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천산 절벽에 도착했을 때 몸에 온통 흰 눈이 덮여있었다.남자가 길을 안내하자 다들 등산을 시작했다.남자는 앞에서 걸으며 중얼거렸다.“이상하구먼. 누가 계단을 다시 팠나 본데? 한 겨울이라 다니기도 힘든데 누가 온단 말입니까?”“계단을 해놓으니 훨씬 오르기 쉽습니다.”“천산의 흙은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아 나무가 많은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산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길이 가파르다 보니 나무꾼도 점점 줄어들고 그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다니기 힘들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오늘은 운 좋게도 잡초와 관목이 모두 치워졌습니다.”그 말을 듣고 심면은 못내 속으로 의심스러웠다.“그 말에 따르면 산에는 지내는 사람이 없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약재를 이곳으로 옮기라 했단 말이냐?”남자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고용주의 요구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심면이 물었다.“그럼 어떤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를 것 같으냐?”남자는 머리를 긁적거렸다.“정말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아무도 산에서 지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에 올라갔을 때 숲속에 막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막사 여러 개가 마련되어 있었고 바닥의 풀도 치운 듯했다. 모닥불 위에는 가마가 놓여 있었고 누군가 얼마 전까지 불을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아무도 살지 않을 것이라 하지 않았냐?”심면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흉터가 있는 남자도 넋을 잃었다.“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누구란 말입니까?”남자는 궁금한 듯 막사 하나를 향해 걸어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하지만 걸어 들어가는 순간 비명이 들렸다.다들 깜짝 놀랐다. 심면이 달려갔을 때 장검 한 자루가 튀어나온 것을 보았다.남자는 순간 쓰러졌고 새하얀 눈밭에 온통 피범벅이었다.바로 그때 조용하던 막사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장검은 서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고 살기를 내뿜으며 그들을 겹겹이 에워쌌다.막사 안뿐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다들 일제히 손끝에 부적을 쥐고 진을 만들었다. 이내 찬 바람이 몰아치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저 작은 범위의 빗물일 뿐이었다.땅에 붙은 불을 끈 후 유생은 다시 땅을 얼게 만들라는 명을 내렸다. 부적이 타서 재가 되어 바닥에 닿자, 지면에 얼음이 만들어졌다.이런 술법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싸움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하지만 제자들이 많아 그만큼 힘도 강해졌다.싸움 중 적의 힘을 소진할 만하다.땅이 얼자 그제야 다들 몸을 가눌 수 있었다.주락은 이 기회를 틈타 여러 사람을 데리고 열심히 적을 상대했다.그는 검을 들고 그림자처럼 적들 사이를 누비며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난 곳에 피가 튀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검은 날카로운 기운을 뽐내며 허공에서 번쩍이며 마치 피어난 꽃과도 같았다.얼마나 속도가 빨라야 그럴 수 있는지 다들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정말 대단한 검법이오!”낙현책이 감탄했다.심면이 말했다.“천하제일의 검객이오.”낙현책은 숭배의 눈빛을 비췄고 의욕도 넘쳤다.그는 힘껏 적을 상대했다.하지만 적을 아무리 죽여도 상대는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 수는 적어도 300, 400명이 되는 듯했다.시간이 지나고 다들 체력 소모가 심해져 점점 적을 상대하기 어려워졌다.모두 힘들어할 때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산 위로 몰려왔다.게다가 그들의 사람이 아니었다.다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산 아래 사람들이 변을 당했단 말인가?다들 경계를 하다 손을 쓰려는 순간, 산을 오른 검은 옷의 사람들이 적을 죽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다들 실력이 뛰어났다. 백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공격을 퍼붓자, 도처에 피와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그들의 합류로 이 싸움은 더욱 빨리 끝날 수 있었다.이내 산 아래 사람들도 산을 올라, 주락에게 보고했다.“산 아래에서 습격당하는 바람에 늦게 왔습니다!”주락은 그들도 혈전을 벌인 것을 보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괜찮다. 죽은 부하가 있느냐?
