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면은 바로 응했다."물론입니다."다들 기옥의 별채에서 하루 쉬었다. 하지만 큰 눈이 내리는 날씨에 다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금치 못했다.심면과 낙현책은 호숫가 정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낙현책은 연달아 몇 판을 지고 저도 몰래 머리를 긁적였다.“정말 바둑을 잘 두지 못하나 보오. 어찌 또 졌단 말이오?”마침 강소풍과 임계천이 그곳을 지나갔다. 임계천은 바둑판을 보고 흥이 났다.“내가 한판 겨루어도 되겠소?”낙현책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섰다.“자, 자네가 한판 겨루게.”“난 검이나 연마해야겠소.”낙현책의 말에 강소풍도 흥이 났다.“낙 공자. 그날 밤 파살문에서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소. 자네의 실력은 정말 강하오. 자네와 겨루어보고 싶소.”누군가 함께 검을 연마하니 낙현책은 아주 기뻤다.“좋소.”두 사람은 바로 정원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게 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심면과 임계천은 바둑을 두면서 간간이 살기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두 사람은 바둑에 정신을 몰두하고 있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총 네 판을 겨루었고 각각 두 판씩 이겼다.“심 처녀가 이렇게 바둑을 잘 둘 줄은 몰랐소!”임계천은 진심으로 칭찬했다.“바둑으로 성격을 보아낼 수 있소. 심 처녀는 내가 만난 상대 중 유일하게 전체를 신경 쓰는 여인이오. 걸음마다 신중했고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소.”“심 처녀의 스승은 누구요?”그 말을 듣고 심면은 살짝 멈칫하다 웃으며 말했다.“스승이 없소.”“할아버지께서 바둑을 가르쳐주셨고 그 후 할아버지의 서적을 보면서 배웠소.”“할아버지께서 명사의 책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소. 나도 워낙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여 스스로 배웠소.”“자네한테 비하면 보잘것없소.”임계천은 매우 놀랐다.“스승도 없이 이렇게 바둑을 잘 둔다는 말이오? 정녕 천재가 따로 없소.”“나는 어릴
호수 위에 옅은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검을 쥐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얼지 않았던 호수는 그녀의 발밑에서 천천히 얼어붙고 있었다.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마치 그녀 때문에 내리는 것 같았다.낙현책이 놀란 듯 입을 열었다.“유생의 검법과 부술이 이런 경지에 이른 줄은 몰랐소.”심면도 감탄했다.“정말 대단하오. 자네의 1등 자리가 위험할 듯하오.”낙현책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으로 답했다.“상대가 강할수록 나는 더 힘이 나오.”강소풍도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이번에 참으로 많은 능력자를 만나게 되었소.”“심시몽이 자리에 없어 아쉽소.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좋은 경치도 보았을 텐데.”그 말을 듣고 심면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임계천은 심면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눈앞의 경치에 현혹되면 안 되오. 우리는 이번에 경치를 누리려 나온 것이 아니오.”“파살문에서 얼마나 위험했는지 잊은 것이오? 심시몽이 왔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겠소?”“아무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요.”강소풍은 천천히 차를 마시고 말했다.“그냥 해 본 소리오. 나도 위험한 것을 알고 있소.”옆에 있는 심면은 눈을 내리깔았다. 심시몽을 생각하니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서은서...그녀는 부모님의 원수를 기필코 갚을 것이다!넋을 놓고 있을 때 강소풍이 또 입을 열었다.“심면. 자네와 며칠 동안 지내보니 자네도 나쁜 사람은 아닌듯한데 어찌 심시몽한테는...”그 말을 듣고 임계천이 다급히 몰래 강소풍을 밀었다.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니, 강소풍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자네의 동생이라 그런 것이오?”“어찌 심시몽에게 잘해주지 않는 것이오?”다들 심면이 화를 낼 것이라 추측했지만, 심면은 화를 내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게 답했다.“싫어하기 때문이오.”“심시몽의 어머니도 좋아하지 않고 심시몽도 좋아하지 않소.”“나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있고 원한이 있소.”“낯선 이처럼 대하는 것이 이미 심시몽에 대한 가장 큰 선심이오.
