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는 돌아온 지 이틀이나 지났지만 김신걸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하긴, 다 걔 손바닥 안에 일인데 급해할 이유가 없지.’맹수가 사냥감을 잡은 것처럼, 배고프지 않은 맹수는 한 한동안 불쌍한 사냥감을 가지고 논다. 그러다가 배고파지면 사냥감을 삼켜버린다.밤에 자기 전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원유희는 폰을 무음모드로 바꿨다. 만약 누군가가 여기에 있다면, 전화를 받지 않는 원유희를 의심할까 봐 아예 소리를 껐다. 이모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이번 한 번이 아니었다. 원유희는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은 폰을 계속 가지고 있는 습관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막 어렴풋이 자려고 하는데 원유희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나쁜 사람이 다가올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이어서 침대가 눌리어지더니 한 그림자가 원유희의 몸을 덮었다.“음…….”원유희는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지 다 알 수 있었다.그 강하고 드센 기운이 원유희를 휘감아 산소를 희박하게 만들었다.“이젠 걸을 수 있다며?”김신걸은 원유희의 귀를 깨물며 동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간지럽다고 느낀 원유희는 얼굴을 비켰지만 아무리 비켜도 피할 수 없었고 오히려 김신길을 더 자극했다. 김신걸은 원유희의 작은 입술을 탐했고 원유희는 흠칫 놀라더니 곧 받아들였다. 조금 후, 김신걸은 원유희의 턱을 쥐고 굵고 묵직한 소리로 물었다.“계속 날 자극하면 네가 책임져줄 거야?”원유희는 다급하게 숨을 헐떡였다“내 탓은 아니잖아?”김신걸은 원유희의 얄미운 모습을 보면서 핏줄이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참았고 눈빛은 아주 사나웠는바 한입에 원유희를 삼킬 기세였다.원유희의 턱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좀 참아 봐, 잘못하다 고장나면 영원히 못 먹는 거야.”원유희는 김신걸의 위험하고 짙은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김신걸이 정말로 이성을 잃을까봐 두려웠다.“그 정도로 인간 말종은 아니야.”김신걸은 굳은 표정으로 원유희를 내려다보았다.‘너 같은 인간 말종이 또 어디에 있다고.
“네가 상관할 필욘 없어.”원유희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내가 신걸 씨랑 얘기하면 어쩌려고? 신걸 씨가 알면 아이들이 과연 네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신걸 씨는 아이들이 너보고 잘못 배울까 봐 차라리 나한테 맡길걸? 아이들도 어리니까 시간이 지나면 친엄마가 누군지 알기나 하겠어?”원유희는 두렵지 않았다.“네게 정말로 그러고 싶었으면 진작에 했겠지, 왜 지금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랑 얘기하겠어?”“그건……아이들이 실종되었으니까.”윤설은 원유희에게 다가가 독기를 품은 눈으로 원유희를 쳐다봤고 그 어떠한 표정도 놓치지 않았다.원유희는 눈살을 찌푸렸다.“뭐라고?”“귀먹었어? 세쌍둥이가 실종됐다고. 어젯밤 시터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실수로 잃어버렸지뭐니, 아직 소식도 없대! 봐봐, 그래도 나밖에 없지? 찾아와서 알려주기까지 하잖아.”원유희는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안 믿으면 전화 걸어서 물어봐. 시터가 아이들이 학교에 있다고 할걸?”원유희는 윤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집에 있던 이애자는 원유희가 전화 오는 것을 보고 표원식의 분부대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사모님…….”“아이들은요? 아이들이 어디에 있어요?”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들었고 애타게 물었다.“학……학교에 있어요.”“학교에 있는 거예요? 아니면 실종된 거예요?”원유희는 잇따라 또 물었고 심장이 터질 듯 긴장했다.“저……저…….”원유희는 이애자가 우물우물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반쯤 식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요. 아이들은 꼭 무탈할 거예요. 교장 선생님도 이미 사람들을 시켜서 찾으러 갔으니 꼭 소식이 있을 거예요!”“정말 아이를 잃어버렸네요…….”원유희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비틀거리더니 허리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사모님, 죄송해요. 제가 꼭 아이들을 찾을게요.”이애자는 전화로 사죄했다.하지만 아무리 사죄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마음이 재가
