾아 지난 일을 물어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때로는 모르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다만 이런 일상의 평온함이 또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녀를 우울하게 했다.원유희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혼자 거실로 돌아갔다.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한창 방송되고 있는 연예계 뉴스를 보았다. 피아노 옆에 우아하게 서 있는 윤설은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사진에 응하고 있었다. 조명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아해 보였다.새로 구입한 피아노와의 대면식 같은 이벤트였다.“윤설 씨,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네요. 연예계 비주얼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미모면 미모, 재주면 재주,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네요. 다음 주에 A시에서 연주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가요?”환하게 웃고 있는 윤설의 모습이 유난히 눈부셨다.“호호, 역시 일간지 기자님들이라 그런지 소식이 참 빠르시군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윤설 씨, 옆에 있는 이 피
“길면 이틀.”입술을 앙 다운 원유희의 숨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했다.다음 날 오전 김신걸은 A시로 떠났다. 원유희는 여전히 어전원에 있었다.바로 오후, 인터넷에는 윤설이 A시에서 피아노 연주 행사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심지어 A시에서 윤설이 호텔을 드나드는 모습도 매체에 찍혔다.잔디밭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지나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우는 모습을 애들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현재 김신걸도 A시, 윤설도 A시, 설마 둘은 지금 함께 있을까?’원유희는 자신이 내뱉는 모든 숨결마저 떨리고 슬프게 느껴졌다.흐릿한 시선 속에 비친 결혼반지는 마음을 옥죄이는 사슬같이 볼수록 더 괴로웠다.저녁 먹고 원유희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마침 침대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렸다. 김신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원유희가 받았다.“여보세요…….”“잤어?”“아직…… 일 다 봤어?”원유희가 힘없이 물었다.“뭐, 거의……. 내일 돌아가. 나 보고 싶었어?” 김신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들어왔다.귀가 간질간질했다. 그녀는 가볍게 응, 하고 수긍했다.전화 저편, 김신걸의 침묵.“저기…….”뭔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김신걸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잠깐만, 여기 일이 생겼어. 좀 늦게 전화할게.”원유희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는 이미 끊겼다.김신걸의 베개를 베고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김신걸의 전화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원유희는 잠이 들 때까지 김신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김신걸은 밤을 꼴딱 샜다. 진강 기슭을 따라 시작된 수색은 아침 7시까지 진행되었다. 아침에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내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했다.이렇게 바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휴대전화를 들어 원유희에게 전화해야 할지 고민했다. ‘시간이 너무 이르네. 괜히 아침 단잠을 깨울 필요는 없지…….’진선우는 수색할 일을 고민하는 줄 알고 입을 열었다.“사장님,
두 도시의 거물들이 만났으니 이번 회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로 따라 적지 않은 후폭풍을 일으켰다.왜 만났지? 백화점에 무슨 큰 변고가 있는 걸까? 이런 회동은 처음이다.그냥 간단한 밥 한 끼 먹는 줄은 미처 생각도 못 했다.김신걸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레스토랑에는 육성현 혼자만 있었다.“늦었습니다.” 김신걸은 앉았다.“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어.”육성현이 말했다.“제성에 있을 때부터 같이 식사하자는 게, 첫 식사를 A시에 할 줄은 몰랐네. 푸대접은 아니어야 할 텐데…….”“아닙니다. 안 그래도 제가 오늘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정보가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김신걸은 별다른 내색 없이 침착했다.“그렇게 거창하게 수색을 벌이는데,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육성현은 눈빛이 냉담하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사람을 찾고 있는 겐가? 내가 도울 수도 있을 텐데…….”똑똑한 사람들은 말을 빙빙 에둘러 하지 않는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라인이라는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 총상을 입고 진강에 추락했는데, A시로 도주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직 행방불명인 상태입니다.”김신걸이 말했다.“그래, 사람들에게 일러두지. 꼭 찾아낼 거야.”