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원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원유희도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지금 내가 나가버리면 선생님은 혼자 식사하셔야 하잖아…… 그건 예의가 아니겠지?’표원식이 먼저 메뉴판을 건네자 원유희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아, 선생님께서 알아서 주문하세요. 전 다 잘 먹어요…….”“뭐 못 드시는 건 있어요?”“그게……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다른 건 다 괜찮아요. 마음껏 시키세요.”이 자리가 불편한 원유희는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피식 웃던 표원식이 알아서 주문을 시작하고 잠시 후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본 원유희가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정말 해산물 요리는 하나도 안 시키셨네…….’“아, 저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해산물. 먹기에 좀 귀찮기도 하고…….”사실인지 인사치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작 하나하나 그녀를 배려해 주는 그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우아한 손짓만 봐도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이 느껴졌다.그럼에도 원유희는 왠지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맞선 상대가 아니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학교 그만둔지 꽤 됐는데 선생님만 보면 아직도 기가 죽는단 말이야……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긴 하지만…….’“아이들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신 겁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란 원유희가 자세를 고쳐잡았다.“아…… 네. 그런데 제 고모는 저한테 애가 있다는 걸 모르세요. 그러니까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거겠죠…….”“아…… 그럼 앞으로 원유희 씨를 방패막으로 이용해도 될까요?”표원식이 난색을 표했다.“사실 이런 맞선…… 저도 질색이거든요.”“그래도…… 그건 좀…….”“아, 공짜로 이런 부탁을 드릴 순 없죠. 앞으로 삼둥이 학비는 특별히 디스카운트해 드리겠습니다.”‘정말? 내 이름만 팔면 학비를 줄일 수 있다고? 좋은데?’“그럼 저도 뭐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말씀하세요.”물수건으로 긴 손가락을 닦아내던 표원식이 말했다.“그게…… 저한테 아
원유희는 차마 김신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지만 공기중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이미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다급하게 해명했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그런 거? 어떤 거?”손예인이 다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말없이 그녀의 곁을 지나던 김신걸이 표원식의 얼굴을 훑어보았지만 표원식은 딱히 무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음침한 분위기의 남자네……’곧이어 김신걸 일행이 레스토랑을 나서고 여전히 넋이 반쯤 나간 듯한 원유희를 돌아보던 표원식이 물었다.“괜찮아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의 입술이 살짝 떨려왔다.“네, 괜찮아요. 저희도 가요…….”차에 탄 원유희는 멍하니 스쳐지나는 길가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맑은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안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했다.‘왜…… 하필 여기서 김신걸과 마주치게 된 거야? 혹시 이상한 오해 같은 건 하지 않겠지? 손예인도 옆에 있다는 건 비즈니스적인 식사는 아니라는 거고…… 뒤에 있는 사람들도 손예인 가족처럼 보였어. 두 사람 정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하긴…… 손예인 정도면 김신걸에게 어울리는 신부감이긴 하지. 만약 손예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김신걸도 날 놓아줄까?”“방금 전 그 남자…… 혹시 삼둥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원유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아이들과 너무 닮았더군요.”“이것도…… 비밀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원유희가 애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 사생활에 딱히 관심없습니다.”“감사합니다…….”그녀를 성형외과 앞까지 데려다준 표원식의 차량이 떠났지만 원유희는 한참동안 도로변에서 멍하니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갔다.그 뒤에도 오후내내 원유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아니지. 내가 괜히 불안해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누구랑 만나서 밥을 먹든 김신걸은 관심없을 수도 있어. 김씨 일가 사람들과 만나지 말라고 했지 다른 사람이랑 만나지 말라고는 안했잖아…….’원유희가 자기 합리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영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이 정도 큰 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 김풍그룹에게 이 정도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김신걸뿐일 것이다.아버지인 김영을 바라보는 눈빛이며 내뱉는 말이며 분명 날서린 증오가 담겨있었지만 그저 말뿐일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정말 김풍그룹을, 자신의 본가를 파산까지 몰고 가려는 것일까?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중요하니 김영은 체면을 접어두고 드래곤 그룹으로 향했다.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김영은 드래곤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지키는 경호원에게 쫓겨나오고 말았다.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면 정말 때릴 기세인 경호원들의 모습에 김영은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평소 뉴스에 딱히 관심이 없는 원유희도 직원들의 입에서 김풍그룹이 곧 파산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김풍그룹은 제성의 굴지의 그룹, 국가적인 경제 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멀쩡한 기업이 갑자기 파산하다니.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냐며 혀를 끌끌 찼다.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그때, 바로 원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무조건 김신걸 그 자식 짓이야! 그 자식 말고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아버지한테 칼을 뽑아!”울먹이는 고모의 목소리에 원유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요?”원유희는 이번 일에 김신걸이 연루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신걸이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 중 그녀가 없었으면 했다.“네 고모부도 몰래 알아봤는데 누가 그러더란다. 드래곤 그룹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그런데도 오해라고? 너희 고모부가 드래곤 본사까지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도 모자라서 하마터면 맞을 뻔했대!”“네? 설마 다치셨어요?”원유희이 눈이 커다래졌다.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친아버지를 때리나 싶을 테지만 워낙 예측불가의 폭력성을 보이는 김신걸이라면……. 차마 확신할 수 없었다.
