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큰 눈이 내려 눈이 두껍게 쌓였지만 거리는 유난히 떠들썩했다.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차가운 공기는 왠지 모르게 청량하고 맑게 느껴졌다.침서는 낙요에게 두꺼운 망토를 입히고 면사를 씌워 얼굴을 가리게 한 뒤 우산을 쓰고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아요, 어렸을 때를 기억하느냐? 우리는 돈이 별로 없어 동가 두이낭(東街杜二娘) 가게의 양고기국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었다.”“그래서 눈이 내릴 때면 같이 가서 먹자고 약속했었지.”“그런데 어느 해는 보름 동안 눈이 내려 너 때문에 가난해졌었다.”“하지만 난 그때 너에게 돈이 없다는 걸 얘기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눈이 내릴 때면 또 너를 데리고 양고기국을 먹으러 갔지.”“매번 다 먹고 난 뒤 너를 보내고 나면 두이낭 가게로 돌아가 설거지하고 주방을 청소해야 했다.”“거의 보름 가까이 일을 해야 했지.”그 말을 들은 낙요는 살짝 놀랐다. 확실히 기억이 별로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조금 미안한 듯 말했다.“예전에는 제게 얘기해준 적이 없습니까?”“양고기국 한 그릇뿐인데, 그걸 먹지 않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요.”침서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널 위해 구해다 줄 것이다.”“네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뭐든 너와 함께할 것이다.”낙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제가 당신에게 그렇게 중요합니까?”낙요는 왠지 모르게 침서와 그렇게 깊은 감정이 없다고 느꼈다.기억이 없어서 침서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일까?“당연히 중요하지. 네가 내 목숨이니까.”침서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유난히 온화하고 다정했다.낙요는 더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침서가 그녀에게 이토록 마음을 쓰는데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됐다.그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낙요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오늘 너에게 양고기국을 사주마. 배부르게 먹어 보겠느냐?”낙요의 미소를 보는 순간, 침서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시선을 든 침서는 순간 안색이 돌변했다.“저자는 아주 흉포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붙잡혔을 줄이야. 때려죽여야지! 때려죽여야 하오!”사람들은 떠들썩했다.그들은 잇달아 수레를 향해 물건을 던졌다.너무 혼란스러웠던 탓에 풀떼기가 낙요의 그릇 안에 떨어졌다.낙요는 흠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수레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옷차림이 얇았고 맨발이었으며 수레는 얼어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천궐국 섭정왕?”낙요는 호기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침서는 그녀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 것 같자 살짝 안도하며 그녀를 잡아당겨 자리에 앉혔고 사람을 시켜 양고기국을 바꿨다.“괜찮다. 적국의 장군이 붙잡혀으니 행진은 정상이지.”낙요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계속해 국을 마셨다.수레가 멀어진 뒤에야 부진환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그는 무슨 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돌린 그는 눈빛이 평온했다. 역시나 환각이었다.양고기국을 마신 뒤 낙요는 배를 어루만지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그녀가 물었다.“저녁에는 뭘 먹습니까?”침서는 웃음을 터뜨렸다.“예전과 똑같구나. 먹는 걸 좋아하는 걸 보니 말이다.”“자, 내가 널 데리고 먹으러 가마.”“어차피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다. 너를 데리고 도성 전체를 누비며 맛있는 걸 먹여주마.”-행진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다시 고묘묘의 침궁으로 돌아왔을 때 부진환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맨발은 이미 동상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묘묘는 눈썹을 치켜세웠다.“천궐국의 섭정왕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천궐국의 섭정왕이 이런 꼴일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쯧쯧...”하지만 고묘묘가 어떤 말로 부진환을 자극하든 부진환은 한결같이 죽상이었다.마음이 죽어버린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꼭두각시 같았다.고묘묘는 조급해하지 않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지. 겨우 하루일
