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본왕의 왕비를 죽이려고 하다니, 본왕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있소?”부진환의 냉철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조정 전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아무도 감히 그의 위엄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고 침묵했다.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계집종 따위가 감히 조정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심지어 그 말을 진짜 믿을 줄은 몰랐소.”“다들 아침이라 잠이 깨지 않은 것이오? 아니면 정신을 집에 두고 온 것이오?”부진환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담겨있었다.황제가 곧바로 말했다.“낙청연이 저 신산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경도에서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적이 없소. 신분을 이용해 백성들을 해친 적도 없지. 그녀를 입궁시켜 대국사에 임명하려 한 것은 짐의 생각이오.”“낙청연을 죽이려고 한다면 우선 짐에게 먼저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오?”조정의 문무 대신들이 너도나도 무릎을 꿇었다.“용서하여주시옵소서!”낙청연이 태연하게 말했다.“전 대국사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적은 더더욱 없고요.”“하지만 지금 보니 대국사를 하지 않는다면 제가 켕기는 게 있어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겠군요.”“그러니 오늘 전 낙청연의 신분으로 대국사의 자리에 앉겠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낙청연은 참으로 오만방자했다!황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곧바로 명령을 내리려 했다.“잘 됐군. 짐이 지금 당장 명령을...”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전 밖에서 노여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라를 망칠 요녀가 대국사가 되다니요! 폐하, 폐하의 셋째 형님에게 속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그 목소리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려 보니 존귀하고 화려한 옷차림의 태후가 천천히 걸어왔다. 멀쩡한 모습을 보니 전혀 앓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비록 태후의 몸에서 병의 기운이 보이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태후는 진짜 앓고 있었지만 병 때문에 침상에서
부진환은 그윽한 눈빛으로 태후를 보며 말했다.“태후께서 다치셨으니 태의에게 보시지요.”태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본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곧 황제가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부진환도 걸음을 돌렸다.화원에 도착한 부진환은 태후와 마주쳤다.“태후 마마께서는 아픈 척을 참 잘하시는군요. 엄평소와 엄 태사가 죽었는데도 무너지지 않으셨네요.”태후는 차갑게 웃었다.“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무너질 수 있겠느냐?”“엄씨 가문에 나 혼자 남는다고 해도 난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난 태후이기 때문이다!”태후의 눈빛은 결연하고 사나웠으며 야망이 가득했다.부진환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렇다면 이것이 마지막 결승이 되겠군요. 태후 마마께서는 본인이 이길 것 같으신가요?”태후는 확신하듯 말했다.“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떠났다.-낙청연이 옥에 갇히자마자 부진환이 부랴부랴 따라왔다.“청연!”부진환이 옥졸들을 물렸다.주위에 사람이 없자 부진환은 낙청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옥에서 이틀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본왕이 해결하마.”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조급해하지 마세요.”“최대한 시간을 끄시면 됩니다. 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부진환은 살짝 놀랐다.“그래. 네 말대로 하마. 어찌 됐든 절대 너에게 아무 일 없게 할 것이다.”낙청연은 웃었다.“알고 있습니다.”“참,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부진환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것이 무엇이냐?”낙청연은 그에게 손짓해 보이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비밀을 속삭였다.그녀의 말에 부진환은 깜짝 놀랐다.“왜 일찍 내게 알리지 않은 것이냐?”“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이 비장의 무기를 쓰지 마세요.”부진환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알겠다.”부진환은 오래 있지 않고 금방 떠났다. 그는 태후가 가짜 증거를 만들어내는 걸 막으러 갔다.그러나 부진환은 태후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