기옥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주락이 웃으며 답했다“자네인 줄 알았소.”“오랜만에 만나는데 문파가 더욱 커졌소.”기옥은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천천히 주락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이곳에 온 지 한참 되었습니다. 심면을 구하려 했지만, 그 아이들이 그렇게 대단할 줄 몰랐습니다. 파살문까지 없애다니요.”“낙 언니에게 편지를 남기고 이곳을 떠나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파살문의 단서를 알아내게 되어 이리 남아있었습니다.”그 말을 듣고 주락은 궁금한 듯 물었다.“무슨 단서요? 파살문의 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맞소?”기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제가 알아낸 증거입니다. 동하국 사람이 파살문의 배후에서 경영을 돕고 있었습니다.”“그동안 파살문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습니다. 완성하기 어려운 일은 스스로 돈을 보태는 한이 있더라도 해왔는데, 명성을 떨치고 사람을 더 늘여 고수를 더 들이기 위한 것입니다.”“그동안 파살문의 장사는 늘 적자였습니다.”“오늘 천산 절벽에서 매복하고 있던 사람들도 동하국 사람입니다.”“이미 살아있는 자를 잡아다 물었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고옥언입니다.”그 말을 듣고 주락은 살짝 놀랐다.“고옥언의 사람이라니? 고옥언은 이미 잡혔는데, 그의 부하가 계속 임무를 하고 있단 말이오?”기옥이 답했다.“아마 그들도 고옥언과 마찬가지로 여국을 차지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이번 매복을 통해 현학서원과 제사장족의 뛰어난 제자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것입니다.”주락은 차를 들고 살짝 마셨다.“그럼 젊은이들을 너무 얕보았소.”기옥이 웃으며 말했다.“예. 파살문을 없애다니, 저도 참 의외였습니다.”“낙 언니가 사람을 구하라 편지를 쓸 만합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원 밖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기옥은 손을 흔들었다.“들어오게 하거라.”심면과 낙현책이 앞으로 걸어와 궁금한 표정을 지
두 사람은 귀한 선물에 깜짝 놀랐다. 금을 받아보니 위에 금옥량연이라는 글자가 두 글자로 나뉘어 새겨져 있었다.“고모. 위에 글까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정성껏 만드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주셔도 되는 것입니까?”심면은 참다못해 한 마디 물었다.기옥이 설명했다.“혼사를 올리는 지인에게 선물하려 만든 것이다. 하지만 장인이 늦게 만드는 바람에 혼기를 놓쳤고 이미 다른 선물을 보낸 터라 이 물건은 남겨두어도 쓸모가 없다.”“너희들이 받거라. 가져다 팔아서 좋아하는 물건을 사도 좋다.”심면과 낙현책은 서로 시선을 마주한 뒤 금덩이를 받았다.“고맙습니다!”말을 마치자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빠르게 다가왔다.“주인님. 잡아 온 여자가 또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낙현책을 찾겠다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당을 태우겠다 소란입니다.”그 말을 듣고 다들 깜짝 놀랐다. 낙현책을 찾겠다니?기옥이 말했다.“나는 그동안 줄곧 이곳에 있었다. 얼마 전 부하들이 남녀가 의관 밖에서 수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행여나 불리한 짓을 저지를까 봐 잡아 오라고 명했다.”남녀?심면과 낙현책은 갑자기 두 사람이 떠올랐다.심면이 물었다.“그녀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기옥은 사람을 명하여 그 여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역시나 서월이었다!서월은 애타게 낙현책을 바라보았다.“두 사람 다 무사하지 않소? 나도 약속한 일을 해냈소! 대체 언제 약속을 지킬 것이오?”“엽순은 이미 견디지 못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소!”심면은 살짝 놀랐다. 한동안 마을에서 지냈지만, 서월이 그들을 찾아오지 않아 이상하다 했었다.알고 보니 왕생방에 잡힌 것이었다.낙현책은 주락과 기옥에게 상황을 알려주었고 기옥은 사람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그리고 낙현책과 심면은 엽순을 보러 갔다.그의 외상은 거의 나은 상태였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악귀가 발작을 일으켜 엽순의 머리를 깨어질 듯이 아프게 했다.낙현책은 바로 악귀를 꺼내려 했으나 심면은 경계하며 낙현책을 붙잡고 조
