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야?”성도윤은 진무열의 전화를 끊고는 바로 욕실로 달려가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안에서 차설아의 허둥대는 소리가 들렸다.“아니, 나 괜찮아! 들어오지 마! 제발 들어오지 마!”그리고 바로 안에서 쿵쾅쿵쾅 소리가 났다. 전혀 괜찮지가 않은 소리였다.성도윤은 잠시 머뭇하더니 결국 문을 밀고 들어갔다.“야! 누가 들어오래! 나가! 당장... 나가!”욕실의 차설아는 이미 욕조에서 일어나 있었고 아무것도 걸치지 못 한 채 뛰어 들어온 성도윤을 보고 급하게 목욕 타월을 하나 집어 몸을 가렸다. 그런데 아무리 그녀가 빠르게 가렸어도 성도윤에게 다 보이고 말았다.“...”성도윤은 큰 체구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서는 입술이 말랐는지 관능적으로 목젖을 젖혔다.마른 차설아의 몸은 늘 옷에 가려져 있어서 이렇게 은근히 좋은 몸매인 줄 몰랐다. 지나간 사 년 동안 이렇게 어여쁜 보석 같은 여인을 두고 뭘 했기에 이제야 그걸 안단 말인가!성도윤은 한참 지나서야 마음의 진정을 찾았고 몸뚱아리의 충동을 가라앉혔다.그제야 욕조 위쪽에 옷을 올려둔 선반이 떨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차설아의 옷가지들이떨어져 욕조에 빠져 젖어 있었다. 차설아가 두른 목욕 수건도 축축하니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도와줄까?”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고 차설아는 축축한 수건을 두르고 그렇게 남자 앞에 굳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연못에 떠오른 연꽃처럼 사랑스럽고 유혹적이었다.“그래 보여?”얼굴부터 발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이 상황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이 사람은 뭘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나? 친하지도 않으면서? 옷도 입고 있지 않는데 달려 들어오면, 그게 괜찮을 일인가?’그녀가 타월로 몸을 가렸으니 망정이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어떻게 도와줄까?”성도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향해 두어 걸음 걸어갔다.“잠시만. 오지 마! 그게 지금 나한테는 제일 큰 도움이야!”차설아는 욕
성도윤과 차설아가 모두 옷을 갈아입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졌다.차설아는 침대에 기대고 있었고 성도윤은 파란 가운을 입고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다. 그런 성도윤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저기... 그저 찰과상을 입었을 뿐인데, 진짜 이렇게 지켜준다고 진 치고 있을 건가? 당신은 당신 집에 가서 잠을 자.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성도윤은 신문을 덮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침대 위의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정색해서 말했다.“당신은 나를 구하기 위해 상처를 입었고, 나는 당신이 다 나을 때까지 돌봐 줄 책임이 있는 사람이지. 혹시, 혼자서는 잠을 못 자니까 재워 달라고 앙탈 부리는 건가?”“아니!”차설아는 두 팔로 대문자 X자를 취하고는 남자를 등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더는 의미 없는 말다툼하기 싫었다.‘됐다. 됐어. 지키고 싶으면 지키라고 해. 어차피 소파에서 저러고 있으면 힘든 건 본인이니까. 난 내 잠이나 잘란다!’시간은 1분 1초 지나갔고 은은한 스탠드 조명에, 집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고 가끔 성도윤이 잡지를 뒤집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요즘 잠을 설치던 차설아는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처음 느끼는 든든함에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성도윤도 눈이 피곤한 듯 잡지를 내려놓고 눈을 감더니 눈 주위 혈을 눌렀다.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부드러운 조명이 더해서 완벽했다.등지고 누운 그녀는 작은 토끼처럼 웅크린 자세로 잠들어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성도윤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흠, 스치는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어찌 나를 보호할 용기가 났지?’성도윤이 이렇게 옆에서 지키려는 이유는 그녀가 한밤중에 깨어나 목마를 때,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고, 또 그를 해치려는 그 세력이 그녀에게 보복하러 올까 봐 걱정해서였다.그 세력이 거듭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니, 그 역시도 한 치의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성도윤은 심호
햇빛이 눈 부신 다음날, 진무열은 일찌감치 차설아의 개인 파일을 보내왔다.그건 성도윤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그는 충격에 빠졌다.차설아와 결혼한 지 4년이 되었는데, 이혼 직전에야 자기 아내가 해안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이름난 학생이라는 걸 알았다!성적이 좋은 덕분에 2년이나 월반한 그녀는 수능 없이 해안대학의 간판 학과인 전자통신학과에 입학했고 전자기장과 전자파를 전공했다.대학교 2학년 때는 보조강사로 실험 수업을 가르쳤고 그녀의 강의는 늘 학생들로 꽉꽉 찼다.대학원생 2년 차, X 국의 가장 유명한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갔고, 그곳에서도 여러 차례의 전설이 되었다.대학원생 3년 차에 모든 게 변했다.어느 날 갑자기 파산당하여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채무를 감당하지 못한 부모님은 투신자살했다. 한때 8대 가문의 하나였던 차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원수가 수도 없이 많아졌다.차설아의 할아버지 차무진은 임종 전에 그녀를 맡겼다.성도윤은 집안 어르신의 회유 끝에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돌아와 차설아와 급히 결혼식을 올렸다.계약 결혼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성도윤은 차설아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둘이 처음 만나게 된 그날에는 축축하게 비가 내렸다.단정한 옷차림의 차설아는 마르고 연약한 몸에 귀에는 꽃을 꽂고 있었는데,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성도윤은 과묵한 여자는 별로였기에 둘은 첫인상부터 서로 맞지 않았다.그래서 지난 4년 동안 그는 법적인 아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녀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공개적인 석상에서 금실 좋은 부부로 연기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차설아는 그저 집안을 장식하는 가구일 뿐이었다.4년 동안 차설아는 성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그 자리에 맞는 최적화된 사람이었다.단장하고 우아하며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그녀는 4년 동안 그 어떤 구설에도 오르지 않았다.임채원만 없었더라면 성도윤도 이 결혼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따사롭게 비추는 햇살 사이로 차설아가
