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들먹거리며 옥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조 대인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조 대인, 이게 뭐 하는 것입니까?”고개를 돌려 보니 옥 안에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저 둘이 무엇 때문에...”상금문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다음 순간, 조 대인이 그녀를 끌어당겨 바닥에 무릎 꿇게 했다.“얼른 섭정왕과 왕비 마마에게 사죄하시오!”더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되었다. 그는 이미 그녀 때문에 된통 당했다.상금문은 조 대인에게 끌려서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됐다. 조 대인의 말을 들은 순간 상금문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섭정왕? 왕... 왕비 마마?”상금문은 긴장했다. 그들의 기세에 완전히 짓눌려 겁을 먹은 듯했다.“얼른 ! 얼른 왕야와 왕비 마마에게 사죄하시오! 어떻게 사람을 제멋대로 잡을 수 있소?”조 대인의 어투에는 질책이 가득했다. 상금문이 섭정왕을 잡아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달이 났을 리가 없었다.상금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저 두 사람이 섭정왕과 왕비라니?그렇다면 그녀는 큰 사고를 친 것이 아닌가?하지만 섭정왕과 왕비가 왜 갑자기 계양에 온 것일까?상금문은 다급히 사과했다.“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오해입니다. 왕야와 왕비 마마이신 줄 몰랐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낙청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옥 문 옆으로 가서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전에 낙랑랑에게 뭐라고 했느냐?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상금문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말한다면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왕비는 어쩌면 이 기회를 틈타 그녀의 입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그녀를 벌할지도 몰랐다.상금문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를 악물고 자기 뺨을 때렸다.“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죄를 저질렀으니 왕비 마마께 사죄드리겠습니다!”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때리려거든 세게 때리거라. 전혀 아파
조 대인의 반응을 본 낙청연은 그가 낙랑랑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계양에 범씨 가문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모함당해 명성이 바닥에 떨어진 낙랑랑은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낙청연은 화가 나서 경고했다.“낙 태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태부부가 있고 나 낙청연이 있소. 감히 낙랑랑을 모함하다니, 그런 자는 볼 때마다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 것이오!”그 말에 조 대인은 다급히 대꾸했다.“왕비 마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상금문도 고개를 숙이며 다시는 낙랑랑을 모함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상금문은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낙랑랑을 위해 온 것이지 풍도 상회를 상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었다.낙청연과 부진환은 관청을 떠났고 떠나기 전 부진환은 조 대인에게 당부했다.“본왕이 계양에 온 일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본왕을 만난 적 없다고 생각하거라.”조 대인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왕야. 알고 있습니다!”곧이어 그들은 관청을 떠나 객잔으로 돌아왔다.세수를 마친 뒤 음식을 좀 먹었다.야심한 시각, 방 안에는 여전히 불이 밝혀져 있었고 낙청연과 부진환은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비록 오늘 조 대인에게 왕야의 행방을 얘기하지 말라고 했으나 아마 지금쯤 풍도 상회 전체가 왕야가 온 사실을 알게 됐을 겁니다.”부진환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여유롭게 말했다.“상관없다. 본왕이 조사한 밀고가 노출되지 않았으니 그들은 본왕이 뭘 하러 계양에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게다가 낙랑랑을 보러 온 것이라고 둘러댔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했다.“전 내일 범씨 가문에 가서 랑랑 언니를 만날 것입니다.”“오늘 밤 금방 돌아왔는데 풍도 상회의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 실종된 장사꾼의 집에 조사하러 가보시죠.”다른 의견이 없었던 부진환이 대답했다.“그래.”-다음 날 아침 일찍 부진환은 낙청연과 함
