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실버 부가티 베이론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조수석에 앉은 차설아는 덤덤한 얼굴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성진이 좋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오늘 밤에 많은 함정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다른 사람을 상대하면 몰라도 성진같이 실속 없는 바보를 상대하는 건 그녀는 누구보다 잘했으니까 말이다.차 안에는 경쾌한 리듬의 록 스타일 노래가 흘렀다.성진은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리듬을 따라 창문을 툭툭 두드렸다. 마디가 뚜렷한 길고 가는 그의 손가락은 어둑어둑한 가로등 불빛에 비쳐 유난히 보기 좋았다.“당신이 아직 자지 않았다면, 내가 아직 그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맨정신을 한 것도 죄라면, 제발 함께하기로 한 약속을 무르지 말아요, 제발 떠나지 말아요...”남자는 몸을 흔들며 유쾌한 목소리로 흥얼거렸다.성도윤과 비슷한 옆모습을 가진 그는 완벽한 이목구비와 정교한 윤곽을 자랑했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차설아는 한순간 바보 같은 성진이 혹시 잘생긴 남자의 탈을 썼는지 의심이 갔다. 평소보다 매력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부대표님 노래를 잘할 줄은 몰랐네요. 파이브 밴드의 노래가 잔잔하게 들리지만 사실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자칫하면 과하게 들릴 수 있는데 부대표님은 아주 적절하게 부르시네요, 심지어 원곡보다 듣기 좋은데요...”차설아가 진심으로 칭찬했다.바보 같은 성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설아를 놀라게 했다.“그래요?”성진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옆에 앉은 여자를 힐끔 바라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제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설아 씨가 처음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설아 씨보다는 못하죠.”“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럼 제가 노래한 걸 들어본 적이 있는 거예요?”“들어보고 말고요, 심지어 설아 씨 열
차설아는 항상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기회만 있으면 그녀에게 온갖 비난을 하고 수모를 안겨줬던 시동생이 그녀의 열혈 팬이었단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했다.‘너무 이상하고도 신기하잖아?’“그러니까 내가 도윤 씨랑 결혼하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 게다가 내 팬이었다고요?”차설아는 믿기 어려워 거듭 성진에게 확인했다.‘바다의 소리’ 밴드는 그녀가 대학에 다닐 때 심심해서 실험실 메이트들과 만든 밴드였다.차설아와 친구들은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는 괴짜가 아니라, 저마다 악기를 다루고 노래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친구들이었다.특히 차설아는 작사와 작곡 실력은 물론이고, 듣기 좋은 목소리까지 가지고 있었다.‘바다의 소리’는 처음에 녹음한 싱글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이로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그리고 또 지하 펍에서 공연했는데 공연을 할 때마다 만석을 기록하며 더 많은 팬을 얻게 되었다.‘쯧쯧,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래도 결혼하지 않았을 때 훨씬 재밌게 살았네.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는 그 느낌, 너무 짜릿하잖아.’나중에 차씨 가문에는 변고가 생긴 바람에 차설아는 성도윤과 결혼을 했고, ‘바다의 소리’는 그대로 해체되었다. 밴드의 멤버들도 지금은 과학 연구계의 거물급 인물로 거듭났다.그들만의 눈부신 과거는 영원히 역사의 흐름 속에 새겨졌었다...다만, 성진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당연히 설아 씨를 알고 있었죠. 그때 나에게 설아 씨는 더없이 순진하고 성결한 여신이었는데요. 설아 씨 꿈이라도 꾸면 오히려 설아 씨를 더럽힌 것 같아 참회했는데요.”“푸흡!”차설아는 성진의 말을 듣고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부대표님, 농담도 정도껏 하셔야죠. 이런 순애보 스타일은 전혀 부대표님과 어울리지 않아요, 엄청 황당하게 들리는 거 알아요?”“믿기지 않아요?”성진은 진지한 얼굴을 보이더니 차설아에게 말했다.“잠시만요, 증명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긴 손가락으로 차의 모니터에서 저장 파일을 누르더니 그
