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합니다! 이 별원에 큰 쥐가 있는 건 정상이겠죠. 저희 식자재를 훔쳐 먹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숯을 훔치는 건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떤 쥐새끼가 감히 우리 지초가 고생해서 얻어 온 숯을 훔친다는 말이냐? 가자. 나랑 같이 쥐새끼를 잡으러 가자꾸나.”지초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낙청연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진짜 쥐를 잡을 생각인 건지 빗자루까지 챙겨 들었다.낙청연은 지초를 데리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곁채로 향했다. 별원은 아주 컸고 곁채에서 지낼 생각은 없었기에 그곳을 청소한 적도, 점검한 적도 없었다.곁채 밖에 도착했을 때 바닥을 보니 발자국이 혼잡스럽게 찍혀있었다.큰 쥐는 아마도 이곳에 있는 듯했다.그녀는 정원의 문을 열었고 내친김에 나무 막대기까지 주워들었다.마당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는데 나무 막대기 여러 개로 만든 아궁이와 작은 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솥 안에는 죽이 남아있었고 옆에 있던 풀 무더기에는 짐승의 가죽이 있었다.지초는 깜짝 놀랐다.“왕비 마마, 여기… 누가 사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여기로 올 때 별원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나, 왕비 마마께서 오셨는데 마중하러 나오지 않다니요.”지초는 씩씩거리면서 여러 개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방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사라졌던 숯과 식자재가 사실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두 방은 모두 깨끗했고 누군가 사는 흔적이 보였으나 지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낙청연은 느긋하게 방 안을 살펴보았다. 두 방안에 남은 물건들을 보니 여인 한 명과 사내 한 명인 듯했다.그리고 방 안에는 흰 이불의 천이 찢겨 있는 게 보였다. “이것이… 밤마다 저희 방 밖에서 떠다니던 흰 물체입니까?”지초는 깜짝 놀랐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쥐 두 마리가 꽤 크구나.
낙청연은 여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 늑대가 여인을 향해 달려드는 걸 보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낙청연은 그녀를 덥석 안고서 바닥으로 굴렀고 두 사람은 풀더미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늑대가 덮쳐올 때 나뭇가지들이 늑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었다.사내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재빨리 달려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낙청연이 그보다 앞서 그녀를 구했다.사내는 곧바로 활을 들더니 화살로 늑대를 쏴 죽였다.늑대는 잠깐 움찔하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풀더미 속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늑대의 눈이 빨간 걸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래서 늑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데 사내가 그녀를 막았다.“위험하니 다가가지 마세요.”낙청연은 시선을 거두고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사냥꾼인 듯 보였으나 미간에 핏빛의 살이 낀 걸 보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 수가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이 이렇게 현저하게 껴있을 리가 없었다.어쩌면 자객에서 사냥꾼으로 전업한 걸지도 몰랐다.초초라고 불린 여인은 얼른 낙청연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대꾸했다.“인사는 됐다.”초초가 계속해 말했다.“이렇게 황량한 곳에는 어쩌다 오시게 된 겁니까? 그것도 혼자 오시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낙청연은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내 저택에 살고 있으면서 혼자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물은 것이냐?”그 말에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놀란 기색을 보였다.초초는 난처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 저택에 살고 계신 분이 당신이었습니까?”사내는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초초가 이렇게 빨리 인정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러나 말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그는 초초를 끌고 와 자신의 등 뒤로 감추더니 낙청연을 경계하며 말했다.“그 저택은 줄곧 비어 있었습니다. 그게 당신의 저택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낙청연은 송천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그래서 그녀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동굴에서 탈출한 뒤 왜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냐? 마을을 멀리하면 제물로 바쳐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송천초는 그녀의 말에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긴장한 얼굴로 옷자락을 꼭 쥐었다.“사실 저는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가 절 얽매고 있거든요…”송천초는 그 말을 할 때 두려운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그녀의 뒤에 서 있던 허청림이 입을 열었다.“난 널 데리고 꼭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그 말에 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송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도망치지 못한다는 말이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매번 도망치려고 산을 나가는 저 작은 길을 걸으면 다시 산 안으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마치 악령 때문에 이곳에 갇힌 듯 말입니다. 그래서 저택 안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원에 온 첫날, 그녀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눈치챘었다.