심면은 바로 응했다."물론입니다."다들 기옥의 별채에서 하루 쉬었다. 하지만 큰 눈이 내리는 날씨에 다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금치 못했다.심면과 낙현책은 호숫가 정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낙현책은 연달아 몇 판을 지고 저도 몰래 머리를 긁적였다.“정말 바둑을 잘 두지 못하나 보오. 어찌 또 졌단 말이오?”마침 강소풍과 임계천이 그곳을 지나갔다. 임계천은 바둑판을 보고 흥이 났다.“내가 한판 겨루어도 되겠소?”낙현책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켜섰다.“자, 자네가 한판 겨루게.”“난 검이나 연마해야겠소.”낙현책의 말에 강소풍도 흥이 났다.“낙 공자. 그날 밤 파살문에서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소. 자네의 실력은 정말 강하오. 자네와 겨루어보고 싶소.”누군가 함께 검을 연마하니 낙현책은 아주 기뻤다.“좋소.”두 사람은 바로 정원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고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게 선을 잘 지키고 있었다.심면과 임계천은 바둑을 두면서 간간이 살기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두 사람은 바둑에 정신을 몰두하고 있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총 네 판을 겨루었고 각각 두 판씩 이겼다.“심 처녀가 이렇게 바둑을 잘 둘 줄은 몰랐소!”임계천은 진심으로 칭찬했다.“바둑으로 성격을 보아낼 수 있소. 심 처녀는 내가 만난 상대 중 유일하게 전체를 신경 쓰는 여인이오. 걸음마다 신중했고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소.”“심 처녀의 스승은 누구요?”그 말을 듣고 심면은 살짝 멈칫하다 웃으며 말했다.“스승이 없소.”“할아버지께서 바둑을 가르쳐주셨고 그 후 할아버지의 서적을 보면서 배웠소.”“할아버지께서 명사의 책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소. 나도 워낙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여 스스로 배웠소.”“자네한테 비하면 보잘것없소.”임계천은 매우 놀랐다.“스승도 없이 이렇게 바둑을 잘 둔다는 말이오? 정녕 천재가 따로 없소.”“나는 어릴
호수 위에 옅은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검을 쥐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얼지 않았던 호수는 그녀의 발밑에서 천천히 얼어붙고 있었다.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마치 그녀 때문에 내리는 것 같았다.낙현책이 놀란 듯 입을 열었다.“유생의 검법과 부술이 이런 경지에 이른 줄은 몰랐소.”심면도 감탄했다.“정말 대단하오. 자네의 1등 자리가 위험할 듯하오.”낙현책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으로 답했다.“상대가 강할수록 나는 더 힘이 나오.”강소풍도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이번에 참으로 많은 능력자를 만나게 되었소.”“심시몽이 자리에 없어 아쉽소.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좋은 경치도 보았을 텐데.”그 말을 듣고 심면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임계천은 심면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먼저 입을 열었다.“눈앞의 경치에 현혹되면 안 되오. 우리는 이번에 경치를 누리려 나온 것이 아니오.”“파살문에서 얼마나 위험했는지 잊은 것이오? 심시몽이 왔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겠소?”“아무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요.”강소풍은 천천히 차를 마시고 말했다.“그냥 해 본 소리오. 나도 위험한 것을 알고 있소.”옆에 있는 심면은 눈을 내리깔았다. 심시몽을 생각하니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서은서...그녀는 부모님의 원수를 기필코 갚을 것이다!넋을 놓고 있을 때 강소풍이 또 입을 열었다.“심면. 자네와 며칠 동안 지내보니 자네도 나쁜 사람은 아닌듯한데 어찌 심시몽한테는...”그 말을 듣고 임계천이 다급히 몰래 강소풍을 밀었다.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니, 강소풍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자네의 동생이라 그런 것이오?”“어찌 심시몽에게 잘해주지 않는 것이오?”다들 심면이 화를 낼 것이라 추측했지만, 심면은 화를 내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게 답했다.“싫어하기 때문이오.”“심시몽의 어머니도 좋아하지 않고 심시몽도 좋아하지 않소.”“나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있고 원한이 있소.”“낯선 이처럼 대하는 것이 이미 심시몽에 대한 가장 큰 선심이오.