그래서 차설아는 궁금증을 참고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있기만 했다.성진의 스포츠카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도시에서 점점 황폐한 교외로 진입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는데 가로등 하나 없어 분위기는 점점 더 기괴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르는, 범죄를 저지르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하지만 차설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싸움 실력으로 아무리 다리를 다쳤다고 해도 성진 같은 실속 없는 사람은 열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그러니까...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차설아는 귀찮아진 듯이 어두운 얼굴색으로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요, 곧 도착할 거니까.”성진이 말하고는 차를 움푹 팬 오솔길로 꺾었다. 길 양쪽은 모두 울창하고 깃발처럼 우뚝 선 측백나무였다.차설아는 창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곳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이곳이 어딘지를 떠올렸다.‘어머, 이곳이 예전에 나랑 성도윤이 떨어졌던 묘비가 있는 숲 아니야?”이 숲은 음기가 가득해 죽은 사람이 이곳에 묻히면 무궁무진한 자손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산 사람이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 좋지 않은 것들과 부딪쳐 운이 나빠지고 운명이 기괴해진다고 한다.‘성진은 왜 한밤중에 날 이런 으스스한 곳에 데려온 거야? 나 깁스 금방 풀었단 말이야, 더 다치고 싶지 않다고!”“유턴해요!”차설아가 단호하게 성진을 향해 명령했다.“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지금 당장 유턴해요.”하지만 성진은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로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핸들을 지금 제가 잡고 있어요, 제가 유턴하기 싫다면요?”“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저 원망하지 말아요.”차설아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점점 차가워지더니 갑자기 살기가 어렸다. 나비칼을 성진의 목에 바짝 붙이며 말했다.“어차피 이곳은 외진 곳이라 사람보다 귀신이 더 많을 거예요. 자꾸 저 자극하면 당신 목을 베어서 이곳에 묻을 거예요!”성진도 지독한 사람이었다.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흥분의 표정으
하지만 성진 입가의 웃음은 더 깊어졌다.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차설아를 빤히 지켜보며 물었다.“지금 저를 걱정하는 거예요?”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피를 흘려서 설아 씨 관심을 얻을 수 있다면, 목을 베어서라도 설아 씨를 웃게 하고 싶네요.”“그럼 가서 죽어요!”차설아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그에게 손수건 하나 던졌다.성진은 손수건을 들더니 오뚝한 코 앞에 갖다 대고는 깊이 들이마시고서야 아쉬운 듯 피가 흘리는 목을 덮고는 매듭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좋은 손수건인 것 같은데, 이런 데에 쓰이다니 아쉽게 되었군요.”“미쳤어, 정말 미쳤어.”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후회가 몰려왔다.차설아는 성진이 아무 생각이 없는 바보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서 성대 그룹의 기밀이라도 알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성진은 차설아를 방심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실력을 감춘 것이다. 워낙 미친 사람이라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이렇게 시간을 끈다면 오히려 그녀의 계획만 더 지체될 것이고, 또 그녀와 배경수의 사이만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실책했네, 내가 실책했어! 성진이 이렇게 미친놈일 줄이야. 먼저 목적지까지 운전하게 한 뒤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이곳을 벗어나야겠네.’차는 좌회전에 우회전하더니 넓은 평지 앞에 도착했다.“다 왔어요.”성진이 차를 멈추고 차설아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나 믿어요, 이곳에 온 걸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네, 그러길 바라네요.”차설아가 얼버무려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계획을 세웠다.성진이 차에서 내리자 그녀도 따라서 내렸다. 그리고 성진이 그녀에게 다가올 때 발로 그의 배를 걷어차고는 그의 손에 쥐어진 차 키를 뺏었다.“시간이 늦어 저는 피곤해요, 더는 당신이랑 끌 시간이 없어요. 이곳이 마음에 든다면 여기에 계속 있어요, 저는 먼저 돌아가 봐야 하니까.”말을 마친 그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고 했다.차설아에게 차인 성진은 오장육부가 박살 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의
