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들먹거리며 옥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조 대인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조 대인, 이게 뭐 하는 것입니까?”고개를 돌려 보니 옥 안에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저 둘이 무엇 때문에...”상금문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다음 순간, 조 대인이 그녀를 끌어당겨 바닥에 무릎 꿇게 했다.“얼른 섭정왕과 왕비 마마에게 사죄하시오!”더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되었다. 그는 이미 그녀 때문에 된통 당했다.상금문은 조 대인에게 끌려서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됐다. 조 대인의 말을 들은 순간 상금문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섭정왕? 왕... 왕비 마마?”상금문은 긴장했다. 그들의 기세에 완전히 짓눌려 겁을 먹은 듯했다.“얼른 ! 얼른 왕야와 왕비 마마에게 사죄하시오! 어떻게 사람을 제멋대로 잡을 수 있소?”조 대인의 어투에는 질책이 가득했다. 상금문이 섭정왕을 잡아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달이 났을 리가 없었다.상금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저 두 사람이 섭정왕과 왕비라니?그렇다면 그녀는 큰 사고를 친 것이 아닌가?하지만 섭정왕과 왕비가 왜 갑자기 계양에 온 것일까?상금문은 다급히 사과했다.“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오해입니다. 왕야와 왕비 마마이신 줄 몰랐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낙청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옥 문 옆으로 가서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전에 낙랑랑에게 뭐라고 했느냐?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상금문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말한다면 입을 찢어버리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왕비는 어쩌면 이 기회를 틈타 그녀의 입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그녀를 벌할지도 몰랐다.상금문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를 악물고 자기 뺨을 때렸다.“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죄를 저질렀으니 왕비 마마께 사죄드리겠습니다!”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때리려거든 세게 때리거라. 전혀 아파
조 대인의 반응을 본 낙청연은 그가 낙랑랑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계양에 범씨 가문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모함당해 명성이 바닥에 떨어진 낙랑랑은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낙청연은 화가 나서 경고했다.“낙 태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태부부가 있고 나 낙청연이 있소. 감히 낙랑랑을 모함하다니, 그런 자는 볼 때마다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 것이오!”그 말에 조 대인은 다급히 대꾸했다.“왕비 마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상금문도 고개를 숙이며 다시는 낙랑랑을 모함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상금문은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낙랑랑을 위해 온 것이지 풍도 상회를 상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었다.낙청연과 부진환은 관청을 떠났고 떠나기 전 부진환은 조 대인에게 당부했다.“본왕이 계양에 온 일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본왕을 만난 적 없다고 생각하거라.”조 대인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왕야. 알고 있습니다!”곧이어 그들은 관청을 떠나 객잔으로 돌아왔다.세수를 마친 뒤 음식을 좀 먹었다.야심한 시각, 방 안에는 여전히 불이 밝혀져 있었고 낙청연과 부진환은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비록 오늘 조 대인에게 왕야의 행방을 얘기하지 말라고 했으나 아마 지금쯤 풍도 상회 전체가 왕야가 온 사실을 알게 됐을 겁니다.”부진환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여유롭게 말했다.“상관없다. 본왕이 조사한 밀고가 노출되지 않았으니 그들은 본왕이 뭘 하러 계양에 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게다가 낙랑랑을 보러 온 것이라고 둘러댔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했다.“전 내일 범씨 가문에 가서 랑랑 언니를 만날 것입니다.”“오늘 밤 금방 돌아왔는데 풍도 상회의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 실종된 장사꾼의 집에 조사하러 가보시죠.”다른 의견이 없었던 부진환이 대답했다.“그래.”-다음 날 아침 일찍 부진환은 낙청연과 함