방안에서는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백서는 계속해 설득했다.어두컴컴한 방 안, 부진환은 양반다리를 하고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마치 매처럼 날카로웠다.설득하다 지친 백서는 밤이 되어 바람도 세도 눈도 많이 내리자 구석에 몸을 숨겨 바람을 피했다.고묘묘는 차갑게 웃은 뒤 느긋하게 돌아서서 떠났다.그녀는 일부러 백서를 문밖에 묶어두었다. 백서가 부진환의 투지를 다시 불타오르게 만들어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서 도망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부진환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낙청연이 죽으면서 부진환의 마음도 완전히 죽은 듯했다.-천궐국 섭정왕이 행진한 일은 도성 전체에 널리 퍼졌다.우유도 바로 그 사실을 알고서 행진을 보러 갔는데 행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벙어리였다.그가 고묘묘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줄이야.벙어리와 낙청연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구하러 귀도로 향했었다. 우유는 그들에게 생명의 은혜를 입었고 어떻게든 그것에 보답해야 했다.그러나 그녀는 고묘묘에게서 벙어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객잔으로 가서 구십칠을 찾아 그와 의논할 생각이었다.며칠 뒤 구십칠과 주락이 돌아왔다.랑목이 낙청연의 시체를 가지고 갔다는 걸 알게 된 우유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리고 그들에게 천궐국 섭정왕의 행진에 관해 얘기해줬다.그 말을 들은 구십칠은 깜짝 놀랐다.“그가 고묘묘에게 잡혔단 말이오?”“그날 낙청연의 시체를 가져온 것은 그였소. 난 그와 함께 떠날 생각이었는데 그가 홀로 사라졌소.”우유가 말했다.“벙어리는 절 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낙청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예전에 목숨을 걸고 낙청연을 구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전 그를 구하고 싶습니다.”구십칠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구해야지.”“난 물건을 훔치는 것에는 강하지만 입궁하여 산 사람을 훔치는 건 어려울 것 같소.”“발각된다면 곤란해질 것이오.”상
나침반이 없으니 자꾸 불안했다.아주 정당한 명분 하나가 모자란 듯하니 말이다.나침반이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대제사장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황후와 공주는 언급하지 않고 황제도 더는 대제사장을 선발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가 필요 없어진 것처럼 말이다.우유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야 할 듯했다.밤이 되고 우유는 방 안에서 어떻게 부진환을 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낙정이 들어왔다.“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아직도 자지 않은 거니?”낙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너도 아직 자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날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냐?”낙정은 자리에 앉은 뒤 촛불을 향해 손을 뻗어 얼어서 뻣뻣해진 손을 녹였다.“이렇게 추운 날에 불을 피우지 않는다니, 여기엔 숯이 없는 것이냐?”낙정은 방구석에 있는 난로를 보았다. 그 옆에 숯 한 광주리가 놓여 있었다.우유는 덤덤히 말했다.“습관이 돼서 춥지 않다.”스승님이 계시지 않을 때 우유는 제사 일족에서 존재감이 없었고 누구도 그녀가 죽든살든 신경 쓰지 않았다.매년 겨울 나눠주는 숯은 도둑맞거나 빼앗기기 일쑤였다.그래서 그녀는 이런 겨울에 익숙해져 있었다.“무슨 일인지 말하거라. 얼른 말하고 얼른 돌아가. 내가 있는 이곳은 춥다.”낙정은 결국 입을 열었다.“사실 너에게 묻고 싶었다. 낙청연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은 것이냐?”낙정은 낙청연보다 실력이 많이 뒤떨어진 건 아니었다.게다가 그녀는 원래 제사 일족이었고 당연히 낙청연보다 유명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낙청연을 지지하면서 그녀는 지지하지 않는 걸까?우유는 살짝 놀랐다.그녀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낙청연은 처음 여국에 왔을 때 노예영에 있는 10대 악인을 복종시켰다.”“그때 낙청연의 이름이 도성 널리 퍼졌다.”“다들 낙청연의 실력에 탄복했지.”“만약 너도 도성 사람들에게 네 이름을 알리고 싶다면 따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
