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손을 내밀어 차설아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결국 꾹 참았다.평소 말수가 적은 성도윤은 오늘 유난히 수다스러웠다.“진심이야, 잘 생각해봐. 내일 아침 당신 대답을 들으러 올 테니까.”차설아는 주먹을 쥐며 손바닥을 살짝 꼬집었다. 이상하게도 무엇에 홀린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성도윤이 진심으로 그녀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뱃속의 두 녀석을 위해서라도 차설아는 진심으로 고민해볼 것이다.성도윤이 떠나고, 차설아는 커다란 창문 앞에서 서서 발밑의 도시를 바라보며 미래를 곰곰이 생각했다.원래 계획대로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차씨 가문을 부흥시킬 것인가?아니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 성가의 울타리 밑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채 남편과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가정주부가 될 것인가?두 가지 모두 저마다의 결점이 있는 듯했다어떤 길을 선택하든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차설아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고, 발신자 지역은 해안시도 S시도 아닌 해주시였다.전화를 받고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차설아의 기분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고 욕만 나왔다:.재수 없어!기분 나쁜 대화를 몇 마디 나눈 후, 차설아는 애써 화를 억누르고 차갑게 말했다.“그래, 기다려, 바로 갈게.”차설아는 쉬지 않고 달려와, 임채원과 약속한 해수 리조트에 도착했다.해주시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성대 그룹에서 보기 드물게 외지에 투자한 관광 요양 산업이었다.환경이 너무 좋은 편이 아니고, 가격이 높기 때문에 대외로 영업하지 않고, 특권을 가진 일부 계층만 소량 접대했다.리조트에 들어서자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녹음이 우거지고, 음산소 이온이 매우 높아 마치 선경과 같았다.멀리서 보면 하얀 유럽식 건물이 마치 성처럼 웅장하고 산 중턱에 세워져 성대 그룹의 재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차설아가 차에서 내리자, 큰 장미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고 붉은 장미가 활짝 피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보면 모르겠어? 도윤이가 날 성가 저택에서 내보냈지만, 이렇게 큰 성을 나한테 줬잖아! 내가 성가 저택에 심은 장미들을 잘라 버렸지만, 눈앞의 더 크고 값비싼 장미 정원을 돌려주었어...”임채원은 손에 든 장미를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차설아에게 물었다.“이곳의 장미 묘목은 전부 불가리아에서 냉동으로 수공해온 거야. 하나에 몇천만 원은 호가하는데, 백묘가 넘는 밭에 셀 수 없는 장미가 심어졌으니, 계산도 할 수 없는 금액이지. 이게 바로 도윤이가 나한테 준 사랑이야!”차설아는 끝도 없이 펼쳐진 장미 정원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성가에 돈이 참 많네.”전혀 부럽지 않거나 질투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부러움과 질투보다는 안타까움과 후회가 더 컸다.곰곰이 생각해보면, 성도윤과 결혼해서 몇 해가 지났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고, 이렇게 큰돈을 퍼붓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왜 임채원은 성도윤의 무한한 편애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만약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차설아도 인정할 수 있지만, 하필이면 임채원과 같은 무식하고 악독한 여자라니, 차설아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성가에 돈이 많지만, 도윤이가 바보는 아니지. 아무한테나 이렇게 큰돈을 쓰는 건 아니야. 난 특별하니까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거지, 설아 씨는...”임채원은 차설아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내가 다 안타깝네. 4년 동안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했으니, 같은 여자로서 창피하네!”“그만해, 자랑하려고 날 여기까지 불렀어?”차설아는 차갑게 말했다.“도윤이가 진짜 당신을 사랑했다면 왜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을까? 도윤이가 사랑한 건 뱃속의 아이일 뿐이야. 그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자연히 버림받는 운명이라고!”“아니야! 도윤이가 약속했어, 나랑 아이를 평생 돌봐주겠다고. 지금은 세상이 시끄러우니 잠시 여기 있다가, 조용해지면 날 성가로 데려가서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했어!”“하하하, 참 순진하네!”차설
