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어찌 가면을 쓰고 있겠는가!“네 아버지가 부탁하러 올 때 내가 섭정와부에 가서 널 데려오라고 했지. 근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더 독할 줄이야!”“너도 참, 우리 백리한테 시집오면 얼마나 좋겠냐!”진태위는 이렇게 좋은 낭자가 이미 시집갔다는 게 안타까웠다. 딸이 못된다면 며느리라도 괜찮은데 말이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 “농이 과하십니다. 진백리의 눈은 어떻게 됐는지요?”진태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좀 나아져서 빛은 보이지만 다른 건 보이지 않는구나.”“근데 눈이 먼 후로부터 전 처럼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의지가 생겼지. 매일 정원에서 무공을 갈고 닦으며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지만 술은 안 마시네. 가끔은 나가서 청력도 키운지.”“오히려 마음이 좀 놓이는구나!”잃었던 사랑을 되찾아서 눈이 멀긴 했지만 다시 살아갈 의지가 생긴 거라고 낙청연은 생각했다.“진태위, 오늘 저녁에는 방문하지 않겠습니다. 필경 저는 섭정왕비인데, 소문이라도 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릴 게 분명합니다.”“내일 제가 가서 진백리의 약 처방을 바꾸겠습니다.”이를 들은 진태위는 걱정 가득한 어투로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에는 어디서 지내냐? 섭정왕부에 돌아가느냐? 내가 바래다 주마!”낙청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제야 섭정왕부에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을 보낼 곳은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그래, 그럼 조심하거라!”진태위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필경 낙청연은 섭정왕비이다. 이미 난처한 상황인데 남의 입에 오르락 내리면 더 난처해질 게 분명했다.낙청연은 지초를 데리고 마차에서 내렸다.“왕비…”낙청연은 지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넌 몰래 부에서 나온 것 아니냐. 얼른 돌아가거라, 찾아내면 화를 입을 게 분명하다. 오늘 일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여라.”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왕비, 부디 조심하십시오.”지초도 섭정와부로 돌아갔다.낙청연은 조용한 거리를 거닐며 기분이 축 처졌
섭정왕이 이 늦은 밤에 웬일로 오셨을까?낙청연은 즉시 후원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걸어 나오자, 바로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송천초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낙청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하지만 이때 밖에서, 부진환은 술 주전자를 들고, 술에 흠뻑 취해 점포의 문을 두드렸다: “저낙! 나오거라!”송천초는 다급히 낙청연의 곁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이렇게 후원에 서서 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경계하고 있었다.“왜 저러십니까? 혹시 신분이 발각된 게 아닙니까?” 송천초는 걱정스럽게 물었다.낙청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도 모른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아직도 들려왔다. 부진환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술을 마신 것 같았다. 평소에 그는 이러지 않는다.“그냥 이대로 못 들어오게 할 겁니까?” 송천초는 망설이었다.낙청연의 두 눈에는 실낱같은 한기가 가득 번졌다. 그녀는 손등에 피범벅이 된 상처를 보더니 말했다: “열어주지 말거라!”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처음에는 문을 두드리더니, 이제는 문을 부수고 있었다.부진환은 술을 마시며, 한편으로는 문을 쾅쾅 부수면서 소리쳤다: “저낙! 안에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소! 어서 나와!”“나오지 않으면, 본왕은 내일 당신의 점포를 부숴버릴 것이오!”이 협박하는 소리를 들은, 낙청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너 먼저 방으로 돌아가거라.”송천초에게 말을 건네고, 그는 다가가서 점포의 문을 열었다.부진환은 술에 취해 문을 막 두드리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문이 열리자, 그의 무거운 몸은 바로 앞으로 덮쳐왔다.낙청연은 그 육중한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온 사람이 그에게 깔려 넘어지려고 했다.바로 이때, 힘 있는 팔뚝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부진환은 몸을 휙 돌리더니, 자신이 바닥에 넘어졌다.예상했던 대로, 땅바닥에 넘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부진환의 몸 위에 넘어졌다.그 순간, 부진환은 콧소리를 냈다.이 친밀한 동작은 낙청연의