보아하니 부진환이 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령해 낙청연이 옥에서 고문받지도 않고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은 듯했다.낙청연은 오히려 잘 먹고 잘 지냈다.매일 점심때가 되면 반 시진 정도 나가서 바람을 쐴 수도 있었다.물론 몰래 그녀를 내보냈다.그날 점심, 낙청연은 하늘을 빙빙 맴도는 아신을 보았다.주위에 사람이 없어 팔을 뻗으니 아신이 내려와 팔에 앉았다.아신이 그녀에게 동백꽃 한 송이를 물어다 주었고 낙청연은 향기를 맡은 뒤 웃었다.“그녀가 길에 올랐다고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냐?”아신은 대답할 수 없어 다시 하늘로 날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멀리 날아갔다.낙청연은 향긋한 동백꽃 향기를 맡으며 송천초의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했다. 아마 3일 뒤면 송천초가 경도에 도착할 것이다.하지만 낙청연은 3일이 지나기도 전에 태후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태후의 명령도 도착했다.“낙청연은 나라를 망칠 요녀이기 때문에 오늘 오시에 참수하여 백성들에게 보일 것이다!”“지금 당장 처형장으로 옮긴다!”낙청연은 곧바로 처형장으로 끌려갔다.처형장 주위에는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이번에는 태후가 직접 참수하는 걸 감시하기로 했다. 낙청연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주위 백성들은 의논이 분분했다.“섭정왕비가 요녀라니?”“저 신산은 내 운명을 봐준 적이 있소. 아주 정확했는데 백성들을 해쳤다니?”“이게 무슨 일이오?”비록 낙청연이 엄 태사와 엄평소를 죽였다는 헛소문이 돌긴 했지만 백성들은 그 때문에 낙청연을 신랄하게 욕하지 않았다.엄씨 가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무도 엄씨 가문의 편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고, 낙청연이 참수당하는 죄명을 받아들이지 못햇다.하지만 태후는 주위 백성들이 뭐라고 의논하든 상관없었다.많은 불만과 처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해도 태후의 눈빛은 확고했다.다들 오시가 되길 기다렸다.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나침반을 내게 주면 목숨은
낙청연은 가슴이 저릿했다.“비겁하긴!”“마음 아프오? 마음 아프면 내게 나침반을 넘기시오. 당신과 부진환에게 살길을 마련해주겠소.”“당신들이 경도를 떠나 다시는 조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어딜 가든 절대 뒤쫓아 가서 죽이지 않을 것이오.”낙청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을 믿지 않소. 날 먼저 살려준다면 고민해보겠소.”“나와 부진환이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나침반이 어디 있는지 절대 알려주지 않겠소.”낙정은 인내심이 닳았다.그녀는 당연히 낙청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낙청연을 놓아준다면 혹시나 도망친 뒤 그녀에게 나침반을 주지 않는다면 어찌한단 말인가?“낙청연, 당신은 참 간악하군. 당신과 내가 입장이 대립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과 친구가 되었을 것이오.”낙정은 낙청연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다 천 년 묵은 여우인데 누가 더 간악한지 비교할 의미가 있을까?”“날 속일 생각은 마시오.”낙정의 눈동자에 살기가 스쳤다.“난 기회를 줬소. 날 원망하지 마시오.”낙정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이제 곧 오시오. 준비되었소?”“이 세상에 정말 아무런 미련도 없소?”낙청연은 대꾸하지 않았다.곧 오시가 되었고 태후가 명령을 내렸다.“베거라!”낙정이 검을 들었다.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빛 때문에 눈이 시렸다.서슬 퍼런 칼날에 비친 빛 때문에 낙청연은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그러다가 하늘을 날고 있는 아신이 보이자 낙청연은 기뻤다.“잠깐!”말을 타고 달려온 누군가가 진소한에게 안겨 말에서 내렸다.동시에 돌덩이 하나가 낙정이 들고 있는 검에 부딪혔고 낙정은 뒤로 물러섰다.송천초는 황급히 낙청연을 일으킨 뒤 그녀의 몸을 묶은 밧줄을 풀고 물건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제가 늦은 건 아니지요?”송천초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고 낙청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태후는 진노했다.“감히 내 눈 앞에서 이딴 짓을 벌이다니,
