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얼얼한 아픔에 낙청연은 어지러워졌다.바닥에 주저앉았는데도 머리가 계속 윙윙 울렸다.“왕비!”등 어멈의 부름도 너무나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낙청연은 화가 잔뜩 치밀어 올라 시뻘건 눈으로 무거운 안색의 부진환을 바라보았다.부진환의 손바닥도 얼얼했다. 낙청연을 때리는 순간, 부진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렇게 충동적이란 말인가?낙청연의 분노에 찬 눈빛을 본 부진환은 급히 시선을 피했다.“왕야… 흑흑흑…” 낙월영의 울음소리가 마침 부진환의 귀에 들려왔다.이마의 시퍼런 핏줄이 꿈틀거렸다. 부진환은 얼굴색이 확 바뀌더니 곧바로 낙월영을 부축했다.“왕야, 저는 언니께 인삼탕을 전하러 온 것뿐인데 언니는 또 제 물건을 뺏으려 했습니다. 이건 제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란 말입니다…” 낙월영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억울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부진환은 가슴이 아파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낙월영 얼굴의 눈물을 닦아줬다.이런 부진환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낙월영은 일부러 더 크게 울어 댔다.낙청연은 등 어멈의 부축으로 일어나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호통쳤다: “더러운 짓거리는 다른 곳에 가서 하시지요,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시고요!”등 어멈은 왕비의 말에 깜짝 놀라 옷소매를 잡아당겼다.부진환도 분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봤다.“낙청연! 주제 파악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부진환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낙청연 때문에 망친 계획을 생각하니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제 주제를 아주 잘 압니다! 왕야는 제게 과분하니 휴서 한 장이면 되지 않습니까!” 낙청연은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그러자 부진환은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본왕이 말하지 않았느냐? 휴서는 절대 줄 수 없다!”낙청연은 분을 못 이겨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대답했다: “부진환, 저를 믿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대체 왜 저를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얼마나 더 괴롭혀야 성에 차겠습니까!”부진환의 눈에는 차가
”살아서는 섭정왕부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섭정왕부의 귀신이다.”“하지만 오늘부로, 넌 섭정왕비가 아니라 부의 하인과 별다름이 없다.”이 말을 들은 낙월영은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드디어!드디어 이날이 왔다!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건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그 짐승보다도 못했던 때로 말이다.섭정왕, 정말 독하기도 독하구나. 하인처럼, 노예처럼 부려 먹더라도 낙청연을 놓아주지 않으니 말이다!등 어멈은 첫 번째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왕야, 오늘 일은 분명 둘째 소저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인데 어찌 왕비를 내쫓는단 말입니까! 왕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부진환은 서늘한 눈빛으로 등 어멈을 보더니 말했다: “관사 일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왕야…” 등 어멈은 낙청연과 함께 가고 싶었다.그러나 낙청연은 등 어멈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떠날 것이다.”이때, 지초가 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왕야, 제가 왕비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왕비는 아직 몸이 성하지 않다. 하물며 겨울도 다 돼가는데 옆에 사람까지 없으면 어찌한단 말인가!“알아서 해라!” 부진환은 이 말만 남기고 낙월영과 함께 떠났다.소유는 정원 밖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야, 정말 왕비를 별원에 보내실 겁니까?”섭정왕부의 별원은 아무도 살지 않아 한겨울에 간다면 지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오늘 당장 보내라!” 부진환은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 그는 매우 단호했다.이 정도면 낙청연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진환도 자신이 왜 한번 또 한 번 그녀를 살려두는지 이유를 몰랐다.이번에는 계획까지 다 망쳤으니 절대 곁에 두면 안 된다!하지만 휴서는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휴서를 들고 부운주와 함께하는 꼴은 못 본다.소유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둘째 소저는 그저 도화선일 뿐, 왕야가 화난 건 류훼
섭정왕부를 떠나는 그날, 매서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부 밖에 조금 서 있었을 뿐인데, 낙청연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다.계집종 한 명만 옆에 둔 낙청연의 모습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이때, 정원에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왔다: “청연!”부운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달려왔다. 허약한 몸은 이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부운주가 문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하인들이 막아섰다.“5황자, 바람이 많이 붑니다. 나가지 마십시오.”“이거 놔라!” 부운주는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하인 둘이 그의 팔을 붙잡고 막아섰다.“청연… 쿨럭…”부운주의 얼굴은 너무 급한 나머지 시뻘게졌다. 기침을 해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문은 서서히 닫혔다.정말이지 생이별하는 장면 같았다.부의 하인들로 앞이 막혀 있는 부운주를 보며 낙청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문이 완전히 닫히니 부운주의 애가 탄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지초야, 가자꾸나.” 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뗐다.낙청연은 그저 부운주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목이 잘리는 것도 아닌데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다.왕부 안.낙월영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낙청연이 쓸쓸하게 쫓겨난 모습은 마치 그녀는 득의양양했다.그리고는 오만한 걸음으로 자신의 정원에 들어갔다.허리춤에 건 향낭을 보며 낙월영은 미소를 띠었다. 오늘 낙청연에게 시비를 걸었던 건 낙청연을 섭정왕부에서 내쫓기 위해서였다.근데 이게 진짜로 될 줄이야.중추의 궁중 연회도 이 향낭 때문에 왕야가 낙청연을 벌했다.오늘 왕야는 낙월영 때문에 낙청연을 부에서 쫓아냈다.그러니 이 물건은 행운을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다!앞으로도 쭉 지니고 다녀야 겠다고 낙월영은 다짐했다.-얼마 걷지 않아 뒷문의 골목에서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섭정왕부의 마차였다. 마부는 내려와 지초 손에 든 물건을 마차에 올려 두었다.“별원은 좀 외진 곳에 있습니다. 왕야께서 혹
