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절한 비명과 함께 우지직 소리가 울려 퍼졌다.매우 처참했다.낙청연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인두를 내려놓았다. 랑심의 피투성이 된 얼굴에 한 글자가 더해졌다.노.“너는 다른 사람을 너의 노예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느냐? 그럼, 지금부터 네가 노예가 된 기분을 좀 느껴 보아라.”“네가 진천리에게 한 모든 것은 배가 되어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랑심은 두 눈이 벌겋게 되어, 몸부림치자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낙청연, 나를 죽이지 않으면, 너는 언젠가 반드시 나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낙청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에게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낙청연은 장검을 들었다.장검은 칼집에서 나와 유유히 랑심의 손목에 떨어졌다.칼날은 랑심의 손목을 찔러 천천히 그녀 손목의 힘줄을 끊어버렸다.이 과정에, 감방 안은 비참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연이어, 낙청연은 랑심의 손발의 힘줄을 모두 끊어버렸다.그리고 또 손을 들어 랑심의 두 어깨를 일장으로 세게 가격하였다. 그러자 끊어지는 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투둑—랑심은 피를 내뿜었다.사람은 삽시에 초라해져 미워할 힘조차 없었다.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진천리에게 그런 짓을 할 때부터, 너는 이날이 올 거라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영원히 이 ‘노’ 자를 달고 폐인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할 것이다.”“남은 생을 너는 이런 모욕과 괴롭힘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실컷 당해보거라.”낙청연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 가버렸다.등 뒤에서 랑심의 고함이 들려왔다 “낙청연! 나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너는 나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오늘 당한 이 고통을 너에게 천만 배로 갚아주겠다!”“나의 손에 잡히지 않길 기도하거라!”랑심은 목이 찢어질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지금 날은 이미 밝았다.낙청연은 바로 가서 랑목을 풀어주었다.랑목은 낙청연을 보더니, 감격하여 앞으로 달려와 말했다: “누이……”낙청연은 여전히
낙청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낙청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만왕이 이미 그녀에게 만왕의 자리를 물려준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랑목은 이 결과를 바꿀 힘이 없으니,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변한 것일까?어쨌든 솔직히 말하면 그들도 그전에 원한을 맺은 적이 있다.그때 낙청연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날이 어두워지자, 대오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머무를 천막을 지었다.사냥하는 사람도 있었고, 밥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전체 주둔지는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낙청연은 한가로이 거닐다가 마침 온천을 보고 목욕을 하고 싶었다.십여 일 동안 성을 지키면서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몸은 이미 자신도 역겨울 정도로 냄새가 났다.주위에 사람이 없자, 낙청연은 슬그머니 물속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남자 몇 명이 이쪽으로 물을 뜨러 왔다.“저기, 사람이 있는 것 같소.”낙청연은 물속에 숨에 감히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내려가 보자고! 혹시 적이라도 있을 수 있으니까!”낙청연은 흠칫 놀랐다.바로 이때,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 뭐 하는 겁니까?”“우리는 이곳에서 목욕할 터이니, 당신들은 일단 자리를 비켜주세요.”그리하여 그 남자들은 자리를 떴다.한참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또 다른 여인이 걸어오더니, 강 옆에 옷 한 벌을 내려놓았다.곧이어 두 사람은 돌아섰다.“원응 공주, 이건 랑목 왕자께서 당신을 위해 준비한 옷입니다. 다 씻으면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우리가 이곳에서 지킬 터이니, 누구도 오지 않을 겁니다.”낙청연은 순간 멍해졌다. 랑목?설마 랑목이 몰래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건가?