그 후 심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다들 그녀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알아차렸다.강소풍은 심면을 따라가려는 낙현책을 잡아당겼다.“혹시 무슨 상황인지 알려줄 수 있소?”“왜 심시몽 얘기를 꺼내니 심면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소?”“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낙현책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심면의 사적인 일이라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지만 앞으로 심면에게 너무 큰 적대심을 갖지 않기를 바라오.”“그녀가 자객의 암살을 당한 것 일은 아마도 주변 사람이 시킨 일일 수 있소.”“그녀의 부모님도 같은 자가 자객을 시켜 죽인 것이오. 얼마 전에야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소.”“이 일은 비밀로 해주시게.”강소풍은 깜짝 놀라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오. 우린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오!”이내 낙현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면을 쫓아갔다.심면은 방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그녀는 잘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께 알리고 싶었다.편지를 다 쓰고 난 후에야 낙현책이 입을 열었다.“방금 강소풍이 이유를 캐물어서 요 며칠 발생한 일을 그에게 말했소.”“자네의 허락도 없이 말해서 미안하오.”심면이 웃으며 답했다.“괜찮소. 나를 도우려는 것이지 않소.”“다른 사람이 이 일을 아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침착하게 말을 꺼낼 수 없었소.”낙현책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자네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나는 자네의 편이오. 난 늘 당신을 도울 것이오.”심면이 가볍게 웃었다.“좋소.”한편 정원에서 임계천은 홀로 무심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강소풍은 조용히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임계천은 그를 힐긋 보고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어떻게 심시몽을 도울지 생각하는 것이오?”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였다.“애를 써서 잘 보이려 해도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오.”“어떻게 포기하라
임계천은 어쩔 수 없이 강소풍을 힐긋 보고 고개를 저었다.“됐소. 방금 한 말은 없던 얘기로 하겠소.”“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오.”“눈이 많이 내리니, 나도 이만 방으로 돌아가겠소.”임계천은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강소풍도 바로 그를 따라갔다.“말하려면 마저 하시오. 어찌 절반만 한다는 말이오?”“내뱉은 말을 없는 얘기로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자네답지 않소.”임계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강소풍은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캐물었다.별채에서 잘 대접해 주니 다들 떠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기 드물었다.다들 하루 푹 쉬고 이튿날 다시 청주로 가는 길에 올랐다.기산쌍살도 그들과 동행했기에 위험을 하나 없애니 다들 순조롭게 청주에 도착했다.청주에도 눈이 많이 내려 해상 작전은 중단된 상태였다.기관선은 이미 30여 척이나 개조했다.심면 일행은 청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묵을 객사로 가서 짐을 정리했다.“청주는 조금 조용한 듯하오.”낙현책은 객사로 가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지만, 거리에 아무도 없었다.심면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눈이 와서 그런가 보오. 게다가 청주는 전쟁 중이라 조용할 법하오.”잠시 후 부진환이 객사로 왔다.다들 무사한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청주로 오는 동안 정말 파란만장했구나. 미리 전쟁의 위험을 겪었다고 생각하거라. 앞으로 꼭 조심해야 한다.”“길을 재촉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먼저 푹 쉬거라.”“이따가 공주께서 오셔서 청주의 상황을 설명해 줄 것이다. 다들 상황부터 알아보거라.”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늦게 강여가 객사로 찾아와 모두를 데리고 청주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다.다들 의관에 환자가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길을 지나면서 줄곧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에는 겨울이라 고뿔에 걸린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막사에 도착하자 그곳에도 환자들이 가득했다. 다들 힘없이 막사에 누워 있었고 기침 소리와 구토 소리가 끊이
“동하국은 고작 작은 섬이오. 우리 여국보다 크오? 우리 여국보다 백성이 많소? 해독약을 만드는 것은 분명한 일이오.”“우리는 무조건 이길 것이오. 내일 바로 바다에 가 볼 것이오!”강소풍의 격한 태도에 다른 사람들도 북돋아졌다.다들 힘을 내며 바닷가에 함께 가려 했다.심면은 그들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크나큰 여국 땅에 독을 쓰는 사람은 많고도 많다. 그들 앞에 바로 한 명 있지 않은가?심면은 낙현책을 잡아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굳게 닫힌 방문을 두드렸다.방문을 연 서월은 심면과 낙현책을 보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약속을 지킬 때가 되지 않았소?”심면은 고개를 끄덕이고 낙현책에게 엽순의 악귀를 꺼내게 했다.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엽순도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서월은 그 모습을 보고 격한 마음으로 엽순을 끌어안았다.“드디어 괜찮아졌소!”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려다 낙현책과 심면이 아직 방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서월은 의심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가지 않는 것이오?”심면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언니. 독을 쓰는 데에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데 해독에는 강한지 모르겠습니다.”“독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몇 가지 독을 풀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서월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멈칫하다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서월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나를 자극하고 청주에 남아 해독을 하게 하려는 것이구나.”심면이 웃으며 말했다.“언니는 참으로 똑똑합니다!”서월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대오에 있던 바보 같은 남자애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으니, 나도 전부 들었다.”“어쩐지 청주가 조용하다 싶었는데, 적의 독 때문이구나.”“나는 남지 않을 것이다. 엽순의 악귀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청주를 떠날 것이다.”이런 곳에 서월은 더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엽순과 심면을 죽이려 했었다. 심면은 현학서원 학생이니 부 태사는 분명 두 사람을 추궁할 것이다.오래 있을수록 위험해질