범씨 가문은 크지 않았지만 저택은 기품 있고 마당의 경치도 괜찮았다.낙청연은 낙랑랑과 함께 호숫가로 걸어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자 낙청연은 그제야 물었다.“랑랑 언니, 며칠 전 범씨 지분 점포에서 파는 향고를 샀습니다.”낙청연은 향고를 꺼내 열더니 낙랑랑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낙랑랑은 살짝 놀랐고 낙청연은 물었다.“이건 언니가 제게 주신 향주머니와 향이 똑같습니다. 이 향고는 언니께서 만드신 것이지요!”낙랑랑은 안색이 살짝 달라지더니 이내 미소를 띠며 말했다.“내가 만든 것이다.”“그런데 왜...”낙청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낙랑랑이 그녀의 말 허리를 잘랐다.“범씨 가문이 계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설씨 가문은 장사가 잘되고 가문도 사업도 컸으나 노부인의 친가였기에 지금의 후대는 우리와 관계가 아주 멀었고 그래서 우리를 진심으로 도울 마음이 없었다.”“겉으로는 우리가 점포를 열어 장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리가 풍도 상회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우리의 장사를 망가뜨리고 범씨 가문의 가산과 내 혼수를 빼앗을 생각이었다.”“범씨 가문의 장사가 망하지 않게 하려고 난 이 향고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장사가 좀 잘 됐다.”“하지만 설씨 가문이 그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들은 온갖 수작을 부렸다. 범산화는 장사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함정에 몇 차례나 당했다.”“나 혼자서는 도저히 범씨 가문의 장사를 돌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설씨 가문 친척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지. 게다가 범산화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그 뒤로 나는 장사를 돌보느라 바빴는데 범산화가 몰래 진훤의와 왕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난 너무 힘들었다. 그를 위해 더는 나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을 허락해줬고 장사 또한 그들에게 맡겼다. 진훤의는 수단이 있고 집안 배경도 좋아 범씨 가문의 장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그런데 그 향고를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더구나.”“난 그 일을 알고 있
낙랑랑은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설씨 가문이 내게 아이가 없다고 조롱할 때 범영현(范令玄)이 때마침 우리를 보러 와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설씨 가문과 다투게 됐지.”“그 뒤로 그는 급하게 군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전날 밤 신발이 망가진 걸 발견해 내가 대신 꿰매어 주었고 범산화 또한 그 일을 알고 있었다.”“그런데 밖에서 그런 헛소문이 나돌더구나.”말을 들은 뒤 낙청연은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 모든 건 헛소문에 불과했다!“그렇다면 아마 설씨 가문이 소문을 퍼뜨려겠군요!”“게다가 언니의 혼수를 넘보다니, 참으로 탐욕스럽습니다!”계양에서는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늑대 소굴에 빠진 셈이었다.그런 생각에 낙청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범씨 가문의 가산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언니의 혼수도요! 그런데 왜 장사를 하는 겁니까?”“분명 한 가족이 편히 살 수 있을 텐데요.”낙랑랑은 흐려진 안색으로 대꾸했다.“범산화는 평범하게 일생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나에게 더 좋은 삶을 주고 싶다더구나.”“게다가 설씨 가문이 있으니 범산화는 매일 상인들의 연회에 드나들었고 환경이 그렇다 보니 점차 영향을 받은 것 같다.”또 범산화였다!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장사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장사할 재능이 있는지부터 봐야지요!”“그때 만보루 봉주의 일로 교훈을 얻지 않았습니까?”“일을 벌이는 것뿐만 아니라 언니의 발목까지 붙잡았으니.”“참으로 쓸모없는 자군요!”낙청연은 화가 났고 더욱더 낙랑랑이 그와 화리하길 바랐다.그러나 낙청연은 생각을 고쳤고 낙랑랑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낙랑랑은 범씨 가문을 위해서 이리도 많은 걸 희생했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범씨 가문의 모든 것은 그녀의 것이어야 했다!낙랑랑은 낙청연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됐다. 날 위해 화내는 건 그만하거라.”“그것
