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은 어떤 모습이든 아름다워요. 여신 빨리 돌아와요!”“하늘에 있어야 하는 선녀가 내려왔어! 대박!”열렬한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갑자기 이상한 댓글이 달렸다.“가식!”이 댓글은 순간 파장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그 댓글에 반응했다.“이게 가식이라고? 자신 있으면 카메라 켜지 그래? 넌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지 한 번 보여줘 봐!”“당신 눈 멀었어? 여신한테 가식이라니. 티끌 하나 없는 맑은 샘물 같은 여신한테 뭔 막말이야?”“닉네임도 없어. 분명 여신을 탐내는 변태남이야. 당장 나가!”“변태 놈, 당장 나가! 당장 나가!”허민희는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얼른 나서서 말렸다.“다들 일단 싸우지 마세요. 아이디 12538분, 악의적인 발언은 삼가세요. 설아 언니가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데요. 워낙 멋있는 매력과 귀여운 매력을 다 가진 분인데, 가식이라니요?”아이디 12538 시청자는 비록 떼 공격을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또 댓글을 달았다.“원래 가식적이야!”옆에 있던 차설아는 독보적인 12538에게 눈길이 쏠렸다.랭킹이 마지막 30분에 접어들자 허민희는 조금 초조해졌다.방금 차설아의 덕으로 많은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워낙 팬이 적었던지라, 백만 급 팬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들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지금 그녀는 3위였고, 1위와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그래서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차설아를 카메라 안으로 당겼다.“여러분들, 제 사촌 언니를 이렇게 좋아하시니 제가 서프라이즈 하나 준비했어요. 저를 1위로 만들어주신 분께 설아 언니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를 드리죠. 다시는 없을 소중한 기회예요, 여러분, 분발해요!”말이 끝나자 네티즌들은 또 미친 듯이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차설아는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또 이해가 되었다.젊은이들은 승부욕이 있기 마련이다.만약 밥 한 끼로 민희가 연애 프로그램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면, 기꺼이 도울 수 있었다.“저랑 저녁 먹고 싶으세요? 만약 먹고 싶다
라이브 방의 다른 팬들도 12358에 놀라 댓글을 달았다.“대박, 형님을 못 알아뵙고 까불었네요! 존경합니다!”“여자를 꼬시려고 밑천을 다 까네.”“혹시 어느 재벌가 도련님이 자기 여자 기분 풀어주려고 쇼하는 거 아니야?”“...”차설아는 12358의 프로필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의 신분이 더욱 궁금해졌다.사건은 여기까지 일단락된 줄 알았다.허민희는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라이브 방송 마감 5분 전입니다! 제게 연애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주신 12358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약속대로 우리 설아 언니와 로맨틱한 촛불 만찬을 즐길 수...”하지만 갑자기 또 신비로운 팬이 선물을 미친 듯이 보냈다. 1만 1000대의 페라리를 보냈고 12358을 단박에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순간 라이브 방은 들끓기 시작했고 시청자 수도 500만 명에 다다랐다.“이거... 환... 환영합니다, 그림자 분께서 주신 페라리 선물들 감사합니다. 설아 언니와 촛불 만찬을 함께 할 사람이 바뀌었네요...”허민희는 말을 더듬었고, 겨우 정상으로 돌아온 다리는 또 놀라서 녹초가 되었다.‘요즘 부자들이 이렇게 많아? 몇억짜리 선물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준다고? 정말 대박이야!’물론, 12358도 지지 않고 또 1000대를 추가해 그림자와 맞붙었다.이렇게 5분 동안 1위 자리는 두 사람에 의해 계속 바뀌었다.모두 숨도 쉬지 못하고 댓글에 카운트다운을 했다. 5, 4, 3, 2, 1...결국 1위 자리는 12358이 차지했고 모두 50억에 달하는 페라리를 내줬다.“12358님, 정말 감사드려요. 저희 설아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나 봐요. 내일 저녁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허민희는 두 손을 모으고 화면을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차설아는 조금 감동했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당신이 누구든, 내일 저녁 제가 기다리죠. 쪽!”여자는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화면을 향해 손 키스를 날리며