육성현이 말하면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히 또 누군가가 올 것이다.“오늘 둘만의 식사 자리인 줄 알았습니다.” 김신걸은 참을성이 없이 말을 꺼냈다.“자네도 아는 사람일세. 저기 오네.” 육성현이 말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화려하지만 깔끔한 차림의 윤설이 종업원의 인솔하에 레스토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육성현이 말을 이었다.“마침 설이도 A시에 있었네. 자네도 있고, 식사는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맛있는 법이지.”윤설이 테이블 자리에 도착했다.“아저씨.” 김신걸을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신걸아.”김신걸은 별말 없이 담담하게 쳐다보았다.김신걸의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에 윤설의 웃음도 다소 억지스러워졌다.“앉아.” 육성현이 말했다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난 윤설은 바로 육성현의 말에 반응했다. “네, 아저씨, VIP 석을 미리 준비해 놓을게요.” 마음속의 불쾌함을 감추고자 내심 애쓰고 있었다.‘이렇게 급히 돌아가려는 것은 원유희와 함께 있고 싶은 거겠지?’그녀는 김신걸이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그러나 누구도 그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식사를 마치고 그는 일찍이 자리를 떴다.윤설이 말했다.“아저씨, 신걸이 언제 A시에 왔어요?”“어제 오전에……. 몰랐어?” 육성현은 손에 와인잔을 들고 물었다.“요즘 바빠서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유희 씨가 교통사고 났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 일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윤설이 말했다.그녀는 육성현을 이용하여 김신걸과의 관계를 만회하려고 했다.육성현은 자신이 윤정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오늘 저녁 식사에 자신을 초대할 수 있었겠지? 그것도 김신걸과 함께 한 자리에…… 이는 명백히 그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엄마가 돌아가신 후 신걸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데…….”윤설은 슬프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신걸이 없으면 안 돼요. 유희 씨는 그래도 애가 셋이나 있잖아요!”“남의 애정전선에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설아가 우세한 거 같은데…… 신걸이도 너에게 매정한 거 같지는 않두만…….”육성현은 뜨뜻미지근하게 말했다.“저도 신걸이가 저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요. 삼둥이가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쯤 이미 신걸이와 결혼했겠죠.”윤설은 자신 있게 말했다.그녀의 엄마도 남자의 약점은 애라고 말했었다.하필 그녀는 없었다.“사람은 말이야, 목숨이 붙어있는 한 늘 기회는 있단다.” 육성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일어나 떠났다.“있다가 시간 맞춰 갈게.”윤설은 육성현이 식당 입구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육성현의 한 말은 그녀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차에 오르려는 김신걸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원유희 앞으로 다가왔다.원유희는 그가 무슨 일을 당부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신걸은 두 손으로 삼둥이의 눈을 가리고는 얇은 입술로 그녀의 작은 입을 덮쳤다. 달콤한 입맞춤에 원유희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밝아진 삼둥이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아빠의 차는 떠났는데, 엄마의 얼굴은 발그스레 해졌다. 마치 맛있는 빨간 사과처럼.원유희는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핸드폰이 울리자 확인해 보니 김신걸이 걸어온 전화다.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 밖을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오늘은 점심은 집에 안 들를거야.”“음, 회사에서 먹을 거야?” 원유희가 물었다.“응, 오후에 별일 없으면 일찍 들어갈게.”“응, 일 봐.”“착하네. 말도 잘 듣고…….”“나…… 아기 아닌데…….”원유희는 김신걸이 자신을 애 취급하는 것처럼 느꼈다.“어리진 않지.” 김신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왠지 모르지만, 그의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뭐가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으나.전화를 끊고 원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사모님, 지금 사장님 생각하고 있죠? 보고 싶은가보다…….”임민정이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원유희는 얼굴이 뜨거워졌다.“아니에요, 보고 싶긴요…….”“보고 싶으면, 회사에 가면 되죠.”임민정이 말했다.“바쁜 사람인데, 내가 가면 방해되죠.”원유희도 가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 김신걸의 일을 방해할까 봐 두려웠다.임민정이 아이디어를 냈다.“사장님에게 도시락을 챙겨가는 건 어때요? 사장님 일도 바쁘다고 식사 거르면 안 될 텐데…….”맞는 얘기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챙겨야 하니, 도시락 챙겨가는 구실이 그럴싸해 보였다.그런데, 한 번도 간 적이 없으니 덜컥 겁이 나기도…….“사모님, 가세요! 사장님이 사모님을 보시면 틀림없이 좋아하실 거예요!” 임민정은 그녀를 주방 쪽으로 끌고 갔다.“정말요?
