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원유희는 고모와 김명화에게 무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전했다. 그녀가 실종되었을 때 가장 걱정해 준 사람들이었으니까.사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원유희는 더 이상 성형외과로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보름 뒤면 이곳을 떠날 테고 제대로 된 사직 절차를 밟을 것도 아니니 이번 달 월급도 못 받을 테니까 말이다.하지만 바로 병원을 그만두면 바로 김신걸의 의심을 사게 될 터…….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그녀의 곁으로 장인영이 다가왔다.“하, 드디어 출근했네요. 생리는 다 끝났어요?”“네.”장인영의 비아냥거림에도 원유희는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하여간 연약한 척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며칠씩 잠적할 셈이에요? 도대체 왜 원유희 씨를 안 자르는 지 이해가 안 되네요. 원유희 씨 때문에 팀장님은…… 재수없게.”말을 마친 장인영이 그녀를 흘겨보더니 자리를 떴다.혼자 남은 원유희가 눈살을 찌푸렸다.‘하, 아예 대놓고 시비를 거네.’하지만 장인영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한 사람이라도 휴가를 내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 마련. 정말 장인영 말대로 다들 생리통 때문에 매달 3-4일간 휴가를 낸다면 그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억울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저녁, 퇴근 후.원유희의 아파트 앞에 도착한 김명화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지금 집 앞이야. 보고 싶어.”“여기가 어디라고 와. 아파트 단지 곳곳에 전부 CCTV야. 김신걸한테 들킬 수도 있다고.”원유희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려왔다.‘명화는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김신걸이 무섭지도 않나…….’“네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유희야, 얼굴 좀 보자. 잠깐이면 돼.”진심어린 그의 목소리에 망설이던 원유희가 대답했다.“그래. 그럼 아파트 뒤쪽으로 와. 그쪽엔 CCTV 없으니까. 지금 바로 내려갈게.”“그래.”잠시 후, 복도에서 나온 원유희의 눈에 익숙한 포르쉐와 차문에
계단을 내려오던 원유희는 과일을 든 중년 여성 행인과 스쳐지났다.별생각 없이 몇 계단 더 내려가던 원유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저 사람은…… 엄마? 그럴 리가.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잖아. 하지만 방금 그 사람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건가?”여자가 마지막 계단을 오르던 그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가 부랴부랴 그 뒤를 따랐다.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여자의 뒤를 따라가던 원유희는 낯선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제대로 된 경비 한 명 없는 아파트를 둘러보던 그때.문을 열려던 중년 여자가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원유희의 얼굴을 확인한 중년 여자는 급격히 당황하더니 들고 있던 짐을 툭 떨어트렸다.장바구니에 들었던 과일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원유희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정말…… 엄마였네요.”바로 정신을 차린 여채아가 허리를 숙여 과일을 줍더니 단호하게 부정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제가 제 엄마도 못 알아볼 것 같아요?”원유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과일을 주우려던 여채아의 손이 살짝 떨렸다.“의사들도 아빠도 엄마가 다 죽었다고 했어요. 근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어요?”원유희는 아주 오래 묻어두었던 추억을 꺼냈다.초등학교 때, 평소처럼 집에 돌아온 원유희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미친 듯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도, 아빠도 전부 엄마가 죽었다고 말할 뿐, 엄마의 마지막 모습마저 확인하지 못했었다.시신이라도 확인하겠다며 난리를 피우는 원유희는 결국 아빠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왔고 슬프지만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없다는 걸 눈치챈 걸까? 여채아는 용기를 내 딸의 얼굴을 마주했다.여채아가 눈물을 글썽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아빠랑…… 난 그때 이미 끝난 사이였어. 그 교통사고 이후로 난 도망치 듯 너희 두 사람을 떠나버렸어. 그 뒤에
“아니야. 엄마는 무조건 올 거야!”“우리 같이 엄마 기다리자.”하지만 유담은 핑크색 입술을 쑥 내밀며 구시렁댔다.“정말? 하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너무 많잖아…….”여동생의 불평에 오빠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몇 번을 세어봐도 오늘이 겨우 4일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그나마 맏형인 조한이 뭔가 떠오른 듯 진지한 얼굴로 두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안 오시면 우리가 직접 엄마한테로 가는 거야!”형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표정으로 고민하던 상우의 얼굴도 기대감으로 상기되었다.유담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이불을 젖히더니 큰 눈을 깜박였다.“정말? 그런데…… 엄마는 우리랑 되게 뭔 곳에 있잖아……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더라? 한국…….”“제성시!”조한이 바로 덧붙였다.“비행기도 타야 한다고 했어!”잠깐 빛났던 유담의 눈동자가 바로 어두워졌다.“우리끼리 비행기 어떻게 타?”여동생의 날카로운 질문에 두 오빠가 잠깐 동안 침묵했다.먼저 입을 연 건 상우였다.“일단 공항으로 가서 어른들 따라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세 아이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였다.고개를 모은 세 아이는 펜과 종이를 들고 제성시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다음 날 오후.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낮잠에 빠진 사이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철컥.”하지만 영희 이모가 문을 나서는 순간, 가만히 누워있던 세 아이들이 눈을 번쩍 뜨더니 바로 작전을 시작했다.유담이는 귀여운 책가방을, 조한이는 호신용 장난감 칼을, 상우는 가장 아끼는 모자를. 이렇게 각자의 보물을 챙긴 세 남매는 인생 최대 모험을 시작했다.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영희 이모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침대 위에 A4용지가 보였다. 종이에는 사람 모양 그림과 수많은 선들이 뒤엉켜있었는데 어른인 영희 이모가 이걸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이게 뭐야?”종이를 내려놓은 영희 이모는 아이들이 자주 노는
