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됐어. 지금 가.”여채아가 부랴부랴 눈물을 닦아냈다.식탁 앞에 마주앉은 두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오후에 애들 픽업은 내가 갈게요. 엄마는 쉬세요.”“어린이집에 그만 보내지 그래? 전에는 너도 출근해야 하고 애들 혼자 집에 둘 수 없으니까 그런 거지만…… 이제 나도 괜찮고 애들 케어할 수 있어. 엄한 돈 쓰지 마.”“괜찮아요. 다른 애들이랑 지내도 보고 사회성도 길러야죠.”비록 생활형편은 어려워도 교육만은 최고로 시켜주고 싶은 원유희였다.오후, 어린이집에 도착한 원유희의 시야에 삼둥이의 모습이 들어왔다.아이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삼둥이의 모습에 원유희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다행이다. 잘 적응해 줘서…….’그녀가 문을 열고 십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한편, 방금 전까지 세상 모르고 놀고 있던 삼둥이들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원유희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엄마!”“엄마!”“엄마!”갑작스러운 변화에 원유희도 당황스러웠다.“표정 변화 너무 빠른 거 아니야?”누군가의 목소리에 원유희가 고개를 돌렸다.언제 나타났는지 안경을 쓴 표원식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교장 오빠(형) 안녕하세요!”삼둥이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얘들 좀 봐.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원유희가 바로 수정해 주자 조한이 바로 반박했다.“교장선생님은 너무 젊으니까 형아 같아요!”세 아이들의 존경어린 시선에 표원식이 어깨를 으쓱했다.“아이들이 역시 가장 솔직하군요.”말을 마친 표원식은 올 때처럼 소리없이 자리를 뜨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원유희가 반박자 늦게 허리를 숙였다.“안, 안녕히 가세요.”잠시 후, 여채아의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신발도 벗기 전에 눈을 반짝였다.“할미다!”“할미 어디 갔었져요?”“할미, 보고 시펐져요!”품에 착착 감기는 삼둥이를 쓰다듬던 여채아가 몰래 눈물을 흠쳤다.“외할머니 일 때문에 잠깐 어디 좀 갔다 왔었어.”유담이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오호, 좋은 핑계인데?놀이동산에 도착한 원유희는 아이들과 함께 회전목마도 타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즐겼다.“이번에는 저쪽으로 가볼까?”원유희가 다른 놀이기구를 가리키던 그때 왠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들은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뭘 그렇게 보나 싶어 다가가 보니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은 건 바로 바이킹이었다. 아찔한 높이로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는 바이킹의 모습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원유희의 입까지 살짝 벌러졌다.‘아이고, 이럴 때 보면 애 같다니까.’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채아가 웃음을 터트렸다.“엄마, 우리도 저거 타요!”조한이 통통한 손가락으로 바이킹을 가리키고 원유희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돼! 저건 어린애들은 타면 안 되는 거야! 우리 다른 쪽으로 가보자.”말을 마친 원유희는 여채아와 함께 아이들을 끌고 다른 쪽으로 향했다.‘얘들아, 미안…… 사실 엄마도 저건 무서워…….놀이동산에서 2시간 동안 논 삼둥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쇼핑몰에도 들렀다.“솜사탕이다!”세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모두 솜사탕 쪽으로 쏠렸다.“솜사탕 먹고 싶어? 엄마가 사줄게. 그래도 여긴 사람 너무 많으니까 마스크 벗지 말고 손에 들고만 있자? 차에 타서 먹는 거야? 알겠지?”“네!”각자 솜사탕을 하나씩 손에 쥔 아이들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건지 뚫어져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먹겠다고 애를 쓰지 않았다.일찍 철이 든 아이들 모습에 원유희는 왠지 안타까웠다.‘게다가 오랜만에 나와서 노는 건데 사진 한 장 못 찍었네…….’하지만 다음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진 같은 건 사치나 마찬가지였다.잠시 후, 한 사진관을 지나던 원유희는 창문에 걸린 사진들을 바라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엄마, 애들 데리고 저기 디저트 가게로 가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그래. 얘들아, 가자.”여채아가 아이들과 함께 사라지고 사진관으로 들어간 원유희가 말했다.“저기…… 남성
어느새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지만 조한은 여전히 김신걸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눈동자는 어른이 봐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지만 눈앞의 이 아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눈싸움?’뒤에 서 있던 고건이 생각했다.“뭘 봐?”잠깐 동안의 대치가 이어지고 김신걸이 먼저 입을 열었다.차가운 목소리에 흠칫하던 조한이 곧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저씨 본 거 아니거든요!”‘하, 이 자식 성깔있네?’“엘리베이터는 어른이랑 같이 타야 하는 거 몰라?”아이라면 질색인 자신이 이름 모를 남자애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김신걸 스스로도 놀라웠다.“난 애 아니고든요!”‘하이고, 고집은…… 울리면 재밌긴 하겠네…….’김신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다시 도착하고 조한이 쪼르르 그쪽으로 달려갔다.엘리베이터에 탄 조한은 다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김신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잠시 후, 롤스로이스 문이 열리고 김신걸을 에스코트한 고건이 조수석에 탔다.“이쪽 토지는 고급 빌라로 다시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번 프로젝트 무조건 성공할 거예요.”고건의 말에도 김신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백미러로 김신걸의 눈치를 살피던 고건이 문득 물었다.“대표님, 아이 좋아하십니까?”“아니, 완전 싫어해.”조한이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을 찾아내 티슈를 뽑아내고 다시 돌아갈 무렵,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당황한 원유희와 여채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쇼핑몰 CCTV라도 확인해 봐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그때 아이 한 명이 원유희의 다리에 퍽 하고 부딪혔다.“악!”제대로 넘어진 조한은 바닥에서 두 바퀴나 구른 뒤 벌떡 일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도 솜사탕과 티슈는 손에 꼭 들고 있었다.“조한아?”“엄마, 나 티슈 찾았어요!”조한이 전리품을 자랑하듯 티슈를 흔들었다.한걸음에 달려간 원유희가 조한을 꼭