말을 마친 뒤 낙정은 우유의 어깨를 두드렸다.“고맙다.”“내가 대제사장이 된다면 널 잘 챙겨주마.”말을 마친 뒤 낙정은 일어나서 부랴부랴 떠났다.우유는 낙정이 어떤 방법으로 고묘묘가 승낙하게 만들지 알지 못했지만 내심 흥분됐다. 만약 부진환이 정말 출궁하여 노예영에 가게 된다면 그를 구할 기회가 생길 수 있었다.낙정이 떠나자 우유는 곧바로 망토를 쓰고 몰래 궁을 떠나 객잔으로 향했다.우유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기회가 왔습니다!”“부진환이 노예영에 갇힐지도 모릅니다.”“사람은 충분합니까? 저희는 미리 매복한 뒤 방법을 생각해 노예영에 들어가야 합니다.”“때가 되면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여 부진환을 데리고 바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전 제사 일족으로 잠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노출되면 안 되니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노출된다면 더는 낙정에게 접근할 수 없으니 낙청연의 복수를 할 수 없었다.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생각에 잠겨 말했다.“노예영에 진법이 있는데 만약 우리가 그 진법을 파괴한다면 잠시 시간을 끌 수 있겠지?”우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 진법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낙정도 있고 그녀도 진법에 관해 알고 있으니 시간을 그리 오래 끌지는 못할 겁니다.”구십칠은 고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 남은 건 우리에게 맡기시오.”곧 우유는 객잔을 떠나 제사 일족으로 돌아갔다.구십칠과 주락 2인은 진지하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지도를 그렸다.그들은 날이 밝기 전에 노예영 근처에 사람을 보낼 생각이었다. 만약 부진환이 노예영에 가게 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행동을 취할 예정이었다.-고묘묘의 침궁.마당에서 괴로움에 울부짖는 백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만! 그만하시오!”방 안에서 부진환은 의자에 묶인 채로 신발과 양말이 벗겨졌고, 발바닥에 액체를 발랐다.고묘묘는 주머니 안에서 뱀과 전갈을 풀어놓았다.그것들은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부진환에게 달려들어 그의 발을 물었다.부진환은 극심한
”아직 끝나지 않았소.”“이것이 무엇인지 보시오.”고묘묘는 술주전자를 흔들더니 뚜껑을 열고 부진환에게 술주전자 안의 냄새를 맡게 했다.그것은 평범한 술이 아니었다.“이건 내가 직접 사람을 시켜 찾게 한 연정주(燃情酒)요. 한 잔만으로도 사람을 황홀경에 빠뜨린다고 하지.”“난 당신에게 한 주전자를 다 먹여 어떤 효과가 있을지 볼 것이오.”“미쳐버릴까, 아니면 발산하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죽을까?”이 술의 효과는 내일까지 지속될 것이오. 난 사람을 시켜 당신의 모든 반응을 시시각각 기록할 것이오.”“책자에 적어 당신이 정신을 차렸을 때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오.”“그러면 당신은 알게 되겠지. 본인이 존엄이라고는 없는 짐승 같았다는 걸.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차라리 일찌감치 내게 복종하고 고생을 덜 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그녀의 음산한 말에 문밖에 있던 백서는 온몸이 경직됐다.어떻게 이렇게 악랄할 수가!이럴 줄 알았다면 당시 부진환이 죽는 게 더 좋은 결과일지도 몰랐다.고묘묘는 손을 들어 부진환의 턱을 쥐고 그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바로 그때 호위가 갑자기 문밖에 나타났다.“공주마마, 제사 일족의 낙정이 찾아왔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공주마마를 뵙고 싶다고 합니다.”“무슨 일이길래 한밤중에 찾아온 것이지?”고묘묘는 술주전자를 내려놓고 낙정을 만나러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전각 안, 고묘묘는 자리에 앉은 뒤 다리를 꼬았다.“이렇게 늦은 시각에 왜 날 찾아온 것이오?”낙정은 본론을 얘기했다.“공주마마와 거래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고묘묘는 코웃음을 쳤다.“대제사장의 자리를 위해서겠지.”낙정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위해 찾아온 건 뻔한 일이었다.낙정은 부인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공주마마께서는 전에 서혼진과 어혼곡을 원하셨죠. 전 그것들을 공주마마께 드릴 수 있습니다. 공주마마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고묘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그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만약 부진환이 정말 죽기 직전까지