“이 별원은 오랫동안 사람이 지내고 있지 않았기에 아주 더럽습니다. 왕비 마마, 우선은 정원에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해 놓겠습니다.”지초는 그 말과 함께 물건을 내려놓고는 방 안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가지러 갔다.낙청연은 매화나무가 가득한 정원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지초가 들락날락하며 바삐 돌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지초가 가지 않은 곳의 바닥에 깊고 얕은 발자국이 남아있는 게 보였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침반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침반이 조금씩 움직였다.밤의 장막이 드리워져서야 지초는 겨우겨우 저택의 반을 청소했다.방 안으로 들어간 낙청연은 촛불을 밝힌 뒤 침상을 정리했고 지초는 부엌에서 간단히 죽을 끓여서 가져왔다.두 사람은 간단히 배를 채웠다.낙청연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밤 내 방에서 자거라. 이곳에는 숯이 없어 밤에는 추울 것이다.”“알겠습니다.”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텅텅 비어있는 큰 저택이 조금 무서웠다.저녁을 먹은 뒤 낙청연은 내일 할 일을 지초에게 말해줬다. 그녀는 내일 산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고 내친김에 약초까지 구해 올 셈이었다. 그리고 지초는 근처 마을에 가서 숯과 쌀, 밀가루 같은 것을 사 오기로 했다.겨울에 접어드니 해가 빨리 저물었고 밤에는 상당히 추웠기에 두 사람은 일찍 잠을 청했다.저택 바깥이 텅 비어있어 그런지 바람 소리가 무척 또렷하게 들려왔고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끄지 않은 방 안의 촛불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끊임없이 일렁였다.지초는 바닥에 푹신한 것을 깔아 놓고 누워있었는데 너무 무서워 눈을 꼭 감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반대로 낙청연은 두 손을 교차한 채 머리를 받치고는 방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역시나, 자시쯤이 되자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끼익—방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에 지초는 모골이 송연해 벌떡 일어나 앉았고 방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문가에 서 있던 검은 그림자가 사라졌다.두 사람은 그곳을 한참이나 바라봤지만 더는 인기척이 없었다.낙청연은 지초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별일 없으니 이만 자거라.”지초는 깜짝 놀랐지만 왕비의 침착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왕비가 있다면 그녀는 무서울 게 없었다. 낙청연은 지초에게 자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전혀 잠들지 못했다.지초가 자지 못한 건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낙청연은 밖의 기척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결국 날이 밝아왔고 계획대로 지초는 마을에 먹을 걸 사러 갔고 낙청연은 산에 가서 약재를 채집했다.낙청연은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그녀의 몸조리에 사용되는 약초는 굉장히 값비싼 것이라 금방 살림이 거덜 날 게 뻔했다.그나마 가격이 싼 편인 약초들을 최대한 많이 채집해 돈을 아껴서 먹고 입고, 또 겨울나기에 필요한 숯을 사는 게 나았다.지초는 순조롭게 식자재와 숯을 샀고 낙청연은 산에서 약재와 버섯들을 채집했다.오늘은 방에 불을 피워 따뜻한 편이었다.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지초는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또 밤을 지새웠다.그날 밤엔 문밖에 그림자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방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별원에 온 지 3일째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식자재는 충분했고 숯 또한 많이 준비해 두었다.날은 점점 더 추워졌다.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먹는데 지초가 물었다.“왕비 마마,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으십니까? 여긴 너무 외진 것 같습니다. 어쩐지 좀 음산한 것 같기도 하고요.”낙청연은 웃었다.“떠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해야 할 일이 있거든.”“무슨 일입니까?”지초는 의아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왕비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낙청연은 비밀스럽게 말했다.“사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그 누군가가 혼자가 아닐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그 말에 지초는 등허리
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합니다! 이 별원에 큰 쥐가 있는 건 정상이겠죠. 저희 식자재를 훔쳐 먹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숯을 훔치는 건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떤 쥐새끼가 감히 우리 지초가 고생해서 얻어 온 숯을 훔친다는 말이냐? 가자. 나랑 같이 쥐새끼를 잡으러 가자꾸나.”지초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낙청연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진짜 쥐를 잡을 생각인 건지 빗자루까지 챙겨 들었다.낙청연은 지초를 데리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곁채로 향했다. 별원은 아주 컸고 곁채에서 지낼 생각은 없었기에 그곳을 청소한 적도, 점검한 적도 없었다.곁채 밖에 도착했을 때 바닥을 보니 발자국이 혼잡스럽게 찍혀있었다.큰 쥐는 아마도 이곳에 있는 듯했다.그녀는 정원의 문을 열었고 내친김에 나무 막대기까지 주워들었다.마당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는데 나무 막대기 여러 개로 만든 아궁이와 작은 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솥 안에는 죽이 남아있었고 옆에 있던 풀 무더기에는 짐승의 가죽이 있었다.