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야, 이 물건은…”낙월영은 다소 긴장했다. 전에 그녀는 이 향낭이 어머니의 유품이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물건을 산명 선생에게 맡긴 것을 들켰으니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월영아, 날이 추우니 얼른 돌아가거라. 고뿔에 걸리면 안 되지.”부진환은 걱정하는 듯한 어조로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순간 낙월영은 살짝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녀는 조심스레 부진환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왕야, 화가 풀리신 겁니까?”부진환은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손을 들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당연하지.”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보던 낙청연은 분노가 끓어올랐다.이름도 바꾸고 혼자서 잘살고 있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그녀의 앞에서 그녀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이제 막 손에 넣을 뻔했던 향낭을 빼앗기고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장면까지 보게 되니 낙청연은 거대한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고 심지어는 서러워서 한바탕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복잡한 감정들이 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몰려왔으나 낙청연은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현재 그녀는 저낙의 신분으로 어렵게 지금까지 걸어왔다.완전히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부진환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었다.“왕야와 왕비 마마께서는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이분이 왕비 마마란 걸 알았다면 거래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낙청연은 맑은 목소리로 말했고 그 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낙월영 또한 놀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이 못내 마음에 들었던 그녀는 이내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대신 낙월영에게 말했다.“내가 데려다주마.”낙월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가녀린 몸을 한 낙월영은 부진환의 호송 아래 점포를 떠났고 고요한 길을 걸으며 장락골목에서 사라졌다.“왕비 마마…”지초의 목소리에 낙청연은 그제야 시선과 생각을 거두어
상원절(上元節)이 가까워지니 성안이 북적북적했고 낙청연의 점포 앞에도 붉은색 등롱이 걸려 경사스러워 보였다.노름을 좋아하는 용의천의 운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면서 낙청연 또한 장사가 잘됐다.화려하고 사치스러워 보이는 마차들이 매일같이 장락골목을 들락날락하며 낙청연을 모셔갔다.장락골목에 귀인이 나타났다 하면 모두 낙청연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저 신산의 명성이 수도 전체에 널리 퍼진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장락골목 주위의 거리에는 저 신산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부진환이 향낭을 가져간 뒤로 낙청연은 그를 쌀쌀맞게 대했고 그가 몇 번이나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그를 무시했다. 그 뒤로 부진환은 거의 오지 않았다.그렇게 순리롭게 겨울을 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종놈이 그녀를 찾아와 초청장을 건넸다.“저 신산, 저희 아씨께서 일주일 뒤 혼례를 치르시는데 저 신산을 저택으로 모셔 축하주를 대접하고 싶어 하십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아씨라고 했소?”초청장을 열어보니 낙랑랑의 혼례였다. 낙청연은 경악했다.그리고 아래를 보니 신랑의 이름은 진소한이 아닌 범산화(范山和)였다.낙랑랑이 몰래 그녀를 찾아 인연을 점쳐 본 것이 도움이 되지 못한 듯했다.“어찌 이리도 갑작스럽단 말이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낙랑랑이 벌써 누군가와 혼인을 올린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종놈은 웃으며 말했다.“범씨 가문에서 급한가 봅니다. 보름 정도 준비했으니 그리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지요. 저희 아씨께서 저 신산을 꼭 모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으니 꼭 오셔야 합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 내 꼭 가리다.”낙랑랑은 결국 저항에 실패했거나 낙운희를 위해 타협했을 것이다. 어쩌면 낙용과 낙운희의 모녀 관계를 위해 양보한 걸지도 몰랐다.그러나 적어도 범산화는 그녀가 혼인을 올리고 싶은 상대가 아닐 것이다.이렇게 갑작스럽다니, 낙청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낙용이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준비해 낙랑랑을 출가하게 할
송천초는 곧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이렇게 마르셨는데 이 모습으로 참석한다면 부진환이 단번에 알아볼 게 아닙니까?”낙청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내게 방법이 있다! 얼굴은 면사가 있는 모자를 쓰면 된다.”송천초는 주저하며 물었다.“가능하겠습니까? 들키면 어찌합니까?”낙청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들킨다고 해도 내가 들키겠지. 그들은 저낙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너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킨다고 해도 저 신산 대신 온 것이라 하면 신경 쓸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러한 자리에서 산명 선생을 신경 쓸 사람은 없었으니 섭정왕비의 신분을 잘 연기해 들키지만 않으면 됐다.“알겠습니다.”그렇게 두 사람은 준비를 시작했다.낙청연은 뚱뚱하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직접 옷을 만들어 그 안에 대량의 솜을 넣었다.그것을 옷 안에 입고 겉에 옷을 두 겹 정도 더 껴입은 뒤 망토까지 두른다면 몸집이 몇 배는 더 커 보일 것이다.그리고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녀는 얼굴 전체를 가릴 가면을 만들었고 그 위에 면사가 드리워진 모자를 썼다.송천초와 지초는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낙청연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원래의 목소리를 냈다.송천초는 감탄을 내뱉었다.“진짜 저 신산의 모습은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듯합니다!”“그럼 됐다!”준비를 마친 뒤 낙청연과 지초는 몰래 마차를 타고 성을 떠나 별원으로 향했다.별원에서 단장을 마친 뒤 그녀는 섭정왕부의 사람이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렸다.이튿날 아침.마차 한 대가 별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고 지초는 대문 뒤쪽에서 마차를 보고는 긴장한 얼굴로 달려와 말했다.“왔습니다, 왔어요!”낙청연은 당부하며 말했다.“내가 가르쳤던 것은 다 기억했느냐?”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다 기억했습니다.”이번에는 소유가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다.낙청연의 신분으로 섭정왕부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낙청연은 괜히 긴장됐다.“왕비