마차 사면의 발이 천천히 거두어지자 마차 안에 앉아있는 이가 보였다. 바로 태상황이었다.그리고 황제와 섭정왕 부진환도 있었다.처형장 쪽에 도착하자 부진환은 곧바로 몸을 날려 낙청연의 앞을 막아섰다.태후는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뭐 하는 짓이냐! 태상황께서는 중병을 앓고 있는데 감히 태상황을 제멋대로 궁 밖으로 데리고 오다니! 섭정왕, 반역을 일으키려는 것이냐?”분명 낙청연을 참수할 수 있었다!그런데 또 말썽을 부리다니!게다가 태상황까지 모셔 왔다.황제는 태상황을 부축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비록 걸음이 늦었지만 그 광경만으로도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황제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태후를 보며 말했다.“모후, 짐은 모후가 이렇게 대역무도한 짓을 했을 줄은 몰랐습니다.”태후는 안색이 흐려진 채 태상황을 죽어라 노려보았다.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태상황이 걷는 모습보다 더욱 놀라웠던 건 태상황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이었다.그는 힙겹지만 천천히 말했다. 살짝 쉰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위엄이 넘쳤다.“태후가 짐에게 독을 썼다. 권력으로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했고 황위를 찬탈하려 했다. 오늘 태후를 폐위시키고 그녀를 평생 수희궁에 가둬둘 것이다.”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지만 위력이 넘쳤다.태후는 숨이 턱턱 막혔고 힘이 쭉 빠져 맥없이 주저앉았다.태상황이 언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까?상태가 계속 호전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태후는 경악과 노여움으로 물들어진 눈빛으로 낙청연을 노려보았다. 모두 빌어먹을 낙청연 때문이었다!그곳에 있던 관리들과 구경하고 있던 백성들은 충격을 받았다.태상황에게 독을 쓴 사람이 태후라니?바로 그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모후, 그래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부황에게 독을 쓰다니요? 부황은 옛정을 생각해 모후를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평생 수희궁에 갇혀 계시면서 부디 잘못을 뉘우치시기를 바랍니다.”“낙정은 태후가 태상황에게 독을 쓸 수 있게 태후에게 명왕익을 제공했다. 게다가 섭
“조심!”사람들은 다급히 코와 입을 막았다.부진환은 긴장한 얼굴로 낙청연을 보호했다.낙청연은 손으로 가루를 흩날리며 주위를 경계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낙정! 큰일입니다!”그녀는 곧바로 낙정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역시나, 바닥에는 핏자국만 남아있었다.낙정이 사라졌다.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도망쳤습니다!”낙청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고 혼란스러워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게 빨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겁니다. 누군가 그녀를 구한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그 말에 미간을 구겼다.“그자에게 한패가 있다는 말이냐?”낙청연은 잠깐 고민했다. 낙정은 홀로 다니는 성격이라 한패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낙월영이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누군가 두 사람을 끌어들여 한패로 만든 것 같았다.“엄내심!”부진환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여봐라. 지금 당장 엄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잡아들이거라. 한 명도 놓쳐서는 아니 된다!”“알겠습니다!”부진환은 걱정되어 직접 사람을 데리고 뒤쫓았다.절대 낙정이 쉽게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었다.낙청연은 송천초 일행과 함께 먼저 떠났다.신분을 들켰으니 낙청연은 더는 분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송천초 일행을 돌려보냈다.“천초야, 이번 여행은 순조로웠느냐?”낙청연은 진소한의 활력 찬 모습을 보았다. 기분이 아주 좋은 듯했다.진소한은 송천초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버님께서 우리의 혼인을 동의했소. 이제 저 신산이 우리에게 황도길일을 골라주면 되오. 때가 되면 그대들을 혼례에 초대하겠소.”그 말에 낙청연도 즐거웠다.“참 잘 됐군!”“며칠 동안 길을 재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으시오. 내가 한턱내겠소. 내친김에 그대들의 혼사에 관해 의논해 보는 게 좋겠소.”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미소는 아주 달았다.옷을 갈아입은 뒤 낙청연은 그들을 데리고 만복루로 향했다.위층에서 주
