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 전화번호도 있어요?”차설아가 의외인 얼굴로 물었다.기억 속의 성도윤은 워낙 차갑고 인정사정없는 사람이라 함부로 남에게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전처의 삼촌에게는 왜 ‘특별히’ 챙기는 거지?전화가 연결되자 허광희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내가 그래도 웃어른인데. 우린 모두 한집안 식구잖아. 전화번호쯤은 주지!”하지만 허광희는 곧바로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뚜뚜뚜”한참 동안의 연결음이 이어졌지만 성도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허광희는 다시 한번 그에게 전화를 했는데 바로 끊기게 되었다.차설아가 팔짱을 끼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제대로 체면을 살려주네요.”“캑캑!”허광희는 어색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고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조카사위가 워낙 바쁜 사람이라 일이 많은가 보지. 점심때 다시 전화해 볼게. 평소에는 전화를 받는데 말이야. 나는 그렇다 쳐도,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전화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제가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성도윤과 이혼한 지 오래되었어요. 자꾸 조카사위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성도윤이 좋으면 혼자 잘 보이려고 노력하세요, 괜히 저까지 끌어들이지 말고요!”차설아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알겠어, 내가 주제넘게 함부로 지껄였네...”허광희는 자기 뺨을 때리더니 비굴한 자세로 말했다.“하지만 난 꼭 너와 성도윤 대표님에게 음식을 대접해야겠어. 오랫동안 너희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거든. 지금은 개과천선했고 착실하게 살아가려고 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또 좋은 삼촌으로. 내가 오늘 두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못한다면 평생 이 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할 거야. 엄마를 봐서라도 오늘 와주면 안 되겠어?”“...”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허광희를 위아래로 살펴봤다.그녀는 적어도 철없던 삼촌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적어도 전처럼 가난하면서도 명품만 고집하던 그가 아니었다.지금의 그는
허민희는 허광희의 유일한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차설아의 껌딱지였고, 차설아의 열성 팬이었다.만약 그때 허광희가 허민희에게 차설아를 연락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두 사람의 사이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허광희의 집은 시내의 평범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이 세 개 있는데 20여 평의 평범한 집이었지만 매우 아늑했다.차설아가 집에 들어설 때, 숙모 장희진은 주방에서 채소를 씻고 있었고, 사촌 동생 허민희는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다들 나와봐, 누가 왔는지 한번 보라고!”허광희가 미소를 지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장희진과 허민희는 거실로 나와 차설아를 보더니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렸다.“어머, 설아 언니. 정말 설아 언니 맞아요? 드디어 설아 언니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허민희는 차설아를 꽉 끌어안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 언니, 우리 7, 8년 정도 얼굴 못 본 거 아니에요? 그동안 어디 갔어요? 아빠가 해마다 산소로 가서 언니를 기다렸단 말이에요. 언니가 어디로 가든 언젠간 꼭 고모랑 고모부를 찾아갈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 일이 이루어졌네요!”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민희가 많이 컸네, 지난번에 봤을 땐 어린애였는데!”허민희는 올해 열여덟 살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그녀는 생기발랄했고 활력이 넘쳤다.“숙모, 오랜만이네요.”차설아가 예의를 갖추며 장희진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래!”장희진은 현모양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말했다.“다행이야, 이렇게 돌아왔으니!”“됐어, 다들 인사치레 말은 그만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얼른 좋은 술과 음식을 준비해, 오늘 설아뿐만 아니라 성도윤 대표님도 오기로 했거든!”허광희가 장희진을 재촉하며 말했다.“뭐요? 성도윤 대표님도 온다고요? 그게...”장희진은 긴장된 마음에 말까지 더듬었다.그들에게 있어서 성도윤은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높은 사람이 이런 누추한 곳에 오게 된다니!“뭘 말까지 더듬
4년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대로 차가웠고 도도했다.차설아는 덤덤한 얼굴로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게요, 대, 대표님, 갑자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허광희는 성도윤이 이렇게 빨리 전화를 받을 줄 몰라 갑자기 긴장된 마음에 말을 더듬었다.“그게요... 제 조카 설아가 오늘 해안으로 돌아왔거든요, 오랫동안 사라졌는데 제가 오늘 정말 어렵게 찾아냈거든요. 대표님도 그동안 우리 가족을 잘 챙겨주셨으니 이 기회에 대표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설아랑 함께...”“그럴 필요 없어요.”전화기 너머의 성도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리고 그의 말투에는 그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그리고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게, 대표님, 대표님...”허광희는 휴대폰에 대고 한참 동안 말을 건넸는데 들려오는 건 ‘뚜뚜뚜’ 소리뿐이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성도윤은 이미 그를 차단했다.“설아야, 그게... 화내지 마. 아마 대표님은 지금 바쁘신가 봐. 한 회사의 대표니까 말이야. 이따가 민희 휴대폰으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볼게.”허광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차설아를 힐끔 보며 말했다.그는 차설아가 혹시라도 상처받았을까 봐 두려웠다.