랑목과 정면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목욕을 끝내고, 낙청연은 랑목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녀의 옷은 냄새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랑목이 가져온 옷은 자주색 빛의 이국적인 긴 치마로 정교하면서도 화려했으며, 신비롭고 아름다웠다.그녀가 좋아하는 색상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조금의 시간을 벌어, 도망쳐 나온 것이오.”“누이는 나 때문에 상처를 입고 며칠을 고열에 시달리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소. 그런데 누이는 혼미 상태에서도 신신당부했소. 의원에게 절대 부왕과 모후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소.”“그래서 결국 누이의 다친 일을 숨겼소.”“그 때문에 내가 벌을 면할 수 있었소.”“나중에 누이가 죽고, 나도 따라가고 싶었소.”“그런데 부왕이 말씀하시길, 대단한 제사장이 있는데, 누이를 부활할 수 있다고 했소.”“그 뒤에 나에게 랑심이 생겼소.”“부왕은 랑심이 바로 부활한 누이라고 했소. 다만 어릴 적 기억은 없어졌다고 하길래 나는 믿었소.”“비록 그녀의 성격은 예전과 달랐지만, 나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보상하고 싶어서 그녀에게 잘해주었소.”“어쩌면 나는 줄곧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소. 나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랑목의 어투는 무거웠다.낙청연은 랑목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러니 랑심은 확실히 만왕의 친딸이 아니었다. 랑심의 존재는 단지 만왕이 랑목을 속여 랑목이 살아가게 하는 버팀목이었을 뿐이다.어쩐지 랑목은 전혀 야심이 없었으며, 랑심과 왕위를 쟁탈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낙청연은 또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래서 원응의 죽음은, 그녀가 살을 벤 원인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랑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을 감췄기 때문에, 누이의 상처는 제때 치료받지 못했소.”“후에 병이 나서, 상처가 악화 되었소. 다시 구할 때는 이미 늦었소.”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럼, 왜 감춘 것이냐?”랑목이 대답했다 “누이가 태어난 날, 하늘은 이상한 현상을 보여서, 족인들은 누이를 신녀로 추앙했소. 모두 누이가 왕위를 계승할 적임자라고 했소.”“족인들은 누이를 나보다 훨씬 중시했소.”“만약 나 때문에 누이가 다친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나를 때려죽였을 것이오.”“하지만 훗날 누이가 죽자 나는 차라리 맞아 죽고 싶었소.”이 말을 듣고 낙청연
여기까지 들은 낙청연은 깜짝 놀라 말했다 “무슨 뜻이냐?”랑목은 생각에 잠기더니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우리 만족은 지금 보이는 부락 외에 다른 흩어진 부락들도 있소. 우리에게 귀순하지 않았고, 우리의 명령을 듣지도 않소.”“변경에서 물자를 뺏기 위해 천궐국 사람들을 습격한다고 들었소.”“랑심도 그런 일을 했었소.”“몇 년 동안 진천리는 평녕성에 주둔하면서 랑심과 싸워왔소. 랑심은 진천리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증오도 섞인 것 같소.”“진천리를 적으로 생각하면서 정복하려 했지만 진천리는 쉽게 굽히지 않았소.”“연모가 집착이 되고, 랑심은 엄가와 손을 잡았소. 그저 진천리를 잡기 위해 말이오.”“랑심이 진천리한테 자신에게 복종하면 부군으로 맞아 천궐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하지만 진천리는 승낙하지 않았고, 그렇게 랑심은 홧김에 진천리를 못살게 구는 것이오.”“랑심이 부왕에게 천궐국을 치자고 매달렸소. 그래서 결국 부왕도 마지못해 승낙한 것이오.”“이 전쟁은, 랑심의 사심으로 일어난 것이오.”“진짜 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그제야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었다.“랑심은 자격이 없다.” 낙청연이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랑목은 제 발 저려하며 말없이 옆에 있었다.필경 이번에도 랑목은 랑심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은 그런 랑목의 마음을 한 번에 꿰뚫었다.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가와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평녕성의 첩자는 누구인지, 경도에서 너희를 내보내 준 사람은 누군지 빠짐없이 말해주면 용서해주마.”이 말을 들은 랑목은 두 눈을 반짝였다.“정말이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랑목은 기뻐하며 낙청연을 끌어당겼다 “그만 드시오, 내가 다 적어주겠소.”낙청연은 랑목을 따라 막사로 들어갔다. 랑목은 모든 경과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말해주었으며, 접촉해왔던 사람들을 모두 적어주었다.아주 명확하게 말이다.낙청연은 그 명부를 보며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이
