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절(上元節)이 가까워지니 성안이 북적북적했고 낙청연의 점포 앞에도 붉은색 등롱이 걸려 경사스러워 보였다.노름을 좋아하는 용의천의 운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면서 낙청연 또한 장사가 잘됐다.화려하고 사치스러워 보이는 마차들이 매일같이 장락골목을 들락날락하며 낙청연을 모셔갔다.장락골목에 귀인이 나타났다 하면 모두 낙청연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저 신산의 명성이 수도 전체에 널리 퍼진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장락골목 주위의 거리에는 저 신산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부진환이 향낭을 가져간 뒤로 낙청연은 그를 쌀쌀맞게 대했고 그가 몇 번이나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그를 무시했다. 그 뒤로 부진환은 거의 오지 않았다.그렇게 순리롭게 겨울을 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종놈이 그녀를 찾아와 초청장을 건넸다.“저 신산, 저희 아씨께서 일주일 뒤 혼례를 치르시는데 저 신산을 저택으로 모셔 축하주를 대접하고 싶어 하십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아씨라고 했소?”초청장을 열어보니 낙랑랑의 혼례였다. 낙청연은 경악했다.그리고 아래를 보니 신랑의 이름은 진소한이 아닌 범산화(范山和)였다.낙랑랑이 몰래 그녀를 찾아 인연을 점쳐 본 것이 도움이 되지 못한 듯했다.“어찌 이리도 갑작스럽단 말이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낙랑랑이 벌써 누군가와 혼인을 올린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종놈은 웃으며 말했다.“범씨 가문에서 급한가 봅니다. 보름 정도 준비했으니 그리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지요. 저희 아씨께서 저 신산을 꼭 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으니 꼭 오셔야 합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 내 꼭 가리다.”낙랑랑은 결국 저항에 실패했거나 낙운희를 위해 타협했을 것이다. 어쩌면 낙용과 낙운희의 모녀 관계를 위해 양보한 걸지도 몰랐다.그러나 적어도 범산화는 그녀가 혼인을 올리고 싶은 상대가 아닐 것이다.이렇게 갑작스럽다니, 낙청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낙용이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준비해 낙랑랑을 출가하게 할
송천초는 곧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이렇게 마르셨는데 이 모습으로 참석한다면 부진환이 단번에 알아볼 게 아닙니까?”낙청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내게 방법이 있다! 얼굴은 면사가 있는 모자를 쓰면 된다.”송천초는 주저하며 물었다.“가능하겠습니까? 들키면 어찌합니까?”낙청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들킨다고 해도 내가 들키겠지. 그들은 저낙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너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킨다고 해도 저 신산 대신 온 것이라 하면 신경 쓸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러한 자리에서 산명 선생을 신경 쓸 사람은 없었으니 섭정왕비의 신분을 잘 연기해 들키지만 않으면 됐다.“알겠습니다.”그렇게 두 사람은 준비를 시작했다.낙청연은 뚱뚱하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직접 옷을 만들어 그 안에 대량의 솜을 넣었다.그것을 옷 안에 입고 겉에 옷을 두 겹 정도 더 껴입은 뒤 망토까지 두른다면 몸집이 몇 배는 더 커 보일 것이다.그리고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녀는 얼굴 전체를 가릴 가면을 만들었고 그 위에 면사가 드리워진 모자를 썼다.송천초와 지초는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낙청연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원래의 목소리를 냈다.송천초는 감탄을 내뱉었다.“진짜 저 신산의 모습은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듯합니다!”“그럼 됐다!”준비를 마친 뒤 낙청연과 지초는 몰래 마차를 타고 성을 떠나 별원으로 향했다.별원에서 단장을 마친 뒤 그녀는 섭정왕부의 사람이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렸다.이튿날 아침.마차 한 대가 별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고 지초는 대문 뒤쪽에서 마차를 보고는 긴장한 얼굴로 달려와 말했다.“왔습니다, 왔어요!”낙청연은 당부하며 말했다.“내가 가르쳤던 것은 다 기억했느냐?”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다 기억했습니다.”이번에는 소유가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다.낙청연의 신분으로 섭정왕부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낙청연은 괜히 긴장됐다.“왕비
낙청연이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왕부 전체가 그 소식을 접했고 적지 않은 하인들이 나와서 그녀를 맞이했다. 낙월영 또한 그 소식을 알고 그녀를 보러 왔다.그녀는 낙청연이 살아서 섭정왕부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마차가 멈추어 섰고 소유가 차 문을 열었다.“왕비 마마, 도착했습니다.”대문 쪽에는 계집종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기도 전에 허약한 기침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곧이어 지초가 낙청연을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왕비 마마!”등 어멈이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맞이했고 낙청연은 육중한 몸을 이끌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낙월영이 그녀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돌아오셨군요, 언니. 별원에서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콜록콜록…”낙청연은 대답하는 대신에 기침하면서 낙월영을 지나쳤다.낙청연이 자기 말에 대꾸하지 않자 낙월영은 언짢은 얼굴로 낙청연의 팔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면사가 휘날리는 바람에 낙월영은 낙청연이 쓴 가면을 보았고 겁을 먹고서는 연신 뒷걸음쳤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왕비 마마께서 돌아오신 이유는 낙랑랑 아씨의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왕비 마마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지초는 불쾌한 듯 말하고는 낙청연을 부축하고 떠났다.완전히 넋을 놓은 낙월영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 가면은 아주 무서웠다.낙청연은 왜 얼굴을 가린 것일까?낙청연은 다시 자신의 처소였던 곳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 내내 많은 사람이 그녀를 보고 수군거렸다. 낙청연의 옷차림이 무척 괴상했기 때문이었다.“문을 닫거라.”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온 뒤 다급히 지초더러 방문을 닫게 했다.“왕비 마마, 저희는 아직 왕야를 뵙지 않았습니다.”지초가 주저하며 말했다.“왕야를 뵈어서 무엇하냐? 안 볼 것이다.”낙청연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추한 가면을 벗었다.부진환이 그녀를 불러들인 것도 단지 태부부를 위해서였다.낙랑랑이 출가하는데 자신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것