“형, 설아 쨩 라이브 방송 봤어?”사도현은 흥분한 얼굴로 성도윤에게 달려갔다.“솔직하게 말해, 라이브 방 1위, 그거 형이지?”사도현은 도도한 얼굴로 손에 든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무슨 방송?”“시치미 떼지 마. 그렇게 큰 사건을 전혀 모른다고? 게다가... 설아 쨩의 라이브 방송인데 어떻게 놓칠 수 있어?”성도윤은 고개도 들지 않고 ‘나 바빠’라고 말했다.즉, 입을 다물라는 소리였다.사도현은 성도윤이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도윤은 언제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그래서 사도현은 기회를 타 성도윤의 옆에 있는 휴대폰을 낚아챘다.“휴대폰은 왜 꺼놓은 거야? 분명 뭔가 있어. 바로 확인해볼 거야!”사도현은 말하면서 휴대폰을 켜려고 했다.“이리 줘!”성도윤은 고개를 들고 살인적인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사도현은 침을 삼키고 순간 겁을 먹어서 순순히 휴대폰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형, 그냥 봤다고 인정해. 이게 뭐 창피한 일인가?”“형이 그때 설아 쨩을 찾으려고 온 지구를 뒤집을 뻔했잖아. 결국 사람은 못 찾고 오히려 호되게 당했지만. 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좀 창피하긴 하네...”사도현은 진지하게 충고하려고 했지만, 4년 전, 성도윤이 차설아를 찾으려고 부리나케 어떤 섬으로 달려갔지만, 결국 사람은 못 찾고 차설아에게 호되게 당해, 섬 주민 백 명에게 빌붙어 비참하게 섬에서 탈출했던 일이 생각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가장 웃긴 건, 성도윤이 섬에서 만난 사람에게 ‘차설아는 천하제일 미인이지만, 제가 눈이 멀어서 그녀를 오해했어요. 저는 바보예요.’라고 하는 동영상이 성대 그룹 공식 블로그에 5분 동안 게시되어 망신을 당했었다.그때부터, 성도윤의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 일을 거론하며 비웃곤 했었다.4년이 지났고, 이 일은 더 이상 웃음 포인트가 없었다.하지만, 차설아가 갑자기 나타나니, 또 웃음 포인트가 생겼다.사도현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배를 움켜쥐고 무려 5분 동안
“내가... 어떻게 알아?”사도현은 재빨리 핵심 정보를 포착하고 물었다.“형, 왜 1위가 아닌 2위만 궁금한 걸까? 지금 들통난 거 알아?”정상적인 논리라면 사람은 1위를 궁금해하지 2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성도윤은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입술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고, 차가운 얼굴에는 ‘나 건드리지 마’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사도현은 하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이라 계속 놀렸다.“형, 진짜 네티즌 말대로 여자를 위해 밑천을 내놓았네. 50억짜리 만찬이라니. 이건 기네스 기록에 남을 만한 사건이야. 내일 밤... 나갈 거지?”성도윤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사도현을 비웃었다.“여자를 위해 밑천을 까는 건 사도현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 요 몇 년 동안... 그분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아마 500억은 훨씬 넘을 텐데?”사도현의 얼굴빛은 금세 변했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부인했다.“무슨 소리야. 나랑 설이는 단순한 사장과 소속 연예인 사이라고. 설이를 띄우는 건,재능이 있고, 우리 회사에 그만한 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투자하는 거지.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진짜?”성도윤은 웃음을 지으며 독설을 퍼부었다.“그렇게 재능이 있는 분이 왜 4년 동안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지?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 그분의 가치인가?”사도현은 단번에 무참히 무너져 버렸고, 어색해서 자신의 오똑한 콧등을 만지작거리며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그... 다 때가 있는 법이잖아. 회사에서도 영화 몇 편을 제작해 줬고, 설이도 열심히 할 거야. 그러면 언젠가 히트를 치겠지!”“히트를 치는 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운명이야!”성도윤은 눈썹을 치켜 올리고 완벽한 이목구비에는 왠지 뿌듯함이 그려졌다.“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4년 동안 사라졌다가 복귀하자마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 이런 효과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사도현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희번덕였다.“설아 쨩 대단한 거 알아.