조한이 팔을 끝까지 뻗어올렸다.‘도대체 얼마나 닮았길래 애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야? 누구지? 설마…… 김신걸? 김신걸이 여기로 온 건가?’“우리 아빠야?”“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어!”상우의 질문에 유담이 고개를 저었다.“엄마, 아빠 사진 보여준다면서요?”“아, 집에 가서 보여줄게.”조한의 질문에 흠칫하던 원유희가 말했다.“그리고 너희들이랑 닮았다는 그 남자…… 아빠 아니야.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다음에 혹시나 다시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는 거야. 특히 얼굴은 무조건 숨겨야 해. 알겠지?”“네…… 알겠어요…….”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이니 일단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는 삼둥이었다.집에 도착하고 삼둥이는 원유희 아빠라고 주장하는 사진속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복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채아가 원유희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저 사람은 누구야?”“저도 몰라요. 사진관에서 대충 합성해 준 거라.”“정말…… 괜찮겠어?”“어쩔 수 없죠. 정말 김신걸 사진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이때 삼둥이가 사진을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엄마, 할미! 우리 이 사진 걸어둬요!”“매일 아빠한테 인사 할래요!”“향도 피울래요!”“풉, 안…… 안 그래도 돼.”‘향을 피운다니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날마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어휘력에 깜짝깜짝 놀라는 원유희였다.“어쨌든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아. 늦었다. 얼른 씻고 자자~”아이들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까 싶어 원유희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샤워를 마치고 원유희가 조한의 몸을 닦아주던 그때,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원유희가 웃음을 터트렸다.“거울속으로 들어가겠다. 뭘 그렇게 봐.”“엄마, 정말 닮았어!”“이 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긴 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정말 김신걸을 만난 걸까?’다음 날, 출근하기 전, 원
“하, 그래. 네가 무슨 염치로 말하겠어. 도둑X 주제에.”원수정이 표독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이제 살인사건도 다 해결되었겠다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는 여채아가 단호하게 돌아서자 혼자 남은 원수정이 거칠게 핸드백을 바닥에 내던지며 화풀이를 대신했다.‘여채아의 유일한 약점이었는데…… 감옥에 처넣으면 영원히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나온 거야?’사실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분명 유희가 김신걸 그 자식한테 부탁한 걸 거야…… 돈 없고 백 없는 걔가 무슨 수로 엄마를 빼냈겠어. 그런데…… 유희는 그렇다 치고 김신걸 그 자식이 부탁을 들어줬다고? 하, 내 마음대로 되는 꼴은 못 보겠다 이거지? 나도 이대로 참고는 못 살아.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며칠 뒤, 출근 중인 원유희는 고모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네? 밥이요?”“그래. 고모랑 단둘이서. 레스토랑 예약도 고모가 다 끝냈어.”“무슨 날이에요?”원유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우리 조카랑 밥 한 끼 할 수 있는 거지. 꼭 무슨 특별한 날이어야 하니?”“그건 아니죠. 그런데 낮에는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있을지…….”“그 성형외과는 직원들 쉬는 시간도 안 주니?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밥 먹을 시간은 있을 거 아니야. 그리고 네 백이 누군지 잊은 거야? 다른 직원들이 눈치줘? 고모가 가서 뭐라고 할까?”“아, 아니에요. 그래요, 밥 먹어요.”한숨을 내쉰 원유희가 결국 제안에 응했다.어차피 점심 시간에 나가면 시간도 얼마 안 걸릴 테고 행여나 고모가 정말 성형외과로 와서 행패라도 부린다면…….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다.‘그냥 조용히 일하고 싶어…… 갑질 하려고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백…… 내가 원한 것도 아니잖아…… 김신걸 쪽이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고모와 연락하는 걸 모르는 눈치도 아니고, 그 동안 별말 없었으니 밥 한끼 먹었다고 뭐라고 하겠어…….’다음
표원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원유희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지금 내가 나가버리면 선생님은 혼자 식사하셔야 하잖아…… 그건 예의가 아니겠지?’표원식이 먼저 메뉴판을 건네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아, 선생님께서 알아서 주문하세요. 전 다 잘 먹어요…….”“뭐 못 드시는 건 있어요?”“그게……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다른 건 다 괜찮아요. 마음껏 시키세요.”이 자리가 불편한 원유희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피식 웃던 표원식이 알아서 주문을 시작하고 잠시 후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본 원유희가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정말 해산물 요리는 하나도 안 시키셨네…….’“아, 저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해산물. 먹기에 좀 귀찮기도 하고…….”사실인지 인사치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작 하나하나 그녀를 배려해 주는 그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우아한 손짓만 봐도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이 느껴졌다.