유희는 휴게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충격으로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호흡마저 가빠졌다.“어제 우리 A시에서 행복한 하룻밤 보냈잖아. 오늘 또 찾아오면 어떡해?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너무 자주 만나면 유희한테 들킬 텐데…….”윤설의 걱정스럽고 난처한 목소리.“신걸아, 너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거 알고 있어. 애들을 위해 지금껏 참고 견딘 거. 애들에게 자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희를 사랑하는 척한 거…… 나, 다 알고 있어. 나도 괴로워. 그때 내가 유희랑 결혼하라고 강요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래서 난 지금 전에 네가 얘기했던 그 제안에 동의해. 적당한 때에 유희랑 이혼해.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 너 없으면 안 돼…… 유희는 절대로 나한테서 널 뺏지 않을 거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차지한다고 좋은 결과가 있는 건 아니니까…….”원유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눈에 물안개가 낀 뜻 시야가 흐릿해졌다.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몸을 돌려 탁자 위의 도시락을 들고 정신없이 사무실을 뛰쳐나왔다.윤설은 바깥의 동정을 듣고 나서야 휴게실 문을 열고 나왔다.그렇다. 휴게실 안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김신걸이 오늘 바깥 용무로 바쁘다는 것을 알고 미리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자기 남편이 전 약혼녀와 함께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맛보게 해주리라. 원유희를 궁지로 몰 때까지!원유희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서 발걸음이 꼬이면서 앞으로 넘어졌다.“아!”손에 든 도시락이 바닥에 떨어져 모두 뒤집혔다.원유희는 준비한 음식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줍지도 않고 고개를 들고 차로 향했다.차에 오르자,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운전기사는 물었다.“사모님, 빨리 오셨네요. 점심 도시락 배달은 잘하셨습니까?”“없었어요.”원유희가 말했다.사람이 없다니, 기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는, 원유희가 기분이 좋지
“사모님, 다른 사람한테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사장님이 절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임민정이 말했다.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임민정의 처지를 고려해 살며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요.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어전원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고마워요. 솔직하게 얘기해줘서…….”“저도 말하면 안 되는데……. 사모님이 속고 있는 게 너무 딱해서……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임민정은 말했다.“사장님은 윤설 아가씨를 사랑하면서, 왜 사모님과 결혼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이러면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셈인데…….”원유희는 슬픈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왜 그녀와 결혼했을까?사무실에서 똑똑히 들었다. 김신걸은 윤설의 핍박에 못 이겨 자신과 결혼했다고.처음에는 그래도 애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그녀의 결혼은 그들의 시주품이다.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빼앗아 갈 수 있는…….“사모님, 괜찮으세요?” 임민정은 관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아니요…….”거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지금 밥 먹는 중이라고 임민정이 말해주었다.그래서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마음이 어지럽고 아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끌고 땅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옥까지.멍때리고 있는데 삼둥이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엄마!”“엄마!”“엄마!”원유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애들과 장난쳤다.“밥은 다 먹었어?”“엄마 밥 먹었더요?” 조한이 물었다.유담은 약삭빠르게 말했다.“엄마가 아빠 도시락 배달 갔다고 해림 아더씨가 얘기해줬닪아. 그러니까 틀림없이 아빠랑 같이 밥 먹었지…….”“맞아!” 상우도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원유희는 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먹었어.”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밥 생각도 없었다.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무시당한 걸 얘기해 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오
유담의 얼굴과 함께 유희의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이어 조한과 상우의 작은 머리가 밀고 들어와 아빠를 소리 높이 불렀다.어른 한 명과 꼬마 세 명, 모자가 함께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았다. 검은 눈동자에 자상함이 서려 있었다.영상 속 김신걸의 화면 배경은 사무실이었다.조금 전 윤설과 휴게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이쯤이면 윤설은 떠났겠지, 그랬으니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거지…….“아빠, 우리 지금 엄마랑 나비 잡고 있더요.” 조한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기운이 넘친다.“나와 엄마는 나비 사진을 찍고 있더요!” 유담도 한마디 거들었다.“나비가 많아요! 예뻐요!” 상우가 말했다.삼둥이는 번갈아가며 아빠와 재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나비 사진 찍어서 보내줘.” 김신걸이 말했다.“엄마 핸드폰 드려.”“네!” 삼둥이는 핸드폰을 유희에게 넘기고 해림에게 달려갔다. 핸드폰 내놓으라고.영상에는 김신걸과 원유희가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원유희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별일 없으면 아이들한테 가볼게…….”“왜? 내가 애들보다 못해? 응?” 낮고 굵은 김신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원유희는 시선을 떨구었다.“바쁜 거 아냐?”“지금은 안 바빠.”“밥은?”원유희가 물었다.“아직, 이제야 막 시간이 나서……. 이따가 먹으려고.” 김신걸이 말했다.‘윤설이 갔으니, 시간이 났겠지…….’자신은 윤설보다 뒷전이다. 그런데 전화는 왜 한 걸까?분명 애들 때문이겠지, 절대 자기 때문이 아니라…….만약 오늘 드래곤 그룹에 가지 않았더라면, 정말 멍청하게 김신걸의 모든 행동이 진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럼 밥 먹으러 가, 난 애들한테 가 볼게.”“응, 오후에 갈게. 그리고 낮잠은 애들 따로 재워. 같이 자지 말고!” 김신걸은 말했다.“……알았어.”원유희는 화상 전화를 끊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가 낮잠을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