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오던 원유희는 과일을 든 중년 여성 행인과 스쳐지났다.별생각 없이 몇 계단 더 내려가던 원유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저 사람은…… 엄마? 그럴 리가.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잖아. 하지만 방금 그 사람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건가?”여자가 마지막 계단을 오르던 그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가 부랴부랴 그 뒤를 따랐다.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여자의 뒤를 따라가던 원유희는 낯선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제대로 된 경비 한 명 없는 아파트를 둘러보던 그때.문을 열려던 중년 여자가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원유희의 얼굴을 확인한 중년 여자는 급격히 당황하더니 들고 있던 짐을 툭 떨어트렸다.장바구니에 들었던 과일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원유희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정말…… 엄마였네요.”바로 정신을 차린 여채아가 허리를 숙여 과일을 줍더니 단호하게 부정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제가 제 엄마도 못 알아볼 것 같아요?”원유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과일을 주우려던 여채아의 손이 살짝 떨렸다.“의사들도 아빠도 엄마가 다 죽었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어요?”원유희는 아주 오래 묻어두었던 추억을 꺼냈다.초등학교 때, 평소처럼 집에 돌아온 원유희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미친 듯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도, 아빠도 전부 엄마가 죽었다고 말할 뿐, 엄마의 마지막 모습마저 확인하지 못했었다.시신이라도 확인하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원유희는 결국 아빠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왔고 슬프지만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없다는 걸 눈치챈 걸까? 여채아는 용기를 내 딸의 얼굴을 마주했다.여채아가 눈물을 글썽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아빠랑…… 난 그때 이미 끝난 사이였어. 그 교통사고 이후로 난 도망치 듯 너희 두 사람을 떠나버렸어. 그 뒤에
“아니야. 엄마는 무조건 올 거야!”“우리 같이 엄마 기다리자.”하지만 유담은 핑크색 입술을 쑥 내밀며 구시렁댔다.“정말? 하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너무 많잖아…….”여동생의 불평에 오빠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몇 번을 세어봐도 오늘이 겨우 4일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그나마 맏형인 조한이 뭔가 떠오른 듯 진지한 얼굴로 두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안 오시면 우리가 직접 엄마한테로 가는 거야!”형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표정으로 고민하던 상우의 얼굴도 기대감으로 상기되었다.유담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이불을 젖히더니 큰 눈을 깜박였다.“정말? 그런데…… 엄마는 우리랑 되게 뭔 곳에 있잖아……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더라? 한국…….”“제성시!”조한이 바로 덧붙였다.“비행기도 타야 한다고 했어!”잠깐 빛났던 유담의 눈동자가 바로 어두워졌다.“우리끼리 비행기 어떻게 타?”여동생의 날카로운 질문에 두 오빠가 잠깐 동안 침묵했다.먼저 입을 연 건 상우였다.“일단 공항으로 가서 어른들 따라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세 아이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고개를 모은 세 아이는 펜과 종이를 들고 제성시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다음 날 오후.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낮잠에 빠진 사이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철컥.”하지만 영희 이모가 문을 나서는 순간, 가만히 누워있던 세 아이들이 눈을 번쩍 뜨더니 바로 작전을 시작했다.유담이는 귀여운 책가방을, 조한이는 호신용 장난감 칼을, 상우는 가장 아끼는 모자를. 이렇게 각자의 보물을 챙긴 세 남매는 인생 최대 모험을 시작했다.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영희 이모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침대 위에 A4용지가 보였다. 종이에는 사람 모양 그림과 수많은 선들이 뒤엉켜있었는데 어른인 영희 이모가 이걸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이게 뭐야?”종이를 내려놓은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자주 노는
“아주 멋진 곳이야. 일단 가보면 무조건 좋아할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한국? 제성?세 아이의 눈이 번뜩이더니 자연스럽게 부부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체크인 구역.사람들의 시선이 세 아이에게 쏠렸지만 앞 사람은 당연히 뒷사람 아이라고 생각하고 뒷사람은 당연히 앞 사람 아이라고 생각해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게다가 세 아이의 당당한 표정은 누가 봐도 길을 잃은 미아들로 보이지 않았다. “어머 쟤네 좀 봐.”“세쌍둥인가 봐. 너무 귀엽다…….”“저 볼살 좀 봐. 만져보고 싶다…….”승객들은 물론이고 보안 검사 요원들마저 세 쌍둥이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어머. 꼬마 승객님이네? 너무 귀엽다.”한편, 아이들은 혹시나 어린애 셋이서 공항까지 온 사실이 들킬까 봐 애써 당당한 척 연기를 하느라 칭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보안 검색을 마친 뒤 유담이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어떤 언니가 내 볼 꼬집었어…….”“나도!”“나도!”대합실. 의자에 앉은 세 어린이는 조용히 비행기를 기다리다 역시나 어른들의 뒤를 따라 자연스레 비행기에 올랐다.한편, 아이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CCTV 영상을 쭉 확인한 영희 이모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아이 셋이서만 택시를 타고 비행기에까지 오르다니…… 이게 말이 돼?’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에 경찰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이런 대담한 꼬맹이들을 봤나. 커서 큰 인물이 되겠어…….’“확인 결과 아이들은 스스로 한국 제성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경찰이 물었다.비행기가 착륙한 뒤 한국 경찰에게 협조를 구하고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없냐고 물으려던 영희 이모가 멈칫했다.‘불쌍한 것들. 제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어린 것들 셋이서 비행기에 탔겠어…….’“일단…… 아이들 엄마한테 전화할게요.”제성시.새벽시간이라 한참 자고 있던 원유희가 벨소리에 눈을 부스스 떴다.‘이 새벽에
