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은 일단 들어가지 않겠어요.”배경윤은 의아해하며 차설아를 끌어당겨 물었다.“언니, 진짜 이대로 간다고? 언니한테 추억이 가득한 집이 쓰레기 처리장으로 된다는데,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있어?”차설아는 심호흡을 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못 참지. 하지만 경비원이랑 따지고 싶지 않아. 저분도 그냥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뿐이잖아.”“그럼 어떻게 할 건데?”“이런 결정을 내린 진짜 배후를 찾아내서, 이 땅을 포기하게 할 거야.”“진짜 배후?”배경윤은 얼떨떨해서 계속 물었다.“방금 저 경비원이 이건 도시 계획이라고 했잖아? 분명 공식적인 결정인데 진짜 배후가 있다고?”“공식적인 결정 뒤에는, 자본의 압력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후의 자본을 먼저 찾아야 해.”차설아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녀는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배후의 자본은 상대하기 어렵고, 그녀를 겨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차설아와 배경윤은 아파트로 돌아갔다.배경윤은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갔고, 차설아만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그녀는 컴퓨터를 꺼내 차씨 저택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다.이 지역은 반년 전에 도시 계획의 징수 범위에 포함되었다.이 지역에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차설아 부모의 동반 자살, 귀신 출몰, 보복에 의한 방화 등.차씨 저택이 잿더미로 변한 후, 방화를 저지른 부부는 차설아 집 문 앞에서 목을 매 숨졌다.이 부부는 바로, 딸이 사도현의 클럽에서 죽었고, 성우가 법정에 나와 변호해 결국 패소했던 부부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외부인에게 사악한 땅이라고 생각되었고,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사를 가서 몇 년 동안 땅은 황폐해졌다.반년 전 시청은 대규모 쓰레기 처리장을 건설하기 위해 대중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 지역이 최고 투표로 당선되어 징수되었다.겉으로 보기에 이 일은 합리적이었다. 만약 차설아가 징수에 동의하지 않
“그래?”차설아는 순간 흥미가 생겼다.방금 조인성을 조사할 때, 1위 오빠의 IP도 확인했더니 성대 그룹으로 나타났다. 아이디 뒤에 숨겨진 사람이 누군지는 이미 확실했다.하지만, 성도윤처럼 오만한 사람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토록 저속한 방식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그의 냉혹하고 도도한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래서 차설아는 당장 달려가 그를 비웃고 싶었다.“기다리라고 해. 당장 갈 테니까!”차설아는 일어나 컴퓨터를 덮고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고 곧바로 레드하우스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언니, 여기에요.”허민희는 레스토랑 문 앞에 서서 멀리서 차설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제의 라이브 방송으로 허민희는 많은 돈을 벌었기에, 거액을 지급하여 해안에서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차설아는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웨이브 있는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기자 정교한 다이아몬드 헤어핀이 보였고, 상의는 클라인 블루색의 블라우스, 하의는 하늘색 와이드 팬츠에 실버색 하이힐을 매치해 키가 더욱 커 보였고, 강력한 포스를 풍기며 무한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대박, 언니. 오늘 너무 예뻐요. 모델 런웨이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답네요!”허민희는 차설아의 강한 카리스마에 눌려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감탄만 연발했다.“하하, 너 입에 꿀이라도 발랐어? 말을 참 예쁘게 하네.”차설아는 자연스럽게 허민희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성도윤 그 자식 온 지 얼마나 됐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여?”“성 대표님이요?”허민희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성 대표님이 아니신데요?”“그 자식이 아니라고?”“네, 대표님 아니고, 아주 잘생긴 오빠예요. 절대 성 대표님에 밀리지 않는 외모지만, 성격은 좀 더 온화해 보였어요. 하지만... 좀 사람이 가벼워 보인달까?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아요!”허민희는 진지하게 평가했다.한창 잘생긴 남자에게 약할 나이었다.지금까지 그녀의 눈에 들어온 잘생긴 남자 중에서 성도윤은 단연
허민희는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화려하고 현란한 야경에 감탄을 내뱉었다.차설아는 이런 전설을 믿는 허민희가 귀여워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 돈에 환장하니까 돈이 듬뿍 담긴 엘리베이터를 만날 수는 없을까?”“휴, 언니, 나 진지하단 말이에요. 왜 이렇게 낭만을 몰라요? 로맨틱한 사랑이 기대되지 않으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겠어요?”“민희야, 내가 경험자로서 충고 하나 하는데, 네가 잘만 살아간다면 사랑도 필요 없어. 돈이야말로 최고라고. 사랑 같은 건 다른 사람이 너를 공격하는 무기밖에 더 안 돼!”차설아가 허민희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농담이 전혀 섞이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막 열여덟 살 된 여자애에겐 너무 잔혹한 말일지는 몰라도 이 도리를 일찍 알수록 상처를 더 적게 받을 것이다.허민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설아 언니, 저는 언니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사랑이야말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죠, 왜 고통을 가져오겠어요? 언니가 남자한테 너무 심하게 상처받아서 예민해진 거 아니에요? 겉으로 보기엔 호탕하고 용감한 것 같아도 사실 그 누구보다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더는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요.”“그게...”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지금 애들이 다 이렇게 성숙하나?’엘리베이터는 마침내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우아하고 세련되었고, 사방에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심지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어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언니, 1위를 한 남자가 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은 두 사람 만의 로맨틱한 식사가 기다릴 테니 저는 두 분 방해하지 않을게요. 이만 갈게요!”허민희가 말하고는 맞은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떴다.“어서 오세요, 유일한 고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웨이터가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차설아를 데리고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통창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훤칠한 뒷모습은 그의 몸매를 잘 보여줬다. 블랙 캐쥬얼 정