차설아는 불편한 듯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시미치를 떼는 거야. 내가 뭘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야?!’성도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마. 내가 한 모든 일들은 당신이 목숨 걸고 날 구해준 거에 대한 감사의 표시니까. 다른 생각은 전혀 없어.”그 말을 들은 차설아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4년 동안 성도윤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겠는가?“그럼 됐어.”한결 마음이 편해진 차설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린 서로 아무 감정 없으니까 이혼 증명서만 받으면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네.”“...”성도윤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역시도 같은 생각인데 차설아가 이런 말을 하자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차설아는 잠옷을 걷어 올리더니 팔에 난 상처를 짚으며 말했다.“봐봐, 상처에 딱지가 앉았어. 이제는 스스로 잘 돌볼 수 있으니까 정말 가도 돼.”남자는 그녀의 팔에 난 상처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약은? 내가 발라줄게.”“아니야, 정말 괜찮아.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차설아의 거절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물약을 꺼내 면봉으로 상처를 닦아줬다.생각보다 크고 깊은 상처를 보아 그 당시 얼마나 아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아파!”물약이 살에 닿자 차설아는 너무 아픈 나머지 이를 악물었다.“참아...”성도윤은 부드럽게 상처를 소독하며 가볍게 호호 불었다.“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이 왜 굳이 나서서...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널 구하려고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차설아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이 배은망덕한 자식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다음부터 이런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난 네가 위험을 감수하고 나설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성도윤은
“네가 여기 왜 있어?”차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찾아온 불청객을 바라봤다.“환영 안 해?”바람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검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우린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해커계의 거물이 왜 갑자기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차설아는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잘 모른다고?”바람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비록 만난 적은 없어도 인터넷에서 이미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으니 이 정도면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거장 스파크?”그 말을 들은 차설아는 헛웃음이 나왔다.아니나 다를까, 그날 성대그룹에서 이 녀석은 모든 게 계획이었고 사실은 진작에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안 그래도 빅보스를 만나고 싶어 했던 차설아에게 잘된 일이었다.“안녕, 난 거장 스파크야. 차설아라고 해.”그녀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안녕, 난 거장 바람이야. 선우시원이라고 불러도 돼.”차설아의 손을 맞잡은 바람은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그는 수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거장 스파크가 처음으로 글로벌 해커 리그에서 근소한 차이로 바람을 이긴 뒤부터 그는 꼭 거장 스파크를 찾겠다며 각오를 다졌다.소문대로 오십이 넘는 백발노인인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바람맞은 미모의 여인이라니...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다!“선우시원?”선우라는 성이 흔치 않아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물었다.“실례지만, S시의 유명한 선우도환과는 어떤 관계야?”“우리 할아버지야.”바람은 어깨를 으쓱이며 솔직하게 답했다.“불패 신화에 마귀 용병을 가진 S 시의 선우도환이 당신 할아버지라고?”차설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어릴 적에 할아버지한테서 자주 들었다. 전쟁터에 나갔을 때 가장 친한 형제가 두 명 있었는데 하나는 차무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우도환이었다.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지금 사이가 틀어져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할아버지는 차무진의 편에 섰기