이 두 사람 외에도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하지만 낙청연은 여전히 의아했다. 그것이 만약 송천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 송천초가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저택에 숨어있는 것 또한 안전할 리가 없었다.그 저택에는 액막이를 할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인제 보니 그녀가 모르는 일이 있는 듯했다.세 사람은 함께 하산했고 낙청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별원으로 돌아갔다.지초는 그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왕비가 말한 쥐 두 마리가 저 사람들이라니.식사할 시간이 되어 낙청연은 지초에게 네 사람이 먹을 밥을 해두라고 일렀다.낙청연은 허청림이 잡은 늑대를 보고 싶었으나 허청림은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고 꼭 자기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면서 낙청연이 보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숨기려고 드는 걸 보니 더 이상했다.방 안은 불을 피워두었기에 아주 따뜻했다. 낙청연은 송천초와 함께 방에서 생강을 달인 물을 두 그
밤바람이 불어오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게다가 들려오는 소리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컸다.곁채에서는 심지어 고함까지 들려왔다.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 정확히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방문이 덜컹거리면서 소리를 냈고 누군가 밖에서 문을 억지로 열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지초는 긴장한 얼굴로 낙청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왕비 마마, 이건…”낙청연은 지초의 손등을 토닥이며 대꾸했다.“내가 나가보마. 너는 방 안에 가만히 있거라.”지초는 조금 걱정스러웠다.“왕비 마마…”“괜찮다. 무서워하지 말거라.”낙청연은 위로하듯 지초의 어깨를 두드렸고 이내 혼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그것은 낙청원이 별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처음 야심한 시각에 방을 나서는 것이었다.밖에서 부는 찬 바람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마 밑에 달린 등불은 이리저리 나부꼈고 나뭇잎은 사락사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원래도 썰렁했던 저택이 지금은 귀신 들린 저택처럼 보였다.앞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소리는 분명 곁채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낙청연은 침착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곁채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바닥에 대량의 구불구불한 흔적이 있는 걸 발견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현재 정원에서는 허청림이 송천초를 지키고 있었는데 검으로 바닥에 있는 뱀들을 치우고 있었다.점점 더 많은 뱀이 정원의 담을 넘거나 구멍을 통해 정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기어 다니면서 내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털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송천초는 뱀을 쫓는 가루를 흩뿌리면서 뱀을 쫓았지만 곧이어 바람이 크게 불면서 가루가 전부 날아갔다.그러다 뱀 한 마리가 갑자기 허청림의 발목을 물었고 허청림은 고통 때문에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게 됐다.“오라버니!”송천초는 깜짝 놀라면서 곧바로 뱀을 쫓는 가루를 잔뜩 뿌렸다.비록 또 바람에 흩어질 게 뻔하지만 적어도 잠시 시간을 벌 수 있
낙청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허청림은 벌떡 일어서더니 절뚝거리면서 송천초를 자신의 뒤로 감추며 말했다.“이 자를 믿지 말거라! 이 여인에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허청림은 낙청연을 경계하며 말했다.“지금까지 여기에 숨어있었지만 뱀들은 감히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들어온다고 해도 겨우 한두 마리뿐이는데, 오늘 밤에는 이렇게나 많이 들어오다니! 게다가 이 여인이 나타나자마자 뱀들이 다 사라지지 않았더냐!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낙청연은 자신이 오자 뱀들이 사라진 일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낙청연이 말했다.“내가 두 사람을 해치려 했다면 뱀들은 물러나지 않았겠지.”송천초는 그녀의 말에 두 눈을 반짝이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감사합니다, 낙 소저. 오늘 밤 또 폐를 끼쳤군요.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송천초는 낙청연을 믿었다. 다만 낙청연은 어딘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오늘 밤 일이 기괴한 것도 사실이었다. “괜찮다. 많이 늦었으니 이만 쉬거라. 다른 건 내일 얘기하자꾸나.”낙청연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를 떴다.송천초는 다급히 허리를 숙여 뱀에 물린 허청림의 발목을 살피며 말했다.“다행히도 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뒤 약을 내드리겠습니다.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알겠다.”그 뒤 송천초는 허청림을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공기 중에는 뱀을 쫓는 가루의 냄새가 남아있었고 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송천초는 의술에 능통한 듯 보였고 뱀을 쫓는 가루에 들어있는 약재들은 무척 진귀한 것들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바람 한 번 부니 가루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낙청연은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지초는 방구석에서 몸을 말고 덜덜 떨고 있었는데 낙청연이 들어온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왕비 마마.”“내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우리를 상대하러 온 것이 아니라 널 다치게 할 일은 없다.”낙청연의 말에 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두렵지 않습니다.”그 말과 함께 지초는 낙청연의 팔에 팔짱을 꼈다.
