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사납게 분다.검은 옷을 입은 행렬이 적막한 거리에서 옷자락을 휘날린다.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가 사방으로 도망치다 앞뒤로 모두 포위되자, 마차에 올라타더니 훌쩍 뛰어올라 지붕을 넘어 도망가려 한다.하지만 지붕 위에 뛰어올라 도망가려던 순간, 앞에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는 아직 똑똑히 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가슴이 발에 걷어차였다.한 발에 걷어차여 지붕에서 떨어졌다.그는 바닥에 아주 세게 넘어졌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포위 공격해왔다. 차가운 장검은 찬바람속에서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장검은 그의 목구멍을 겨누고 있었다.“왕야, 보고합니다! 잡았습니다!” 검은 옷 암위는 공손히 보고했다.지붕위에서, 부진환은 뒷짐을 짊어지고 날카로운 눈빛은 매우 차가웠다: “즉시 데려가서 심문하거라.”며칠 동안 연이은 추적 끝에 마침내 빠져나갔던 고기들을 잡아냈다.이것은 청풍루에서 잡은 사람한테서 받아낸 단서로 추적해낸 사람들이다. 이번에 기꺼이 배후의 주모자를 심문해낼 수 있을 것이다!--궁에서 온 마차는 섭정왕부의 문 앞에서 멈추었다. 금서는 그녀를 바래다주고 바로 돌아갔다.낙청연은 왕부로 들어갔다. 때마침 걸어 나오는 낙월영과 마주쳤다.낙월영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나 있었다. “언니, 명도 참 길 군요.”낙청연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나의 명은 길지, 하지만 어떤 비열한 소인배는 운이 참 좋지 않더구나!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낙월영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언니, 그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협박하는 건가요?”낙청연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류훼향은 이미 죽었다. 다음번은 네가 될지 어찌 알겠느냐,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그 순간, 낙월영의 안색은 갑자기 창백해졌다.뭐라고? 류훼향이 죽었다고?이때 마침 부진환은 붙잡은 사람들을 끌고 문 앞까지 와서 낙청연이 하는
-낙청연은 정원으로 돌아와 부진환이 잡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부진환은 계속 왕부에서 요양 중이 아니었던가? 언제 밖으로 나갔지?그 잡힌 남자들은 또 뭐지?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그녀는 갑자기 또 기침하기 시작했다. 등 어멈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갔다.“날씨가 추우니, 왕비! 어서 방에 들어가서 좀 누우십시오.”말을 하더니, 지초더러 숯을 더 넣으라고 했다.방안은 매우 따뜻했다. 하지만 낙청연은 온몸이 으슬으슬 춥기만 했다. 그녀는 아예 이불속에 쏙 들어갔다.이 병은, 며칠 더 용양해야 한다.한가할 때 그녀는 등 어멈더러 그들에게 남은 약재를 정리하게 했다. 그녀의 비만증을 치료하려면 약을 끊으면 안 된다.등 어멈이 정리하더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내일, 은자를 가지고 약재를 좀 더 사 오너라!”“예.”진 태위에게서 보수로 받은 천 냥을 혼란 중에 잃어버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까웠다. 도무지 없었던 걸로 할 수가 없어 그녀는 계속 뒤척거리기만 했다.--감옥에서.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또한 억척스럽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왕야, 저는 그냥 작은 장사를 하는 장사꾼입니다. 비록 무공을 좀 안다고는 하지만 그저 어설픈 실력일 뿐입니다! 왕야,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부진환은 뒷짐을 짊어지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어두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좀처럼 멈추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가시가 달린 채찍에 소금물을 묻혀 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를 아주 호되게 내리쳤다.비참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매우 귀에 거슬렸다.부진환의 차가운 목소리는 채찍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본왕이 알고 싶은 것은, 그날 왕비를 강에 던지라고 지시한 자이다.”“네가 만약 솔직하게 진술하지 않는다면, 이 감옥의 모든 형벌을 한 번씩 다 맛보게 해주마!”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는 극심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급히 말했다: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왕야!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자백하겠습니다