“경도 전체를 뒤져보았는데도 낙정의 종적을 찾지 못했다.”“엄씨 저택은 조사한 후 봉인했다. 하지만 아직 엄내심을 찾지 못했다. 저택 하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엄 태사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진주로 돌아간 뒤 엄내심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엄씨 저택에 돌아간 적도 없다고 한다.”“아무도 엄내심이 어디를 갔는지 알지 못한다.”낙청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엄내심이 진작 낙정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 걸고 그녀를 구하지는 않았겠지요.”“엄씨 가문이 쓰러진 건 사실이지만 경도에 엄내심을 도우려 하는 자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미 성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본왕은 다시 입궁해야겠다. 넌 먼저 쉬거라.”“알겠습니다.”부진환은 또 부랴부랴 떠났다.낙청연은 방으로 돌아온 뒤 먼저 송천초와 진소한이 혼례를 올릴 좋은 날을 골라주려 했다.하지만 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명격을 합치니 화형이 나왔다.게다가 요 몇 달 사이 재양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그중 가장 명확한 건 서쪽의 화형이었다.송천초와 관련된 서쪽이라면 서릉 제월산장이 아닌가?설마 송천초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어두운 밤, 멍한 얼굴로 차가운 침상 위에 누운 낙정은 오른쪽 눈에서 심한 통증과 어둠을 느끼고 있었다.엄내심은 그녀의 상처를 싸맨 뒤 머리 뒤에 매듭을 지었고 낙정은 고통 때문에 흠칫했다.“미안하오. 힘이 좀 많이 들어갔소.”엄내심은 붕대를 다 감은 뒤 일어섰다.낙정은 고개를 돌려서야 그녀가 보였다.시선이 반쯤 가려진 듯한 느낌이 익숙지 않았다.“내가 말하지 않았소? 당신이 원하는 걸 줄 수 있다고. 내 말을 듣지 않고 굳이 본인 계획대로 움직이더니 결국 일을 망치게 되지 않았소?”“태후가 쓰러진 건 별것 아니지만 당신은 눈 하나를 잃었소!”엄내심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낙정을 훑어보았다.“앞으로 이 얼굴은 다시는 천궐국에 나타날 수 없소. 지명수
낙청연은 태상황에게 침을 놓고 약을 쓸 생각이었다.태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했지만 말하고 길을 걷는 것이 아직 어려웠다.부경한과 부진환은 태상황과 함께 화원을 거닐고 있었다.“힘들구나.”태상황이 멈췄다.부경한이 그를 부축했다.“힘들면 돌아가서 쉬시지요.”태상황은 가지 않으려 했다.“아니.”부경한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말했다.“그러면 제가 부황을 업고 돌아갈까요?”태상황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햇빛을 보았다.“태양.”낙청연은 웃었다.“태상황께서는 이곳에서 해를 쬐고 싶으신 것이지요? 여봐라, 의자를 가져오너라.”태상황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의자에 누운 태상황은 이내 잠이 들었다.부경한은 두꺼운 이불을 가져와 태상황에게 덮어주었고 그의 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부진환은 낙청연의 손을 잡고 화원을 걷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청연아, 고맙다.”“뭐가 고맙습니까?”“부황을 치료해줘서 고맙다. 난 부황께서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낙청연은 웃었다.“말로만 고맙습니까?”부진환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뺨을 쥐고 입을 맞췄다.“뭘 원하느냐?”“본왕은 천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너에게 줄 수 있다.”낙청연은 살짝 놀랐다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제가 원한다면요?”그 말에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네가 원한다면...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낙청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장난입니다.”“겉으로는 냉철하고 모진 섭정왕이 아버지와 형제간의 정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습니다. 왕야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고 해도 왕야께서는 황위에 앉는 걸 거부하시겠지요.”“그런데 제가 왕야를 강요할 리가 있겠습니까?”“왕야께서 가지고 계시는 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부진환은 가슴이 설레 그녀를 품에 안았다.“본왕의 것은 전부 네 것이다. 본왕도 네 것이다.”낙청연은 그를 꼭 끌어안았다. 오직 이 순간만큼은 천하의 혼란으로 인해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