쿠구궁—우레가 울었고 밤하늘에 보이던 기다란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나침반이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그러나 이것은 경고의 움직임이 아니라 위력에 놀란 것이었다.“산신이라니…”하지만 그것은 누군가를 해칠 마음은 없는 듯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껏 잠잠하지도 않았을 터였다.그러나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듯했고 진짜 송천초에게 달라붙은 것 같았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 앞에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피곤한 얼굴의 그녀는 눈 밑이 검었고 안색이 창백했으며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낙 소저…”송천초는 문가에 서 있었고 그녀의 뒤로는 우레가 친 뒤 갑작스레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낙청연은 송천초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앉거라.”자리에 앉은 송천초는 낙청연을 보더니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낙 소저, 전… 전…”송천초는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낙청연은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미소에 송천초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구나. 최근에 충격받을 만한 일이 많았으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날 찾아온 걸 보니 허청림 몰래 온 것이겠지. 왔으니 편하게 얘기해보거라.”송천초는 그 말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곧이어 밖에서 우레가 울었다. 그에 송천초는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낙 소저를 찾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낙 소저께서 뱀들을 쫓아낸 걸 생각하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송천초는 긴장한 얼굴로 낙청연의 손을 잡았다.“그가 절 찾은 것 같습니다. 항상 절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송천초는 겁에 질려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낙청연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천천히 얘기해 보거라.”송천초는 그제야 얘기를 꺼냈다.“처음 산에서 도망쳤을 때 매일 밤 뱀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저희를 해친 적은 없습니다. 매일 전
그건 굉장히 드문 진귀한 영초(靈草)라 돈이 많아도 구하기 어려웠다.만약 구란선삼이 있다면 그녀의 비만증은 아주 빨리 나을 수 있었다.송천초의 진지한 모습에 낙청연은 더더욱 놀랐다.사실 송천초는 진짜 심각하게 무서운 건 아니었다. 그저 무서운 감정을 빌어 그녀의 맥을 짚어 본 것이다. 사실 송천초의 의술은 대단했고 이미 그 전에 낙청연이 독에 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충분한 흥정거리가 있으니 낙청연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송천초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런 점이 밉지 않았고 오히려 더 사랑스러웠다.낙청연은 호쾌하게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알겠다. 그러면 그렇게 약속하지.”송천초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낙청연을 향해 예를 갖췄다.“낙 소저, 고맙습니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구란선삼을 교환 조건으로 걸다니, 송천초는 자신이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고 어쩌면 또 숨기는 게 있을지도 몰랐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난 궁금한 게 많다. 이 일이 해결된다면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겠느냐?”송천초는 살짝 놀라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만약 이 일을 해결한다면 낙 소저는 제 은인이십니다. 낙 소저께서 뭘 원하시든지 다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대로 고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낙청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부적 하나를 그려 송천초에게 건네줬다.“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거라.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것들은 너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이니 몸을 지키는 데 유용할 것이다.”송천초는 그 부적을 건네받고는 조심스레 품 안에 집어넣었다.“감사드립니다, 낙 소저.”낙청연은 또 한 번 당부했다.“날 찾아온 일은 허청림에게 얘기하지 말거라. 그는 내가 널 해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니.”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청림을 감싸며 말했
그 생각이 들자 낙월영은 아노에게 분부했다.“가서 제물로 바쳐진 여인의 행방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거라. 그리고 바람잡이도 몇 명 찾아서 마을 사람들이 낙청연을 제물로 바치게 하거라. 만약 제물로 바쳐졌는데도 죽지 않는다면 낙청연을 죽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다.”그때가 되면 누군가 낙청연의 죽음을 조사한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한 짓이라 자신과는 상관없었다.낙청연이 깔끔하게 죽어야 수도에서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었다.—비는 이틀간 계속 쏟아졌고 세찬 빗줄기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집어삼켰다.그날 밤 지초는 아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오직 비 내리는 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하지만 낙청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왜 그것이 아직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지 궁금했다.그녀는 송천초에게 부적 하나를 건넸고 뱀이든 그것이든 모두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그것이라면 화를 내면서 그녀를 찾아와야 마땅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감감무소식이었다.잠잠할수록 낙청연은 더욱더 불안했다.생각에 잠겨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벼락이 쳤고 방 밖에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그것은 순식간에 낙청연의 시야에 나타났고 낙청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곧이어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왔다.그 검은 그림자는 문밖에 잠시 서 있다가 떠났다.낙청연은 코를 부여잡은 채로 침대에서 내려와 문 옆에 섰다. 그녀는 조심스레 문틈 사이로 떠나가는 그자의 뒷모습을 보았다.그자는 허청림이었다.허청림이 저택 밖으로 나가자 낙청연의 미간이 좁혀졌다. 늦은 시간이었고 비까지 오는데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낙청연은 호기심과 의심을 안고 그를 따라가보려 마음먹었다.그녀는 움직이기 편하게 도롱이를 걸치고 나갔다.허청림의 귓가에는 우렛소리와 빗소리만 들렸고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낙청연은 그에게 들키지 않고 멀리 떨어진 채로 허청림의 뒤를 밟을 수 있었다.그녀는 허청림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고 그곳은 낙청연이 한 번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