범씨 가문은 크지 않았지만 저택은 기품 있고 마당의 경치도 괜찮았다.낙청연은 낙랑랑과 함께 호숫가로 걸어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자 낙청연은 그제야 물었다.“랑랑 언니, 며칠 전 범씨 지분 점포에서 파는 향고를 샀습니다.”낙청연은 향고를 꺼내 열더니 낙랑랑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낙랑랑은 살짝 놀랐고 낙청연은 물었다.“이건 언니가 제게 주신 향주머니와 향이 똑같습니다. 이 향고는 언니께서 만드신 것이지요!”낙랑랑은 안색이 살짝 달라지더니 이내 미소를 띠며 말했다.“내가 만든 것이다.”“그런데 왜...”낙청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낙랑랑이 그녀의 말 허리를 잘랐다.“범씨 가문이 계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설씨 가문은 장사가 잘되고 가문도 사업도 컸으나 노부인의 친가였기에 지금의 후대는 우리와 관계가 아주 멀었고 그래서 우리를 진심으로 도울 마음이 없었다.”“겉으로는 우리가 점포를 열어 장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리가 풍도 상회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우리의 장사를 망가뜨리고 범씨 가문의 가산과 내 혼수를 빼앗을 생각이었다.”“범씨 가문의 장사가 망하지 않게 하려고 난 이 향고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장사가 좀 잘 됐다.”“하지만 설씨 가문이 그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들은 온갖 수작을 부렸다. 범산화는 장사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함정에 몇 차례나 당했다.”“나 혼자서는 도저히 범씨 가문의 장사를 돌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설씨 가문 친척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지. 게다가 범산화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그 뒤로 나는 장사를 돌보느라 바빴는데 범산화가 몰래 진훤의와 왕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난 너무 힘들었다. 그를 위해 더는 나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을 허락해줬고 장사 또한 그들에게 맡겼다. 진훤의는 수단이 있고 집안 배경도 좋아 범씨 가문의 장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그런데 그 향고를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더구나.”“난 그 일을 알고 있
낙랑랑은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설씨 가문이 내게 아이가 없다고 조롱할 때 범영현(范令玄)이 때마침 우리를 보러 와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설씨 가문과 다투게 됐지.”“그 뒤로 그는 급하게 군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전날 밤 신발이 망가진 걸 발견해 내가 대신 꿰매어 주었고 범산화 또한 그 일을 알고 있었다.”“그런데 밖에서 그런 헛소문이 나돌더구나.”말을 들은 뒤 낙청연은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모든 건 헛소문에 불과했다!“그렇다면 아마 설씨 가문이 소문을 퍼뜨려겠군요!”“게다가 언니의 혼수를 넘보다니, 참으로 탐욕스럽습니다!”계양에서는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늑대 소굴에 빠진 셈이었다.그런 생각에 낙청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범씨 가문의 가산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언니의 혼수도요! 그런데 왜 장사를 하는 겁니까?”“분명 한 가족이 편히 살 수 있을 텐데요.”낙랑랑은 흐려진 안색으로 대꾸했다.“범산화는 평범하게 일생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나에게 더 좋은 삶을 주고 싶다더구나.”“게다가 설씨 가문이 있으니 범산화는 매일 상인들의 연회에 드나들었고 환경이 그렇다 보니 점차 영향을 받은 것 같다.”또 범산화였다!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장사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장사할 재능이 있는지부터 봐야지요!”“그때 만보루 봉주의 일로 교훈을 얻지 않았습니까?”“일을 벌이는 것뿐만 아니라 언니의 발목까지 붙잡았으니.”“참으로 쓸모없는 자군요!”낙청연은 화가 났고 더욱더 낙랑랑이 그와 화리하길 바랐다.그러나 낙청연은 생각을 고쳤고 낙랑랑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낙랑랑은 범씨 가문을 위해서 이리도 많은 걸 희생했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범씨 가문의 모든 것은 그녀의 것이어야 했다!낙랑랑은 낙청연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됐다. 날 위해 화내는 건 그만하거라.”“그것