”왕야, 경조부(京兆府)의 풍 대인(馮大人)께서 오셨습니다.”부진환은 듣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소유도 미간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풍 대인이 왜 오셨을까요……”부진환은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는 전청(前廳)에서 풍 대인을 만났다. 풍 대인은 두 손을 모으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왕야, 요즘 몸은 어떠하신지요? 병세는 어떠하신지요?”부진환은 천천히 앉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풍 대인, 본왕 병세에 관심 있어서 오신 것 같지 않군요!”풍 대인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부진환 곁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역시 섭정왕의 눈을 속일 순 없습니다!”“그럼, 하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이번에 하관이 온 이유는, 왕야께서 잡은 그 사람들 때문입니다.”부진환은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그의 안색은 몹시 차가웠다.풍 대인은 계속하여 말했다: “그자들의 가족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잡아갔다며 이미 관청에 신고하였습니다.”“게다가…… 궁에서 소식을 전해왔는데, 왕비가 강에 던져진 사건은 이미 종결됐다고, 더 이상 조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왕야께서 풀어주셔야 합니다.”풍 대인은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말했다.부진환의 눈빛은 어두워지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종결됐다고? 언제 종결된 겁니까? 본왕은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풍 대인은 조금 놀라더니 곧이어 말을 이어갔다: “왕야, 못 들으셨습니까? 금일 왕비께서 입궁하셨을 때 태후께서 류훼향을 처리하였습니다. 왕비도 이 일을 이미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없었던 일로 한다고 하셨습니다.”“왕비의 이 행동은, 생각해보니 아마도 왕야와 류 상서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까 봐 두려워서 그러신듯 싶습니다.”부진환의 눈빛은 서늘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사람을 잡았으니 곧 배후를 심문해낼 수 있었는데 낙청연은 원한을 갚으려고 태후에게 고자질하고 말았다!그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가소롭구먼요! 류훼양을 죽였는데 본왕과 류 상서가 아무 일도
낙월영의 붉은 눈시울은 독기로 가득 찼다.그래! 맞다!이 모든 건 낙청연 때문이다!낙월영은 화가 잔뜩 나서 장롱을 열고 향낭을 꺼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밟았다.마치 향낭이 낙청연인 것처럼 마음껏 화풀이해댔다.“다 낙청연 때문이다! 이 천박한 계집!”옆에 있던 장미는 일부러 싸움을 부추겼다: “둘째 소저, 여기서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왕비 앞에서 밟아야 속이 좀 내려가지 않겠습니까?”이를 들은 낙월영은 문득 중추에 열렸던 궁중 연회가 생각났다. 그때 부진환은 온전한 낙월영 편이었다.그렇다면 한 번 더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도라고 낙월영은 생각했다. 만약 왕야의 태도가 정말로 변했다면, 섭정왕부를 떠나 다른 수를 생각해야 한다!그렇게 낙월영은 향낭을 들고 낙청연을 찾으러 갔다.-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낙청연의 귀에 낙월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제가 이렇게 문안하러 왔는데… 정말 안 만나주실 건가요? 이제는 향낭도 가지고 싶지 않나 봅니다?”등 어멈이 낙월영을 막아서자 그녀는 낙청연의 방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향낭?낙청연은 미간이 흔들리더니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리고는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낙월영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인삼탕과 고점을 들고 있었다.“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낙청연은 머리가 무거워 낙월영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낙월영은 느긋하게 소매에서 향낭을 꺼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거, 맞지요?”낙청연은 눈이 반짝이더니 크게 한 걸음 다가가 뺏으려고 했다.그건 어머니의 유품이었다!하지만 낙월영은 재빨리 피했고,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참으로 집요하군요.”“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바로 돌려줄게요. 어떤가요?”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무슨 부탁이냐?”그러자 낙월영은 증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섭정왕부를 떠나세요!”이를 들은 낙청연은 냉소를 머금었다: “낙월영, 그때 나를 꼬