원유희의 심장이 살짝 조여들었다.‘김신걸 경호원이네…….’혼자 뒷좌석에 앉은 그녀는 전쟁터에 나가는 결사대의 마음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차까지 보낸 거면 희망이 있는 걸까? 뭐가 어떻게 되든 고모한테 도움만 될 수 있다면 뭐든 좋아…….’하지만 김신걸이 정말 그녀의 부탁을 또 들어줄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들고 회사 앞에서 내리는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권력의 상징인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빌딩이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는 듯했다.원유희는 보디가드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최고층으로 향했다.그리고 비서실 고건 비서가 그녀를 다시 사무실 앞으로 향했다.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 원유희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고건이 문을 잠가바렸다.마지막 퇴로까지 막힌 느낌에 원유희의 심장이 거세게 콩닥거리기 시작했다.훤한 낮임에도 불 하나 켜지 않은 사무실은 밤처럼 어두웠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는 마치 어둠속에서 맹수를 피하는 초식동물과도 같았다.분명 어딘가 맹수가 있다는 걸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 그 언제든지 몸을 숨긴 맹수가 나타나 그녀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무슨 일이야?”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원유희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홱 고개를 돌린 원유희의 시야에 사무실 의자에 앉은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흐릿한 그림자였음에도 그 남자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원유희는 알고 있었다.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원유희가 대답했다.“전……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고…… 고모부 회사에 왜 그런 거야?”“대신 사정이라도 하려고 온 건가?”김신걸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했다.“아니.”원유희가 다급하게 부정했다.고모의 편을 든다는 걸 알면 괘씸해서라도 도와주지 않을 게 분명할 터.“그…… 그냥 나 때문인가 싶어서…….”“그래? 왜 그렇게 생
고개를 돌린 원유희는 기세등등한 손예인의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이때…… 손예인과는 더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그녀를 향해 다가온 손예인이 혐오 섞인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원유희, 정말 살다살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너 안 만나겠다잖아. 도대체 무슨 염치로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남자가 그렇게 고파?”“신걸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제발 가라……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제발 좀 가라고…….’“무슨 일? 아~ 너희 그 천박한 고모네 집안일? 그거라면 포기해. 오빠가 네 부탁 한 마디에 포기할 것 같아? 울면서 바지가랑이를 붙잡아도 눈 하나 깜박 안 할 걸? 그리고 오빠는 오늘 내가 만나기로 했으니까 이만 돌아가.”경비원이 손예인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노려봐준 손예인이 엘리베이터와 함께 사라졌다.혼자 남겨진 원유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오늘만 안 만나주는 거면 다행이게. 상황을 보아하니 내일도 딱히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아.’“네가 아무리 엉겨붙어도 내 계획은 바뀌지 않아.”김신걸의 말이 다시 머리속에서 메아리쳤다.그녀의 몸뚱아리 따위 별 가치가 없다는 말처럼 들려 수치심이 밀려왔다.그렇게 원유희는 빨개진 눈으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건물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무거운 마음으로 회사 돌아가려던 그때, 고모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쉴새 없이 몰아치는 원수정이 원망스러웠지만 전화를 받는 것 말고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유희야, 어떻게 됐어? 김신걸 그 자식 만났어? 뭐래?”“만났는데…… 안 된대요.”“아니 왜? 여채아 그 여자도 풀어줬잖아? 그런데 왜 이건 안 된대? 유희야, 좀 더 매달려봐. 응?”“고모, 죄송해요…… 전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말을 마친 원유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김신걸에게 부탁을 해? 무슨 자격으로…….’한편, 사무실로 들어온 손예인이 온갖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오빠
사무실을 나선 손예인은 생각할수록 분한 기분에 하이힐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김신걸과 가까워지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써봤지만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해졌다.‘내가 매력이 없나? 그럴 리가 없고…… 그리고 신걸 오빠랑 원유희…… 정말 안 잔 거 맞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손예인이 자신의 생각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신걸 오빠는 원유희를 경멸해. 같이 밥 먹고, 건물을 사고…… 이런 건 결국 원유희를 괴롭히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야. 정말 원유희를 좋아한다면 김풍그룹을 향해 칼을 빼들 리가 없지…….’어렸을 때 온갖 사랑을 받고 자란 손예인이 원유희가 김신걸에게 어떤 의미로든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한편, 평생 일궈온 그룹이 파산될 위기에 처하자 김영, 김덕배 형제 그리고 김덕배의 아들 김명호가 두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풍그룹 초대 회장 김국진을 만나기 위해 교외 별장으로 향했다.김국진은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을 맞이했고 두 아들은 아버지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김국진은 여든이 넘는 나이였지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걸 제외하고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무릎을 꿇고 있는 두 아들을 노려보던 김국진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아들, 조카한테 이 정도로 당하고 무슨 염치로 날 찾아와? 난 이미 무덤자리까지 봐둔 뒷방 늙은이야. 효도는 못할 망정,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아버지, 지금의 신걸이는 예전과 달라요. 신걸이가 운영하는 드래곤 그룹이 제성 전체를 꽉 틀어쥐고 있어서 인맥을 따로 쓸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나서주시면…… 상황이 바뀔 것 같은데요…….”“한쪽은 아들, 다른 한쪽은 내 손자야. 나더러 어느 편을 들라는 거야!”축 늘어진 김국진의 피부와 찻잔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눈치를 살피던 김덕배도 입을 열었다.“아버지, 지금 신걸이 그 자식, 우리 집안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이게 다 형님이 자초하신 일 아닙니까?