그럼에도 원유희는 왠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맞선 상대가 아니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학교 그만둔지 꽤 됐는데 선생님만 보면 아직도 기가 죽는단 말이야……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긴 하지만…….’“아이들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신 겁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란 원유희가 자세를 고쳐잡았다.“아…… 네. 그런데 제 고모는 저한테 애가 있다는 걸 모르세요. 그러니까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거겠죠…….”“아…… 그럼 앞으로 원유희 씨를 방패막으로 이용해도 될까요?”표원식이 난색을 표했다.“사실 이런 맞선…… 저도 질색이거든요.”“그래도…… 그건 좀…….”“아, 공짜로 이런 부탁을 드릴 순 없죠. 앞으로 삼둥이 학비는 특별히 디스카운트해 드리겠습니다.”‘정말? 내 이름만 팔면 학비를 줄일 수 있다고? 좋은데?’“그럼 저도 뭐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말씀하세요.”물수건으로 긴 손가락을 닦아내던 표원식이 말했다.“그게…… 저한테 아
원유희는 차마 김신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지만 공기중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이미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다급하게 해명했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그런 거? 어떤 거?”손예인이 다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말없이 그녀의 곁을 지나던 김신걸이 표원식의 얼굴을 훑어보았지만 표원식은 딱히 무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음침한 분위기의 남자네……’곧이어 김신걸 일행이 레스토랑을 나서고 여전히 넋이 반쯤 나간 듯한 원유희를 돌아보던 표원식이 물었다.“괜찮아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의 입술이 살짝 떨려왔다.“네, 괜찮아요. 저희도 가요…….”차에 탄 원유희는 멍하니 스쳐지나는 길가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맑은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안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왜…… 하필 여기서 김신걸과 마주치게 된 거야? 혹시 이상한 오해 같은 건 하지 않겠지? 손예인도 옆에 있다는 건 비즈니스적인 식사는 아니라는 거고…… 뒤에 있는 사람들도 손예인 가족처럼 보였어. 두 사람 정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하긴…… 손예인 정도면 김신걸에게 어울리는 신부감이긴 하지. 만약 손예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김신걸도 날 놓아줄까?”“방금 전 그 남자…… 혹시 삼둥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원유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아이들과 너무 닮았더군요.”“이것도…… 비밀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원유희가 애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 사생활에 딱히 관심없습니다.”“감사합니다…….”그녀를 성형외과 앞까지 데려다준 표원식의 차량이 떠났지만 원유희는 한참동안 도로변에서 멍하니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갔다.그 뒤에도 오후내내 원유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아니지. 내가 괜히 불안해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누구랑 만나서 밥을 먹든 김신걸은 관심없을 수도 있어. 김씨 일가 사람들과 만나지 말라고 했지 다른 사람이랑 만나지 말라고는 안했잖아…….’원유희가 자기 합리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영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이 정도 큰 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 김풍그룹에게 이 정도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김신걸뿐일 것이다.아버지인 김영을 바라보는 눈빛이며 내뱉는 말이며 분명 날서린 증오가 담겨있었지만 그저 말뿐일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정말 김풍그룹을, 자신의 본가를 파산까지 몰고 가려는 것일까?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중요하니 김영은 체면을 접어두고 드래곤 그룹으로 향했다.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김영은 드래곤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지키는 경호원에게 쫓겨나오고 말았다.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면 정말 때릴 기세인 경호원들의 모습에 김영은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평소 뉴스에 딱히 관심이 없는 원유희도 직원들의 입에서 김풍그룹이 곧 파산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김풍그룹은 제성의 굴지의 그룹, 국가적인 경제 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멀쩡한 기업이 갑자기 파산하다니.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냐며 혀를 끌끌 찼다.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그때, 바로 원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무조건 김신걸 그 자식 짓이야! 그 자식 말고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아버지한테 칼을 뽑아!”울먹이는 고모의 목소리에 원유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요?”원유희는 이번 일에 김신걸이 연루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신걸이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 중 그녀가 없었으면 했다.“네 고모부도 몰래 알아봤는데 누가 그러더란다. 드래곤 그룹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그런데도 오해라고? 너희 고모부가 드래곤 본사까지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도 모자라서 하마터면 맞을 뻔했대!”“네? 설마 다치셨어요?”원유희이 눈이 커다래졌다.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친아버지를 때리나 싶을 테지만 워낙 예측불가의 폭력성을 보이는 김신걸이라면……. 차마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