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서가 우리 형제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우리는 그의 부인 한 명만 농락하니 우리가 더 손해를 많이 봤지.”말을 마친 뒤 그들은 고묘묘를 둘러메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이 닫히고 주위는 깜깜해졌다.두려움이 밀려오자 고묘묘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고함도 지르고 화도 내보았다.그러나 옷이 찢기고 피부가 밖으로 드러났다.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남자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려 퍼져서 토할 것 같았다.침서는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친 산적 우두머리를 쫓았다. 비록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침서는 활을 들어 쏘았다.화살이 산적 우두머리의 몸에 꽂혀 들어갔고 다른 산적들도 곧 그의 손에 죽었다.“가서 시체를 끌고 오거라. 확인해 봐야겠다.”“살아있는 놈이 있으면 죽이거라.”침서는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이 시체를 끌고 오길 기다렸다.확인해 보니 확실히 산적 우두머리였다.그는 심지어 대량의 재물을 지니고 있었다.침서는 날을 확인한 뒤 말했다.“머리를 베고 그것을 챙겨 도성으로 돌아갈 것이다.그들은 느긋하게 도성으로 돌아왔다.동구산을 지나칠 때 침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을 슬쩍 바라본 뒤 멈추지 않고 계속해 여유롭게 도성으로 돌아갔다.군대는 산 아래를 지나쳐 갔다.그리고 산 위 방 안에서는 고묘묘의 분노에 찬 고함과 산적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러다가 망을 보던 산적이 산 아래 군대를 보고는 다급히 방 안으로 돌아왔다.“그만, 침서가 돌아왔소!”“얼른 도망갑시다!”그 말을 들은 산적들은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방에서 도망친 뒤 몰래 산 아래로 내려갔다.그러나 길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발각당한 산적들은 결국 죽임당했다.도성으로 돌아가던 침서는 병사의 보고를 들었다.“장군, 산에서 도망치려던 산적들을 잡았습니다.”“전에 잡았던 자들인 것 같습니다.”침서는 그 말을 듣고 짐짓 의아한 척 말했다.“산 위에 있던 자들을 깜빡했군.”“
침서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난 널 버리지 않을 것이다.”고묘묘는 그 말을 듣고 무척 감동하여 울며 말했다.“당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침서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장군 저택으로 돌아온 뒤 침서는 고묘묘의 일을 아무도 소문내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다.고묘묘는 곧바로 목욕하러 가서 남은 흔적들을 지우려 했다. 그녀는 혼자 욕조 안에서 통곡했다.그녀의 시중을 들던 계집종들은 무척이나 조심했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저택의 사람들은 곧 그 일을 다 알게 되었지만 아무도 입 뻥끗하지 않았다.침서는 유유하게 연탑 위에 엎드려 있었다. 방 안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침서는 느긋하게 상처를 치료했다.심지어 그는 별원으로 가서 다른 여인을 데려오게 했다.이제 막 잠이 깬 침서는 비몽사몽 눈을 뜨더니 눈앞의 여인을 잠깐 낙요로 착각했다.“낙요야...”여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장군, 저는 낙청입니다.”침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이를 확인했다.비록 낙요와 차림새가 비슷했지만 분위기와 외모는 전혀 달랐다.“춤을 출 줄 아느냐?”“고금을 할 줄 압니다.”“해보거라.”“네.”여인은 고금을 안고 와서 방 안에서 고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연주를 들은 침서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그가 손을 흔들자 여인이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침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앞으로 내 옆에 남아서 일하거라. 이름은 청희로 개명하거라.”“도성에 가면 낙씨여서는 안 된다.”여인은 정중하게 대답했다.“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군!”그 뒤로 청희는 침서의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그의 약을 갈아주고 그와 함께 식사했다.늦은 밤, 침서의 방 안에서 감미로운 고금 소리도 들렸다.고묘묘는 방 안에 숨어서 매일 울었다. 그녀는 침서의 방 안에서 들려오는 고금 소리에 마음이 차가워졌다.결국 이틀 동안 숨어지낸 고묘묘는 결국 참지 못했