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짐작 가는 것이 없어요, 추측하고 싶지도 않고요, 성진 씨가 여기서 시시콜콜 따지는 걸 들을 기분이 없어요. 그러니까 알아서 길을 비켜주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면 당신을 밟고 지나가도 나 원망하지 말아요!”훤칠한 성진은 나른하게 차 앞에 주저앉았는데 차설아의 경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설아 씨가 많이 강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겁쟁이네요. 사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다니.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게 정말 못나 보여요.”“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차설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할게요, 비켜요!”그녀의 발은 액셀을 밟고 있었다. 살짝 밟기만 해도 성진은 차에 깔리게 될 것이다.“흥, 나를 차로 깔아 죽인다고 해도 재수 없는 사촌 형이 죽어서 돌아올까요?”성진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두 팔로 무릎을 지탱하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운전석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갔다.“제가 왜 설아 씨를 이 황폐한 산으로 데려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죠. 여기 묘지를 좀 봐봐요, 풍수가 엄청 좋아요. 여기가 바로 성씨 가문에서 성도윤을 위해 특별히 고른 묘지라고 하네요. 장례를 치르는 때가 되면 평생 도도하게 살았고, 사람들을 우습게 보던 사촌 형도 영원히 이곳에 머물게 되겠네요...”“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 분명 저 속이고 있잖아요!”차설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성진이 계속 주절주절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알아들을 마음도 없었다.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성진이 했던 말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다.“재수 없는 사촌 형이 죽어서 돌아올까요?”‘아니, 그럴 리가 없어. 성도윤이 왜 갑자기 죽어? 구미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인데. 구미호도 목숨이 아홉 개니, 성도윤은 분명 목숨이 열 개나 있을 거야. 성도윤이 이대로 죽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믿지 않아!’“내가 설아 씨를 속였는지 아닌지
성진이 다리를 거두고는 고개를 돌려 차설아를 보더니 씩 웃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저는 원래 좋은 놈 아니에요. 소문난 쓰레기라고요,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살아있는 성도윤을 상대하지 못해도 죽은 성도윤도 상대하지 못하겠어요? 수모를 안겨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차설아는 눈가가 붉어진 채 이를 악물며 말했다.“당신은 미친 사람이야, 성도윤은 죽어도 당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성진의 눈빛이 음흉하게 번지더니 차설아에게 점점 다가가며 말했다.“그래요? 하지만 지금의 성도윤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 얼굴에는 내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요. 지금 성도윤 앞에서 그의 여자와 하룻밤을 가져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저보다 낫다고요?”“뻔뻔스럽네!”차설아가 팔을 들더니 성진의 뺨을 세게 때렸다.“당신 같은 쓰레기가 무슨 엄두로 감히 나 차설아를 탐내? 주제를 모르는 놈!”차설아는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가는 다리를 들어 매섭게 성진의 배를 향해 걷어찼다.“웁!”성진은 허리를 굽히더니 그대로 묘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차설아는 그를 내려다보며 발로 그의 등을 꾹 밟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이래야 사촌 형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거죠. 그래도 모르겠다면 한 번 더 가르쳐줄 수도 있어요.”“하하하, 계속 이렇게 대해줘요. 멈추지 마세요, 이런 당신이 좋으니까!”성진은 분명 차설아에게 맞아 목숨이 거덜 났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매우 고조되었다. 심지어 눈에는 흥분된 빛까지 반짝이고 있었다.“전에 물었었죠, 제가 설아 씨를 그렇게 숭배하고 좋아했는데도 설아 씨가 성도윤과 결혼하고 나서 왜 난처하게 굴고 수모를 안겨줬는지. 이제 알려주죠, 설아 씨는 그때 저를 실망하게 했기 때문이에요!”남자가 눈을 감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분명 설아 씨는 누구보다 훌륭한 우수한 여자이고, 그렇게 밝게 빛났는데, 그렇게 매력적이었는데,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 성스러운 존재였는데. 그런 설아 씨는
