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는 마음이 우울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닌 고의적으로 계획된 것이다.자신은 모질게 표원식과의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그 누구에게도 최근에 일어난 일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에게 알린다고 뭐가 달라질까?’‘김신걸과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있긴 하는 걸까?’그러다 결국 자신만 다칠 뿐이다.“아빠, 표원식과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 게요.”“이렇게 좋은 짝을 정말 포기할 거야? 너도 좋아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윤정은 계속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김신걸에게 찍히다니…… 차라리 결혼하는 게 낫다.원유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사람은 누구나 속수무책일 때가 있잖아요.”윤정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그는 원수정을 떠났고 그리고 딸도 버렸다.그렇게 두 모녀의 파란만장은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는 원유희가 김씨 집안에서 김신걸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원수정에게 전해 들은 후로 종종 잠을 설쳤다. 윤설이 김신걸한테 죽기 살기로 메달리는 게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이런 인간을 자신의 사위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혹시 김신걸에게 원유희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일찍 알려 줬더라면 좀 자제하지 않았을까?’이 모든 것은, 전부 그로 인한 것이다.늦은 시간이 되어서 윤정은 아파트 단지에서 나왔다.마음이 몹시 무거웠다.차를 차고에 주차해두고 그는 휴대전화에서 원수정이 보낸 문자메시지와 그녀와의 통화기록을 모두 지웠다.위층 창문에서 윤정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 장미선은 남편이 차고에서 나오지 않자 의아했다.‘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설마 어떤 여자랑 속닥거리는 거 아냐? 아님 불륜 증거를 없애고 있는 건가?’요즘 들어 장미선은 윤정이 좀 수상하다고 느꼈다.‘정말 원유희의 실종 때문일까’‘원유희가 실종된 걸 원수정도 알았을 텐데…… 그녀가 윤정과 연락하지 않았을까?’그녀는 윤정의 최근 행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집에서 하룻밤을 푹 자고 일어난 원유희는
표원식은 사무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말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를 만나는 것 같았다.“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전 괜찮아요.”원유희가 말했다.표원식은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으려 했다.원유희는 당황한 듯 안색이 새파래지면서 뒷걸음치며 물러섰다.“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헤어져요.”표원식은 한걸음 더 다가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왜요? 뭐 때문에요?”"“우리 안 어울려요.”“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아요. 너무 억지스러워요." 표원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이것저것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 우리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우리 그냥 헤어져요…….”원유희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다.표원식은 빠른 걸음으로 원유희 앞을 가로막았다.“도대체 왜요? 똑똑히 말해줘요!”“제가 납치범에게 납치된 위기의 순간에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김신걸이었어요. 저도 그 때 김신걸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당신과 결혼할 수 있겠어요?”원유희는 마음속으로 표원식이 아이들 얘기를 언급할까 봐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아이들을 언급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장’이다.“교장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도 정말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원유희의 얘기를 들은 표원식은 망연자실했다. 이 틈을 타서 그녀는 건물 밖으로 정신없이 뛰쳐나갔다.한참이나 달려나가서야 헐레벌떡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서 말했다.“됐죠?”“그럼 당신이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게 보여줘.”“어떻게 더 보여주란 말인가요?” 원유희는 더는 치밀어오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앞으로 기회가 또 있을 거야.” 김신걸이 전화를 끊었다.김신걸과 통화를 끝낸 원유희는 탈진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참으며 보육원으로 향했다.삼둥이는 유희를 보고 울면서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엄마
김신걸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의 큰 키는 사람에게 숨 막히는 압박감을 주었고 그의 검은 눈은 그의 속을 하나도 비추지 않았다.“표원식이 바로 10미터 밖에 있어. 어떻게 할지 생각했어? 어?”원유희는 제자리에 섰고 몸은 굳어졌으며 호흡이 불안정해졌다.눈동자는 부자연스럽게 10미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김신걸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고 김신걸이 학교 전화로 한 말도 잊지 않았다.표원식은 그녀가 학교 사무실에서 한 말 때문에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고 반드시 찾아와 이유를 물을 것이다. 김신걸은 이미 다 짐작한 것 같다…….원유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앞으로 나아가 김신걸 앞에 섰다.손을 들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녀는 김신걸의 목을 껴안고 그의 섹시하고 얇은 입술에 키스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키스하는 듯 부드럽게 입 맞췄다.김신걸은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고 자기 아랫배 쪽으로 당겨 키스를 깊게 했다.10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모습을 본 표원식의 눈빛은 예리하다 못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부들부들 떨게 했고 양쪽에 놓인 손은 주먹을 꽉 쥐었으며 가슴은 답답하다 못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마지막에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몸을 돌려 떠났다.