궁궐이었다!천궐국처럼 금빛 찬란한 궁궐이 아니라 여국의 고요하고 청아한 느낌의 궁전이었다.사부님이 살았던 곳이랑, 완전히 똑같았다!심지어 궁전의 장식, 걸려 있는 서화와 놓여있는 소장품까지도 완전히 똑같았다.이곳에 들어오니 오랜만에 익숙한 느낌이 몰려와 낙청연의 마음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복잡한 기분이었다.“오래전에 지어진 곳 같습니다.”만왕은 뒷짐을 짊어지고 웃으며 말했다 “여긴 내가 그녀를 위해 지은 곳이지. 여국의 집과 똑같다고 하더군.”“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줬지. 집이 그리울까 봐 똑같이 지어줬네.”“이곳의 장식, 심지어는 상과 의자까지 모두 내가 직접 만들었지.”낙청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만왕께서 만든 것이란 말입니까?”“대체 무슨 사이였습니까?”“설마 두 분…”만왕은 침울한 눈빛으로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 연모가 아니라면 어떻게 서로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겠는가.”“하지만 난 그녀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었네.”“다 내 잘못이네.”“하지만 내 동생에게 시집갈 줄은 생각도 못 했네.”말을 마친 만왕은 마음이 아파 눈시울을 붉혔다.“낙영의 모든 비밀은 이곳에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게.”그렇게 만왕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만왕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겁고 허약해 보였다.만왕이 떠나고 나서야 낙청연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정말 예전에 살았던 곳과 똑같았다.낙청연은 앞으로 걸으며 침궁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창가의 상에는 진달래가 놓여 있었다.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 화분을 움직였다. 그러자 벽에서 기계의 움직임이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역시나 밀실도 똑같게 만들었다.사부님은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게 확실했다.낙청연은 불안한 마음으로 밀실에 들어섰다.밀실은 크지 않았지만 벽 가까이 서가가 있었고 흑단 태사의가 놓여 있었다.태사의를 만지니 눈앞에 사부님이 위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이곳은 구석마다 사부님의 기운이 넘쳤다.사부님이 이곳에 살았었다는
“오늘 신분을 들켰더니 다들 저를 만족 진영에서 내쫓으려고 합니다.”“전 괜히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세월을 바쳤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오늘 전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혼검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많은 것에 신경 쓸 수 없습니다.”“전 랑목을 수산(獸山)으로 유인했고 원응은 역시나 그를 구하러 갔습니다...”거기까지 읽었을 때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랑목이 수산으로 들어가고 원응이 그를 구하게 된 건 사부님이 계획한 일이었다.그렇다는 건 랑목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의미했다.그래서 원응이 죽었고 사부님은 왕과 원응을 부활시키는 거래를 해 사혼검을 얻은 것이다.다음 내용을 보니 몇 년 뒤의 일이었다.사부님은 당시 사혼검을 챙겨 만족을 떠났지만 몇 년 뒤 다시 돌아왔다.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약속한 일은 지켰습니다. 원응은 이제 곧 부활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늘을 거스른 일이기에 쓰라린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원응은 열일곱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저 또한 결과적으로 업보를 갚아야 합니다.”“전 천궐국에 가서 그녀를 키울 것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그녀의 이름이 낙청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보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과 당신의 딸은 이번 생에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낙청연은 흠칫했다.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러니까 그녀는 낙영과 낙해평의 딸이 아니라 부활한 원응이다.그리고 원응은 섭정왕부에서 죽었다.사부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하늘을 거스르고 운명을 바꾼 대가다.사부님은 원응의 죽음을 계획해 사혼검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원응을 되살렸다.그 이유는 사부님이 왕을 사랑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낙해평에게 시집을 갔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 낙해평의 얼굴이 왕과 비슷해서일 것이다.그리고 사부님은 과거 왕에게 그의 동생을 잘 보살펴줄 것이라고 약속한 적 있다.사부님은 왕과의 약속을 전부 지켰다.이제야 낙청연은