지초는 깜짝 놀랐다.“왕비 마마, 여기… 누가 사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여기로 올 때 별원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나, 왕비 마마께서 오셨는데 마중하러 나오지 않다니요.”지초는 씩씩거리면서 여러 개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방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사라졌던 숯과 식자재가 사실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두 방은 모두 깨끗했고 누군가 사는 흔적이 보였으나 지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낙청연은 느긋하게 방 안을 살펴보았다. 두 방안에 남은 물건들을 보니 여인 한 명과 사내 한 명인 듯했다.그리고 방 안에는 흰 이불의 천이 찢겨 있는 게 보였다. “이것이… 밤마다 저희 방 밖에서 떠다니던 흰 물체입니까?”지초는 깜짝 놀랐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쥐 두 마리가 꽤 크구나.
낙청연은 여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 늑대가 여인을 향해 달려드는 걸 보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낙청연은 그녀를 덥석 안고서 바닥으로 굴렀고 두 사람은 풀더미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늑대가 덮쳐올 때 나뭇가지들이 늑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었다.사내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재빨리 달려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낙청연이 그보다 앞서 그녀를 구했다.사내는 곧바로 활을 들더니 화살로 늑대를 쏴 죽였다.늑대는 잠깐 움찔하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풀더미 속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늑대의 눈이 빨간 걸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래서 늑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데 사내가 그녀를 막았다.“위험하니 다가가지 마세요.”낙청연은 시선을 거두고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사냥꾼인 듯 보였으나 미간에 핏빛의 살이 낀 걸 보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 수가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이 이렇게 현저하게 껴있을 리가 없었다.어쩌면 자객에서 사냥꾼으로 전업한 걸지도 몰랐다.초초라고 불린 여인은 얼른 낙청연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대꾸했다.“인사는 됐다.”초초가 계속해 말했다.“이렇게 황량한 곳에는 어쩌다 오시게 된 겁니까? 그것도 혼자 오시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낙청연은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내 저택에 살고 있으면서 혼자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물은 것이냐?”그 말에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놀란 기색을 보였다.초초는 난처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 저택에 살고 계신 분이 당신이었습니까?”사내는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초초가 이렇게 빨리 인정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러나 말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그는 초초를 끌고 와 자신의 등 뒤로 감추더니 낙청연을 경계하며 말했다.“그 저택은 줄곧 비어 있었습니다. 그게 당신의 저택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낙청연은 송천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그래서 그녀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동굴에서 탈출한 뒤 왜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냐? 마을을 멀리하면 제물로 바쳐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송천초는 그녀의 말에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긴장한 얼굴로 옷자락을 꼭 쥐었다.“사실 저는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가 절 얽매고 있거든요…”송천초는 그 말을 할 때 두려운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그녀의 뒤에 서 있던 허청림이 입을 열었다.“난 널 데리고 꼭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그 말에 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송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도망치지 못한다는 말이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매번 도망치려고 산을 나가는 저 작은 길을 걸으면 다시 산 안으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마치 악령 때문에 이곳에 갇힌 듯 말입니다. 그래서 저택 안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원에 온 첫날, 그녀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눈치챘었다.이 두 사람 외에도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하지만 낙청연은 여전히 의아했다. 그것이 만약 송천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 송천초가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저택에 숨어있는 것 또한 안전할 리가 없었다.그 저택에는 액막이를 할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인제 보니 그녀가 모르는 일이 있는 듯했다.세 사람은 함께 하산했고 낙청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별원으로 돌아갔다.지초는 그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왕비가 말한 쥐 두 마리가 저 사람들이라니.식사할 시간이 되어 낙청연은 지초에게 네 사람이 먹을 밥을 해두라고 일렀다.낙청연은 허청림이 잡은 늑대를 보고 싶었으나 허청림은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고 꼭 자기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면서 낙청연이 보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숨기려고 드는 걸 보니 더 이상했다.방 안은 불을 피워두었기에 아주 따뜻했다. 낙청연은 송천초와 함께 방에서 생강을 달인 물을 두 그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