철썩—얼얼한 아픔에 낙청연은 어지러워졌다.바닥에 주저앉았는데도 머리가 계속 윙윙 울렸다.“왕비!”등 어멈의 부름도 너무나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낙청연은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시뻘건 눈으로 무거운 안색의 부진환을 바라보았다.부진환의 손바닥도 얼얼했다. 낙청연을 때리는 순간, 부진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렇게 충동적이란 말인가?낙청연의 분노에 찬 눈빛을 본 부진환은 급히 시선을 피했다.“왕야… 흑흑흑…” 낙월영의 울음소리가 마침 부진환의 귀에 들려왔다.이마의 시퍼런 핏줄이 꿈틀거렸다. 부진환은 얼굴색이 확 바뀌더니 곧바로 낙월영을 부축했다.“왕야, 저는 언니께 인삼탕을 전하러 온 것뿐인데 언니는 또 제 물건을 뺏으려 했습니다. 이건 제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란 말입니다…” 낙월영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억울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부진환은 가슴이 아파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낙월영 얼굴의 눈물을 닦아줬다.이런 부진환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낙월영은 일부러 더 크게 울어 댔다.낙청연은 등 어멈의 부축으로 일어나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호통쳤다: “더러운 짓거리는 다른 곳에 가서 하시지요,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시고요!”등 어멈은 왕비의 말에 깜짝 놀라 옷소매를 잡아당겼다.부진환도 분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봤다.“낙청연! 주제 파악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부진환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낙청연 때문에 망친 계획을 생각하니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제 주제를 아주 잘 압니다! 왕야는 제게 과분하니 휴서 한 장이면 되지 않습니까!” 낙청연은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그러자 부진환은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본왕이 말하지 않았느냐? 휴서는 절대 줄 수 없다!”낙청연은 분을 못 이겨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대답했다: “부진환, 저를 믿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대체 왜 저를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얼마나 더 괴롭혀야 성에 차겠습니까!”부진환의 눈에는 차가
”살아서는 섭정왕부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섭정왕부의 귀신이다.”“하지만 오늘부로, 넌 섭정왕비가 아니라 부의 하인과 별다름이 없다.”이 말을 들은 낙월영은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드디어!드디어 이날이 왔다!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건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그 짐승보다도 못했던 때로 말이다.섭정왕, 정말 독하기도 독하구나. 하인처럼, 노예처럼 부려 먹더라도 낙청연을 놓아주지 않으니 말이다!등 어멈은 첫 번째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왕야, 오늘 일은 분명 둘째 소저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인데 어찌 왕비를 내쫓는단 말입니까! 왕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부진환은 서늘한 눈빛으로 등 어멈을 보더니 말했다: “관사 일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왕야…” 등 어멈은 낙청연과 함께 가고 싶었다.그러나 낙청연은 등 어멈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떠날 것이다.”이때, 지초가 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왕야, 제가 왕비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왕비는 아직 몸이 성하지 않다. 하물며 겨울도 다 돼가는데 옆에 사람까지 없으면 어찌한단 말인가!“알아서 해라!” 부진환은 이 말만 남기고 낙월영과 함께 떠났다.소유는 정원 밖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야, 정말 왕비를 별원에 보내실 겁니까?”섭정왕부의 별원은 아무도 살지 않아 한겨울에 간다면 지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오늘 당장 보내라!” 부진환은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 그는 매우 단호했다.이 정도면 낙청연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진환도 자신이 왜 한번 또 한 번 그녀를 살려두는지 이유를 몰랐다.이번에는 계획까지 다 망쳤으니 절대 곁에 두면 안 된다!하지만 휴서는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휴서를 들고 부운주와 함께하는 꼴은 못 본다.소유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둘째 소저는 그저 도화선일 뿐, 왕야가 화난 건 류훼