탁자 위의 약을 본 낙청연은 그것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약 냄새가 아주 강했으나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상자 안에 있던 약은 낙월영이 먹었다.낙청연은 사부님이 숨겨둔 비밀이 약이 아니라 상자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상자 안에도 마찬가지로 약이 들어있는 걸 보니 어쩌면 중요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녀는 약을 챙겼다.어쩌면 언젠가 이 약이 긴히 쓰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궁전을 벗어난 뒤 낙청연은 왕이 언덕 옆 나무 밑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외롭고 힘없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자신의 또 다른 신분을 알게 된 낙청연은 어떻게 그를 마주해야 할지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왕이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웃으며 물었다.“이렇게 빨리 나온 것이냐? 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느냐?”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당시 사혼검을 낙영에게 건네준 뒤 그녀를 다시 만난 적이 있습니까?”왕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미워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거겠지.”낙청연은 미간을 구겼다.“그렇다면 궁전 안 밀실에 대해 아십니까?”왕이 대답했다.“안다. 하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다.”“무엇 때문입니까?”낙청연은 미간을 구겼고 왕은 안색이 흐려진 채 잠자코 말이 없었다.하지만 낙청연은 곧바로 답을 깨달았다.“그녀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우셨습니까?”왕은 침묵을 지켰다.묵인한 셈이었다.“안에 들어가 보시겠습니까?”왕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저했다.“전 먼저 가보겠습니다.”낙청연이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뜨려 하자 왕이 불러세웠다.“오늘 밤 즉위식이 있으니 준비하거라.”낙청연의 걸음이 멈췄다.“알겠습니다.”낙청연은 언덕에서 내려와 고개를 돌려보았다. 왕은 여전히 나무 밑에 앉아있었다.그가 밀실에 갈지 가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그곳에 가본다면 그는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고 낙영이 그동안 어떤 심경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마을로
곧이어 환호 소리가 이어졌다. 여인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춤을 추며 환호를 내질렀다.랑목이 다가와서 들고 있던 꽃 한 묶음을 낙청연에게 건네줬다.“존경하는 저의 여왕께 바칩니다.”낙청연은 꽃을 건네받은 뒤 웃음을 터뜨렸다.“랑목, 끝난다면 왕위를 너에게 주겠다.”랑목의 미소가 굳었다.“누이, 내가 누이를 보좌하겠소. 그러니 내게 왕위를 주지 않아도 되오.”낙청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하지만 난 결국 천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다.”“돌아가고 싶다면 돌아가시오. 아무도 막지 않을 것이오.”“하지만 이 자리를 내게 넘겨서는 아니 되오. 이것은 누이의 것이오.”랑목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낙청연이 입을 열려는데 연라가 부랴부랴 왔다.“왕상께서 원응 공주를 만나보고 싶다고 합니다.”정신을 차린 낙청연은 그제야 왕이 진작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연라와 함께 방에 도착했고 침상 위에 누워있는 왕을 보았다.그는 아주 허약했다.“왜 이렇습니까?”낙청연이 재빨리 진맥하려 했지만 왕은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때가 된 것뿐이다.”“원응아, 네가 만족에게 두터운 정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왕의 자리도 내가 너에게 억지로 준 것이지.”“하지만 넌 자유롭고 아무도 널 묶어둘 수는 없다. 역대 왕들 또한 이곳저곳 여행한 경험이 있고 아무도 캐묻지 않았다.”“내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일족을 지키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난 네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네가 부활해 다시 내 옆에 온 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다.”말을 마친 뒤 왕은 몇 차례 기침하고 말했다.“랑목은? 랑목과 따로 얘기를 나눠야겠다.”왕은 낙청연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낙청연은 방에서 나왔고 연라도 그녀와 함께 나왔다.“왕의 상황이 왜 갑자기 이렇게 심각해진 것이오? 그의 체내에 있는 독이 이렇게 빨리 퍼질 리가 없소.”연라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왕의 체내에 있는 독은 오래전부터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