“저도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그녀는 부진환의 믿음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낙청연이기 때문이다.“당신은 깨끗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 믿소.”부진환의 낮은 목소리에서 약간의 취기를 느낀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부진환은 돌계단에 기댄 채로 계속해 술을 마셨고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오늘 어떤 일 때문에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오. 어쩌면 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오…”부진환의 머릿속에는 낙청연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오늘 밤 낙청연이 승상부에서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만약 그녀가 엄씨 가문과 한패라면 죽어 마땅한 큰 죄를 저지른 게 맞지만 만약 그냥 엄씨 가문에 이용당한 것이라면?부진환은 불안했다.심장 일부가 사라진 듯, 또는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고 있듯, 이 감정을 어떻게 형언해야 할지 몰랐다.낙청연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목숨을 잃다니? 설마 날 말하는 걸까?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냉정해진 낙청연은 그가 말한 이가 자신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부진환은 그녀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고 낙해평이 그녀를 데려가려 할 때도 무척 단호했다.“왕야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것은 이미 후회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왕야께서는 무척 단호하시니 그렇게 쉽게 흔들릴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술을 마시던 부진환은 살짝 멈칫했다. 그는 미간을 구기면서 중얼거렸다.“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말이오?”그는 복잡한 심경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래, 그대 말이 맞소. 난 단호한 사람이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도 모두 모질고 인정사정없는 마음과 수단 덕분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다른 이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오.”그 순간, 부진환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돌았다.억울한 누군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의심스러운 자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엄씨 가문에서 보내온 첩자이니 죽어도 상관없었다.부진환은 주먹을 움켜쥐면서
그의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부진환은 고개를 귀로 젖히더니 바닥에 드러누웠고 춤추고 있는 불씨가 그의 실망스러운 기색을 비치고 있었다.“당시 여국에는 무술이 횡행했고 그로 인해 어머니께서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였었소. 어머니께서는 가장 총애를 받는 후비였기에 무술로 황제를 미혹했다는 죄명을 쓰게 됐소. 폐하께서는 이궁의난이 있기 전까지 그녀를 계속 지키려 하셨소.”낙청연은 또다시 몸을 움찔 떨었다.이궁의난?태부부에 있을 때 부진환과 낙용 고고가 이궁의난을 언급한 적이 있었고 그때 낙용 고고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다.그녀는 줄곧 곤혹스러웠다. 이궁의난이란 과연 무엇일까?“이궁의난이요?”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며 부진환을 바라봤고 부진환은 천천히 얘기를 꺼냈다.“이궁의난에서 황자가 여럿 죽었었지. 그날 밤하늘은 개였지만 번개가 미친 듯이 내리쳤고 다른 곳은 다 괜찮았는데 이궁에서만 많은 사람이 죽었소. 그들은 내 어머니의 처소에서 죄증을 발견했다면서 그녀를 나라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요녀라고 부르며 그녀를 화형에 처했소”부진환은 화형이 집행되는 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온 힘을 다해 발악하는 처절한 비명이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아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그때 고작 열 살이었던 나조차도 거기에 연루될 뻔했었소. 큰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었다며 모자란 척해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것이었지. 그 뒤로 난 두 번 다시 모비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소. 심지어 수도와 황궁에서도 이궁의난에 대해서는 절대 거론하지 않지. 그런 화를 당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야.”그 말에 낙청연은 긴장됐다.맑게 갠 하늘에서 번개가 쳤고 다른 곳은 다 괜찮은데 오직 이궁에 있던 사람들만 다치고 죽었다니, 그것은 인뇌진이었다.여국의 사람이 한 짓이 분명하지만 정말 여국 공주가 한 짓일까?아마도 그렇게 간단한 일 같지 않았다.말을 마친 뒤 부진환은 당부하며 말했다.“자네는 똑똑하지. 오늘 밤 내가 자네에게 한 말은 마음속에 숨겨