소서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자신의 검을 품 안에 안았다.“왕야! 어찌 그러실 수 있습니까?”부진환은 다소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그러면 얼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이런 사소한 일까지 본왕에게 물어야겠느냐? 널 두어서 무엇 하겠느냐?”소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일은 원래 그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유를 데려올 걸 그랬다.범산화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왕야, 제게 돈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하겠습니다.”범산화는 그 말과 함께 다급히 돈주머니를 열었다.하지만 부진환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고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본왕의 왕비가 물건을 사는 것인데 다른 이가 돈을 줄 필요는 없다.”“본왕이 감당할 수 있다.”범산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쓱한 얼굴로 돈주머니를 다시 거두어들였다.앞에 있는 낙청연은 여전히 낙랑랑을 데리고 이것저것 사들였고 점포를 일일이 구경하고 있었다.게다가 범씨 가문의 점포에 가서 낙랑랑의 옷을 사고 장신구를 샀다.낙청연은 삼백 냥 하는 팔찌 하나를 골랐고 낙랑랑은 이를 거절했다.“살 거면 네가 쓰거라. 난 이런 것들이 필요치 않다.”“손에 아무것도 끼지 않으니 너무 허전합니다. 이걸 손목에 차면 아주 예쁠 것입니다.”낙청연은 강제로 낙랑랑의 팔에 팔찌를 찼다.바로 그때 범산화가 들어와서 얘기했다.“여긴 저희 집안이 여는 점포이니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랑랑, 팔찌를 차고 있으시오!”진짜 돈을 받지 않는다면 범산화가 입을 열기 전에 점포의 일꾼이 미리 얘기했을 것이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이건 내가 언니를 위해 사는 것이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소. 그러니 이 일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오.”“이 정도 돈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오.”“언니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면 일찍 선물했겠지, 내 앞에서 선물할 필요는 없소.”낙청연은 웃으며 말했지만 말에는 가시가 가득했다.범산화는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았지만 사죄하듯 웃으며 말했다.“제가 소홀했습니다.”부진환은 천천히 다가왔
낙청연은 위층으로 올라갔고 부진환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맞은 편에 앉아 차를 우리는 부진환은 태연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낙청연은 팔로 턱을 받쳐 들며 그를 보았다.“제가 왕야의 돈을 그렇게나 많이 썼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부진환은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면서 대꾸하지 않았다.낙청연이 또 말했다.“오늘 랑랑 언니와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설씨 가문에서 헛소문을 퍼뜨린 것 같더군요. 게다가 범씨 가문이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설씨 가문이 선동해서입니다. 그들은 범씨 가문의 가산뿐만 아니라 낙랑랑의 혼수까지 탐내더군요!”“오늘 이렇게 많은 돈을 쓴 건 랑랑 언니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이자 설씨 가문이 단순하고 돈이 많아 가산을 탕진할 절 알아차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설씨 가문은 풍도 상회이니 자발적으로 미끼를 물어야 조사하는 게 편할 것입니다.”낙청연이 원인을 설명했다.물론 아주 조금이지만 부진환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매번 그녀만 손해 볼 수는 없었다.게다가 이렇게 큰 안건을 조사하는데 이 정도 돈을 쓰는 건 큰일이 아니었다.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살짝 당황하며 조금 놀랐다.그는 그녀가 일부러 성질을 부리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하면 일이 지나가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는 성질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그건 전에 발생했던 일이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네가 일부러 그랬다고 해도 상관없다.”“섭정왕부는 충분히 크고 네가 마음대로 굴 정도는 된다.”평온한 어조였지만 약간의 애정이 담긴 목소리였다.낙청연은 잠깐 당황했다. 어쩐지 부진환이 이상했다.그러나 생각을 바꿔 보면 섭정왕부는 확실히 이 정도 돈이 눈에 차지 않을 것이고 부진환은 당연히 개의치 않을 것이다.이럴 줄 알았으면 설명하지 말걸.저녁을 먹은 뒤 호위 한 명과 지초를 방으로 불러 책을 보고 차를 마시게 해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야행할 옷으로