“그만해!”차설아가 손을 내밀고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낯 간지럽게 굴지 말아줄래? 우리는 순수한 남녀 사이잖아.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겠어.”“설아가 날 그렇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난 설아랑 순수한 남녀 사이로 지내고 싶지 않은데?”바람은 잘생긴 얼굴로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거리를 두기는커녕 심지어 과감하게 차설아의 가는 손목을 확 잡고는 그녀를 자기 품 안에 끌어안으려고 했다.물론, 어마어마한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차설아는 민첩하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바람의 팔을 잡고는 등 뒤로 해 거의 190cm 가까운 훤칠한 남성을 손쉽게 제압했다.“녀석, 감히 누나한테 장난을 쳐? 심심했던 거야? 이제 잘못을 알겠어?”차설아가 힘을 주며 바람에게 제대로 교훈을 주고 싶었다.바람은 팔이 거의 부러질 정도로 아팠는데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씩 웃으며 말했다.“내가 뭘 잘못했는데? 설아를 좋아하는 게 죄가 아니잖아. 갑자기 4년 동안 사라져 버렸어. 난 설아를 4년이나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너!”차설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4년 만에 다시 보니 바람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말을 설레게 하는 거야... 아니지, 4년 전에도 이런 말 잘했었던 것 같은데?’도도하고 차가울 뿐만 아니라 애정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성도윤과는 달리, 바람은 단도직입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다.그는 사랑하는 마음을 열 배, 백 배 모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성도윤은 한 사람을 좋아해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를 싫어하나 싶을 정도로 착각하게 했다.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선우시원, 오늘 이 팔이 부러져도 상관없나 봐? 그럼 네 소원을 들어주지, 당장 팔을 부러뜨려야겠어!”차설아는 이 자식에게 더는 설렌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친 방식으로 혼내줄 수밖에 없었다.바람은
바람의 잘생긴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만약 차설아가 정말 성도윤을 내려놨다면, 언젠간 자신의 진심이 차설아의 마음을 움직일 거로 생각했다.“너한테 기회 없어. 나 요새 일 다 끝내면 재혼할 거야.”차설아가 덤덤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바람의 얼굴색은 확 변하더니 다급하게 물었다.“재혼한다고? 누구랑?”“그건 네가 꼭 알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바람은 긴장한 얼굴을 보이더니 이내 여유롭고 자신 있게 말했다.“누구든지 상관없어. 성도윤만 아니라면, 아직 재혼을 한 게 아니라면 설아가 다시 나한테 사랑에 빠지게 할 자신 있어.”“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잔머리를 다른 데로 굴리는 게 좋지 않아?”차설아가 고개를 들더니 바람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그럼 이제 말해줄 수 있어? 오늘 밤 성도윤 스케줄이 뭔지?”“뭐야, 아직도 엄청 신경 쓰고 있네...”바람이 한숨을 푹 쉬고는 솔직하게 말했다.“설아랑 똑같이 저녁 약속이 있던데? 이런 로맨틱한 레스토랑에서 말이야.”“그래?”차설아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누구랑?”“임채원이라는 여자랑. 아마 설아는 모를 거야. 설아가 사라진 이 몇 년 동안 성도윤은 꽤 알차게 산 모양이야. 임채원과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마 임채원과 재혼... 하는 거 아닐까?”“그럼 정말 잘됐네!”차설아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만약 성도윤이 정말 임채원과 재혼한다면 그녀의 두 아이를 뺏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임채원도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 계모 노릇 따위는 하기 싫을 것이니 더더욱 말릴 것이고.“하느님,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두 사람 남은 평생 사랑하게 해주세요. 만약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저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네요.”차설아가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바람은 미간을 구기더니 차설아의 반응을 보며 말했다.“지금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 거야?”“그렇게 보여?”차설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바람이 말했다.“4년 전, 성도윤이랑 설아랑 그렇게 비장하게