다음 날, 고묘묘는 황제 앞에서 대제사장의 일을 언급하며 낙정을 추천했다.황제는 잠깐 고민했다.“낙정이라? 짐이 기억하길 그녀는 낙요의 사형제였다.”“당시 대제사장을 선발할 때 낙요가 뽑혔고 낙정은 후보에 오른 적도 없지. 실력이...”황제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고묘묘가 말했다.“낙정의 실력은 낙요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강합니다. 적어도 지금 제사 일족 중에서는 가장 강한 편이지요.”“낙청연이 죽은 뒤 만족 왕자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족 왕자는 여국을 떠났을 가능성이 큽니다.”“그가 자신의 누이를 위해 복수하려 한다면 저희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저희 여국은 만족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대제사장이 있다면 조금 더 안전하고 확실할 듯합니다.”황제는 이미 그 일을 고려했다.하지만 그가 줄곧 대제사장의 일을 거론하지 않은 건, 대제사장이라는 자리가 무척이나 특별하고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탐냈기 때문이다.그래서 취혼산 시합 때 전멸하게 되며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그래서 황제는 대제사장의 자리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잠시 비워둘 생각이었다.고묘묘가 다시 설득했다.“부황, 부황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지금 궁 밖에서 많은 백성들이 의논이 분분합니다. 여국에 오랫동안 새로운 대제사장이 없어 대흉의 징조라고 추측하고 있지요.”“만약 소문이 퍼진다면 사람들은 공황에 빠질 것입니다.”황제는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바로 물었다.“낙정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점이 뭐가 있느냐?”고묘묘가 말했다.“낙정을 노예영에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마침 적국의 왕야를 잡았는데 아주 강골입니다.”“만약 낙정이 그를 길들일 수 있다면 낙정의 실력으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괜찮구나.”“그러면 허락하겠다.”“천궐국 섭정왕을 길들일 수 있다면 짐은 낙정을 대제사장으로 봉하겠다!”고묘묘는 곧바로
낙정과 고묘묘는 부진환이 갇힌 마당 밖에 도착했다.고묘묘가 덤덤히 말했다.“내가 잠시 뒤 그에게 약을 먹여 반항할 힘이 없게 만들 것이오. 그 뒤에 그를 데리고 나가면 일이 성사될 것이오.”고묘묘는 그렇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낙정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제겐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고묘묘는 약간 의아해하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너무 자만하지 마시오. 나조차 그를 길들이지 못했소.”“오늘 안에 그를 길들일 생각은 맞소?”낙정은 너무 거만했다.그러나 낙정은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걱정하지 마시지요.”“저 혼자 들어가면 됩니다.”말을 마친 뒤 낙정은 마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부진환은 사슬에 두 손과 두 발이 묶인 채 시체처럼 바닥에 누워있었다.낙정은 천천히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그를 바라봤다.“왕야, 오랜만입니다.”부진환의 눈빛은 고인 물처럼 파문 하나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을 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에 마침내 파문이 일었다.낙정이 죽지 않았다니?“제가 왜 죽지 않은 건지 놀라운가 봅니다.”“제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겠습니까?”“그러고 보면 왕야께서 기회를 주신 덕입니다. 전 죽은 척하여 도망쳤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당신들이 무방비한 틈을 타서 낙청연을 해칠 수 있었겠습니까?”“지금 왕야께서는 이 꼴이 되었으니 제가 왕야를 도와 이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줄까요?”“하지만 그 전에 왕야께서는 협조를 해주셔야겠습니다.”“비록 왕야의 협조가 없어도 되지만 전 저희의 마지막 만남이 피를 보지 않는 평온한 만남이길 바랍니다.”“왕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바로 그때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곧이어 문이 열리고 제사 일족 사람들이 도착했다.많은 사람이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제사 일족 사람을 제외하고 황제 곁의 태감, 조정의 일부 대신들도 있었다. 그들의 기세에 낙정은 의아해졌다.고묘묘 또한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우유를 잡고 물었다.“제사 일족을 부른 의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