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섭정왕부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섭정왕부의 귀신이다.”“하지만 오늘부로, 넌 섭정왕비가 아니라 부의 하인과 별다름이 없다.”이 말을 들은 낙월영은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드디어!드디어 이날이 왔다!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건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그 짐승보다도 못했던 때로 말이다.섭정왕, 정말 독하기도 독하구나. 하인처럼, 노예처럼 부려 먹더라도 낙청연을 놓아주지 않으니 말이다!등 어멈은 첫 번째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왕야, 오늘 일은 분명 둘째 소저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인데 어찌 왕비를 내쫓는단 말입니까! 왕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부진환은 서늘한 눈빛으로 등 어멈을 보더니 말했다: “관사 일을 맡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왕야…” 등 어멈은 낙청연과 함께 가고 싶었다.그러나 낙청연은 등 어멈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떠날 것이다.”이때, 지초가 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왕야, 제가 왕비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왕비는 아직 몸이 성하지 않다. 하물며 겨울도 다 돼가는데 옆에 사람까지 없으면 어찌한단 말인가!“알아서 해라!” 부진환은 이 말만 남기고 낙월영과 함께 떠났다.소유는 정원 밖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야, 정말 왕비를 별원에 보내실 겁니까?”섭정왕부의 별원은 아무도 살지 않아 한겨울에 간다면 지내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오늘 당장 보내라!” 부진환은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 그는 매우 단호했다.이 정도면 낙청연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진환도 자신이 왜 한번 또 한 번 그녀를 살려두는지 이유를 몰랐다.이번에는 계획까지 다 망쳤으니 절대 곁에 두면 안 된다!하지만 휴서는 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휴서를 들고 부운주와 함께하는 꼴은 못 본다.소유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둘째 소저는 그저 도화선일 뿐, 왕야가 화난 건 류훼
섭정왕부를 떠나는 그날, 매서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부 밖에 조금 서 있었을 뿐인데, 낙청연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다.계집종 한 명만 옆에 둔 낙청연의 모습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이때, 정원에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왔다: “청연!”부운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달려왔다. 허약한 몸은 이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부운주가 문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하인들이 막아섰다.“5황자, 바람이 많이 붑니다. 나가지 마십시오.”“이거 놔라!” 부운주는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하인 둘이 그의 팔을 붙잡고 막아섰다.“청연… 쿨럭…”부운주의 얼굴은 너무 급한 나머지 시뻘게졌다. 기침을 해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문은 서서히 닫혔다.정말이지 생이별하는 장면 같았다.부의 하인들로 앞이 막혀 있는 부운주를 보며 낙청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문이 완전히 닫히니 부운주의 애가 탄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지초야, 가자꾸나.” 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뗐다.낙청연은 그저 부운주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목이 잘리는 것도 아닌데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다.왕부 안.낙월영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낙청연이 쓸쓸하게 쫓겨난 모습은 마치 그녀는 득의양양했다.그리고는 오만한 걸음으로 자신의 정원에 들어갔다.허리춤에 건 향낭을 보며 낙월영은 미소를 띠었다. 오늘 낙청연에게 시비를 걸었던 건 낙청연을 섭정왕부에서 내쫓기 위해서였다.근데 이게 진짜로 될 줄이야.중추의 궁중 연회도 이 향낭 때문에 왕야가 낙청연을 벌했다.오늘 왕야는 낙월영 때문에 낙청연을 부에서 쫓아냈다.그러니 이 물건은 행운을 가져오는 것이 틀림없다!앞으로도 쭉 지니고 다녀야 겠다고 낙월영은 다짐했다.-얼마 걷지 않아 뒷문의 골목에서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섭정왕부의 마차였다. 마부는 내려와 지초 손에 든 물건을 마차에 올려 두었다.“별원은 좀 외진 곳에 있습니다. 왕야께서 혹
“이 별원은 오랫동안 사람이 지내고 있지 않았기에 아주 더럽습니다. 왕비 마마, 우선은 정원에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방 안을 깨끗이 청소해 놓겠습니다.”지초는 그 말과 함께 물건을 내려놓고는 방 안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가지러 갔다.낙청연은 매화나무가 가득한 정원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지초가 들락날락하며 바삐 돌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지초가 가지 않은 곳의 바닥에 깊고 얕은 발자국이 남아있는 게 보였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침반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나침반이 조금씩 움직였다.밤의 장막이 드리워져서야 지초는 겨우겨우 저택의 반을 청소했다.방 안으로 들어간 낙청연은 촛불을 밝힌 뒤 침상을 정리했고 지초는 부엌에서 간단히 죽을 끓여서 가져왔다.두 사람은 간단히 배를 채웠다.낙청연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밤 내 방에서 자거라. 이곳에는 숯이 없어 밤에는 추울 것이다.”“알겠습니다.”