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서로 엮인 일은 이 일밖에 더 없었다.만약 이 일까지 깔끔하게 처리된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더는 서로 뒤얽히는 일이 없게 된다.“알면 됐어, 나도 더 할 말은 없어.”성도윤은 마음이 착잡했고, 차설아를 향한 감정도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원망스럽진 않았는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는 이유가 부족했다.4년 동안의 시간 때문에 많은 것들이 뒤바뀌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성도윤은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몸을 돌리고는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잠깐만.”차설아가 갑자기 그를 불렀다.“무슨 일이야?”“고마워.”차설아가 진심으로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성도윤은 어안이 벙벙했다.“4년 동안 우리 부모님 산소를 계속 찾아왔잖아. 당신 깊이 사랑하기도 했고, 깊이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건 별개의 이야기야. 지금 당신한테 사랑의 감정도, 미움의 감정도 없어. 앞으로 원한을 품지 않고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 보는 건 어때? 이젠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야지.”차설아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전에는 마음속에 너무 많은 걸 담다 보니 너무나도 피곤하게 살아왔는데 모든 걸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성도윤의 얼굴은 점점 차가워졌다.‘젠장, 왜 차설아가 나랑 선 긋는 것처럼 들리지?’“이 엠버 펜던트, 당신 거지? 4년 전에 주웠어. 이제 주인한테 돌려줘야지.”차설아는 소중히 보관해 왔던 엠버 펜던트를 목걸이에서 꺼내고는 성도윤에게 건넸다.“당신한테 있었어?”성도윤은 재빨리 펜던트를 건네받았다. 그 위에는 아직 따뜻한 차설아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그는 꼼꼼히 살펴보더니 형님의 유품인 걸 확신하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는 엄청 중요한 물건이야. 오래 찾았는데도 찾질 못했거든.”“당신이 우리 부모님 산소 앞에 놓고 간 것 같던데? 그때 당신이 우리 부모님 산소를 찾아갔 줄 몰랐었고, 그래서 이 펜던트도 당신 물건인 줄
차설아가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늦었다.하지만 뜻밖에도 절친인 배경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뭐야? 이 녀석 정말 사랑을 찾은 건가?”차설아가 궁금해하던 이때, 배경윤이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소녀 같은 수줍음을 보였다.“크흠!”차설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배경윤의 팔을 잡아당기며 ‘엄마’처럼 캐묻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해봐, 어딜 가서 신나게 논 거야?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언니, 내가 솔직하게 말할게. 나 이번에 제대로 사랑에 빠졌다고. 나 그 사람이랑 이번 달 말이면 혼인신고 하려고. 어쩌면 우리 같이 결혼식을 할 수도 있어!”“벌써 결혼 생각을 하는 거야? 너무 섣부른 결정 아니야?”차설아는 배경윤을 위해 기뻐하면서도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전에 결혼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야?”“그건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고.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배경윤은 전에 덕질만 하며 아이돌에게만 관심을 쏟아부었고, 연애나 결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런데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배경윤은 갑자기 연애를 넘어 결혼을 하겠다고 선포했다!차설아는 더 잔소리도 하지 않고 배경윤에게 말했다.“결혼까지 결심한 사람 말이야. 나한테 보여줄 생각 없어?”“당연히 그래야지!”배경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렇지 않아도 나 오늘 저녁에 말해뒀거든. 내일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어. 언니가 잘 봐줘.”“좋아.”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언니는 오늘 밤 어땠어? 그 1위를 한 사람과 식사 약속 있었잖아. 갔어?”배경윤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차설아에게 물었다.“갔어, 그런데 그 사람과 식사를 하진 않았지.”차설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배경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어때? 1위 한 사람 누구야? 쓰레기 성도윤 맞지?”“그래.”차설아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재는 매우 크고 깜깜했다. 