그동안 그들 가족을 잘 보살펴 줬던 성도윤이 갑자기 이렇게 인정사정없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너무 티 나게 차설아를 피하고 있었으니 그녀에게 마음이 남아있는 것이 분명했다!“괜찮아요!”차설아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안 온다면 제가 조금 더 많이 먹죠, 문제 될 건 없어요.”그녀는 쿨한 척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의 성도윤은 그녀에게 익숙한 남남일 뿐, 그녀의 감정을 전혀 휘두를 수 없었다.허민희는 미간을 구기더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쯧쯧, 역시 제가 사람 잘못 봤어요. 대표님 정말 남자답지 않네요. 밥 한 끼 먹을 배짱도 없다니, 설아 언니보다도 우유부단하다고요!”허광희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마치 온갖 고난을 겪고 지옥에서 돌아온 그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는 예전처럼 아무 걱정 없고 순수했던 나날로 돌아갈 수 없었다...“그때의 언니와 고모는 정말 빛이 날 정도로 예쁘네요.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났나, 왜 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죠?”허민희는 언제 들어왔는지 가족사진을 보고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야, 너도 엄청 예쁜데? 생기발랄하잖아. 역시 우리 허씨 집안의 아이야...”차설아가 돌아서고는 허민희의 통통한 볼을 어루만지며 진심 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허민희의 이목구비는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연예인을 하기에 아주 좋은 얼굴이었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천상 연예인 상이었다!“헤헤, 그건 그래요, 저도 예쁘게 생겼죠. 언니한테만 말하는데요, 저 지금 20만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예요. 아이디가 미니미니에요, 한 번 봐봐요!”허민희가 말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뿌듯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자랑했다.차설아가 확인했는데 정말 그녀의 말대로 허민희는 22만이 넘는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였다!“좋네!”그녀는 차민희를 향해 엄지척을 내밀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해. 해안대학교의 연극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거야. 이제 입학하면 공부 열심히 해. 알겠어?”“알겠어요. 해안대학교 연극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성도윤 대표님 덕분이에요. 절대 언니랑 대표님 얼굴에 먹칠하지 않게 열심히 할게요!”허민희가 진지한 얼굴로 다짐하고는 또 조심스럽게 물었다.“설아 언니, 지금 많이 서운하고 실망스럽죠?”차설아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내가 왜 서운해? 뭐가 실망스러워?”“전에 대표님을 엄청 사랑하셨잖아요. 4년 동안 자리를 비우시고 간만에 돌아왔는데 밥 한 끼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다니,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 수 있죠? 저라도 속상하겠어요!”“너도 말했다시피 그건 옛날 일이야. 난 지금 그 사람 어
“봤어.”사무실 안에서 성도윤은 고개도 쳐들지 않은 채 서류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그의 완벽한 얼굴에는 4년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봤다고요?”진무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용기 내어 말했다.“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세요? 이게 가능한가요?”그 실검은 차설아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4년 동안 사라졌고, 성도윤이 4년 동안 그리던 차설아인데, 어떻게 덤덤할 수 있을까?성도윤은 드디어 고개를 들더니 천천히 사인펜을 닫고 긴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말했다.“그럼 내가 어떤 반응을 해야 맞는 거지?”“만약 실검을 보셨다면 진작에 설아 씨랑 만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 만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흥분에 겨워 춤이라도 추면서 약속을 잡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쨌든... 이 정도로 침착할 수는 없죠.”진무열은 흥분에 겨워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나랑 상관없는 사람이잖아. 왜 설아가 해안에 오면 내가 꼭 만나야 하지?”성도윤의 말에 진무열은 할 말을 잃었다.“그건...”성도윤은 하찮은 듯 말했다.“네가 보기에 내가 아직도 차설아를 못 잊은 것 같아?”“음... 네.”진무열은 맞을 각오를 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저녁에만 되면 몰래 설아 씨 사진을 보시잖아요. 그리고 술만 먹으면 저를 잡고 펑펑 우시고... 기억 안 나세요? 저번 달에는...”“됐어!”성도윤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차가운 말투로 진무열의 말을 끊었다.“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저 한번 스쳤던 인연이니 어디에 있든 나랑 상관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어.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차설아 언급하지 마.”“하지만...”“한가해? 일을 더 줄까? 그게 아니라면 당장 나가!”성도윤은 갑자기 화를 냈고, 진무열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무실을 급히 나갔다.문밖에는 한 무리의 임원들이 돌아다니며 두 사람의 최신 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어때요? 대표님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면, 강진우는 성도윤이 통곡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계속 전화가 걸려왔지만, 성도윤은 받지 않고 아예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성도윤은 안경을 벗고 고급 사무용 의자에 기대어 하얀 창문을 보며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그는 긴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오똑한 콧날은 그의 얼굴을 더 입체적이고 잘 생겨 보이게 하는 한편, 복잡한 심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4년 동안, 그는 자신을 차가운 기계로 무장하고 매일 일에 파묻혀 살며, 감정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다.