낙청연이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왕부 전체가 그 소식을 접했고 적지 않은 하인들이 나와서 그녀를 맞이했다. 낙월영 또한 그 소식을 알고 그녀를 보러 왔다.그녀는 낙청연이 살아서 섭정왕부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마차가 멈추어 섰고 소유가 차 문을 열었다.“왕비 마마, 도착했습니다.”대문 쪽에는 계집종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기도 전에 허약한 기침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곧이어 지초가 낙청연을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왕비 마마!”등 어멈이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맞이했고 낙청연은 육중한 몸을 이끌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낙월영이 그녀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돌아오셨군요, 언니. 별원에서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콜록콜록…”낙청연은 대답하는 대신에 기침하면서 낙월영을 지나쳤다.낙청연이 자기 말에 대꾸하지 않자 낙월영은 언짢은 얼굴로 낙청연의 팔을 덥석 잡았다.그 순간 면사가 휘날리는 바람에 낙월영은 낙청연이 쓴 가면을 보았고 겁을 먹고서는 연신 뒷걸음쳤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왕비 마마께서 돌아오신 이유는 낙랑랑 아씨의 혼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왕비 마마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지초는 불쾌한 듯 말하고는 낙청연을 부축하고 떠났다.완전히 넋을 놓은 낙월영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 가면은 아주 무서웠다.낙청연은 왜 얼굴을 가린 것일까?낙청연은 다시 자신의 처소였던 곳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 내내 많은 사람이 그녀를 보고 수군거렸다. 낙청연의 옷차림이 무척 괴상했기 때문이었다.“문을 닫거라.”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온 뒤 다급히 지초더러 방문을 닫게 했다.“왕비 마마, 저희는 아직 왕야를 뵙지 않았습니다.”지초가 주저하며 말했다.“왕야를 뵈어서 무엇하냐? 안 볼 것이다.”낙청연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추한 가면을 벗었다.부진환이 그녀를 불러들인 것도 단지 태부부를 위해서였다.낙랑랑이 출가하는데 자신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것
그는 실망한 얼굴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문을 걱정스레 바라보고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부운주가 낙청연을 찾아갔다는 소식은 숨길 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진환은 곧 그 소식을 접했고 향낭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돌연 굳었다.“벌써 만났다는 말이냐?”부진환의 눈빛에는 한기가 어려있었다.왕부에 돌아오자마자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운주와 만나다니, 그렇게나 참을성이 없다는 말인가?부진환은 싸늘해진 눈빛으로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낙청연을 이곳으로 부르거라!”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소유가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낙청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분명 부운주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이리 급하게 그녀를 찾아 경고하려는 것일 터였다.가면을 쓴 뒤 낙청연은 소유를 따라 서방에 왔고 문을 닫았다.방 안의 분위기는 아주 괴이했다.의자 위에 앉아있는 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고 낙청연은 그의 시선에 소름이 돋았다.낙청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렵다는 티를 내며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한참 뒤에야 부진환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모자와 가면을 벗거라!”소유가 보고를 올렸던지라 부진환은 낙청연이 진짜 다친 건지, 아니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알아낼 셈이었다.낙청연은 그의 말에 경계하듯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부진환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명령조로 말했다.“모자와 가면을 벗으라 했다!”낙청연은 긴장한 얼굴로 연신 뒷걸음질 치면서 팔을 들어 가면을 가렸다.“안 벗을 것이냐?”부진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낙청연은 그를 피하듯 뒤로 물러서면서 고개를 숙인 채로 가면을 내리눌렀다.“벙어리가 된 것이냐? 말해 보거라!”부진환은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울컥 화가 났다.“이…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
“너!”깜짝 놀란 부진환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낙청연은 비수를 자신의 목젖에 갖다 대더니 울면서 빌었다.“왕야,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제발, 절 가만히 놔두세요. 꼭 제 얼굴을 보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죽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낙월영 대신 시집을 와서도 안 되었고 왕야와 낙월영을 건드려서도 아니 되었습니다. 제가 이 꼴이 된 것도 전부 자업자득입니다! 제발 제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세요, 왕야!”낙청연은 거의 무너질 듯이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고 그녀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이 되어 부진환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낙청연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그가 알고 있던 낙청연이 맞는 걸까?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두려움 가득한 그녀의 울부짖음에 부진환의 미간이 더욱더 좁혀졌다.밖에 있던 이들은 서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전부 들었고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예전의 왕비는 고집스럽고 대쪽 같은 성정이었다. 