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하루 종일 지친 몸과 마음이 순간 풀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엄마, 오늘 하루 즐거웠어요? 달이 엄마 엄청 보고 싶어요!”달이는 포도알 같은 큰 눈망울을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였다.달이는 직접 만든 수화기를 들고 한쪽은 휴대폰 화면에 대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귀에 대고 말했다.“엄마, 비밀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민이 이모 못 들어요!”차설아는 달이의 귀여운 모습에 웃으며 속삭였다.“달이 오늘 민이 이모 말 잘 들었어? 바지에 오줌 싸지 않았어?”달이의 사과처럼 발그레한 볼은 순간 더 붉어졌다.“엄마 나빠요. 달이 이제는 바지에 오줌 싸지 않는다고요! 바지에 오줌 싸는 건 오빠예요!”“하하하, 맞다, 엄마가 깜빡했어. 우리 달이는 바지가 아닌 침대에 오줌을 싸지!”“엄마, 빨리 돌아와요. 엄마가 돌아오면 달이는 침대에 오줌 싸지 않을 거예요. 오빠도 엄마를 엄청 보고 싶어 해요!”달이는 강아지 같은 눈을 내리뜨고 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조금만 기다려. 엄마 일 마치는 대로 바로 달려갈게!”차설아는 딸에게 약속했다.두 사람은 한참이나 알콩달콩했지만, 여전히 원이가 보이지 않아 말했다.“오빠는? 엄마 안 보고 싶대? 왜 엄마랑 영상 통화하러 오지 않아?”“그건...”달이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오빠는 아직도 엄마한테 화가 났어요.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엄마를 안 보겠대요.”“그렇게 많이 삐졌어? 그럼 달이가 엄마 대신 오빠 좀 불러줄래?”“안 돼요!”달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원이와 했던 약속을 명심하며 말했다.“오빠가 말했어요. 엄청난 걸 만들어서 엄마한테 보여줘야 하니까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 수화기도 오빠가 만들어준 거예요. 오빠 정말 대단해요!”“흠!”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다른 건 몰라도, 원이는 이런 점에서 그녀와 똑 닮았다.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실험실에 틀어박히면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다. 과학 연구자의 기질이 강해서 차설아도 제
“하지만, 언니는 오빠 좋아하지 않잖아. 계속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친한 동생이랑 결혼을 해?”“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맞는 사람이랑 하는 거야.”“날 봐.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잖아?”“난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아. 특히 남자는 더더욱. 경수는 몇 년 동안 계속 내 옆에 있어 주고,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줬어. 그래서 마음이 놓여. 이 세상에 경수보다 나한테 더 맞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언니가 맞다고 생각하는 건, 오빠가 완전 자기 성격 다 누르고 언니한테 맞춰서 그래... 그러니까... 맞다고 말할 수도 없지.”배경윤은 한참 동안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사실 오빠는 오만하기 짝이 없고, 자기 생각과 능력, 그리고 야심이 있는 사람이야. 아니면 해안의 악동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테고. 평소 언니 앞에서 보여지는 연약하고 말 잘 듣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고!”“나도 당연히 알지!”“너희 집안은 지하 세력으로 돈을 벌었으니, 웬만한 능력과 성격이 없다면 어떻게 그 혼잡한 세계 사람들을 잠재울 수 있겠어? 경수는 너희 아버지가 가장 눈여겨보는 자식이고 미래 가문의 후계자인데, 당연히 연약하면 안 되지!”“언니도 알고 있다면, 오빠 놀리지 마...”배경윤은 모처럼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차설아에게 부탁했다.“오빠는 언니한테 진심이야. 평소 행동만 보면 생각도 속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엄청 순애보야. 누군가를 점 찍으면 평생 마음 변치 않아. 만약 언니의 반쪽이 오빠라고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아예 희망도 주지 마. 아니면 앞으로 오빠만 헤어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야.”비록 배경수와 어릴 때부터 줄곧 싸웠지만, 그래도 일란성 쌍둥이이니 줄곧 마음이 통했다.배경수가 얼마나 차설아를 사랑하는지, 배경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지금 차설아가 성도윤을 완전히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만약 앞으로 차설아가 다시 성도윤의 곁으