“사모님, 저도 이제 칠순이에요. 이제 정말 힘이 부치네요.”힘없는 영희 이모의 목소리에 원유희는 절망스러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극도의 초조함과 무력함에 눈앞이 어질어질했다.하지만 그녀의 이기심 때문에 영희 이모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한숨을 푹 내쉰 원유희가 말했다.“알겠어요. 그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통화를 마치고 힘없이 침대에 기댄 원유희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다.‘정말 애들이 오는 걸까? 내가 공항으로 나가도 괜찮을까? 김신걸한테 들키면 어떡하지? 안 돼! 내 곁에 두는 건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김신걸과 양육권을 놓고 분쟁을 벌인다면 무조건 그녀의 참패일 게 분명했다.게다가 김신걸은 극도로 원유희를 혐오하니 아이를 빼앗아 간 뒤 평생 만나지도 못하게 할 가능성도 다분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아이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누구라도 공항에 마중은 나가야 할 텐데…… 고모는 안 돼. 명화도 안 되고…….’한참을 고민하던 원유희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깊은 밤. 아파트에서 나온 원유희는 택시를 타고 바로 여채아의 집으로 향했다.“쾅쾅쾅!”새벽에 갑자기 울리는 노크소리에 깬 여채아는 문앞에 서 있는 딸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네가 여긴 어떻게?”“엄마, 나 좀 도와줘요. 지금 부탁할 사람이 엄마밖에 없어서 그래요…….”지금까지 강하게 버텨오던 원유희는 결국 엄마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잠시 후, 아이처럼 우는 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아이가 있었어……?’“저도 잘한 거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애들이 무슨 죄예요…… 엄마, 저 대신 공항으로 나가주시면 안 돼요? 엄마 외손주들이기도 하잖아요.”원유희가 애원했다.“여권만 나오면 바로 아이들 데리고 여길 떠날게요.”“사실 애들 아빠는…… 고모 양자예요. 고모랑은 사이가 안 좋고 전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의 존재에
조한이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렸다.“정말 우리 외할머니 맞아요?”“왜 엄마는 안 왔어요?”“엄마는 어디 있어요?”오는 내내 팔자에도 없는 할머니 노릇이 내심 탐탁지 않았던 여채아도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특히 저 여자애는 우리 유희 어렸을 때랑 똑같게 생겼네. 아들들은…… 아빠를 닮은 건가?’한발 앞으로 다가간 여채아가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엄마는 집에서 기다리고 계셔. 그러니까 얼른 가자.”한편, 여채아의 집에 있는 원유희는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 셋이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게다가 주위 어른들 중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니…….‘이제 겨우2살짜리 애들이 겁도 없어 정말…….’이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머리를 빼꼼 내민 세 아이가 원유희의 얼굴을 확인하고 우르르 달려들었다.“엄마!”“엄마!”“엄마!”꿈에도 그리던 아이들을 품에 꼭 안은 원유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엄마가…… 우리 조한이, 상우, 유담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우리도 엄마 보고 싶었어요!”“그래서 우리가 먼저 왔잖아요!”“정말 엄마다!”오는 내내 씩씩하던 세 아이들도 엄마 품에 안기니 긴장이 풀리며 서러움이 밀려드는지 울음을 터트렸다.어떻게든 품에 더 파고들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원유희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어디 다들 얼굴 좀 보자…….”겨우 감정을 추스른 원유희가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비록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겨우 보름뿐이었지만 아이들이 곁에 없는 1분 1초가 원유희에게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었다.“유담아, 이제 몸은 괜찮아?”“엄마 얼굴 보니까 다 나은 것 같아요!”콧물을 옷소매에 닦아낸 유담이 환하게 웃어보였다.그 모습에 원유희도 눈물을 글썽인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그 동안 못했던 포옹이며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아이들 특유의 우유
여채아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원유희는 집을 나서기 전 카드를 몰래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아이를 맡기는 것도 미안한데 엄마 돈까지 쓸 수는 없었다.‘엄마도 그 동안 힘들게 사셨을 거야. 그나마 다시 재혼은 안 하신 게 다행인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원유희는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다.터덜터덜 걸어온 원유희가 테이블에 덩그러니 던져진 휴대폰을 들었다.‘휴, 다행히 문자는 안 왔네…….’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김신걸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풀어준 뒤로는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고 있지 않았다.‘영원히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어…….’어느새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아침 햇살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원유희의 얼굴을 비추었다.‘이제 1주일만 있으면 여권을 받을 수 있어.’