그 안에는 책장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성도윤은 무표정으로 불을 켰더니 소파에 앉아 있는 성주혁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할아버지, 늦은 시간인데 주무시지 않고 왜 여기에 계세요? 저를 놀래려고 작정하셨어요?”성주혁은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벌컥 역정을 냈다.“나 자신을 놀라게 해서 이대로 죽고 말지. 아들이고 손주고 다 속을 썩여서야. 내가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왜 또 그러세요...”성도윤은 이마를 짚으며 감정을 다스리고는 성주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인내심 있게 말했다.“저한테 말해보세요, 오늘 또 무슨 일 때문에 화가 나셨어요?”“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지. 늙어서 눈도 침침해 사람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말이야.”성주혁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그는 차무진과 전장을 누비며 적을 무찌르고 의기양양했던 과거를 떠올렸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제대로 잘 걸지도 못했고, 말도 똑똑히 하지 못했고, 심지어 눈까지 침침해졌으니...성주혁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주름이 가득한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짚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어휴, 내가 눈이 안 좋아서 그래. 도윤아, 이리 와서 할아버지 도와줘. 이 동영상 속 여자가 누구야? 싸움을 이렇게 잘해?”“누구요?”성도윤이 고개를 내밀고는 진지한 얼굴로 보기 시작했다.성주혁이 그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바로 차설아가 도로에서 남자를 제압해 실검까지 오른 그 동영상이었다.그는 갑자기 성주혁의 뜻을 알아챘다.그래서 그는 실눈을 뜨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러게요, 이 여자가 누구죠? 조회수 찍으려고 일부러 연기하는 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뜨려고 정말 아무 짓이나 다 하네요. 이런 건 그만 보세요, 다 가짜니까.”성도윤은 성주혁의 휴대폰을 뺏으려고 했다.그러자 휘청거리던 성주혁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경고하며 말했다.“자식,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눈 똑바로 뜨고 봐. 영상 속
이튿날.차설아와 배경윤은 같이 어느 고급 씨푸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언니, 봐봐. 저 사람이 바로 내 남자친구 강우혁이야. 엄청 잘 생기고 훈훈하지?”배경윤은 VIP 구역에 있는 젊은 남자를 가리키더니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차설아는 배경윤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식기를 정리했는데 누가 봐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번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점잖아 보이는데. 너 이런 스타일 남자 좋아했어?”차설아는 의외인 듯 웃으며 말했다.배경윤이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차도남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녀가 덕질했던 아이돌도 다 그런 스타일이었으니.하지만 점잖은 남자도 괜찮을 듯했다.듬직하고 배경윤의 말을 잘 들을 것이니 털털한 성격의 배경윤과는 서로 보완이 되었다.다만 그가 정말로 점잖은 남자인 전제하에 말이다.이때 남자가 그들을 발견했는지 바로 따뜻한 미소를 짓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경윤아!”그는 마중 오더니 배경윤 손에 든 가방을 건네받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안부를 물었다.“자기야, 안 힘들어? 안 배고파? 자기가 좋아하는 코코넛 크랩을 시켰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자기야, 고마워.”배경윤이 활짝 웃고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차설아를 소개했다.“여긴 나의 가장 친한 언니 차설아야. 우린 친자매보다 더 친하거든. 참, 언니 엄청 대단한 사람이야. 얼굴도 예쁘게 생겼지, 머리도 똑똑하지, 회사 사장으로서 돈도 많이 벌고 싸움도 잘해 변태들을 다 물리칠 수 있어. 게다가 어려서부터 공부도 엄청 잘했고, 해...”“캑캑!”배경윤이 자기 정체를 밝힐 것으로 보이자 차설아는 다급하게 그녀의 말을 끊고는 미소를 지으며 강우혁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차설아라고 합니다.”“반갑습니다, 저는 강우혁입니다.”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고는 예의를 갖추며 대답했다.식사 내내 강우혁은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을 드러냈다.배경윤에게 새우나