“그러나 넌 네 결말을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 그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침서가 태연히 말했다.그 말에 고묘묘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침서가 자신에게 시킨 일을 상기했다.처음에는 그녀에게 약을 먹여 춤을 추게 하여 망신을 주었고, 그다음에는 침서 때문에 장 1000대를 맞았고 심지어 그가 시킨 대로 모후에게 독을 먹였다. 지금 모후는 쓰러졌고 그녀는 공주의 신분을 잃었다.그날 동구산에 산적을 섬멸하러 갔을 때 그는 일부러 산적들을 살려두었다.그리고 그녀에게는 사람을 몇 명만 남겨주었다.심지어 침서는 비수 하나를 일부러 남겼다.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침서의 복수라는 걸 깨달은 고묘묘는 결국 크게 웃기 시작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제가 틀렸습니다...”“전 당신이 언젠가는 제 진심을 알아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틀렸습니다.”“당신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아니 되었는데!”고묘묘는 울면서 일어난 뒤 밖으로 달렸다.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절대 침서의 마음을 얻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모후에게 독을 먹인 것이 후회됐고, 모후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그녀는 자신이 침서를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장 잔인한 사람은 바로 침서였다.고묘묘는 방에서 뛰쳐나온 뒤 저택을 나와 입궁해서 모후를 찾을 생각이었다.그녀는 모후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고묘묘는 침서를 떠날 생각이었다!그러나 고묘묘가 방을 나서자마자 침서가 청희에게 분부했다.“잡아 오너라.”“네!”계속 고금을 연주하던 청희가 그제야 멈추고 곧장 따라갔다.고묘묘가 대문과 딱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아주 가는 현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고묘묘는 그대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달리려는데 청희가 어느샌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단번에 고묘묘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운 뒤 그녀의 목을 졸랐다.고묘묘는 반격하려 했지만 청희가 손쉽게 그녀를 제압
새벽, 햇빛이 숲 속을 비춰 바닥에 나무의 그림자가 졌다.이슬 가득한 공기마저 매우 상쾌하게 느껴졌다.숲은 울창했고 경치도 좋았다.낙요 일행은 여전히 천수간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앞에 사람들 한 무리가 나타났다.낙요는 단번에 그들 중에 고창이 있는 걸 발견했다.고창은 피투성이였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다들 피범벅이었다.그들이 아주 치열한 결투를 치렀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마침 옆 풀숲에서 쉬고 있다가 낙요 일행과 마주친 것이다.고창은 그들을 훑어보고 놀라워했다.낙요 일행은 무사했다.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았다.오는 길에 적을 전혀 마주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또 만났군.”“오는 길이 아주 순조로웠나 보군.”부진환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무슨 일을 겪은 것이오?”고창이 더욱 놀라워했다.“당신들은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것이오?”부진환은 고개를 저었다.“오는 길에 시체를 꽤 많이 보았소.”“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산 사람은 보지 못했소.”고창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운이 정말 좋군. 뒤에 있어서 위험한 일은 우리가 다 겪은 모양이오.”고창은 순간 불쾌해졌다.낙요 일행이 그들의 덕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죽었는가? 그러나 조용승 일행은 멀쩡했다.“약이 있소?”부진환이 대답했다.“없소.”“우리는 식량도 다 떨어졌소. 천수간에 가지 못한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이오. 급하지 않다면 쉬고 있소. 우리는 먼저 가보겠소.”말을 마친 뒤 그들은 걸음을 옮겼다.고창 등 사람들은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살폈다.고창의 시선은 낙요 일행의 짐으로 향했다. 어쩐지 안에 식량이 있을 것만 같았지만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비록 그들이 사람은 훨씬 많았지만 다들 다친 상태였고 조용승 일행은 사람이 적어도 실력이 강하고 정력도 충분했기에 그들과 싸우게 되면 무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곳이 바로 천수간이었다.날이 화창하고 안개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벼랑 맞은편의 경치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곳은 광활한 초지에 나무가 몇 그루 보였고 과일이 열려 있었다. 양 떼도 있었다.너무 아름다워 당장이라고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그러나 벼랑에 다리는 없고 쇠사슬 두 개만 있었다.봉시가 말했다.