섭정왕부를 떠나는 그날, 매서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부 밖에 조금 서 있었을 뿐인데, 낙청연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다.계집종 한 명만 옆에 둔 낙청연의 모습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이때, 정원에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왔다: “청연!”부운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달려왔다. 허약한 몸은 이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부운주가 문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하인들이 막아섰다.“5황자, 바람이 많이 붑니다. 나가지 마십시오.”“이거 놔라!” 부운주는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하인 둘이 그의 팔을 붙잡고 막아섰다.“청연… 쿨럭…”부운주의 얼굴은 너무 급한 나머지 시뻘게졌다. 기침을 해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문은 서서히 닫혔다.정말이지 생이별하는 장면 같았다.부의 하인들로 앞이 막혀 있는 부운주를 보며 낙청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문이 완전히 닫히니 부운주의 애가 탄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지초야, 가자꾸나.” 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뗐다.낙청연은 그저 부운주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목이 잘리는 것도 아닌데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다.왕부 안.낙월영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낙청연이 쓸쓸하게 쫓겨난 모습은 마치 그녀는 득의양양했다.그리고는 오만한 걸음으로 자신의 정원에 들어갔다.허리춤에 건 향낭을 보며 낙월영은 미소를 띠었다. 오늘 낙청연에게 시비를 걸었던 건 낙청연을 섭정왕부에서 내쫓기 위해서였다.근데 이게 진짜로 될 줄이야.중추의 궁중 연회도 이 향낭 때문에 왕야가 낙청연을 벌했다.오늘 왕야는 낙월영 때문에 낙청연을 부에서 쫓아냈다.그러니 이 물건은 행운을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다!앞으로도 쭉 지니고 다녀야 겠다고 낙월영은 다짐했다.-얼마 걷지 않아 뒷문의 골목에서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섭정왕부의 마차였다. 마부는 내려와 지초 손에 든 물건을 마차에 올려 두었다.“별원은 좀 외진 곳에 있습니다. 왕야께서 혹
“이 별원은 오랫동안 사람이 지내고 있지 않았기에 아주 더럽습니다. 왕비 마마, 우선은 정원에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해 놓겠습니다.”지초는 그 말과 함께 물건을 내려놓고는 방 안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가지러 갔다.낙청연은 매화나무가 가득한 정원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지초가 들락날락하며 바삐 돌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지초가 가지 않은 곳의 바닥에 깊고 얕은 발자국이 남아있는 게 보였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침반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침반이 조금씩 움직였다.밤의 장막이 드리워져서야 지초는 겨우겨우 저택의 반을 청소했다.방 안으로 들어간 낙청연은 촛불을 밝힌 뒤 침상을 정리했고 지초는 부엌에서 간단히 죽을 끓여서 가져왔다.두 사람은 간단히 배를 채웠다.낙청연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밤 내 방에서 자거라. 이곳에는 숯이 없어 밤에는 추울 것이다.”“알겠습니다.”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텅텅 비어있는 큰 저택이 조금 무서웠다.저녁을 먹은 뒤 낙청연은 내일 할 일을 지초에게 말해줬다. 그녀는 내일 산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고 내친김에 약초까지 구해 올 셈이었다. 그리고 지초는 근처 마을에 가서 숯과 쌀, 밀가루 같은 것을 사 오기로 했다.겨울에 접어드니 해가 빨리 저물었고 밤에는 상당히 추웠기에 두 사람은 일찍 잠을 청했다.저택 바깥이 텅 비어있어 그런지 바람 소리가 무척 또렷하게 들려왔고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끄지 않은 방 안의 촛불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끊임없이 일렁였다.지초는 바닥에 푹신한 것을 깔아 놓고 누워있었는데 너무 무서워 눈을 꼭 감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반대로 낙청연은 두 손을 교차한 채 머리를 받치고는 방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역시나, 자시쯤이 되자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끼익—방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에 지초는 모골이 송연해 벌떡 일어나 앉았고 방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