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텅텅 비어있는 큰 저택이 조금 무서웠다.저녁을 먹은 뒤 낙청연은 내일 할 일을 지초에게 말해줬다. 그녀는 내일 산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고 내친김에 약초까지 구해 올 셈이었다. 그리고 지초는 근처 마을에 가서 숯과 쌀, 밀가루 같은 것을 사 오기로 했다.겨울에 접어드니 해가 빨리 저물었고 밤에는 상당히 추웠기에 두 사람은 일찍 잠을 청했다.저택 바깥이 텅 비어있어 그런지 바람 소리가 무척 또렷하게 들려왔고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끄지 않은 방 안의 촛불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끊임없이 일렁였다.지초는 바닥에 푹신한 것을 깔아 놓고 누워있었는데 너무 무서워 눈을 꼭 감았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반대로 낙청연은 두 손을 교차한 채 머리를 받치고는 방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역시나, 자시쯤이 되자 정원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끼익—방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에 지초는 모골이 송연해 벌떡 일어나 앉았고 방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문가에 서 있던 검은 그림자가 사라졌다.두 사람은 그곳을 한참이나 바라봤지만 더는 인기척이 없었다.낙청연은 지초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별일 없으니 이만 자거라.”지초는 깜짝 놀랐지만 왕비의 침착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왕비가 있다면 그녀는 무서울 게 없었다. 낙청연은 지초에게 자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전혀 잠들지 못했다.지초가 자지 못한 건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낙청연은 밖의 기척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결국 날이 밝아왔고 계획대로 지초는 마을에 먹을 걸 사러 갔고 낙청연은 산에 가서 약재를 채집했다.낙청연은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그녀의 몸조리에 사용되는 약초는 굉장히 값비싼 것이라 금방 살림이 거덜 날 게 뻔했다.그나마 가격이 싼 편인 약초들을 최대한 많이 채집해 돈을 아껴서 먹고 입고, 또 겨울나기에 필요한 숯을 사는 게 나았다.지초는 순조롭게 식자재와 숯을 샀고 낙청연은 산에서 약재와 버섯들을 채집했다.오늘은 방에 불을 피워 따뜻한 편이었다.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지초는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또 밤을 지새웠다.그날 밤엔 문밖에 그림자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방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별원에 온 지 3일째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식자재는 충분했고 숯 또한 많이 준비해 두었다.날은 점점 더 추워졌다.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먹는데 지초가 물었다.“왕비 마마,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으십니까? 여긴 너무 외진 것 같습니다. 어쩐지 좀 음산한 것 같기도 하고요.”낙청연은 웃었다.“떠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해야 할 일이 있거든.”“무슨 일입니까?”지초는 의아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왕비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낙청연은 비밀스럽게 말했다.“사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그 누군가가 혼자가 아닐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그 말에 지초는 등허리
지초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합니다! 이 별원에 큰 쥐가 있는 건 정상이겠죠. 저희 식자재를 훔쳐 먹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숯을 훔치는 건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떤 쥐새끼가 감히 우리 지초가 고생해서 얻어 온 숯을 훔친다는 말이냐? 가자. 나랑 같이 쥐새끼를 잡으러 가자꾸나.”지초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낙청연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진짜 쥐를 잡을 생각인 건지 빗자루까지 챙겨 들었다.낙청연은 지초를 데리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곁채로 향했다. 별원은 아주 컸고 곁채에서 지낼 생각은 없었기에 그곳을 청소한 적도, 점검한 적도 없었다.곁채 밖에 도착했을 때 바닥을 보니 발자국이 혼잡스럽게 찍혀있었다.큰 쥐는 아마도 이곳에 있는 듯했다.그녀는 정원의 문을 열었고 내친김에 나무 막대기까지 주워들었다.마당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는데 나무 막대기 여러 개로 만든 아궁이와 작은 솥이 걸려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니 솥 안에는 죽이 남아있었고 옆에 있던 풀 무더기에는 짐승의 가죽이 있었다.지초는 깜짝 놀랐다.“왕비 마마, 여기… 누가 사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여기로 올 때 별원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나, 왕비 마마께서 오셨는데 마중하러 나오지 않다니요.”지초는 씩씩거리면서 여러 개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방 안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사라졌던 숯과 식자재가 사실은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두 방은 모두 깨끗했고 누군가 사는 흔적이 보였으나 지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낙청연은 느긋하게 방 안을 살펴보았다. 두 방안에 남은 물건들을 보니 여인 한 명과 사내 한 명인 듯했다.그리고 방 안에는 흰 이불의 천이 찢겨 있는 게 보였다. “이것이… 밤마다 저희 방 밖에서 떠다니던 흰 물체입니까?”지초는 깜짝 놀랐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쥐 두 마리가 꽤 크구나.