“꺼져!”원유희는 윤설을 힘껏 밀쳤다.윤설은 원유희가 자신을 밀칠 줄 생각하지도 못했고 빠른 걸음으로 뒤로 물러난 후 노기 띤 얼굴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그냥 현실을 받아드리는 게 어때? 뭐 기다려 볼게, 네가 과연 아이들을 찾을지 아니면 걔네들 주검을 찾을지. 그리고 내가 겸사겸사 알려줄게. 네 엄마가 왜 제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아? 네가 너무 매력 있어서 신걸 씨가 사정을 봐준 게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희생한 거야. 너희 엄마가 제성으로 돌아올 수 있는 조건이 우리 엄마랑 이혼하지 않는 거였거든. 기분이 어때? 호호호!”윤설은 크게 웃으며 몸을 돌려 병실 문으로 갔다. 문이 열리자 윤설의 웃음소리는 사라졌고 표정도 다 거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표정을 변하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다.원유희는 몸이 나른해져서 테이블에 부딪혀 넘어졌고 크게 넘어졌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건 아파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다.윤설은 말로 원유희를 고문했고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원유희는 윤정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김신걸이 뒤에서 협박한 게 맞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원유희의 마음은 아이들만 걱정하고 있었다.‘어떡하지? 아이들이 무사할까? 도대체 길을 잃은 거야 아니면 누구에게 잡힌 거야?’원유희는 계속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 찾으러 가기 위해 아등바등 일어서고 있었다.병실에 들어온 간병인 그런 원유희를 보고 깜짝 놀라서 부축하러 갔다.“원 아가씨, 왜 그래요?”“놔요, 저 퇴원할 거예요.”“네? 송 선생님이 퇴원하셔도 된다고 하셨어요?”간병인이 물었다.원유희는 상관하지 않았고 퇴원하려고 했다.원유희는 아이들을 찾으러 가야만 했다!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원유희는 쓰러지고 말았다.“원 아가씨!”이 소식을 받고 신경이 곤두섰던 송욱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의식을 잃은 원유희를 검사하기 시작했다.“무
송욱은 깜짝 놀랐다.“어디가 불편해요?”원유희는 힘겹게 일어나 말했다.“저……퇴원할게요. 이미 다 나았어요…….”“이 상황에 어떻게 퇴원시킬 수 있어요? 먼저 김 선생님께 연락드려서 선생님의 뜻을 물어보죠. 어때요?”“당신이 의산데 당신이 퇴원할 수 있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그 사람이랑 물어봐요? 내가 왜 그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이성을 잃은 원유희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원유희 씨, 일단 진정해봐요.”“안 해요, 제가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요?”원유희는 이불을 내팽개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막지 마요, 꼭 가야 해요!”송욱은 원유희를 가로막았다.“이러면 전 더더욱 원유희 씨를 보낼 수 없죠.”“비켜요! 내버려 두라고요!”원유희는 송욱을 밀었지만 송욱과 간병인 두 사람을 다 이길 순 없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 다시 나른해졌다.“원유희 씨!”놀란 송욱은 원유희를 껴안고 침대로 눕혔고 간병인에게 눈짓했다.눈치챈 간병인은 바로 뛰어나가 전화했다.“윤설이 무슨 얘기를 해서 자극했죠?”송욱이 물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원유희는 입술이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줄줄 흘렀다.송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윤설이 무슨 자극적인 얘기를 했던 것이 분명했다.“퇴원할 거예요, 얼른 김신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퇴원하겠다고 전해요!”원유희는 강렬하게 요구했다.원유희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이미 연락을 드렸으니 좀 기다려봐요.”김신걸이 왔을 때 원유희는 침대에 앉아 두 다리를 안고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송욱은 김신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윤설 아가씨가 온 후로부터 이래요. 아까는 심지어 기절했고요. 자극받아 이런 것 같고 몸에는 다른 증상이 없었어요.”이 말만 하고 송욱은 밖으로 나갔다.김신걸은 계속 그 자세로 앉아있는 원유희를 보며 말했다.“뭘 얘기했는데?”병실은 정적이 흘렀고 원유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온 얼굴은 눈물 자국 범법이었고 눈물이 가득 찬 원유희의