“남의 집이요?”차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살폈다.경비복을 입은 거로 보아, 이 지역을 전문적으로 지키는 직원인 것 같았다.“대체 누구보고 남의 집에 침입했다고 난리야? 이건 우리 언니 집이라고!”배경윤은 포악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경비원에게 큰소리로 명령했다.“우리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하니까, 걸리적거리지 말고 당장 비켜!”“누구 집인지 전 상관하지 않아요. 이 땅은 이미 징수 범위에 포함되어 있고. 저희 대표님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접근하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경비원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험상궂게 말했다.“참, 사람 말을 너무 못 알아 처먹네! 맞고 싶지?”배경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비원과 싸울 태세였다.배경윤은 싸움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옆에 차설아라는 든든한 고수가 지키고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절 때려도 좋고, 때려서 죽인다고 해도, 절대 당신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어요. 이건 제 일이에요. 계속 억지를 부리면 사람을 부르겠어요.”경비원은 무전기를 들고 호출하기 시작했다.“본부, 본부,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니 당장 지원 바란다.”“뭐야? 이 아저씨 진짜 먹통이네? 여기는 우리 언니 집이고, 지금 자기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왜 내쫓고 난리야? 말이나 돼?”배경윤은 참다못해 화가 나서 달려들었고, 정말 손을 쓰려고 했다.차설아는 오히려 차분했고, 그녀를 막고 좋은 말로 경비원에게 말했다.“죄송해요. 전 이 별장의 소유주예요. 몇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당신이 바로 저희 대표님이 말한 연락이 닿지 않는 소유주이군요...”경비원은 그제야 안색이 좋아졌다.“앞서 말했듯이, 이 땅은 쓰레기 처리장 건설 부지로 징수되었고 월말에 착공합니다. 마침 잘 오셨네요, 징수 동의서에 이 집 한 가구만 서명하지 않았는데, 시간 내서 서명하러 오세요.”차설아의 표정은 순간 엄숙해지더니 따져 물었다.“여긴 고급 주택가예요. 왜
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은 일단 들어가지 않겠어요.”배경윤은 의아해하며 차설아를 끌어당겨 물었다.“언니, 진짜 이대로 간다고? 언니한테 추억이 가득한 집이 쓰레기 처리장으로 된다는데,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있어?”차설아는 심호흡을 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못 참지. 하지만 경비원이랑 따지고 싶지 않아. 저분도 그냥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뿐이잖아.”“그럼 어떻게 할 건데?”“이런 결정을 내린 진짜 배후를 찾아내서, 이 땅을 포기하게 할 거야.”“진짜 배후?”배경윤은 얼떨떨해서 계속 물었다.“방금 저 경비원이 이건 도시 계획이라고 했잖아? 분명 공식적인 결정인데 진짜 배후가 있다고?”“공식적인 결정 뒤에는, 자본의 압력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후의 자본을 먼저 찾아야 해.”차설아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녀는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배후의 자본은 상대하기 어렵고, 그녀를 겨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차설아와 배경윤은 아파트로 돌아갔다.배경윤은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갔고, 차설아만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그녀는 컴퓨터를 꺼내 차씨 저택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다.이 지역은 반년 전에 도시 계획의 징수 범위에 포함되었다.이 지역에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차설아 부모의 동반 자살, 귀신 출몰, 보복에 의한 방화 등.차씨 저택이 잿더미로 변한 후, 방화를 저지른 부부는 차설아 집 문 앞에서 목을 매 숨졌다.이 부부는 바로, 딸이 사도현의 클럽에서 죽었고, 성우가 법정에 나와 변호해 결국 패소했던 부부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외부인에게 사악한 땅이라고 생각되었고,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사를 가서 몇 년 동안 땅은 황폐해졌다.반년 전 시청은 대규모 쓰레기 처리장을 건설하기 위해 대중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 지역이 최고 투표로 당선되어 징수되었다.겉으로 보기에 이 일은 합리적이었다. 만약 차설아가 징수에 동의하지 않