섭정왕부(攝政王府).동상방(東廂房) 내 꽃무늬가 새겨진 침상 주위에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낙청연(洛清淵)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침상 위의 난잡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햇빛이 빨간색의 흔적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어젯밤 신방(新房)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쳐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치심과 모욕감이 울컥 치밀어올라 돌연 그녀를 견딜 수 없었고 굴욕으로 인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왜 우는 것이냐? 드디어 네 바람대로 섭정왕부에 시집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 위에 정좌로 앉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위엄 있으면서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우면서도 냉담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낙청연은 그의 시선이 칼이 되어 살을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 같았다.낙청연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가슴 부근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왕야(王爺)… 줄곧 여기 계셨습니까?”남자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너와 내가 혼인을 올린 날인데 본왕이 여기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그 순간, 낙청연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젯밤 신방에 쳐들어왔던 남자들과 도처에 남겨진 어지러운 흔적들에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분했는데 그녀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남자는 그 방 안에서 밤사이 그 남자들이 어떻게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는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왜입니까? 제가 그렇게나 미우십니까?”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낙청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분통을 터뜨렸다.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첫날밤 하인들더러 그녀의 순결을 빼앗게 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더럽혔다.낙청연은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를 경모했었고 당시 태황태후(太皇太后)는 두 사람이 금동옥
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낙청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난 죽었는데? 왜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지?’어멈처럼 보이는 하인이 대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울고불고 소란 피울 생각은 마시옵소서. 왕야께서는 그런 수작에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제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동생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르러 하다니요? 섭정왕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등 어멈(邓嬤嬤)은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 늙은 어미를 모시려 했으나 염치를 모르는 왕비가 자결 시도를 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승상부의 아씨로서 살 것이지 이런 추접한 일이나 벌리다니, 차라리 죽어버리지.”머리 위로 욕설과 불평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낙청연은 이 모든 게 낯설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어젯밤은 섭정왕과 낙월영의 혼인날이었다. 그러나 낙청원은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부로 위장하고는 방 안에 미정향(迷情香)을 피워놓고 섭정왕의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그런데 부진환이 결정적인 시각에 정신을 되찾았고 화가 나서 사람들을 대여섯 명 불러들였으며 낙청연은 깨어난 뒤 굴욕을 참지 못하고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으려 했다.몸의 원래 주인은 그를 미치도록 사랑했었고 그녀의 몸에서 그녀의 괴로움과 마지못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여국(黎國)의 대제사장(大祭司)으로서 그녀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고 천궐국(天闕國) 승상의 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난폭한 하인이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서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머리를 찧게 되었다. 뒤이어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면서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봤고 피가 흥건했다.“돼지처럼 무거운데 누가 아씨를 옮기겠습니까? 눈치 좀 챙기세요. 섭정왕부로 시집왔다고 해서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아
등 어멈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아이고, 둘째 아씨 손이!”그러면서 등 어멈은 얼른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둘째 아씨의 혼사를 빼앗은 것으로도 모자라 둘째 아씨가 약을 먹여주는데 밀어서 넘어뜨리다니요!”바로 다음 순간, 한 인영이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낙월영의 옆에 섰다.“월영아!”낙월영은 미간을 좁히더니 피로 얼룩진 손바닥을 들어 보았는데 그 모습은 못내 애처로워 보였다.부진환은 낙월영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더니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낙청연을 쏘아보았고 낙청연은 곧바로 입을 열려고 했다.“전…”그러나 해명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부진환이 억센 힘으로 그녀를 침상 위에서 끌어 내렸다. 바닥에 쓰러져서 몸의 중심을 잡기도 전에 부진환이 매섭게 따귀를 때렸다.그 순간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뺨이 덴 것처럼 뜨거웠고 아렸다.낙청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낙월영은 부진환의 옷소매를 잡으면서 간청했다.“왕야,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것입니다. 언니 잘못이 아닙니다.”등 어멈이 섭정왕에게 고자질했다.“왕야,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좋은 마음으로 약을 먹이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둘째 아씨를 밀쳤습니다. 둘째 아씨께서 선량하셔서 그냥 넘어가 주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둘째 아씨를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거라.”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예.”등 어멈은 낙월영을 부축하면서 떠났다.방 안에는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서늘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힘주어 잡았다. 만약 그가 잡은 것이 낙청연의 목이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진짜 네가 왕비라도 된 것 같으냐? 월영이가 부탁하지만 않았다면 난 널 죽였을 것이다. 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