그 후 심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다들 그녀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알아차렸다.강소풍은 심면을 따라가려는 낙현책을 잡아당겼다.“혹시 무슨 상황인지 알려줄 수 있소?”“왜 심시몽 얘기를 꺼내니 심면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소?”“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낙현책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심면의 사적인 일이라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지만 앞으로 심면에게 너무 큰 적대심을 갖지 않기를 바라오.”“그녀가 자객의 암살을 당한 것 일은 아마도 주변 사람이 시킨 일일 수 있소.”“그녀의 부모님도 같은 자가 자객을 시켜 죽인 것이오. 얼마 전에야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소.”“이 일은 비밀로 해주시게.”강소풍은 깜짝 놀라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오. 우린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오!”이내 낙현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면을 쫓아갔다.심면은 방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그녀는 잘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께 알리고 싶었다.편지를 다 쓰고 난 후에야 낙현책이 입을 열었다.“방금 강소풍이 이유를 캐물어서 요 며칠 발생한 일을 그에게 말했소.”“자네의 허락도 없이 말해서 미안하오.”심면이 웃으며 답했다.“괜찮소. 나를 도우려는 것이지 않소.”“다른 사람이 이 일을 아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침착하게 말을 꺼낼 수 없었소.”낙현책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자네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나는 자네의 편이오. 난 늘 당신을 도울 것이오.”심면이 가볍게 웃었다.“좋소.”한편 정원에서 임계천은 홀로 무심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강소풍은 조용히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임계천은 그를 힐긋 보고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어떻게 심시몽을 도울지 생각하는 것이오?”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였다.“애를 써서 잘 보이려 해도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오.”“어떻게 포기하라
임계천은 어쩔 수 없이 강소풍을 힐긋 보고 고개를 저었다.“됐소. 방금 한 말은 없던 얘기로 하겠소.”“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오.”“눈이 많이 내리니, 나도 이만 방으로 돌아가겠소.”임계천은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강소풍도 바로 그를 따라갔다.“말하려면 마저 하시오. 어찌 절반만 한다는 말이오?”“내뱉은 말을 없는 얘기로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자네답지 않소.”임계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강소풍은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캐물었다.별채에서 잘 대접해 주니 다들 떠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기 드물었다.다들 하루 푹 쉬고 이튿날 다시 청주로 가는 길에 올랐다.기산쌍살도 그들과 동행했기에 위험을 하나 없애니 다들 순조롭게 청주에 도착했다.청주에도 눈이 많이 내려 해상 작전은 중단된 상태였다.기관선은 이미 30여 척이나 개조했다.심면 일행은 청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묵을 객사로 가서 짐을 정리했다.“청주는 조금 조용한 듯하오.”낙현책은 객사로 가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지만, 거리에 아무도 없었다.심면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눈이 와서 그런가 보오. 게다가 청주는 전쟁 중이라 조용할 법하오.”잠시 후 부진환이 객사로 왔다.다들 무사한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청주로 오는 동안 정말 파란만장했구나. 미리 전쟁의 위험을 겪었다고 생각하거라. 앞으로 꼭 조심해야 한다.”“길을 재촉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먼저 푹 쉬거라.”“이따가 공주께서 오셔서 청주의 상황을 설명해 줄 것이다. 다들 상황부터 알아보거라.”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늦게 강여가 객사로 찾아와 모두를 데리고 청주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혔다.다들 의관에 환자가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길을 지나면서 줄곧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처음에는 겨울이라 고뿔에 걸린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막사에 도착하자 그곳에도 환자들이 가득했다. 다들 힘없이 막사에 누워 있었고 기침 소리와 구토 소리가 끊이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