사람들은 성도윤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성도윤은 오히려 이런 느낌을 즐겼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빌어먹을 차설아,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4년 만에 왜 또 갑자기 나타났어?’‘네가 오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널 만나러 갈 거라고 생각하지?’‘천만에, 나는 절대 널 만나러 가지 않아.’성도윤은 심호흡을 하며 애써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다잡았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켜고 계속 일에 집중했다.최근 성대 그룹은 차세대 스마트폰 ME2350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이 모델은 처음으로 KCL 그룹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G6 고속칩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전체 전자 기술 분야에서 시대를 초월한 혁신이다.아직 테스트 단계이며, 테스트가 성공하면 대량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성도윤과 그룹의 많은 주주는 ME2350이 성공적으로 출시되는 순간, 향후 최소 10년 동안 스마트폰 분야는 모두 성대 그룹의 천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 프로젝트를 위해 성대 그룹은 이미 4년 동안 준비했고, 엄청난 인력과 재력을 투입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똑똑똑!”성도윤이 기획서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요!”성도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진무열이었다.“하하하, 대표님, 또 저예요.”진무열은
성도윤은 곧 틱톡에서 미니미니의 계정을 찾았다.차설아의 아름답고 정교한 얼굴이 조그마한 휴대폰 화면 속에 나타났다.하지만 그녀의 위력은 핵폭탄급이었다.성도윤은 흠칫 놀랐다. 마치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깊은 눈동자로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안녕하세요, 여러분, 미니미니의 라이브 방송에 들어오신 걸 환영해요. 요즘 핫한 연애 예능프로그램 ‘설레임’에서 일반인 게스트를 모집한다고 해서 저도 신청했어요. 주최 측에서는 오늘 가장 많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프로그램 참가 자격을 얻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성원이 필요해요. 저 프로그램 나가게 해주실 거죠?”허민희는 핑크색 원피스에 고양이 귀 머리띠를 두르고 카메라를 향해 깜찍한 몸짓을 하며 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최근 연애 예능프로그램 ‘설레임’은 인기가 아주 많아, 얼굴만 내밀어도 바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허민희는 원래 연예계에 진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겼고, 차설아를 불러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오늘 밤의 엄청난 게스트를 소개할게요. 바로 오늘 실검을 뜨겁게 달군 관능미가 감도는 여신, 저의 사촌 언니 차설아 씨입니다.”허민희는 손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차설아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차설아예요. 제 사촌 여동생 많이 사랑해 주세요. 사랑해요~”차설아는 어색함을 참으며 허민희와 상의했던 대로 단정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손으로 하트 모양을 했다.손 하트를 하고 나니 차설아는 자신의 느끼함에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가식적인 순간이었다!하지만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휴대폰 화면은 순간 댓글과 선물로 가득 채워졌다.“와, 여신, 사랑해요!”“여신은 역시 여신이야. 귀엽고 멋있고. 미치겠네!”“여신님. 저 그냥 죽이세요!”“여신님이랑 결혼하고 싶어요!”“...”허민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하얀 그녀의 얼굴에 알록달록한 빛이 가득했으
“여신은 어떤 모습이든 아름다워요. 여신 빨리 돌아와요!”“하늘에 있어야 하는 선녀가 내려왔어! 대박!”열렬한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갑자기 이상한 댓글이 달렸다.“가식!”이 댓글은 순간 파장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 댓글에 반응했다.“이게 가식이라고? 자신 있으면 카메라 켜지 그래? 넌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지 한 번 보여줘 봐!”“당신 눈 멀었어? 여신한테 가식이라니. 티끌 하나 없는 맑은 샘물 같은 여신한테 뭔 막말이야?”“닉네임도 없어. 분명 여신을 탐내는 변태남이야. 당장 나가!”“변태 놈, 당장 나가! 당장 나가!”허민희는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얼른 나서서 말렸다.“다들 일단 싸우지 마세요. 아이디 12538분, 악의적인 발언은 삼가세요. 설아 언니가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데요. 워낙 멋있는 매력과 귀여운 매력을 다 가진 분인데, 가식이라니요?”아이디 12538 시청자는 비록 떼 공격을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또 댓글을 달았다.“원래 가식적이야!”옆에 있던 차설아는 독보적인 12538에게 눈길이 쏠렸다.랭킹이 마지막 30분에 접어들자 허민희는 조금 초조해졌다.방금 차설아의 덕으로 많은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워낙 팬이 적었던지라, 백만 급 팬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지금 그녀는 3위였고, 1위와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그래서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차설아를 카메라 안으로 당겼다.“여러분들, 제 사촌 언니를 이렇게 좋아하시니 제가 서프라이즈 하나 준비했어요. 저를 1위로 만들어주신 분께 설아 언니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를 드리죠. 다시는 없을 소중한 기회예요, 여러분, 분발해요!”말이 끝나자 네티즌들은 또 미친 듯이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차설아는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또 이해가 되었다.젊은이들은 승부욕이 있기 마련이다.만약 밥 한 끼로 민희가 연애 프로그램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면, 기꺼이 도울 수 있었다.“저랑 저녁 먹고 싶으세요? 만약 먹고 싶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