소서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자신의 검을 품 안에 안았다.“왕야! 어찌 그러실 수 있습니까?”부진환은 다소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그러면 얼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이런 사소한 일까지 본왕에게 물어야겠느냐? 널 두어서 무엇 하겠느냐?”소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일은 원래 그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유를 데려올 걸 그랬다.범산화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왕야, 제게 돈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하겠습니다.”범산화는 그 말과 함께 다급히 돈주머니를 열었다.하지만 부진환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고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본왕의 왕비가 물건을 사는 것인데 다른 이가 돈을 줄 필요는 없다.”“본왕이 감당할 수 있다.”범산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쓱한 얼굴로 돈주머니를 다시 거두어들였다.앞에 있는 낙청연은 여전히 낙랑랑을 데리고 이것저것 사들였고 점포를 일일이 구경하고 있었다.게다가 범씨 가문의 점포에 가서 낙랑랑의 옷을 사고 장신구를 샀다.낙청연은 삼백 냥 하는 팔찌 하나를 골랐고 낙랑랑은 이를 거절했다.“살 거면 네가 쓰거라. 난 이런 것들이 필요치 않다.”“손에 아무것도 끼지 않으니 너무 허전합니다. 이걸 손목에 차면 아주 예쁠 것입니다.”낙청연은 강제로 낙랑랑의 팔에 팔찌를 찼다.바로 그때 범산화가 들어와서 얘기했다.“여긴 저희 집안이 여는 점포이니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랑랑, 팔찌를 차고 있으시오!”진짜 돈을 받지 않는다면 범산화가 입을 열기 전에 점포의 일꾼이 미리 얘기했을 것이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이건 내가 언니를 위해 사는 것이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소. 그러니 이 일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이 정도 돈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오.”“언니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면 일찍 선물했겠지, 내 앞에서 선물할 필요는 없소.”낙청연은 웃으며 말했지만 말에는 가시가 가득했다.범산화는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았지만 사죄하듯 웃으며 말했다.“제가 소홀했습니다.”부진환은 천천히 다가왔
낙청연은 위층으로 올라갔고 부진환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맞은 편에 앉아 차를 우리는 부진환은 태연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낙청연은 팔로 턱을 받쳐 들며 그를 보았다.“제가 왕야의 돈을 그렇게나 많이 썼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부진환은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면서 대꾸하지 않았다.낙청연이 또 말했다.“오늘 랑랑 언니와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설씨 가문에서 헛소문을 퍼뜨린 것 같더군요. 게다가 범씨 가문이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설씨 가문이 선동해서입니다. 그들은 범씨 가문의 가산뿐만 아니라 낙랑랑의 혼수까지 탐내더군요!”“오늘 이렇게 많은 돈을 쓴 건 랑랑 언니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이자 설씨 가문이 단순하고 돈이 많아 가산을 탕진할 절 알아차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설씨 가문은 풍도 상회이니 자발적으로 미끼를 물어야 조사하는 게 편할 것입니다.”낙청연이 원인을 설명했다.물론 아주 조금이지만 부진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매번 그녀만 손해 볼 수는 없었다.게다가 이렇게 큰 안건을 조사하는데 이 정도 돈을 쓰는 건 큰일이 아니었다.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살짝 당황하며 조금 놀랐다.그는 그녀가 일부러 성질을 부리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하면 일이 지나가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성질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그건 전에 발생했던 일이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네가 일부러 그랬다고 해도 상관없다.”“섭정왕부는 충분히 크고 네가 마음대로 굴 정도는 된다.”평온한 어조였지만 약간의 애정이 담긴 목소리였다.낙청연은 잠깐 당황했다. 어쩐지 부진환이 이상했다.그러나 생각을 바꿔 보면 섭정왕부는 확실히 이 정도 돈이 눈에 차지 않을 것이고 부진환은 당연히 개의치 않을 것이다.이럴 줄 알았으면 설명하지 말걸.저녁을 먹은 뒤 호위 한 명과 지초를 방으로 불러 책을 보고 차를 마시게 해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야행할 옷으로