그런데 옥새가 낙해평의 손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대체 어떻게 된 거지?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생각하기를 포기했다.“왕야, 그러면…”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말을 이어가려 했는데 부진환은 이미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그녀는 살짝 놀랐다.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술병들을 보니 입안이 씁쓸했다.부진환은 낙청연을 자기 원수라고 생각하면서 저낙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 여겼다.언젠가 부진환이 저낙이 낙청연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아마 그녀에게 다른 목적이 있어 저낙의 신분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하겠지.낙청연은 마당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불이 꺼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힘겹게 부진환을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그녀는 그를 방까지 부축해줄 생각이었지만 온몸이 시큰거리는 데다가 부진환의 무게 때문에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계단을 밟는 순간 부진환과 함께 넘어질 뻔했는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손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그녀를 부축했다.고개를 돌려보니 코앞에 있는 얼굴에서 붉은빛이 살짝 감돌고 있었고 취기가 오른 깊은 눈빛이 보였다.그의 시선은 마치 갈고리처럼 낙청연을 더없이 차가운 심연으로 끌어당겼다.“자네가 날 부축하는 것이오? 아니면 내가 자네를 부축하는 것이오?”부진환은 낮은 목소리로 원망하듯 말하면서 손을 뗐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낙청연은 그 자리에 굳어 서 있다가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송천초의 방이었다.낙청연은 재빨리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그 방이 아닙니다. 이쪽입니다!”혼자 걸을 수 있는 걸 보니 정신을 차렸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잡아당기자 부진환은 그대로 낙청연의 등 위에 쓰러졌다.그의 큰 손은 그녀의 어깨에 걸쳐졌고 뒤이어 부진환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그의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낙청연은 돌연 귀를 붉혔고 얼른 그를 부축해 방 쪽으로 걸어갔다.귓가에서는 푸
코 고는 소리였다.낙청연은 미간을 좁히면서 불쾌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불을 잡아당겨 그에게 덮어주고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 신발도 벗겨주지 않고 말이다.방에서 나오고 나서야 낙청연은 손목에 피가 흐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고 방으로 돌아와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쌌다.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송천초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어쩌다가 다친 것입니까? 누가 한 짓입니까?”낙청연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말하자면 길다.”“오늘 태부부에서 곤란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죠?”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날 곤란하게 하겠느냐? 오히려 날 찾아와서 점괘를 봐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부 다 거절했다. 그들에게 우리 점포에 와서 널 찾으라고 일렀지.”“섭정왕은요? 오늘 밤 왜 갑자기 당신을 찾은 겁니까? 설마 그자가 이 상처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송천초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확인해 보니 손등과 손목에 핏자국이 낭자했다.흰 손에 이런 상처들이 남겨진 모습을 본 송천초는 식겁했고 낙청연은 미간을 좁히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내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의심이 저렇게 많은 사람이 어떻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랑 허심탄회하게 얘기한다는 말이냐?”섭정왕부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로 낙청연은 단단히 겁을 먹었고 그래서 부진환이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됐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보통 백성에 불과한 신분인데 그녀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송천초는 그녀를 설득하며 말했다.“이해할 수 없는 일은 고민하지 마세요. 신분을 숨기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자는 섭정왕이니 우리가 어찌할 방도가 없지요. 어떤 신분으로 그를 만나든 항상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늦었으니 이만 자거라. 난 바느질 좀 해야겠다.”낙청연은 전에 입었던 옷을 꺼냈다. 그 옷을 입고 채찍을 맞았던지라 여기저