케빈은 뉴욕에 있었는데 인맥이 넓고 소식이 빨랐다.그는 거지든, 의원이든, 신분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한 사람의 신상을 이른 시간 안에 파헤칠 수 있었다.“강우혁, 나 잘 알지.”전화기 너머의 케빈이 열정적으로 말했다.“10분만 기다려, 그 사람 모든 자료를 정리해서 보낼게.”“고마워,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그렇다, 그녀는 식사 자리에서 강우혁을 인정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그녀는 오히려 완벽한 사람이 더 미심쩍다고 생각했다.배경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잘 알아보기로 했다.케빈을 기다리는 사이에 그녀는 두 아이에게 줄 예쁜 옷을 사기 위해 3층에 있는 아동복 코너로 향했다.두 아이가 생긴 후로 그녀는 아이들에게 예쁜 재킷이나 치마를 사주는 게 가장 큰 취미였다.“이거, 이거, 그리고 이것도요...”차설아는 단숨에 대여섯 벌을 사서 점원에게 일일이 쇼핑백에 잘 담아달라고 했다. 두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옷을 샀기에 차설아는 낑낑거리고 있었다.매장을 나서려던 그때, 차설아는 성도윤, 그리고 임채원과 마주쳤다.“씨발!”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나 오늘 똥 밟은 날인가? 왜 이렇게 재수 없어?”눈물을 글썽이던 임채원은 성도윤의 부축을 받으며 연약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차설아를 보더니 안색이 확 바뀌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차설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조르면서 소리를 질렀다.“차설아, 하늘도 결국 무심하시지 않아. 우리 아들 기일에 너를 만나게 하다니. 내가 아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너를 죽여버린다!”“억!”차설아는 두 손에 짐을 가득 들었고, 또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때문에 미처 반응하지 못해 그녀에게 당하고 말했다.“채원아, 진정해! 손을 놔!”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재빨리 다가와 그녀를 제지했다.하지만 임채원은 작정하고 차설아를 죽일 셈이었다.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마른 열 개 손가락은 마치 해골처럼 흉측했다.그녀는 전신의 힘을 다해 차설아의 목을 비틀
“그러면 죽길 바라는 거야?”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차설아를 힐끔 보고는 의식을 잃은 임채원을 안아 들어 옆에 있는 벤치에 눕혔다.임채원은 이성을 잃었기에 차설아는 하마터면 목 졸려 죽을 뻔했다.다급해진 성도윤은 어쩔 수 없이 임채원의 뒷덜미를 쳐 그녀를 잠시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그래서 차설아가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성도윤은 임채원에게 큰일 없을 거로 생각했다. 잠깐 누워있으면 깨어날 것이니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몸을 돌려 아직 아동복 코너에 있는 차설아에게 다가가고는 차가운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기 옷을 가리키며 물었다.“아동복은 왜 이렇게 많이 산 거야?”차설아는 점원과 함께 쪼그려 앉아 예쁜 옷들을 다시 주머니에 담고 있었다.성도윤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화난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알 것 없어. 예쁘니까 샀지, 안 돼?”성도윤은 긴 다리를 구부리더니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줄무늬 양말을 줍고는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작고 앙증맞은 핑크색 양말은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졌다. 손가락 세 개 크기도 안 되었기에 엄청 귀여웠고 성도윤은 왠지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이 양말도 예뻐서 산 거야?”성도윤이 말하고는 양말을 차설아에게 건넸다.하지만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건넨 양말을 받지 않았다.“예뻐서 산 건 맞아. 하지만 당신이 만졌으니 재수 없을 것 같아. 나 안 가질래.”“뭐?”성도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 여자 도대체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앞으로 친구로 하자며 털털한 척을 하더니 오늘 바로 생각이 바뀐 거야? 내 손에 묻은 건 다 재수 없어? 태세 전환 대박이네.’“나 아까 당신 구해줬잖아, 채원이를 쓰러뜨리기까지 했는데 나한테 이럴 거야?”성도윤은 어이가 없어 차설아 앞을 가로막고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알려줘, 내가 또 심기를 건드렸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차설아는 아직도 목이 따갑고 아팠다. 화도 가라앉지 않아 그대로 속사포를 날렸다.“흥, 성도윤 씨, 당신이 내 심기를