부진환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이렇게 말했다.“오늘 낮에 너와 낙랑랑이 함께 있을 때 범산화는 무척 긴장한 듯 보였다.”“낙랑랑이 너에게 무언가 얘기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더구나.”“너와 낙랑랑이 호숫가에 갔을 때 범산화는 핑계를 대고 나가더니 벽 뒤에 숨어 너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뭐라고요? 제가 랑랑 언니와 한 얘기를 전부 들었다는 말입니까?”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것이다.”“낙랑랑이 너에게 심각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니겠지?”부진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범산화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아니요. 그저 저에게 범산화의 험담을 좀 했습니다.”낙청연은 눈썹을 들썩였다.“설마 화가 나서 랑랑 언니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겠지요?”낙청연은 갑자기 걱정됐다.부진환은 고민하며 말했다.“마지막 집안까지 전부 조사한다면 본왕이 너와 함께 범씨 가문으로 가서 낙랑랑을 만날 것이다.”“걱정된다면 그녀를 잠시 객잔에 머무르게 하거라. 자매끼리 나눌 얘기가 있다고 말이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곧이어 두 사람은 마지막 집에 도착했다.사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앞서 여덟 집안 모두 똑같은 결과였기에 마지막 집안도 별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알아보러 갔다.그 집은 앞선 집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지 등불도 없어 마치 빈집 같아 보였다.두 사람은 밝은 달빛을 빌어 내원의 풀 무더기에서 핏물의 흔적을 찾았다.이미 죽은 듯했다.역시나 예상했던 결과였다.“가자꾸나.”부진환은 마음이 무거웠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주위를 관찰했다.“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큰 저택이 왜 하인 하나 없이 조용할까요?”말을 마치자마자 마당의 벽 옆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깜짝 놀라 지붕으로 몸을 숨겼다.곧이어 사내 한 명이 벽을 넘어 마당에 들어왔고 수상쩍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곧장 방 안으로 들
텅 비어 있었다!사람이 없었다!낙청연은 곧장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뒤져봤으나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부진환은 앞으로 걸어가 벽을 만져보더니 그 위에 걸린 그림 하나를 들었고 그 벽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있었다.그곳에 들어가 보니 후원 쪽 벽과 연결되어 있었고 벽 쪽의 작은 나무들이 전부 밟혀서 부러져 있었다.두 사람은 정원 밖으로 쫓아갔으나 전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침대 뒤에 구멍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번에 죽임당할 뻔했을 때도 이런 방법으로 도망갔을지 모릅니다!”부진환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그는 아마 무언가를 알고 있어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도망쳤을 것이다.”“죽은 사람은 아마 그의 형제겠지.”“오늘 이곳으로 돌아와 돈을 가져간 걸 보면 계양에서 도망치려는 것 같구나.”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었기에 절대 그가 계양에서 도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러면 우리는 먼저 돌아갑시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즉시 돌아갔다.부진환은 객잔으로 돌아가 소서 등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찾고 성문 입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낙청연은 범씨 가문으로 가서 낙랑랑을 볼 생각이었기에 같은 길이 아니라 중간에 헤어졌다.-조용한 마당에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왔다.“낙청연에게 무슨 얘기를 한 것이오? 내가 그렇게 싫소? 내가 쓰레기오? 내가 쓰레기냔 말이오?”“내가 눈에 차지 않았다면 그때 왜 나와 혼인한 것이오?”술을 마신 범산화는 술기운에 화를 내며 낙랑랑을 손가락질했다. 몸도 비틀거렸다.낙랑랑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술이 과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정을 부리지는 마십시오.”범산화는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래! 내가 당신네 낙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오! 하지만 당신의 할아버지는 자발적으로 날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 것이오! 솔직히 얘기해서 사실은 당신을 위한 것이지, 날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