“아주 멋진 곳이야. 일단 가보면 무조건 좋아할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한국? 제성?세 아이의 눈이 번뜩이더니 자연스럽게 부부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체크인 구역.사람들의 시선이 세 아이에게 쏠렸지만 앞 사람은 당연히 뒷사람 아이라고 생각하고 뒷사람은 당연히 앞 사람 아이라고 생각해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게다가 세 아이의 당당한 표정은 누가 봐도 길을 잃은 미아들로 보이지 않았다. “어머 쟤네 좀 봐.”“세쌍둥인가 봐. 너무 귀엽다…….”“저 볼살 좀 봐. 만져보고 싶다…….”승객들은 물론이고 보안 검사 요원들마저 세 쌍둥이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어머. 꼬마 승객님이네? 너무 귀엽다.”한편, 아이들은 혹시나 어린애 셋이서 공항까지 온 사실이 들킬까 봐 애써 당당한 척 연기를 하느라 칭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보안 검색을 마친 뒤 유담이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어떤 언니가 내 볼 꼬집었어…….”“나도!”“나도!”대합실. 의자에 앉은 세 어린이는 조용히 비행기를 기다리다 역시나 어른들의 뒤를 따라 자연스레 비행기에 올랐다.한편, 아이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CCTV 영상을 쭉 확인한 영희 이모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아이 셋이서만 택시를 타고 비행기에까지 오르다니…… 이게 말이 돼?’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에 경찰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이런 대담한 꼬맹이들을 봤나. 커서 큰 인물이 되겠어…….’“확인 결과 아이들은 스스로 한국 제성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경찰이 물었다.비행기가 착륙한 뒤 한국 경찰에게 협조를 구하고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없냐고 물으려던 영희 이모가 멈칫했다.‘불쌍한 것들. 제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어린 것들 셋이서 비행기에 탔겠어…….’“일단…… 아이들 엄마한테 전화할게요.”제성시.새벽시간이라 한참 자고 있던 원유희가 벨소리에 눈을 부스스 떴다.‘이 새벽에
“사모님, 저도 이제 칠순이에요. 이제 정말 힘이 부치네요.”힘없는 영희 이모의 목소리에 원유희는 절망스러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극도의 초조함과 무력함에 눈앞이 어질어질했다.하지만 그녀의 이기심 때문에 영희 이모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한숨을 푹 내쉰 원유희가 말했다.“알겠어요. 그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통화를 마치고 힘없이 침대에 기댄 원유희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다.‘정말 애들이 오는 걸까? 내가 공항으로 나가도 괜찮을까? 김신걸한테 들키면 어떡하지? 안 돼! 내 곁에 두는 건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김신걸과 양육권을 놓고 분쟁을 벌인다면 무조건 그녀의 참패일 게 분명했다.게다가 김신걸은 극도로 원유희를 혐오하니 아이를 빼앗아 간 뒤 평생 만나지도 못하게 할 가능성도 다분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아이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누구라도 공항에 마중은 나가야 할 텐데…… 고모는 안 돼. 명화도 안 되고…….’한참을 고민하던 원유희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깊은 밤. 아파트에서 나온 원유희는 택시를 타고 바로 여채아의 집으로 향했다.“쾅쾅쾅!”새벽에 갑자기 울리는 노크소리에 깬 여채아는 문앞에 서 있는 딸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네…… 네가 여긴 어떻게?”“엄마, 나 좀 도와줘요. 지금 부탁할 사람이 엄마밖에 없어서 그래요…….”지금까지 강하게 버텨오던 원유희는 결국 엄마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잠시 후, 아이처럼 우는 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아이가 있었어……?’“저도 잘한 거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애들이 무슨 죄예요…… 엄마, 저 대신 공항으로 나가주시면 안 돼요? 엄마 외손주들이기도 하잖아요.”원유희가 애원했다.“여권만 나오면 바로 아이들 데리고 여길 떠날게요.”“사실 애들 아빠는…… 고모 양자예요. 고모랑은 사이가 안 좋고 전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의 존재에
조한이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렸다.“정말 우리 외할머니 맞아요?”“왜 엄마는 안 왔어요?”“엄마는 어디 있어요?”오는 내내 팔자에도 없는 할머니 노릇이 내심 탐탁지 않았던 여채아도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특히 저 여자애는 우리 유희 어렸을 때랑 똑같게 생겼네. 아들들은…… 아빠를 닮은 건가?’한발 앞으로 다가간 여채아가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엄마는 집에서 기다리고 계셔. 그러니까 얼른 가자.”한편, 여채아의 집에 있는 원유희는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 셋이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게다가 주위 어른들 중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니…….‘이제 겨우2살짜리 애들이 겁도 없어 정말…….’이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머리를 빼꼼 내민 세 아이가 원유희의 얼굴을 확인하고 우르르 달려들었다.“엄마!”“엄마!”“엄마!”