“어서, 날 때리라고. 당신 싸움 잘하잖아. 내가 피를 흘릴 때까지 때려. 아니면 나처럼 목을 졸라”성도윤은 차설아의 손을 자기 목 위로 올려두고는 농담이 전혀 섞이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정,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차설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성도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저도 모르게 손을 빼내고는 그를 피하기 급급했다.“나 경고하는데 여기 CCTV 있어, 자해 공갈할 생각 하지 마.”“그럼 내가 CCTV 앞에서 당신이 날 때리는 것을 허락할게. 나 병신 만들어도, 혹은 나 때려죽여도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절대 당신 원망하지 않을게!”“미친놈이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차설아는 겨우 그에게서 벗어나고는 멀찍이 뒤로 물러섰다. 마치 성도윤이 사나운 짐승인 듯이 가까이할 수 없었다.‘쯧쯧, 성도윤은 역시 미친 사람이네. 자기 자신까지 때리려고 하다니, 무서워서 내가 피한다!’“4년 전에 내가 당신한테 못된 짓을 한 건 맞아. 그래서 지금 나 다시 괴롭힐 기회를 주겠다는 건데 당신이 스스로 이 기회를 포기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 얘기 더는 꺼내지 마, 감정 상하니까.”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차설아를 보더니 이내 다시 우아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차설아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씨발, 지금 나 일부러 함정에 빠뜨린 거야?’“성도윤, 당신 정말 머리가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누가 당신이랑 앞으로 더 본다고 했어? 그리고...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감정이라는 게 없는데 감정 상할 일이 뭐가 있겠어?”차설아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휙휙 넘겨주며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그녀는 다시 이 남자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었다.“감정이 없으면 다시 키우면 되지. 그 감정이 미움이 되었건, 원한이 되었건 난 좋다고 생각해!”성도윤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진지하면서도 농담 섞인 얼굴로 말했다.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미친 거야?”이때, 기절했던 임
성도윤은 임채원이 약을 다 넘긴 걸 보고서는 그녀더러 옆에 있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했다.임채원은 아무 불평도 없이 멍한 눈빛으로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마치 영혼 없는 좀비처럼 벤치에 가만히 앉아 떠들지도 않았다.성도윤은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네가 무슨 염치로 그걸 물어봐? 채원이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 네가 몰라?”차설아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성도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면 아까 복수하지 그랬어. 여기서 나 비꼬지 말란 말이야. 당신이 내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잘한 건 없어!”성도윤은 싸늘한 표정으로 차설아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슬픔이 담긴 얼굴을 하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채원이의 아이가 당신 때문에 죽었어. 채원이도 당신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정말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 정말 자기에게 아무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나...”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어떻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녀는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죄책감에 시달렸다.다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고로 그녀는 평생 자신을 자책할 수는 없었다.“그날, 나는 피범벅이 된 채원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어. 의사 선생님께서는... 조금만 일찍 와도 아이를 살릴 수 있었고, 채원이도 굳이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필요 없었대. 조금만 일찍 왔어도.”성도윤의 깊은 눈망울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정말 고통스럽고 슬퍼하는 것 같았다.그는 잠긴 목소리로 차설아에게 물었다.“왜 채원이를 밀었어? 내가 이미 사회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잖아. 당신이 볼 수 없는 곳에 보냈는데도 왜 당신은 채원이를 놓아주지 않았던 거야?”“나...”차설아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다. 손바닥에는 어느샌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그녀는 해명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성도윤에게 그녀가 먼저 임채원을 찾아간 게 아닌, 임채원이 그녀를 불렀다고 알려주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