다만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하늘에 별똥별 스치듯 성도윤은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한 사람은 위로, 한 사람은 아래로, 아무도 서로를 위해 멈춰 서지 않았다.“하하, 1위를 한 형님이 그래도 네가 마음이 쓰였나 봐, 약속 지키러 온 걸 보니.”바람은 엘리베이터가 밑층으로 내려갔을 때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말했다.“일이 있어서 여기로 온 거겠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하이힐을 신은 차설아는 또각또각 주차장으로 향해 걸어갔다. 마치 방금 성도윤과의 만남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오늘 저녁 성도윤이랑 잘 얘기해 볼 생각이 없어?”“약속한 저녁 시간은 여덟 시부터 열한 시야, 지금은 이미 열한 시 1분이잖아. 지각했으니 뭐 어쩌겠어. 내 시간은 안 소중해? 내가 왜 성도윤 때문에 멈춰 서야 하는데?”덤덤한 얼굴의 차설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긴, 임채원이랑 약속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니면 아까 설아를 보고 성도윤이 그렇게 차가운 얼굴을 보일 리가 없잖아. 마치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야!”바람이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는 끝이 보이지 않은 꼭대기 층을 보며 분석하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포츠카 키를 꺼내고는 차 문을 열었다.“시간이 늦었어.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고. 다음에 시간 되면 다시 만나.”차설아가 바람을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네가 말한 거야, 시간 나면 다시 만나자고.”바람은 아쉬운 마음으로 차설아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쯧쯧, 4년 만에 겨우 만나 같이 식사를 했는데, 이렇게 이별하다니. 많이 아쉽네. 하지만 성도윤은 아까 설아의 얼굴을 몇 초밖에 못 봤잖아? 그럼 내가 훨씬 운이 좋은 거 아닌가?’빨간색 스포츠카는 ‘슉’하고 어둠 속에 질주하면서 사라졌다. 마치 한 번 결심하면 절대 뒤 돌아보지 않는 차설아처럼 말이다.같은 시각, 520미터 높이 레스토랑 통창 앞에 서
성도윤이 엄숙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드디어 올라온대요?”“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웨이터가 어안이 벙벙했다.“누구겠어요?”“엇, 죄송합니다, 대표님.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은 일그러졌다.그는 겨우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누군지 모르면서 왜 나를 찾아왔어요?”“이제 곧 레스토랑이 영업을 종료할 거라서요.”웨이터가 눈을 내리깔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실 레스토랑은 30분 전에 이미 영업 종료했다.다만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 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서 있고, 전혀 떠날 뜻이 없는 것 같아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 일깨워 주지 않았을 뿐이다.“혹시 기다리시는 사람 있으세요? 저희가 전화를 해서 재촉해 볼까요?”웨이터는 어두운 안색의 성도윤을 보더니 용기 내어 한마디 물었다.“필요 없어요!”성도윤이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바로... 차설아는 정말 그에게 미련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성도윤은 ‘휘황찬란’했던 20여 년 동안의 과거를 떠올렸다.그의 인생은 순탄했기에 이렇게 좌절감이 들 때는 아주 드물었다.좌절감을 몇 번 느꼈던 것도 모두 차설아 때문이었기에 차설아를 향한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리고 차설아의 마음을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차설아, 나 만나기 싫다 이거지? 그럼 이제 만나달라고 빌게 만들어 줄 거야.”성도윤은 뭔가를 계획한 듯 곧바로 레스토랑을 걸어 나가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층으로 내려갔다.밤은 점점 깊어졌고, 가로등도 어둑어둑해져 거리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가끔 도로에 한두 대의 차가 쌩쌩 지나가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성도윤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긴 다리를 뻗으며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삑!”갑자기 고요한 밤하늘 아래서 경적이 울려 그의 눈길을 이끌었다.훤칠한 그는 몸을 돌렸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매혹적인 차설아는 나른하게 빨간색 스포츠카에 기대고 있었다.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은
성도윤은 입술을 차설아의 귓가에 닿았다. 그리고 차가우면서도 분노와 고통이 담긴 쉰 목소리로 말했다.“차설아, 당신은 내가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매정한 여자야!”4년 동안 쌓아온 감정이 이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버렸다.성도윤은 차설아를 있는 힘을 다해 꽉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는 부스러뜨리고 자기 몸속으로 녹아낼 듯이 말이다...그래야만 차설아를 묶어둘 수 있고, 그녀가 다시 떠날 기회가 없듯이 말이다!“...”차설아는 너무 꽉 끌어안겨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실력으로 충분히 성도윤을 쓰러 눕힐 수 있었지만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토끼처럼 얌전히 그에게 안겨 있었다.그녀가 그토록 갈망하고 그리워했던 그의 품이었다. 넓고 든든한 그의 가슴팍은 한없이 따뜻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쉽지만, 그 감정을 내려놓는 것도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4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그녀는 충분히 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짧고도 긴 포옹 후, 성도윤은 자기가 너무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걸 인지하고는 미련 있는 얼굴로 천천히 차설아를 놓아줬다. 하지만 여전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오해하지마, 이 포옹에는 그 어떤 뜻도 담겨있지 않아.”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아.”여유롭고 차분한 여자의 모습에 성도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마치... 힘껏 주먹을 휘둘렀는데 솜에 맞은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그는 모든 것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지만, 유독 눈앞의 이 여자는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으니 그는 좌절감이 들었다.“나한테 불만이 있다면 왜 아까 날 밀어내지 않았어? 분명 그럴 수 있었잖아!”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차설아가 어깨를 들썩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당신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당신한테 불만 없어. 우리 부부였잖아. 오랜만이니까 그냥 포옹한 거지. 포옹한 게 뭔가 대단한 일도 아니고.”“부부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