“잠시만 기다리시오. 내가 아래로 가서 기관을 가동하겠소.”“다리가 위로 올라오면 지나갈 수 있소.”쇠사슬은 너무 위험했다.말을 마친 뒤 봉시는 몸에 지니고 있던 밧줄을 꺼내서 묶은 뒤 그것을 쥐고 벼랑 아래로 미끌어 내려갔다.아래는 끝없이 깊은 심연이었다. 폭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시완은 벼랑 끝에 앉아서 귀띔했다.“조심하세요!”이때 등 뒤 숲 속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시완의 등에 꽂혔다.위험이 느껴지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계진이 달려들어 장검으로 화살을 잘랐다. 그러나 또 화살 하나가 시완을 향해 날아들었다.황급히 피하려던 시완은 실수로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그녀의 비명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낙요가 뛰어내리려 하는데 아래쪽에서 봉시가 시완을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밧줄에 매달렸다.그제야 낙요는 안도할 수 있었다.곧이어 고창 일행이 그들을 둘러쌌다.“약과 식량을 우리에게 넘기면 보내주겠소.”“그렇지 않으면...”부진환이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으면?”고창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들었고 다른 이들도 돌멩이를 주웠다.고창은 차갑게 웃었다.“우리가 돌멩이를 하나씩 던져서 당신들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겠소.”고창이 위협했다.그러나 낙요가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어디 한 번 해보시오.”고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죽음을 자초하는군.”말을 마친 뒤 그들은 일제히 돌을 던졌다.주락과 계진이 검을 뽑아 들며 그들을 지키려고 할 때, 초경이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벼랑에서 광풍이 일었다.“엎드리세요.”그 말에 낙요 일행은 곧바로 납작 엎드렸다.광풍 때문에 돌멩
다리가 전부 올라온 뒤 낙요 일행은 곧장 다리를 건넜다.그들이 벼랑 맞은편에 도착해 그곳 초지에 발을 디뎠을 때, 다들 그곳의 경치에 홀렸다.“우선 주변을 둘러봅시다.”안전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등 뒤의 다리가 천천히 내려갔다.이곳은 시야가 넓고 큰 나무가 몇 그루밖에 없기 때문에 봉시가 그들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거의 한눈에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낙요는 지도를 꺼내 노선을 보며 말했다.“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초원을 지나면 산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사람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에 있는 산꼭대기를 바라봤다.산꼭대기는 보일 듯 말 듯했는데, 그냥 봐도 가까워 보이지는 않았다.“이 근처에 먹을 게 있는지 봅시다.”그들은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벼랑 쪽에 누군가가 다리를 통해 올라오고 있음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는 내려가는 다리에서 필사적으로 올라왔다.고창은 피범벅이었는데 벼랑 위로 올라온 뒤 곧바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그는 조심스럽게 낙요 일행 쪽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광경을 떠올린 고창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그가 넝쿨을 하나 쥐고 버티지 않았더라면 아마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낙요 일행은 아주 오랫동안 걸었다. 그들은 위험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양 떼들이 그들을 보면 도망칠 뿐이었다.주변은 전부 초지고 계곡도, 다른 사냥감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앉아서 쉬면서 봉시가 오길 기다렸다.그들이 체력을 다 보충할 때쯤에야 봉시가 그들을 찾아왔다.낙요는 궁금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어디서 올라온 것이오?”봉시가 웃으며 말했다.“벼랑에서 올라왔지. 걱정하지 마시오. 난 익숙하오.”낙요가 물었다.“그러면 우리는 저 산 쪽으로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오? 가는 길에 기관이 또 있소?”봉시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아직 시진이 되지 않았소. 당신들이 보고 있는 저 산은 가짜요.”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가짜라고?”봉시는 고개를 끄덕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낙요는 전방의 산이 여전히 낮에 봤던 그 방향에 있는 것 같았다.송천초도 의문인 듯했다.“전 저 산의 위치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봉시가 웃으며 말했다.“변했소. 그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지.”