차설아는 바람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명함을 그대로 버렸다.어쨌든 목숨 한번을 구해줬으니 이런 장난 때문에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폭로를 하든 말든 대수롭지 않았다.바람의 입에서 나온 ‘성씨 가문이 곤경에 처했다’는 말은 그녀를 매우 궁금하게 만들었다.‘설마 성도윤이 계속 습격을 당한 것도 이것 때문인가? 도대체 누가 감히 8대 가문의 우두머리인 성씨 가문을 도발하는 거지?’배경수에게 알아보라고 시키려던 찰나 이혼할 마당에 전남편 걱정하는 자신을 보며 정신을 번쩍 차렸고 남 걱정하는 사이에 자신부터 챙기자는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4년 동안 성씨 가문을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고 되레 욕설을 퍼붓는 그들에게 정이 털렸다.날씨가 좋은 걸 보고 차설아는 오랜 만에 외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배경윤한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오후 3시 쇼핑몰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뱃속에 있는 두 아이는 곧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슬슬 기대되어 아기용품을 미리 사두고 싶을 정도였다.“경윤아.”한껏 꾸미고 나온 배경윤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그녀는 배경수의 쌍둥이 여동생으로 배경수와 마찬가지로 배성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그래서 배경윤한테서는 타고난 자신감이 느껴졌고 화려한 카리스마로 사방을 휘어잡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았다.오직 차설아 앞에서만 그녀는 털털한 모습을 보이며 ‘바보’가 된다.“우리 언니 그동안 잘 지냈어? 연락도 없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상처는 괜찮아졌는지 어디 한번 봐봐...”배경윤은 커다란 포옹을 하고선 다급하게 차설아의 상처를 살폈다.“오빠가 너무했어. 언니 귀찮을 거라며 죽어도 못 만나게 하잖아. 언니를 독차지하려고 그러는 게 틀림없어!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언니를 넘보다니, 설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언니는 내 껀데.”말을 마친 배경윤은 차설아를 안으며 그녀에게 입맞춤했다.“됐어, 오글거리니까 그만해. 간만에 나왔는데 쇼핑이나
소영금은 코웃음을 친 뒤,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내 아들은 쟤 만지기도 싫어해. 임신은 무슨! 애도 못 낳는 주제에 우리 집안의 좋은 건 다 빨아 먹으면서 참 염치도 없지.”소영금의 말에 심기가 상한 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반박하려던 순간 배경윤이 다가와 소영금한테 욕설을 퍼부었다.“하하하, 아줌마는 잘 낳아서 자식 하나는 억울하게 죽고 하나는 제멋대로 살고 있나 봐요? 내가 아줌마라면 자식들이 왜 이 모양인지 반성했을 거예요. 당신이 내뱉은 그 독한 말은 전부 자식한테 돌아갈 거예요.”이혼 계획이 없었을 때 배경윤은 차설아의 처지를 생각해 그녀가 난처해질까봐 소영금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하게 될 마당에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쉴 틈 없는 공격에 얼굴마저 새하얗게 질린 소영금은 배경윤을 가리켰다.“너. 너, 너...”그 모습을 본 임채원은 시어머니께 잘 보일 신이 주신 기회라며 기뻐하더니 옆으로 다가가 연약한 척 입을 열었다.“배경윤 씨,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그렇지 어떻게 윗사람한테 억지 부르며 무례하게 대할 수가 있죠?”‘억지를 부린다고?’그녀의 말에 화가 난 배경윤은 헛웃음이 나왔고, 손을 써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말을 아끼자는 원칙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팔을 뻗어 임채원의 뺨을 내리쳤다.“짝!”경쾌하고 우렁찬 소리에 소영금과 임채원은 정신이 멍해졌다.연약해 보이는 차설아와 달리 친구인 배경윤은 무서울 게 하나 없는 불같은 성격이었고 차마 건드릴 수 없었던 소영금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건방지게 말했다.“재수 없는 것, 너는 어쩜 이딴 친구를 사귀었니.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얼굴이 너무 두꺼워서 제 친구가 손을 다쳤을 것 같은데 사과하려면 그쪽이 해야죠.”“너!”차설아가 가만히 있자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소영금은 미래의 며느리를 대신해 화풀이하려고 팔을 걷어 올렸다.그런데
차설아는 더 이상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차가운 남자의 시선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때리면 때린 거지, 더 이상 해명할 것도 없어.”차설아가 억지를 부린다고 해도 좋고,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상관없다.해명 같은 건 의미가 없어졌다.성도윤과 이혼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차설아는 성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내연녀에 억센 여자 한 명을 추가한들 또 어떻겠는가?소영금은 거만한 표정으로 흥분하며 말했다.“거봐, 인정하잖아. 아들 뭐 하고 있어? 얼른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옆에서 보고 있던 배경윤은 또 화가 치밀어 올라 폭주했다.“사과는 개뿔. 당신 엄마랑 이 여우 년이 애도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언니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뺨을 때렸겠어요?”성도윤은 이 말을 듣고 차갑게 눈살을 찌푸리며 소영금과 임채원을 보았다.“사실이야?”임채원은 좀 켕기는 듯 우물쭈물하며 한참 동안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소영금은 오히려 당당하게 콧방귀를 뀌었다.“오해는 무슨. 애를 갖지 못하는 건 사실이 아니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배경윤은 목에 뭐가 걸린 듯 말문이 턱 막혔고,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대체 누가 그래요? 언니가 애를 못 낳는다고?”배경윤은 홧김에 차설아를 끌어당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내가 말해주죠. 언니 임신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요. 그것도 이란성 쌍둥이라고요!”배경윤의 말은 중핵무기에 버금갈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차설아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뭐지? 경윤이한테 임신 사실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소영금은 착잡한 심정으로 차설아의 배를 쳐다보며 반신반의했다.“아들, 설아한테 마음이 없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애가 생겨?”성도윤은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 차가운 눈으로 차설아의 배를 바라보며 안색이 굳어졌다. 그와 차설아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 수 있겠는가?배경윤은 사람들의 반응에 만족하며 진지하게 헛소리를 이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