꿈에도 그리던 아이들을 품에 꼭 안은 원유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엄마가…… 우리 조한이, 상우, 유담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우리도 엄마 보고 싶었어요!”“그래서 우리가 먼저 왔잖아요!”“정말 엄마다!”오는 내내 씩씩하던 세 아이들도 엄마 품에 안기니 긴장이 풀리며 서러움이 밀려드는지 울음을 터트렸다.어떻게든 품에 더 파고들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원유희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어디 다들 얼굴 좀 보자…….”겨우 감정을 추스른 원유희가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비록 떨어져 있었던 시간은 겨우 보름뿐이었지만 아이들이 곁에 없는 1분 1초가 원유희에게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었다.“유담아, 이제 몸은 괜찮아?”“엄마 얼굴 보니까 다 나은 것 같아요!”콧물을 옷소매에 닦아낸 유담이 환하게 웃어보였다.그 모습에 원유희도 눈물을 글썽인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그 동안 못했던 포옹이며 뽀뽀를 마구 퍼부었다.아이들 특유의 우유
여채아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원유희는 집을 나서기 전 카드를 몰래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아이를 맡기는 것도 미안한데 엄마 돈까지 쓸 수는 없었다.‘엄마도 그 동안 힘들게 사셨을 거야. 그나마 다시 재혼은 안 하신 게 다행인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원유희는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다.터덜터덜 걸어온 원유희가 테이블에 덩그러니 던져진 휴대폰을 들었다.‘휴, 다행히 문자는 안 왔네…….’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김신걸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풀어준 뒤로는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고 있지 않았다.‘영원히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어…….’어느새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아침 햇살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원유희의 얼굴을 비추었다.‘이제 1주일만 있으면 여권을 받을 수 있어.’그녀가 원하는 바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져만 갔다.작은 변수 하나가 그녀의 계획을 망가트릴 수도 있었으니까…….정신없는 하루가 흐르고 퇴근 준비 중이던 원유희는 늦은 밤에 아이들을 보러 가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역시나 착하게 말도 잘 듣고 얌전하게 있다는 엄마의 문자에 안심이 되면서도 바로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오고 싶은 욕심이 치밀었다.‘아니야. 괜히 갔다가 김신걸이 뭔가 눈치채기라도 하면 어떡해…… 어차피 1주일 뒤면 이곳을 떠나 매일매일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잖아…….’원유희가 갈등하던 그때 익숙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원유희, 너 아직도 여기 있어?”고개를 든 원유희의 시야에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손예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교하게 세팅된 손예인이 코웃음을 쳤다.“퍼펙트 성형회과도 이제 끝이네. 너 같이 예의 없는 직원을 자르지도 않고 말이야.”바로 그때 누군가 또 성형외과로 들어왔다.“당연히 유희한테서 받아야지.”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손예인은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공이 원수정인 걸 발견하고 바로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차창 너머 성형외과를 나서는 원수정과 원유희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던 손예인의 머릿속이 번뜩했다.휴대폰을 꺼내 원유희의 사진을 찍은 손예인은 자주 사용하는 흥신소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여자에 대해 알아봐. 언제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전부!”통화를 마친 손예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저녁, 집으로 돌아온 원유희는 하루 종일 그리웠던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응. 엄마 방금 퇴근했어…… 응, 엄마한테 오는 건 안 돼. 엄마가 오늘 좀 피곤하네. 오늘 말고 내일 갈게…… 착하지?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그래. 내일 봐.”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독하게 먹었던 마음이 다시 스르륵 풀렸다.아무리 착해도 아이들은 이제 두 살.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그녀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그녀의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걸 원유희도 잘 알고 있었다.다음 날, 원유희는 퇴근 후 저녁 11시가 지나고 김신걸이 오늘은 그녀에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고 나서야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휴대폰을 집에 두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아파트를 나선 원유희가 택시에 타고 낯선 봉고차 한 대가 몰래 그녀의 뒤를 따랐다.“똑똑똑.”원유희가 문을 두드리고 늦은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여채아가 바로 문을 열었다.조용히 아이들 방문을 연 원유희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원유희는 유담이의 배 위에 올린 조한의 다리를 내려준 뒤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이때 여채아가 다가왔다.“너 올 때까지 안 잘 거라고 버티다 결국 잠들었어.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엄마 얼굴 볼 수 있을 거라고 달래니까 겨우 눕더라.”엄마의 말에 원유희의 마음이 저렸다.“엄마, 얼른 가서 주무세요. 전 애들이랑 같이 잘게요.”“그래.”침대에 오른 원유희는 유담이를 품에 안고 조한과 상우의 통통한 손을 꼭 잡았다.이 짧은 행복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유희도 스르륵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