차설아는 성진과 말씨름하기도 귀찮아 돌아서서 차에 올라타고는 액셀을 밟고 이 숲을 떠났다.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말하는 성도윤의 묘비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성도윤이 죽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달빛을 맞으며 차설아는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배경윤의 아파트로 돌아갔다.오늘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이미 피곤할 대로 피곤했다. 눈꺼풀이 무거웠기 때문에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단지 잠을 푹 자고 싶었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파트 안에는 배경윤뿐만 아니라 배경수도 있었다.성대 그룹에서 결별을 겪어 그런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설아 언니, 드디어 돌아왔네. 계속 안 돌아온다면 오빠랑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배경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정하게 그녀의 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안 배고파? 배고프면 내가 야식 해줄까?”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피곤한 눈으로 말했다.“안 배고파, 그냥 너무 졸려서 한잠 푹 자고 싶어. 그러니까 야식은 둘이 먹어.”차설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배경수를 돌아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자고 싶다고?”배경윤은 차설아의 뒷모습을 보더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설마 원이에게서 소식이 온 건가? 아니면 설아 언니는 절대 잠을 잘 기분이 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원이를 찾으려고 할 텐데 잠을 자려고 하다니?’“언니, 혹시 성진 그 개자식한테 정말 당한 건 아니지? 왜 언니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배경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차설아와 배경수가 이미 헤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성진 같은 개자식 때문에 헤어졌다는 것도 알아 마음속으로 배경수를 다소 감싸고 있었다.오빠인 배경수는 오랫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많은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만약 상대가 성도윤이라면 차라리 패배를 인정하겠는데 성진 같은 쓰레기가 차설아를 가로챈다면 배경수는 물론이고 당사자가 아닌
“괜찮은 게 아닌데?”배경윤은 다급한 마음에 계속 침묵을 지키던 배경수를 향해 말했다.“오빠, 무슨 방법이라도 좀 생각해 봐. 설아 언니 분명 무슨 타격을 받은 모양이야. 아니면 이렇게 기운이 없을 리가 없다고. 둘이 아무리 헤어졌다고 하지만 언니 아예 내버려 두면 안 되지. 설아 언니 기다려서 같이 잘 얘기하려고 여기서 온밤 동안 기다린 거 아니야? 왜 이제 와서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그녀는 워낙 성격이 화끈했기에 아예 배경수를 차설아 방에 밀어 넣고는 문을 쾅 닫아 밖에서 잠갔다.배경수는 마음이 조급해져 문을 열려고 했지만 전혀 열리지 않아 목소리를 높였다.“배경윤, 너 정말 나한테 혼날래? 당장 문 안 열어?”“몰라, 오늘 밤에 꼭 설아 언니 기분 풀어줘. 잘 풀어주기 전엔 그 방에서 나올 생각 하지 마.”말을 마친 배경윤은 심지어 자물쇠가 쓸모가 없을까 봐, 쇠꼬챙이까지 꽂아 두었다.‘저렇게 우물쭈물해서야. 동생인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겠네!”그렇게 큰 방에는 차설아와 배경수 두 사람만이 남았다.“미안해, 경윤이가 생각이 짧은 애라는 걸 알잖아.”배경수가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는 일부러 덤덤하고 쿨한 척했다. 마치 전에 성대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듯이 말이다.차설아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피곤한 미소를 짓고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 나야. 성진 그 사람, 완전 정신 나간 인간이었어. 그 사람한테서 쓸만한 정보를 빼낼까 생각했지만 헛소리만 계속하더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의 감정만 상하고. 내가 정말 바보였지!”화장대 앞에 앉은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을 두 손에 깊이 묻혔는데 마치 이 세상을 마주하기 싫은 가녀린 타조처럼 어깨를 살짝 떨었다.그 모습을 본 배경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가슴이 아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그 일을 알게 된 모양인데. 만약 울고 싶다면 소리 내어서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