원유희는 곁눈질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자 바로 김신걸이랑 떨어졌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갔네. 이제 만족해?”“나랑 따지는 거야?”원유희는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컨트롤하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다른 뜻은 없어.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밤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김신걸을 잠시 쳐다보고 나서야 그녀는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차 문이 닫히고 롤스로이스는 천천히 그녀의 시선에서 사라졌다.원유희는 시선을 돌려 방금 10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마치 누군가에게 특별히 남겨준 것처럼 한 곳이 텅 비었다.원유희는 어차피 언젠가 표원식에게 상처를 줘야 한다면 차라리 일찍 주는
“그럼 어전원에서 기다릴게.”“응, 일찍 자.”사무실을 떠나는 윤설의 눈에서 그녀의 속셈이 다 드러났다.‘이렇게 얘기하면 신걸 씨가 의심하겠지?’만약 원유희가 김신걸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것이다.김신걸이 원유희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그땐 원유희는 아무런 위협도 줄 수 없게 될 것이다.전에 원유희가 납치되었을 때도 김신걸은 무관심하고 덤덤한 태도였다. 하여 윤설은 자기 생각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김신걸에게 있어서 원유희는 그저 욕구 해소하는 도구일 뿐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윤설이 떠나자 김신걸은 전화를 걸어 명령을 내렸다.“당장 아파트에 가서 원유희가 있는지 확인해!”전화를 끊자 그 검은 눈은 매처럼 날카롭고 예리해졌다.‘원유희,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경호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아파트 복도에 들어가 5층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그는 먼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이어서 힘을 더 써서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경호원은 칼을 꺼내 자물쇠를 따기 시작했다.칼을 막 꺼내자 사방에 배치된 사복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경호원은 경찰을 습격할 수 없었기에 그저 순순히 잡히고 칼도 빼앗기게 되었다."드디어 잡았다!"“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감히 다시 오다니, 정말 놀랍군!”경호원은 급히 설명했다.“전 김 선생님의 부하예요! 전…….”문이 열리자 당황스럽고 겁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원유희가 걸어 나왔다.“잡혔죠? 저희 집 문을 계속 두드리는 걸로 부족해 심지어 발로 걷어찼어요. 그때 바로 수상하다고 느꼈죠.”“원유희 양, 빨리 신고해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놓칠 뻔했죠.”경찰이 말했다.경호원은 원유희를 바라보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원 아가씨, 전 김 선생님의 부하에요.”“내가 네 변명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 김신걸의 경호원이 왜 여기에 나타나겠어? 뭐 얼굴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암튼 한패가 틀림없어
김명화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늦었어, 나 자야겠어.""나 널 일주일 넘게 걱정했는데, 꼭 이런 태도로 얘기할 거야?”김명화는 눈썹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시했다.원유희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 태도가 뭐 어떄서요? 전 단지 사실만 얘기했을 뿐이에요.”“다음에 다시 보자.”김명화는 몸을 돌려 갔다.원유희는 문을 잠그고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김신걸이 다시 찾아올까 봐 6층에 가서 잘 엄두가 안 났다. 그냥 아침 일찍 6층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등 흉터를 만져보니 반듯이 누워 있어도 괜찮았다.지금은 선제공격이 답이다. 먼저 김명화에게 팔이나 목을 보여줘야지 아니면 등 흉터를 들키면 틀림없이 김신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납치범은 그런 흉터를 내지 않을 것이다.그나저나 그 ‘납치법’쪽에는 경호원의 증언이 있으니 더 이상 원유희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김명화는 차에 올라타 생각하기 시작했다.‘원유희의 실종이 정말 김신걸과 관계가 없다고? 잘못 생각했다고? 근데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면 원유희의 몸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을 리가 없다’원유희가 돌아오자 김신걸도 아파트에 찾아왔다.아무리 봐도 원유희를 포기한 것 같진 않았다.‘그니까 원유희가 실종되었던 동안 김신걸은 또 무엇을 했을까?’아무래도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또 확실한 단서도 없었다…….“유희가 이미 나랑 연락했어. 나 진짜 걔 때문에 놀라 죽을 뻔했어.”원수정은 전화로 윤정에게 말했다.“그래도 아이는 곁에 가까운 곳에 두어야 그나마 마음이 놓여.”“유희 지금 괜찮아. 걱정하지 마.”윤정은 그녀를 위로했다.“하, 넌 몰라, 나 요즘 엄청 야위었어.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 윤정, 너 언제 날 보러 올 수 있어? 유희가 못 오니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야. 나 여기서 정말 너무 불안하고…….”원수정은 울먹였다.“알아…….”윤정은 안 그래도 요 이틀에 한 번 가려고 했
딱 봐도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아닌가!아침 먹다가 윤정은 오늘 오후에 출장 간다고 얘기했다.“또 출장 가?”“사업을 여기로 옮긴 후 막 좋아질까 하는 시기니까 당연히 때때로 출장을 가야지.”“어디 가?며칠 있다가 오는데?”“임안, 한 사나흘 정도 걸려.”장미선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오후에 짐 정리해줄게.”“도우미 아주머니한테 시키면 돼.”“나 당신 아내야. 이런 일은 당연히 내가 하는 거지.”오후, 윤정은 돌아왔을 때 짐은 이미 다 정리되었다. 비서는 그 짐을 들고 차에 올라탔고 윤정과 함께 떠났다.장미선은 바로 윤설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아버지 임안으로 출장 가는 게 확실한지 한번 알아봐.”“아빠가 출장을 한두 번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만 의심해요.”“설아, 함께 생활하는 부부이니까 당연히 눈치챌 수 있지. 그래, 너희 아버지는 자주 출장 가긴 해. 근데 너 알아? 어젯밤 너희 아버지가 서재에서 통화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니까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 왜 그리 급하게 전화를 끊었을까? 