두 남자는 한참이나 유치한 싸움을 한 후, 성도윤이 말했다.“앞으로 나랑 설아 일에 끼어들지 않으면, 이 녹음은 절대 공개하지 않아.”“좋아, 내가 졌어. 앞으로 다시는 관여하지 않고 입 꾹 다물고 있을게.”사도현은 성도윤에게 완전히 정복당했다.“착하네!”성도윤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관건적인 순간에 윤설이라는 필살기를 써야만 매를 자처하는 사도현을 잠재울 수 있었다.사도현은 공격을 받고 줄행랑을 치더니, 떠나기 전 또 한마디 했다.“내일 나갈 거지? 형?”성도윤이 휴대폰을 들고 녹음을 보내려는 시늉을 하자 사도현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아니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그리고 속으로 묵묵히 다짐했다.‘도윤 형, 이러다 앞으로 이불 속에 숨어서 울지나 마!’한편, 허민희는 라이브 방송을 끈 후에도 여전히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방송의 수익을 보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다물지 못했다.“대박, 어마어마한 돈이야. 플랫폼에서 수수료를 떼가도 몇십억을 벌었다니! 역시 트렌드만 잘 따라가면 바보도 부자가 되는 세상이야!”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뭐? 누구보고 바보라는 거야?”“내가 바보예요, 내가 바보. 언니는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트렌드고요. 앞으로 언니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겠어요. 죽음만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 거예요!”허민희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차설아를 덥석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됐어, 내 얼굴 닳겠어!”차설아는 겨우 빠져나오고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사실 나도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몰랐어. 얼굴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줄도 모르고, 몇 년 동안 연구개발에만 힘썼으니!”“뭐요? 언니? 그러니까 몇 년 동안 연구개발을 했다고요? 뭘 연구하셨어요? 너무 대단해요!”“별 것 아니야. 그냥 보통 사람들보다 지능이 조금 더 높을 뿐이야.”차설아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보이더니 신비롭게 말했다.“구체적으로 무엇을 개발했는지는 곧 알게 될 거야!”허민희가 또 물었다.“오늘은 언니 덕
12358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기분 봐서.”비록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이 말에 거만하고 당당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허민희는 12358의 개인정보를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지만 텅 비어있었다.“이 사람 새로 만든 계정인가 봐요. 프로필 사진도 랜덤이고, 개인정보에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50억을 척 내놓다니... 분명 설아 언니 때문에 찾아온 거네요.”그녀는 대담하게 추측했다.“혹시, 성도윤 씨 아닐까요?”차설아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프로필 사진을 보며 붉은 입술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어쩌면? 내일 알게 되겠지.”만약 차설아가 진짜 알고 싶다면 당장 그의 IP주소를 찾을 수 있지만, 그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내일 밤 12358이 약속대로 나올지 매우 기대되었다.밤이 깊어졌을 때, 차설아는 배경윤의 아파트로 돌아갔다.그런데 배경수도 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보스, 드디어 왔어? 조금만 늦었으면 나 경찰에 신고할 뻔했어!”밤새도록 걱정했던 배경수는 차설아가 무사한 것을 본 순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내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지? 우리 언니가 어디 괴롭힘 당할 사람이야? 오늘 라이브 방송 봐봐, 선녀같이 아름다운 언니의 미모에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마음을 빼앗겼는데? 대체 비결이 뭐야, 언니? 책을 내도 되겠어!”“그만해, 두 사람 다 한밤중에 자지 않고 뭐해. 안 피곤해?”차설아는 기지개를 켜며 피곤한 기색이었다.“언니가 안 돌아왔는데 우리가 어떻게 편히 자겠어? 지금 자지 말고 나랑 수다 좀 떨어...”배경윤은 밝고 큰 눈을 반짝이며 차설아의 팔을 잡더니 대놓고 물었다.“오늘 1위 한 사람, 혹시 그 인간일까?”“내가 어떻게 알아?”“언니 진짜 몰라?”“나 몰라.”“조사하고 싶지 않아?”배경윤은 꼬치꼬치 캐물었다.차설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궁금하지 않아. 돈만 내 손에 들어오면 그만이야.”그리고 배경수를 쳐다보니, 그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우리 경수 도련님 왜 이렇게 조용하