“그래?”차설아는 순간 흥미가 생겼다.방금 조인성을 조사할 때, 1위 오빠의 IP도 확인했더니 성대 그룹으로 나타났다. 아이디 뒤에 숨겨진 사람이 누군지는 이미 확실했다.하지만, 성도윤처럼 오만한 사람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토록 저속한 방식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의 냉혹하고 도도한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래서 차설아는 당장 달려가 그를 비웃고 싶었다.“기다리라고 해. 당장 갈 테니까!”차설아는 일어나 컴퓨터를 덮고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고 곧바로 레드하우스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언니, 여기에요.”허민희는 레스토랑 문 앞에 서서 멀리서 차설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제의 라이브 방송으로 허민희는 많은 돈을 벌었기에, 거액을 지급하여 해안에서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차설아는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웨이브 있는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기자 정교한 다이아몬드 헤어핀이 보였고, 상의는 클라인 블루색의 블라우스, 하의는 하늘색 와이드 팬츠에 실버색 하이힐을 매치해 키가 더욱 커 보였고, 강력한 포스를 풍기며 무한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대박, 언니. 오늘 너무 예뻐요. 모델 런웨이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답네요!”허민희는 차설아의 강한 카리스마에 눌려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감탄만 연발했다.“하하, 너 입에 꿀이라도 발랐어? 말을 참 예쁘게 하네.”차설아는 자연스럽게 허민희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성도윤 그 자식 온 지 얼마나 됐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여?”“성 대표님이요?”허민희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성 대표님이 아니신데요?”“그 자식이 아니라고?”“네, 대표님 아니고, 아주 잘생긴 오빠예요. 절대 성 대표님에 밀리지 않는 외모지만, 성격은 좀 더 온화해 보였어요. 하지만... 좀 사람이 가벼워 보인달까?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아요!”허민희는 진지하게 평가했다.한창 잘생긴 남자에게 약할 나이었다.지금까지 그녀의 눈에 들어온 잘생긴 남자 중에서 성도윤은 단연
허민희는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화려하고 현란한 야경에 감탄을 내뱉었다.차설아는 이런 전설을 믿는 허민희가 귀여워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 돈에 환장하니까 돈이 듬뿍 담긴 엘리베이터를 만날 수는 없을까?”“휴, 언니, 나 진지하단 말이에요. 왜 이렇게 낭만을 몰라요? 로맨틱한 사랑이 기대되지 않으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겠어요?”“민희야, 내가 경험자로서 충고 하나 하는데, 네가 잘만 살아간다면 사랑도 필요 없어. 돈이야말로 최고라고. 사랑 같은 건 다른 사람이 너를 공격하는 무기밖에 더 안 돼!”차설아가 허민희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농담이 전혀 섞이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막 열여덟 살 된 여자애에겐 너무 잔혹한 말일지는 몰라도 이 도리를 일찍 알수록 상처를 더 적게 받을 것이다.허민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설아 언니, 저는 언니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사랑이야말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죠, 왜 고통을 가져오겠어요? 언니가 남자한테 너무 심하게 상처받아서 예민해진 거 아니에요? 겉으로 보기엔 호탕하고 용감한 것 같아도 사실 그 누구보다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더는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요.”“그게...”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지금 애들이 다 이렇게 성숙하나?’엘리베이터는 마침내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우아하고 세련되었고, 사방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심지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어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언니, 1위를 한 남자가 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은 두 사람 만의 로맨틱한 식사가 기다릴 테니 저는 두 분 방해하지 않을게요. 이만 갈게요!”허민희가 말하고는 맞은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떴다.“어서 오세요, 유일한 고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웨이터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차설아를 데리고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통창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훤칠한 뒷모습은 그의 몸매를 잘 보여줬다. 블랙 캐쥬얼 정