점심시간을 이용해 원유희는 피임약을 사기 위해 약국으로 향했다.삼둥이는 그녀에게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임신을 겪고 싶진 않았다.약국에 도착한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경구피임약으로 주세요.”워낙 변덕이 많은 김신걸이 언제 그녀를 원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때마다 사후피임약을 먹는 건 몸에 무리가 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물 한 병에 쓴 약을 넘기고 거리를 걷던 그때, 어디선가 경적소리가 들려왔다.혹시 길을 막았나 싶어 원유희는 살짝 옆으로 비켜섰지만 검은색 차량은 그녀의 옆에 멈춰섰다.‘김신걸인가?’원유희의 예상과 달리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은 4,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원유희 씨? 저 기억하시나요? 김국진 회장님을 모시는 박인하라고 합니다.”익숙한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원유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어르신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그…… 그게 지금 제가 출근 중이라.”“월차 내시죠. 회사에는 제가 대신 연락드리겠습니다.”결국 고개를 끄덕인 원유희는 성형외과에서 간단히 핸드백을 챙기고 벤츠에 몸을 실었다.뒷자리에 앉은 채 주위의 풍경을 살피는 원유희는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었다.어렸을 때 김영의 집에서 살 때, 김국진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서 교외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김국진의 얼굴을 직접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악마 같은 김신걸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 같아선 김씨 집안 그 어떤 사람과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런 그가 갑자기 원유희를 부른 이유라면…….‘아마 김풍그룹 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날 찾으시는 걸까?”잠시 후, 별장에 도착한 원유희가 텅 빈 마루에 어색하게 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왔구나.”지팡이를 짚은 김국진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여든이 넘는 나이임에도 김씨 일가의 주인답게 그 풍채만은 여전했다.“할아버님……”원유희가 김국진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오
2층, 그런 원유희를 지켜보던 김국진이 말했다.“예쁘게 생겼더구나. 눈에 총기도 보이고.”“어르신 말씀은…….”“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김풍그룹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돼.”“그렇죠. 김풍그룹은 어르신께서 청춘을 바쳐 일군 회사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신걸 도련님도 참 대단하시네요…….”며칠 사이에 김풍그룹을 휘청이게 만들다니.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인하의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김국진도 잘 알고 있었다.“내가 미운 게지…….”김국진의 눈동자에 회한과 안타까움이 흘렀다.“도련님께서 정말 오실까요?”“저기 오고 있지 않나? 참 양반은 못 되는구만.”멀리 가까워지는 차량을 바라보던 김국진이 피식 웃었다.한편, 원유희는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다 바람이 차게 느껴질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손님방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원유희의 눈에 여직원의 모습이 들어왔다.큰 상자를 든 채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뒷채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수상했다.‘회장님이 또 뭘 꾸미시는 걸까?’왠지 따라가봐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원유희가 조용히 여자의 뒤를 따랐다.뒷채는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처럼 보였다.조심스럽게 2층으로 올라간 원유희는 발코니에 비치는 여직원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몸을 숨겼다.여직원이 커다란 상자에서 꺼낸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저격총이었다.원유희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일렁거렸다.‘총? 누구를 죽이려고? 여긴 회장님 저택이야…… 이런 곳에 킬러가? 설마 날 죽이려고 온 건가? 아니야…… 날 죽이는 데 총까지 동용할 리가 없어.’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몸매가 돋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원유희가 조심스럽게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그리고 1층의 작은 창문 너머로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눈에 들어왔다.너무나 익숙한 차량과 번호판. 비슷한 차만 봐도 그녀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존재.‘김신걸이 왜 여기에……’순간 원유희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였다.‘설마…… 김신걸을 노린 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