그는 실망한 얼굴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문을 걱정스레 바라보고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부운주가 낙청연을 찾아갔다는 소식은 숨길 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진환은 곧 그 소식을 접했고 향낭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돌연 굳었다.“벌써 만났다는 말이냐?”부진환의 눈빛에는 한기가 어려있었다.왕부에 돌아오자마자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운주와 만나다니, 그렇게나 참을성이 없다는 말인가?부진환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낙청연을 이곳으로 부르거라!”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소유가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낙청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분명 부운주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이리 급하게 그녀를 찾아 경고하려는 것일 터였다.가면을 쓴 뒤 낙청연은 소유를 따라 서방에 왔고 문을 닫았다.방 안의 분위기는 아주 괴이했다.의자 위에 앉아있는 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고 낙청연은 그의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낙청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렵다는 티를 내며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한참 뒤에야 부진환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모자와 가면을 벗거라!”소유가 보고를 올렸던지라 부진환은 낙청연이 진짜 다친 건지, 아니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알아낼 셈이었다.낙청연은 그의 말에 경계하듯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부진환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명령조로 말했다.“모자와 가면을 벗으라 했다!”낙청연은 긴장한 얼굴로 연신 뒷걸음질 치면서 팔을 들어 가면을 가렸다.“안 벗을 것이냐?”부진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낙청연은 그를 피하듯 뒤로 물러서면서 고개를 숙인 채로 가면을 내리눌렀다.“벙어리가 된 것이냐? 말해 보거라!”부진환은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울컥 화가 났다.“이…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
“너!”깜짝 놀란 부진환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낙청연은 비수를 자신의 목젖에 갖다 대더니 울면서 빌었다.“왕야,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제발, 절 가만히 놔두세요. 꼭 제 얼굴을 보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죽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낙월영 대신 시집을 와서도 안 되었고 왕야와 낙월영을 건드려서도 아니 되었습니다. 제가 이 꼴이 된 것도 전부 자업자득입니다! 제발 제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세요, 왕야!”낙청연은 거의 무너질 듯이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고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이 되어 부진환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낙청연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그가 알고 있던 낙청연이 맞는 걸까?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두려움 가득한 그녀의 울부짖음에 부진환의 미간이 더욱더 좁혀졌다.밖에 있던 이들은 서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전부 들었고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예전의 왕비는 고집스럽고 대쪽 같은 성정이었다. 왕야에게 대들면서 그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벌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왕야에게 얼굴을 보이는 게 무서워 울면서 그에게 사정했고 심지어는 죽겠다면서 협박했다.무엇이 그녀를 무너지게 만든 걸까?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이 망가지게 된 것일까?부진환 역시 그들과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바닥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던 낙청연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가보거라.”부진환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허락이 떨어지자 낙청연은 가면을 힘껏 부여잡고 바닥에서 모자를 주워 든 뒤 황급히 서방에서 뛰쳐나갔다.정원 밖에는 부운주가 있었다.그는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청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얼굴은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고 신의는 의술이 고명했으니 분명 그녀의 얼굴을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그러나 낙청연은 당황한 듯 보였다
“잘 됐구나! 망할 낙청연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얼굴이 완전히 망가져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인가 보구나.”장미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예전에 별원에 많은 뱀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낙청연이 뱀에게 물려 몸 전체에 흉터가 지고 얼굴도 망가졌다고 합니다.”낙월영은 그 소식에 속이 시원했다.그녀는 동경 앞에 앉아 자기 얼굴을 보면서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자업자득이지. 내 얼굴을 지금까지 낫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 업보 아니겠느냐?”장미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맞습니다. 앞으로 왕부에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둘째 아씨를 위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낙월영은 거만한 얼굴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제 며칠 뒤면 태부부에서 혼례가 이루어질 텐데 그때 손님이 많이 올 것이다. 그 자리에서 아주 큰 망신을 줘야겠다. 모든 사람이 낙청연의 추한 얼굴을 모두 보게 만들 것이다. 