“그만해!”차설아가 손을 내밀고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낯 간지럽게 굴지 말아줄래? 우리는 순수한 남녀 사이잖아.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겠어.”“설아가 날 그렇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난 설아랑 순수한 남녀 사이로 지내고 싶지 않은데?”바람은 잘생긴 얼굴로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거리를 두기는커녕 심지어 과감하게 차설아의 가는 손목을 확 잡고는 그녀를 자기 품 안에 끌어안으려고 했다.물론, 어마어마한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차설아는 민첩하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바람의 팔을 잡고는 등 뒤로 해 거의 190cm 가까운 훤칠한 남성을 손쉽게 제압했다.“녀석, 감히 누나한테 장난을 쳐? 심심했던 거야? 이제 잘못을 알겠어?”차설아가 힘을 주며 바람에게 제대로 교훈을 주고 싶었다.바람은 팔이 거의 부러질 정도로 아팠는데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씩 웃으며 말했다.“내가 뭘 잘못했는데? 설아를 좋아하는 게 죄가 아니잖아. 갑자기 4년 동안 사라져 버렸어. 난 설아를 4년이나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너!”차설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4년 만에 다시 보니 바람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말을 설레게 하는 거야... 아니지, 4년 전에도 이런 말 잘했었던 것 같은데?’도도하고 차가울 뿐만 아니라 애정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성도윤과는 달리, 바람은 단도직입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다.그는 사랑하는 마음을 열 배, 백 배 모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성도윤은 한 사람을 좋아해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를 싫어하나 싶을 정도로 착각하게 했다.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선우시원, 오늘 이 팔이 부러져도 상관없나 봐? 그럼 네 소원을 들어주지, 당장 팔을 부러뜨려야겠어!”차설아는 이 자식에게 더는 설렌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친 방식으로 혼내줄 수밖에 없었다.바람은
바람의 잘생긴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만약 차설아가 정말 성도윤을 내려놨다면, 언젠간 자신의 진심이 차설아의 마음을 움직일 거로 생각했다.“너한테 기회 없어. 나 요새 일 다 끝내면 재혼할 거야.”차설아가 덤덤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바람의 얼굴색은 확 변하더니 다급하게 물었다.“재혼한다고? 누구랑?”“그건 네가 꼭 알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바람은 긴장한 얼굴을 보이더니 이내 여유롭고 자신 있게 말했다.“누구든지 상관없어. 성도윤만 아니라면, 아직 재혼을 한 게 아니라면 설아가 다시 나한테 사랑에 빠지게 할 자신 있어.”“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잔머리를 다른 데로 굴리는 게 좋지 않아?”차설아가 고개를 들더니 바람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그럼 이제 말해줄 수 있어? 오늘 밤 성도윤 스케줄이 뭔지?”“뭐야, 아직도 엄청 신경 쓰고 있네...”바람이 한숨을 푹 쉬고는 솔직하게 말했다.“설아랑 똑같이 저녁 약속이 있던데? 이런 로맨틱한 레스토랑에서 말이야.”“그래?”차설아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누구랑?”“임채원이라는 여자랑. 아마 설아는 모를 거야. 설아가 사라진 이 몇 년 동안 성도윤은 꽤 알차게 산 모양이야. 임채원과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마 임채원과 재혼... 하는 거 아닐까?”“그럼 정말 잘됐네!”차설아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만약 성도윤이 정말 임채원과 재혼한다면 그녀의 두 아이를 뺏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임채원도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 계모 노릇 따위는 하기 싫을 것이니 더더욱 말릴 것이고.“하느님,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두 사람 남은 평생 사랑하게 해주세요. 만약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저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네요.”차설아가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바람은 미간을 구기더니 차설아의 반응을 보며 말했다.“지금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거야?”“그렇게 보여?”차설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바람이 말했다.“4년 전, 성도윤이랑 설아랑 그렇게 비장하게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