“피 토하고 응급실에 들어갔어, 대체 뭘 얘기한 거야?”김신걸의 목소리가 커졌다.“그렇게 심각하다고? 난 그저……아빠가 우리 엄마랑 이혼 안 해서 걔네 엄마가 제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아빠가 큰 희생을 했다고 그 말만 했어. 그 정도로 화낼 일인가? 화가 엄청 많은 스타일이네.”윤설은 웃음이 나왔다.“이제 내가 가서 사과할게. 겨우 회복한 몸이 또 망가지겠다.”“아이 얘기를 꺼냈어?”“……아이? 무슨 아이?”윤설의 목소리는 엄청 억울해 보였다.“신걸 씨,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유희가 걔네 엄마 일로 나랑 우리 엄마한테 불만이 많은 것 같아. 병실에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내가 가자마자 그렇게 될 수가 있어? 의도적으로 날 모함하려는 거 아니야?”“그래, 알았어.”김신걸은 전화를 끊었다.윤설은 작업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원유희가 아이 얘기를 꺼냈어? 안 그러면 신걸 씨가 왜 아이에 대해 묻겠어? 근데 보아하니 신걸 씨는 아직 다는 모르는 것 같고.’하지만 원유희가 말하기도 전에 사람이 이미 응급실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어떡하지?’‘원유희가 깨어나면 틀림없이 신걸 씨랑 아이 일을 얘기할 텐데. 그때 되면 신걸 씨 실력으로 아이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야.’그때 되면 원유희는 아이들 덕분에 신분이 상승할 거고 그럼 약혼녀는 그 어떠한 지위도 없을 것이다.‘안 돼! 안 돼! 안돼!!’정말로 그렇게 되면 윤설은 꼭 미쳐버릴 것이다.윤설은 미친 듯이 테이블 위에 놓인 것들을 부수고 있었고 바깥사람들은 사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쨍그랑 소리를 들었지만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한 시간쯤 되어서야 송욱은 응급실에서 나왔다.“선생님, 지금 안정되었어요. 금방 회복된 상황이라 감정 기복 때문에 2차 파열이 생겼어요. 다행히 심각한 정도까진 아니니까 잘 쉬고 치료를 받으면 얼른 회복될 거예요.”캡 모자를 쓴 청년이 방으로 돌아오자 세쌍둥이는 일제히 구석으로 움츠러들었
상우의 다리 너무 짧은 것을 보자 조한이는 작은 걸상을 옮겨서 받쳐 주었다.상우는 자물쇠를 보고 연구하며 말했다“저 사람 아까 문을 잠군 것 같은데 열쇠는 틀림없이 저 사람에게 있을 거야!”“그럼……창문으로? 창문에서 뛰어내려도 되잖아?”세 아이는 동시에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렸고 열린 창문으로 바깥 나무의 꼭대기가 보였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나무 꼭대기가 보인다는 건 창문이 땅이랑 멀리 떨어져 있다는 얘기야. 저기서 뛰어내리면 엄마랑 영원히 빠이빠이야!”실망한 유담이가 말했다.“겁먹지 마!”조한이는 유담이의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열쇠 훔치러 가자!”“훔치러 간다고?”유담이는 멍해졌지만 얼굴에 은은한 흥분도 띠었다.“맞아, 열쇠를 훔쳐서 문을 열면 도망칠 수 있어!”상우도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세 아이는 방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살금살금 문을 열자 조한이가 먼저 머리를 내밀어 침대에 있는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까지 골고 있었으니 분명히 잠들었을 것이다!뒤에 있던 유담이와 상우도 머리를 안으로 밀어 보냈다. 그들은 나도경 허리에 걸려있는 열쇠를 보았다.조한이는 먼저 자진해서 기어갔는데 걸어가는 것보단 안전해 보였다. 침대 옆에까지 가자 조한이는 일어서서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열쇠를 잡으려 했다.고리만 풀면 열쇠를 가질 수 있었지만 조한이도 그냥 아이였기에 힘이 부족했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썼다.유담이와 상우는 긴장한 탓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냥 묵묵히 바라보면서 조한이를 응원했다. 한창 노력하고 있을 때, 나도경은 몸을 돌렸다. 그 탓에 놀란 조한이는 얼른 쪼그리고 앉았고 유담이와 상우는 머리를 뒤로 뺐다.하지만 별다른 인기척을 듣지 못했고 코 고는 소리만 방에서 울려 퍼졌다.‘안 깨어났네?’상우는 다시 천천히 머리를 방안으로 들여보냈고 침대에 있는 사람이 아직 단잠에서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가 그의 열쇠를 훔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발견하지는