켕기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지.”이 말을 듣자 윤설도 윤정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알았어요, 제가 가서 알아볼게요.”“어디로 갔는지만 찾지 말고 너희 아버지가 지내고 있는 호텔, 모든 스케줄을 다 알아봐. 아무런 수상한 점도 없으면 그럼 나도 인젠 의심 안 할게.”하지만 윤설은 이런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결국 그녀는 장미선을 도와 알아봤다.윤정이 임안으로 간 비행기표를 산 것을 확인했고 투숙한 호텔까지 찾아냈다. 매일 찾은 것을 장미선에게 알려줬다.두 모녀는 한가하면 함께 밖에 나가 쇼핑했고 티타임을 즐겼다.“원수정은 나 같은 팔자 없지. 딸과 쇼핑하고 차를 마시긴커녕 딸이랑 함께 살지도 못하고. 정말 너무 불쌍해.”장미선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이랑 엄마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은 그런 자격도 없어요.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하던데 그 천한 모녀만 보면
“좀.”“임안의 날씨는 어때? 감기 조심해.”“안 걸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으면 끊을게.”윤정은 전화를 끊었다.장미선의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너도 들었지? 임안에 가지 않았다는 소리를 안 해! 왜 거짓말을 한 건데? 도대체 왜?”윤설의 분노도 결코 장미선보다 적지 않았다. 그녀는 윤정이 원수정을 찾아간 것은 자신의 엄마를 배신한 것만 아니라 자신까지 배신했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네 아버지 제성에 온 후 이상해졌다고. 봐봐, 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네!”장미선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냥 간단하게 조사해도 이렇게 수두룩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일을 숨겼는지 누가 알겠어?”윤설은 자기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윤설은 윤정과 원수정의 재결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일단 재결합하면 장미선은 물론이고 딸인 자신까지 다 버림받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정이 파괴되는 꼴을 볼 순 없었다!“엄마, 나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못 얘기한 일이 있는데요, 근데 인젠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요.”윤설은 에라 모르겠다고 얘기해주기로 했다.“전에 원유희네 엄마가 아직 제성에 있었을 때, 아빠랑 호텔 간 적이 있어요.”“너……지금 뭐라고 했어?”멘탈이 나간 장미선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엄마, 괜찮아요?”윤설은 급히 장미선을 부축했다.“진정하세요.”“난……바보처럼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어떻게 나 몰래…….”장미선은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 났다.“원수정, 이 천박한 년! 나 꼭 널 죽이고 말 거야…….”윤설은 온몸이 힘이 풀린 장미선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 장미선은 차에 오르자마자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고 얼른 윤정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윤설은 장미선의 손을 잡고 그녀를 막았다.“엄마, 아빠한테 알리면 안 돼요.”“왜 안 돼? 내가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왜 구질구질하게 참아야 해?”“전에 아빠랑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빠는 엄마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혼해도
원수정은 굳게 믿고 있다. 윤정도 절대 잊지 않았다는 것을.그날 밤, 윤정은 원수정을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이러면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들어와서 한 잔 마시지 않을래? 유희도 내 곁에 없어서 쓸쓸한데 유희 대신해서 나랑 좀 있어 줄 수 있어?”윤정이 망설일 때 원수정은 이미 그를 끌고 호텔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 원수정은 주방에 들어가 술잔을 꺼내 술을 따랐다.윤정은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원수정이 옆에 앉아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는 불편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윤정은 피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원수정은 정말로 그냥 자신과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보일까 봐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술잔이 부딪치자 맑은소리가 주방에 메아리쳐 그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술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매운맛이 목을 자극했고 그는 목젖을 구르기 시작했다.원수정은 윤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고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 움직였다. 그녀는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슬픔과 우울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언제쯤 유희를 만나 함께 밥이나 먹을 수 있을지…… 날 보러 와도 좋을 텐데…….”“안 그래도 유희를 찾은 후에 신걸을 찾아가서 한 번 얘기하려고 했어, 이 정도면 이미 충분하지.”이 말을 들은 원수정은 딱히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윤정과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랐고 마음속의 씁쓸함은 잔속의 술을 더 쓰게 만들었다.“제성에 돌아간다면 이렇게 한가롭게 말하고 술을 마실 수도 없겠지?”윤정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얘기했다.“……그땐 유희도 곁에 있겠는데 내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원수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잔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그러다 취하겠어.”“취하면 뭐 취했지, 어차피 방 안에 있잖아. 그리고 취해도 네 앞에서 취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있겠어?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대도 나는 다 괜찮아.”윤정은 술잔을 들고 술로 자신의 초조한 감정을 숨겼다.원수정은 또 자신에게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