차설아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진심이었다.지난 4년 동안, 배경수가 보답을 바라지 않고, 끊임없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렇게 빨리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당당하게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지금의 그녀는 그 누구도 저버릴 수 있어도, 절대 배경수의 마음은 저버릴 수 없었다.“그럼!”투정을 부리는 어린 소녀처럼 밤새도록 질투했던 배경수의 잘생긴 얼굴은 그제서야 활기를 되찾았다.배경수는 전에 얼마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가. 머리가 좋고 교활해서 사람들에게 ‘해안의 악동’이라 불렸고, 아무리 건방진 사람도 배경수는 피해갔다. 설사 그에게 해를 입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차설아에게 완전히 잡혀서 사는 꼴이 되었다.매일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사고도 치지 않고, 약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심지어 한가할 때 할머니를 도와 길을 건너곤 했다. 마치 초등학생처럼 말을 잘 들으니 그야말로 올바른 남성의 본보기였다. 차설아는 갑자기 궁금해졌다.“1위가 네가 아니면, 2위는 그래도 너겠지? 이런 교활한 수법을 사용하는 건 네 전문 분야잖아?”자선 경매에서 차설아와 배경수는 이런 수법으로 성도윤을 곤경에 빠뜨렸었다.배경수는 고개를 저었다.“나 진짜 거지야.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그럼 이상하네? 대체 누구지?”차설아는 한숨을 내쉬고 더 생각하기 귀찮았다. 자신의 무한한 매력으로 재벌 팬을 얻은 것으로 생각했다.그녀는 씻은 후 방으로 돌아왔다.지금 해바라기 섬은 오후였다. 차설아는 곧바로 민이 이모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아가씨, 잘 계세요? 보니까 실검에 올랐던데, 혹시 그 나쁜 인간이 또 찾아오진 않았어요?”민이 이모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인터넷을 자주 해 차설아가 실검에 오른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다른 것보다 성도윤이 또 차설아를 찾아와 귀찮게 할까 봐 제일 걱정이었다.“전 잘 있어요.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데요? 아마 진작에 절 잊었겠죠.”“그럼 다행이고요.”민이 이모는 이를 갈며 말했다.“그
차설아는 하루 종일 지친 몸과 마음이 순간 풀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엄마,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달이 엄마 엄청 보고 싶어요!”달이는 포도알 같은 큰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였다.달이는 직접 만든 수화기를 들고 한쪽은 휴대폰 화면에 대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귀에 대고 말했다.“엄마, 비밀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민이 이모 못 들어요!”차설아는 달이의 귀여운 모습에 웃으며 속삭였다.“달이 오늘 민이 이모 말 잘 들었어? 바지에 오줌 싸지 않았어?”달이의 사과처럼 발그레한 볼은 순간 더 붉어졌다.“엄마 나빠요. 달이 이제는 바지에 오줌 싸지 않는다고요! 바지에 오줌 싸는 건 오빠예요!”“하하하, 맞다, 엄마가 깜빡했어. 우리 달이는 바지가 아닌 침대에 오줌을 싸지!”“엄마, 빨리 돌아와요. 엄마가 돌아오면 달이는 침대에 오줌 싸지 않을 거예요. 오빠도 엄마를 엄청 보고 싶어 해요!”달이는 강아지 같은 눈을 내리뜨고 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조금만 기다려. 엄마 일 마치는 대로 바로 달려갈게!”차설아는 딸에게 약속했다.두 사람은 한참이나 알콩달콩했지만, 여전히 원이가 보이지 않아 말했다.“오빠는? 엄마 안 보고 싶대? 왜 엄마랑 영상 통화하러 오지 않아?”“그건...”달이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오빠는 아직도 엄마한테 화가 났어요.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엄마를 안 보겠대요.”“그렇게 많이 삐졌어? 그럼 달이가 엄마 대신 오빠 좀 불러줄래?”“안 돼요!”달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원이와 했던 약속을 명심하며 말했다.“오빠가 말했어요. 엄청난 걸 만들어서 엄마한테 보여줘야 하니까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 수화기도 오빠가 만들어준 거예요. 오빠 정말 대단해요!”“흠!”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다른 건 몰라도, 원이는 이런 점에서 그녀와 똑 닮았다.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실험실에 틀어박히면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다. 과학 연구자의 기질이 강해서 차설아도 제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