세쌍둥이는 엄청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나도경은 한잠을 자더니 점심이 다 되어 깨났다. 깨난 후, 세쌍둥이가 보이지 않자 나도경은 구석구석 다 찾아보았지만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그만 숨어, 계속 안 나오면 확 마 때릴 수가 있다!”‘엄마도 참, 왜 이런 귀찮은 일을 시켜서. 아이가 셋이라니, 짜증 나 미치겠어!’나도경은 아직 사람을 찾지 못했는데 제대로 닫히지 않은 방문을 발견했다. 허리를 만져봐서 열쇠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나도경은 얼른 이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애들이 도망갔어요!”“도망갔다고? 내가 아이들을 잘 보라고 했잖아?”“방에 가두었는데 내 열쇠를 훔치고 혼자 문을 열고 도망쳤어요. 이게 어떻게 애예요?”나도경은 자신이 몇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들한테 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럼 빨리 안 찾고 뭐 해!”이애자는 화가 엄청났다.‘이 정도의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아이들을 잃어버렸으니 나 정말 끝장날 거야!’전화를 끊자마자 표원식이 돌아왔다.이애자는 당황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했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띠었다.“선생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밥 다 했어요?”표원식은 서류가방을 소파에 놓고 물었다.“저……오시는 줄 몰라서, 아직……아직 못 했어요. 지금 바로 가서 할게요!”이애자는 몸을 돌렸다.“괜찮아요,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이애자는 그곳에 서 있었고 표원식의 예리한 눈빛 때문에 어쩔 바를 몰라 했다.“……선생님, 뭘 물어보고 싶은 거죠?”“왜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감 시장에 갔어요?”“전……아이들이 계속 엄마를 찾기에 기분은 전환시켜줄려고 그랬는데, 제 불찰이에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베테랑 시터로서 혼자 셋이나 되는 아이를 데리고 시끌벅적한 시장에 갔다고요? 다른 목적이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표원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고 수상했다.“저……진짜로 그런 생각 없었어요. 선생님, 절 믿어주세요!”“전 제 직감
이애자는 표원식이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말투는 왜 이렇게 확신이 찼는지 알 길이 없었기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사모님……”이애자는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방이 말하지 않자 다시 원유희를 불렀다.“사모님? 사모님 왜 말이 없으세요?”김신걸은 이 소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이 시터는 세쌍둥이를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표원식과 사이가 가까웠다.‘그니까 이 두개 번호는 다 표원식이랑 연락하기 위해…….’표원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누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게 폰을 보고 있었고 온몸에선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곤 원유희를 바라보았다.“아직도 감히 나 몰래 표원식을 찾아? 내가 대체 어떻게 벌을 줘야 말 잘 들을 수 있을까?”김신걸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온 사탄의 목소리처럼 음산했다.이때, 병실 문이 열렸고 점심밥을 가져온 원수정이 들어왔다. 원수정은 들어오면서 원유희와 말을 했다.“유희야, 많이 배고팠지? 엄마 기억력 좀 봐, 쌀을 밥솥에 넣기만 하고 버튼을 누르는 것을 깜빡했잖니…….”병실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원수정은 하던 말을 멈췄다.온몸이 화로 둘러싼 김신걸의 모습에 놀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원 수정은 무의식적으로 딸을 찾아 위로받으려고 했다. 그러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얼굴이 창백하 원유희를 보게 되었다.“유희야?”원수정은 도시락을 내려놓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원유희를 불렀다.“유희야? 유희야, 왜 그래? 유희야, 엄마를 놀래지 마,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됐어? 김신걸, 네가 한 짓이야?”김신걸은 지금 이미 폭발 직전에 달하였고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원수정때문에 그의 눈빛은 점점 무섭게 변했고 사탄처럼 보였다.원수정은 뒤 걸음을 치다가 말했다.“나……나 너 하나도 안 무서워, 네가 감히 날 다치게 하면 유희는 틀림없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밖에 있는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