왕야에게 대들면서 그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벌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왕야에게 얼굴을 보이는 게 무서워 울면서 그에게 사정했고 심지어는 죽겠다면서 협박했다.무엇이 그녀를 무너지게 만든 걸까?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이 망가지게 된 것일까?부진환 역시 그들과 똑같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바닥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던 낙청연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가보거라.”부진환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허락이 떨어지자 낙청연은 가면을 힘껏 부여잡고 바닥에서 모자를 주워 든 뒤 황급히 서방에서 뛰쳐나갔다.정원 밖에는 부운주가 있었다.그는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청연,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대의 얼굴은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고 신의는 의술이 고명했으니 분명 그녀의 얼굴을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그러나 낙청연은 당황한 듯 보였다
“잘 됐구나! 망할 낙청연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얼굴이 완전히 망가져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인가 보구나.”장미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예전에 별원에 많은 뱀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낙청연이 뱀에게 물려 몸 전체에 흉터가 지고 얼굴도 망가졌다고 합니다.”낙월영은 그 소식에 속이 시원했다.그녀는 동경 앞에 앉아 자기 얼굴을 보면서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자업자득이지. 내 얼굴을 지금까지 낫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 업보 아니겠느냐?”장미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맞습니다. 앞으로 왕부에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둘째 아씨를 위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낙월영은 거만한 얼굴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제 며칠 뒤면 태부부에서 혼례가 이루어질 텐데 그때 손님이 많이 올 것이다. 그 자리에서 아주 큰 망신을 줘야겠다. 모든 사람이 낙청연의 추한 얼굴을 모두 보게 만들 것이다. 낙청연을 아주 철저히 무너뜨려 자결하고 싶게 만들 거야.”낙월영은 부진환에게 시집가지 않기 위해 낙청연이 자기 대신 시집가도록 사주했었다. 낙청연은 멍청해서 쉽게 주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잘못을 전부 낙청연에게 뒤집어씌워야 부진환이 그녀를 탓하고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마음 아파서 그녀를 더 아낄 것이었으니 말이다.그런데 낙청연은 섭정왕부에 온 뒤로 너무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많은 성가신 일들이 생겼다.이미 낙청연에게 많이 당한 낙월영은 어느 날 갑자기 낙청연의 상처가 나을까 걱정됐다.그래서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골칫거리를 없앨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낙청연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지초는 곧바로 문을 닫았다.그리고는 등 어멈에게 얘기해 정원의 문을 잠가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방 안에 들어선 낙청연은 가면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왕비 마마, 조금 전에는…”지초 또한 그 소란을 들어 많이 놀란 듯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눈썹을 까딱였다.“어떠냐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그러게 말이오. 오늘 같은 자리에 어찌 이런 차림으로 온다는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도 있는가 보오?”“오늘은 태부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는 날인데 이런 차림으로 오다니,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나 보오.”낙청연은 몰려든 자들이 눈에 익었다. 그중 맨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위운하였다.위운하는 예전에 류훼향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었는데 낙월영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오늘 일은 아마도 낙월영이 꾸민 짓 같았다. 낙월영은 그녀를 죽도록 괴롭힐 셈인 듯했다.위운하는 낙청연의 앞에 서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얼른 모자를 벗으시오! 벗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벗겨주겠소!”위운하는 그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이곳은 태부부였고 오늘 이곳에 온 이들은 모두 초청장을 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조사를 한다고 해도 태부부의 사람들이 조사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에게는 나설 자격이 없었다.낙청연이 입을 열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 부진환이 막 도착한 모습이 보였다.낙청연은 미간을 좁혔다. 연극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에게 들킬 수 없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그녀는 두려운 듯 연신 뒷걸음질 치면서 긴장한 어투로 말했다.“이건 내 일이오. 당신들과는 상관없소.”말을 마치고 그녀는 기회를 틈타 도망갈 생각이었다.위운하 일행은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았다.누군가 손을 뻗어 면사를 잡자 낙청연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고 허둥지둥하다가 바닥에 넘어졌다. 당황함과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오지 마시오!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시오!”낙청연은 울먹거리며 말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부진환은 때마침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고 표정에는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바로 그때 부진환의 뒤에 선 부운주가 부진환의 표정을 보았다. 부진환이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부운주가 그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그와 부딪쳤다.“청연!”부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