낙청연은 여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는데 늑대가 여인을 향해 달려드는 걸 보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낙청연은 그녀를 덥석 안고서 바닥으로 굴렀고 두 사람은 풀더미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늑대가 덮쳐올 때 나뭇가지들이 늑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었다.사내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재빨리 달려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낙청연이 그보다 앞서 그녀를 구했다.사내는 곧바로 활을 들더니 화살로 늑대를 쏴 죽였다.늑대는 잠깐 움찔하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풀더미 속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늑대의 눈이 빨간 걸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래서 늑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데 사내가 그녀를 막았다.“위험하니 다가가지 마세요.”낙청연은 시선을 거두고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사냥꾼인 듯 보였으나 미간에 핏빛의 살이 낀 걸 보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 수가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이 이렇게 현저하게 껴있을 리가 없었다.어쩌면 자객에서 사냥꾼으로 전업한 걸지도 몰랐다.초초라고 불린 여인은 얼른 낙청연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대꾸했다.“인사는 됐다.”초초가 계속해 말했다.“이렇게 황량한 곳에는 어쩌다 오시게 된 겁니까? 그것도 혼자 오시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낙청연은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내 저택에 살고 있으면서 혼자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물은 것이냐?”그 말에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놀란 기색을 보였다.초초는 난처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 저택에 살고 계신 분이 당신이었습니까?”사내는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초초가 이렇게 빨리 인정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그러나 말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그는 초초를 끌고 와 자신의 등 뒤로 감추더니 낙청연을 경계하며 말했다.“그 저택은 줄곧 비어 있었습니다. 그게 당신의 저택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낙청연은 송천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그래서 그녀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동굴에서 탈출한 뒤 왜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냐? 마을을 멀리하면 제물로 바쳐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송천초는 그녀의 말에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긴장한 얼굴로 옷자락을 꼭 쥐었다.“사실 저는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가 절 얽매고 있거든요…”송천초는 그 말을 할 때 두려운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그녀의 뒤에 서 있던 허청림이 입을 열었다.“난 널 데리고 꼭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그 말에 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송천초를 바라보며 말했다.“도망치지 못한다는 말이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매번 도망치려고 산을 나가는 저 작은 길을 걸으면 다시 산 안으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마치 악령 때문에 이곳에 갇힌 듯 말입니다. 그래서 저택 안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원에 온 첫날, 그녀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눈치챘었다.이 두 사람 외에도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하지만 낙청연은 여전히 의아했다. 그것이 만약 송천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지금 송천초가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저택에 숨어있는 것 또한 안전할 리가 없었다.그 저택에는 액막이를 할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인제 보니 그녀가 모르는 일이 있는 듯했다.세 사람은 함께 하산했고 낙청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별원으로 돌아갔다.지초는 그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왕비가 말한 쥐 두 마리가 저 사람들이라니.식사할 시간이 되어 낙청연은 지초에게 네 사람이 먹을 밥을 해두라고 일렀다.낙청연은 허청림이 잡은 늑대를 보고 싶었으나 허청림은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고 꼭 자기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면서 낙청연이 보지 못하게 했다.그렇게 숨기려고 드는 걸 보니 더 이상했다.방 안은 불을 피워두었기에 아주 따뜻했다. 낙청연은 송천초와 함께 방에서 생강을 달인 물을 두 그
밤바람이 불어오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게다가 들려오는 소리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컸다.곁채에서는 심지어 고함까지 들려왔다.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 정확히 분간할 수가 없었으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방문이 덜컹거리면서 소리를 냈고 누군가 밖에서 문을 억지로 열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지초는 긴장한 얼굴로 낙청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왕비 마마, 이건…”낙청연은 지초의 손등을 토닥이며 대꾸했다.“내가 나가보마. 너는 방 안에 가만히 있거라.”지초는 조금 걱정스러웠다.“왕비 마마…”“괜찮다. 무서워하지 말거라.”낙청연은 위로하듯 지초의 어깨를 두드렸고 이내 혼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그것은 낙청원이 별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처음 야심한 시각에 방을 나서는 것이었다.밖에서 부는 찬 바람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마 밑에 달린 등불은 이리저리 나부꼈고 나뭇잎은 사락사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원래도 썰렁했던 저택이 지금은 귀신 들린 저택처럼 보였다.앞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소리는 분명 곁채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낙청연은 침착하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곁채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바닥에 대량의 구불구불한 흔적이 있는 걸 발견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현재 정원에서는 허청림이 송천초를 지키고 있었는데 검으로 바닥에 있는 뱀들을 치우고 있었다.점점 더 많은 뱀이 정원의 담을 넘거나 구멍을 통해 정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기어 다니면서 내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털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송천초는 뱀을 쫓는 가루를 흩뿌리면서 뱀을 쫓았지만 곧이어 바람이 크게 불면서 가루가 전부 날아갔다.그러다 뱀 한 마리가 갑자기 허청림의 발목을 물었고 허청림은 고통 때문에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게 됐다.“오라버니!”송천초는 깜짝 놀라면서 곧바로 뱀을 쫓는 가루를 잔뜩 뿌렸다.비록 또 바람에 흩어질 게 뻔하지만 적어도 잠시 시간을 벌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