부진환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이렇게 말했다.“오늘 낮에 너와 낙랑랑이 함께 있을 때 범산화는 무척 긴장한 듯 보였다.”“낙랑랑이 너에게 무언가 얘기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더구나.”“너와 낙랑랑이 호숫가에 갔을 때 범산화는 핑계를 대고 나가더니 벽 뒤에 숨어 너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뭐라고요? 제가 랑랑 언니와 한 얘기를 전부 들었다는 말입니까?”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것이다.”“낙랑랑이 너에게 심각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니겠지?”부진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범산화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아니요. 그저 저에게 범산화의 험담을 좀 했습니다.”낙청연은 눈썹을 들썩였다.“설마 화가 나서 랑랑 언니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겠지요?”낙청연은 갑자기 걱정됐다.부진환은 고민하며 말했다.“마지막 집안까지 전부 조사한다면 본왕이 너와 함께 범씨 가문으로 가서 낙랑랑을 만날 것이다.”“걱정된다면 그녀를 잠시 객잔에 머무르게 하거라. 자매끼리 나눌 얘기가 있다고 말이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곧이어 두 사람은 마지막 집에 도착했다.사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앞서 여덟 집안 모두 똑같은 결과였기에 마지막 집안도 별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알아보러 갔다.그 집은 앞선 집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지 등불도 없어 마치 빈집 같아 보였다.두 사람은 밝은 달빛을 빌어 내원의 풀 무더기에서 핏물의 흔적을 찾았다.이미 죽은 듯했다.역시나 예상했던 결과였다.“가자꾸나.”부진환은 마음이 무거웠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주위를 관찰했다.“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큰 저택이 왜 하인 하나 없이 조용할까요?”말을 마치자마자 마당의 벽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깜짝 놀라 지붕으로 몸을 숨겼다.곧이어 사내 한 명이 벽을 넘어 마당에 들어왔고 수상쩍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곧장 방 안으로 들
텅 비어 있었다!사람이 없었다!낙청연은 곧장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뒤져봤으나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부진환은 앞으로 걸어가 벽을 만져보더니 그 위에 걸린 그림 하나를 들었고 그 벽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있었다.그곳에 들어가 보니 후원 쪽 벽과 연결되어 있었고 벽 쪽의 작은 나무들이 전부 밟혀서 부러져 있었다.두 사람은 정원 밖으로 쫓아갔으나 전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침대 뒤에 구멍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번에 죽임당할 뻔했을 때도 이런 방법으로 도망갔을지 모릅니다!”부진환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그는 아마 무언가를 알고 있어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도망쳤을 것이다.”“죽은 사람은 아마 그의 형제겠지.”“오늘 이곳으로 돌아와 돈을 가져간 걸 보면 계양에서 도망치려는 것 같구나.”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었기에 절대 그가 계양에서 도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러면 우리는 먼저 돌아갑시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즉시 돌아갔다.부진환은 객잔으로 돌아가 소서 등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찾고 성문 입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낙청연은 범씨 가문으로 가서 낙랑랑을 볼 생각이었기에 같은 길이 아니라 중간에 헤어졌다.-조용한 마당에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왔다.“낙청연에게 무슨 얘기를 한 것이오? 내가 그렇게 싫소? 내가 쓰레기오? 내가 쓰레기냔 말이오?”“내가 눈에 차지 않았다면 그때 왜 나와 혼인한 것이오?”술을 마신 범산화는 술기운에 화를 내며 낙랑랑을 손가락질했다. 몸도 비틀거렸다.낙랑랑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술이 과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정을 부리지는 마십시오.”범산화는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래! 내가 당신네 낙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오! 하지만 당신의 할아버지는 자발적으로 날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 것이오! 솔직히 얘기해서 사실은 당신을 위한 것이지, 날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