낙요는 나침반을 꺼내 보더니 말했다.“확실히 변했군.”“어쩌면 이 산 주변이 전부 안개로 둘러싸여 있고 해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판별할 수 없는 거 일지도 모르오.”봉시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방향을 판단할 수 없지. 그것도 기관의 일부이오.”사람들은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이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앞에 벼랑 하나가 또 보였다. 주변은 어두컴컴했고 아주 강렬한 한기가 느껴졌다.순간 겨울이 된 것만 같았다.벼랑 족에서는 칼바람이 쌩쌩 불어서 몸을 부르르 떨게 되었다.특히 고개를 들어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벼랑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생겼다.“이 아래 한기가 아주 심하군.”봉시가 대답했다.“이 아래에 천 년 된 얼음 동굴이 있어서 그렇소. 앞으로 아주 추울 것이오. 다들 손발을 움직여 얼지 않게 하시오.”말을 마친 뒤 봉시는 그들을 데리고 철교를 밟았다.그곳 철교는 그 전의 다리처럼 크고 튼튼하지 않았다.그 철교에는 쇠사슬 위에 나무판자가 쭉 놓여 있어 걸을 때면 흔들거려서 무서웠다.그들은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비록 다들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자신의 앞만 비출 수 있었다.그리고 뒤에서는 남몰래 그들의 뒤를 밟고 있는 고창이 있었다.낙요 일행은 안전히 다리를 건넜다.전방에 울창한 숲이 보였고 그들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번에는 무척 추웠다. 두껍게 쌓인 나뭇잎을 밟을 때면 얼음을 밟는 소리가 났다.밤에는 너무 추워서 그들은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그러나 여전히 추위 때문에 몸을 덜덜 떨었다.봉시가 말했다.“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오. 우리가 겨울에 왔다면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산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오.”“날이 밝으면 출발
만약 봉시가 당황해하면 다들 불안해할 것이다.낙요가 위로했다. “장소만 정확하면 찾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오.”“식량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고, 7, 8일은 문제없소.”봉시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들은 하루 종일 산을 올랐다.봉시가 상자에서 담요를 꺼내 모두에게 덮어주자, 다들 잠에 들었다.어렴풋이 낙요는 눈밭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눈을 떠보니, 창밖에서 어떤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낙요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곁에 있던 부진환이 낙요의 입을 한 손으로 가로막았다.고개를 돌리자, 부진환도 깨어있었다.부진환은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곧이어 두 사람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동했다.낙요는 슬그머니 문 앞에, 그리고 부진환은 창가 뒤쪽으로 다가갔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후, 낙요가 즉시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그리고 부진환도 창문을 열었다.다만 낙요가 달려갔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부진환도 발견했다.“깜짝 놀랐네.”“하지만 여기에 어찌 옷이 있단 말입니까? 보기에 여인의 옷인 거 같은데 말입니다.”낙요가 검으로 그 옷을 가져와 보니, 여인의 옷이었다.옷에는 피가 가득 묻어 있었고, 오래된 건 아니었다.낙요는 옷을 방안으로 가져갔다.다른 사람들도 모두 깨어났다.모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물었다.낙요는 옷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방금 창가에 검은 그림자가 있는 걸 보았는데, 알고 보니 옷이었다.”“여기 보시오. 옷에 묻은 피는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봉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옷을 집어 들고 미간을 찌푸리며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보아하니 이미 누군가 산으로 올라왔군요.”이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산에 오를 수 있다는 건 상대방의 실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설명한다.그리고 상대의 머릿수도 모른다.“지금부터 각별히 조심해야 하오.”바로 이때, 낙요는 갑자기 옷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낙요의 안색이 확 변했다.즉시 검으로 그 옷을 봉시의 손에서 옷을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