그 말에 부진환은 깜짝 놀랐고 곧이어 낙청연이 서방 안으로 들어왔다.그녀가 멀쩡히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부진환은 미간을 좁혔고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런데 부진환이 입을 열기 전에 낙청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왕야, 낙랑랑의 혼례는 끝났으니 저도 이제 별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왕야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오늘 당장 짐을 꾸려 별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낙청연은 일부러 누그러진 어투로 조심스럽게 말했고 그 모습에 부진환은 심경이 복잡했다.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그는 뒷짐을 진 채로 몸을 돌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잘못을 깨우쳤다면 여기에 남아도 된다.”그의 너그러운 모습에 낙청연은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틀린 것은 제가 아니라 왕야의 편파적인 태도입니다. 왕야께서는 제가 한 모든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럼 제가 앞으로 왕야의 눈에 띄지 않게 절 별원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왕야께서는 앞으로 절 기억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냥 없는 사람처럼 대해주세요.”낙청연은 성실하게 말했다. 그녀는 진짜 부진환이 다시는 자신을 떠올리지 않기를 바랐다.그녀가 다시 섭정왕부로 돌아온다면 좋을 것 하나 없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부진환은 이마에 핏줄이 돋았고 눈동자에 노여움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불쌍하게 들리는 그녀의 말에 하마터면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하지만 부진환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었다. 낙청연이 가장 잘하는 일이 물러나는 척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으니 이 또한 그녀의 수단일지 몰랐다.낙청연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고 자신이 엄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으며 엄씨 가문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별원으로 돌아간다고?”부진환은 몸을 돌리며 싸늘한 시선으로 말했다.“다섯째와 다시 만날 셈이냐? 다섯째는 제발 널 왕부에 남겨달라고 나한테 애원했었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낙청연의 반응을 자세히 살폈다.그러나 그가 볼
부진환은 기대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화가 치밀어올랐다.낙청연은 부운주를 사랑하게 된 걸까?예전에는 무슨 수를 쓰든 그와 혼인을 올리려고 했으면서 지금은 그가 수세를 써줘서 부운주와 만날 생각인 듯했다.그럼 나는?부진환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면서 울컥 화가 치솟았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단지 짧게 일갈했을 뿐이다.“당장 나가거라!”낙청연은 당연히 그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낙청연을 사랑하지도 않는데 왜 항상 그녀와 부운주 사이의 일을 따지는 것일까?부운주는 그저 평소 그녀를 비교적 친근하게 부를 뿐이었다. 과거 그들은 친구였고 선을 넘는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부진환은 왜 자꾸 화를 내는 걸까?낙청연도 화를 억누르면서 서방을 떠났다. 그녀는 당장 섭정왕부를 떠날 생각이었다.하지만 앞마당에 도착하니 호위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녀를 에워쌌다.“왕비 마마, 처소로 돌아가십시오.”낙청연은 그대로 처소에 갇혔고 자물쇠까지 걸려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지초 또한 그녀와 같이 처소에 갇혀서 등 어멈이 밖에서 먹을 것을 가져와 그들에게 전해줬다.낙청연은 답답한 심정으로 방 안에 앉아있었고 밖에서 등 어멈과 잠시 얘기를 나누던 지초는 급히 돌아와 말했다.“왕비 마마, 등 어멈이 말하길 왕야께서 왕비 마마더러 왕부에 남으라고 한 건 아마도 상원절 제사 때문인 듯합니다. 왕야께서도 황족이시니 왕비 마마의 동행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래서 등 어멈이 잠시만 참아달라고 했습니다. 상원절이 끝나면 왕야와 잘 의논해보라더군요.”그 말에 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의논? 지금 내 꼴을 보거라. 내가 어떻게 왕야와 잘 의논할 수 있겠느냐?”오늘 얘기를 잘 끝마치면 별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진환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녀에게 오황자와 만나겠냐고 물었다.낙청연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그녀는 저택에 갇혀 있었으니 장락골목의 장사를 돌볼 수가 없었다.저낙은 요청받고 낙랑랑의 혼례에 참여하는 것인데 태부부의 대문을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