낙청연을 아주 철저히 무너뜨려 자결하고 싶게 만들 거야.”낙월영은 부진환에게 시집가지 않기 위해 낙청연이 자기 대신 시집가도록 사주했었다. 낙청연은 멍청해서 쉽게 주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잘못을 전부 낙청연에게 뒤집어씌워야 부진환이 그녀를 탓하고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마음 아파서 그녀를 더 아낄 것이었으니 말이다.그런데 낙청연은 섭정왕부에 온 뒤로 너무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많은 성가신 일들이 생겼다.이미 낙청연에게 많이 당한 낙월영은 어느 날 갑자기 낙청연의 상처가 나을까 걱정됐다.그래서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골칫거리를 없앨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낙청연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지초는 곧바로 문을 닫았다.그리고는 등 어멈에게 얘기해 정원의 문을 잠가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방 안에 들어선 낙청연은 가면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왕비 마마, 조금 전에는…”지초 또한 그 소란을 들어 많이 놀란 듯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눈썹을 까딱였다.“어떠냐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그러게 말이오. 오늘 같은 자리에 어찌 이런 차림으로 온다는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도 있는가 보오?”“오늘은 태부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는 날인데 이런 차림으로 오다니,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나 보오.”낙청연은 몰려든 자들이 눈에 익었다. 그중 맨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위운하였다.위운하는 예전에 류훼향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었는데 낙월영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오늘 일은 아마도 낙월영이 꾸민 짓 같았다. 낙월영은 그녀를 죽도록 괴롭힐 셈인 듯했다.위운하는 낙청연의 앞에 서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얼른 모자를 벗으시오! 벗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벗겨주겠소!”위운하는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이곳은 태부부였고 오늘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초청장을 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조사를 한다고 해도 태부부의 사람들이 조사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에게는 나설 자격이 없었다.낙청연이 입을 열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 부진환이 막 도착한 모습이 보였다.낙청연은 미간을 좁혔다. 연극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에게 들킬 수 없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그녀는 두려운 듯 연신 뒷걸음질 치면서 긴장한 어투로 말했다.“이건 내 일이오. 당신들과는 상관없소.”말을 마치고 그녀는 기회를 틈타 도망갈 생각이었다.위운하 일행은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았다.누군가 손을 뻗어 면사를 잡자 낙청연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고 허둥지둥하다가 바닥에 넘어졌다. 당황함과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오지 마시오!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시오!”낙청연은 울먹거리며 말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부진환은 때마침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고 표정에는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바로 그때 부진환의 뒤에 선 부운주가 부진환의 표정을 보았다. 부진환이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부운주가 그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그와 부딪쳤다.“청연!”부운주는
주위 사람들은 온몸이 굳었는지 그 자리에서 꼼작하지 않고 서 있었다.“섭정왕…”누군가 앞으로 나서면서 그를 설득하려 하자 부진환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봤고 그에 상대는 감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위운하는 목이 졸린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는 부진환의 손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고 두 발을 힘껏 움직이며 저항하려 했다.그 장면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위운하는 당장이라도 시체가 되어 이 정원에 버려질 것 같았다.부진환은 더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대중 앞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황실의 명성과 명예를 더럽히려 하다니, 지금 당장 너를 죽인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위 대인은 소란을 듣고 얼른 그곳으로 향했다.그는 부진환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섭정왕이시여! 제 딸이 무례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제 딸도 자기 잘못을 알 것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위운하는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이마에 핏줄이 돋았으며 얼굴이 새빨갛게 된 것이 당장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부진환은 그제야 위운하를 놓아주었고 위운하는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낙씨 가문에 혼례가 있는 날이니 피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지. 오늘은 살려주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단두대에서 보자꾸나.”그의 차갑고 낮은 목소리는 분명 감미로웠지만 염라대왕처럼 소름 돋는 데가 있었다.말을 마친 뒤 부진환은 뒷짐을 지고 걸음을 옮겼다.부진환이 떠나자 위운하는 그제야 부축받으며 일어났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고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낙청연은 부운주에게 이끌려 멀리 도망쳤다.더는 달리지 못할 것 같았던 낙청연은 부운주를 잡아당겼고 그에 부운주는 멈춰 섰다.“괜찮습니까?”부운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걱정스레 물었고 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오황자님, 달리기를 정말 잘하십니다. 이렇게 반년 동안 운동하신다면 차차 좋아질 것 같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