그녀가 원하는 바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갔다.작은 변수 하나가 그녀의 계획을 망가트릴 수도 있었으니까…….정신없는 하루가 흐르고 퇴근 준비 중이던 원유희는 늦은 밤에 아이들을 보러 가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역시나 착하게 말도 잘 듣고 얌전하게 있다는 엄마의 문자에 안심이 되면서도 바로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오고 싶은 욕심이 치밀었다.‘아니야. 괜히 갔다가 김신걸이 뭔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어떡해…… 어차피 1주일 뒤면 이곳을 떠나 매일매일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잖아…….’원유희가 갈등하던 그때 익숙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원유희, 너 아직도 여기 있어?”고개를 든 원유희의 시야에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손예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교하게 세팅된 손예인이 코웃음을 쳤다.“퍼펙트 성형회과도 이제 끝이네. 너 같이 예의 없는 직원을 자르지도 않고 말이야.”바로 그때 누군가 또 성형외과로 들어왔다.“당연히 유희한테서 받아야지.”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손예인은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공이 원수정인 걸 발견하고 바로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차창 너머 성형외과를 나서는 원수정과 원유희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던 손예인의 머릿속이 번뜩했다.휴대폰을 꺼내 원유희의 사진을 찍은 손예인은 자주 사용하는 흥신소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여자에 대해 알아봐. 언제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전부!”통화를 마친 손예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저녁, 집으로 돌아온 원유희는 하루 종일 그리웠던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응. 엄마 방금 퇴근했어…… 응, 엄마한테 오는 건 안 돼. 엄마가 오늘 좀 피곤하네. 오늘 말고 내일 갈게…… 착하지?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그래. 내일 봐.”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독하게 먹었던 마음이 다시 스르륵 풀렸다.아무리 착해도 아이들은 이제 두 살.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그녀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그녀의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걸 원유희도 잘 알고 있었다.다음 날, 원유희는 퇴근 후 저녁 11시가 지나고 김신걸이 오늘은 그녀에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고 나서야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아파트를 나선 원유희가 택시에 타고 낯선 봉고차 한 대가 몰래 그녀의 뒤를 따랐다.“똑똑똑.”원유희가 문을 두드리고 늦은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여채아가 바로 문을 열었다.조용히 아이들 방문을 연 원유희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원유희는 유담이의 배 위에 올린 조한의 다리를 내려준 뒤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이때 여채아가 다가왔다.“너 올 때까지 안 잘 거라고 버티다 결국 잠들었어.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엄마 얼굴 볼 수 있을 거라고 달래니까 겨우 눕더라.”엄마의 말에 원유희의 마음이 저렸다.“엄마, 얼른 가서 주무세요. 전 애들이랑 같이 잘게요.”“그래.”침대에 오른 원유희는 유담이를 품에 안고 조한과 상우의 통통한 손을 꼭 잡았다.이 짧은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유희도 스르륵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
원유희가 세수를 하는 동안 세 아이는 익숙하다는 듯 알아서 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았다.“깨끗하게 닦았어?”“네!”엄마의 질문에 세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이때 욕실로 다가온 여채아가 세 아이를 불렀다.“자, 우리 강아지들도 이유식 먹자.”“네, 할미!”아직 말이 서툴러 할머니를 할미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원유희는 웃음을 터트렸다.잠시 후, 짧은 아침 식사시간을 가진 원유희는 출근을 위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물론 이틀 뒤에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아이들과 약속 도장까지 찍고 말이다.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는 세 아이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럴수록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원유희가 아파트 단지를 나서려던 그때, 여채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우리집 열쇠야. 앞으로는 문 두드리지 말고 그냥 들어와.”“네.”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파파라치는 바로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손예인에게 전송했다.사진을 확인한 손예인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전화를 걸었다.“이 사진은 뭐야?”“어제 하루종일 미행했는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만난 사람은 저 여자뿐이었습니다.”“저 여자는 누군데?”“글쎄요. 이웃들한테 물었는데 혼자 사는 과부라고 합니다. 아마 먼 친척쯤 되겠죠.”“내가 이딴 거나 찍으라도 돈 주는 줄 알아? 남자랑 단둘이 있는 사진, 그런 걸 찍어오라고!”한바탕 소리를 지른 손예인이 거칠게 휴대폰을 내팽개쳤다.하지만 곧 기막힌 아이디어가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다른 남자가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는 거잖아? 사진이라도 찍어서 오빠한테 보여주면 원유희는 바로 버림받을 거야. 아니지. 오빠 성격에 어쩌면 죽여버릴지도 몰라.’……그날 밤, 퇴근 후 성형외과를 나선 원유희는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다가온 남자가 손수건으로 원유희의 입을 틀어막았다.“윽!”자극적인 냄새가 숨결과 함께 느껴지고 원유희는 그대로 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