“배가 너무 아파, 살려줘... 제발 살려줘!”임채원은 피투성이가 된 땅바닥에 누워 한 손으로는 불룩한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은 차설아를 향해 뻗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란 차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그만... 연기해. 살짝 밀었을 뿐인데 왜 이래?”방금 차설아는 단지 임채원의 손을 뿌리치려던 것뿐이었다. 가볍게 밀었는데 임채원이 바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혹시... 내가 힘 조절을 하지 못했나?’“설아 씨, 배가 너무 아파. 아이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제발 날 병원으로 데리고 가줘. 제발 아이를 살려줘.”임채원은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처롭게 차설아에게 빌었다.“내가... 어떻게 당신을 구해...”차설아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고, 휴대폰을 들고 구급차를 부를 준비를 했다.이때, 그녀의 몸은 누군가에 의해 한쪽으로 밀렸고, 휴대폰까지 날아갔다.뒤돌아보니, 뜻밖에도 성도윤이었다.남자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긴 다리로 재빨리 임채원의 곁에 다가가 그녀를 들어 안았다.“조금만 버텨, 바로 병원으로 데려다줄 테니 꼭 버텨!”늘 침착하던 성도윤은 모처럼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팔이 떨리고 목소리까지 쉬었다.임채원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성도윤을 붙잡고 울부짖었다.“도윤아, 드디어 왔구나. 설아 씨가 날 밀었어. 나랑 내 아이를 죽이려고 했어... 제발 살려줘!”성도윤은 임채원의 몸에서 뜨거운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현기증이 발작할까 봐 두려워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그저 임채원을 안고 차로 걸어갔다.“걱정하지 마. 너랑 아이는 반드시 지켜.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성도윤은 굳은 얼굴로 목이 멘 채 약속했다.차설아는 벌벌 떨며 앞으로 다가가 목멘 목소리로 해명했다.“고의가 아니었어. 방금...”“비켜!”성도윤은 차설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가운 어조로 호통쳤다.“...”차설아는 바로
성도윤은 혼미상태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곧 죽음을 앞둔 기분이 들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나락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사방은 온통 새까맣게 뒤덮여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어 중얼거렸다.“잡아줘. 나 좀 잡아줘.”절망의 순간, 부드럽고 섬세한 손이 어둠 속에서 그를 붙잡았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그의 긴장했던 신경이 천천히 느슨해졌다.귓가에는 그의 잃어버린 영혼을 부르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성도윤, 내가 잡았어. 이제 좀 깨어나.”이 소리를 들은 성도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차설아의 아름답고 하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드디어 깨났어. 깜짝 놀랐잖아!”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성도윤은 피 멀미로 3일 밤낮을 혼수상태에 빠졌고, 의사가 어떤 방법을 써도 그를 깨울 수 없었다.검사결과에 따르면 그의 여러 장기가 위급한 수치를 보여, 이대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진짜 위험할 뻔했다.차설아는 성도윤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왔다. 성도윤의 옆에서 목이 쉬도록 그를 불렀고, 마침내 성도윤을 깨웠다.성도윤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벌떡 일어나 앉더니 물었다.“채원이랑 아이는 어떻게 됐어?”차설아는 심장이 칼에 찔리는 것 같았다.처음에는 성도윤이 임채원에 대한 감정이 그저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보니 절대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다.차설아는 남자에게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사실대로 말했다.“채원 씨는 아직 중환자실에 있어. 의사가 더 지켜봐야 한대.”“아이는, 아이는 괜찮아?”성도윤이 재빠르게 추궁했다.“아이는...”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성도윤은 두 눈을 붉히며 차설아의 어깨를 움켜쥐고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성도윤, 진정해. 아프단 말이야!”차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썼다.“아프다고?”성도윤은 이미 통제 불능이 되어 마치 살인범
이성을 잃은 성도윤의 손가락은 더욱 힘을 주었다.이 순간, 그의 뇌는 마치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다른 것은 돌볼 겨를도 없이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다.“...”차설아는 너무 고통스러워 눈썹을 찡그렸고,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남자를 쳐다보았다.그녀의 실력대로라면 충분히 반격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몸부림도 없이 묵묵히 견뎠다.임채원의 아이는 확실히 그녀의 실수로 인해 죽은 것이 맞기 때문이다.성도윤의 아이를 죽게 했으니, 자신과 두 아이의 목숨으로 그 빚을 갚는 것도 어쩌면 깔끔했다.지금 성도윤의 손에 죽을지언정, 남은 인생을 성도윤과 임채원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차설아는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고, 고통스럽고 상처 입은 그녀는 눈을 감았다.다행히 성도윤은 유일하게 남은 조금의 이성으로 차설아를 밀어냈다.“켁켁켁!”호흡을 되찾은 차설아는 마른기침을 했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왜 마음이 약해진 거야? 당신 아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차설아는 허무한 미소를 지으며, 자학하듯 남자의 인내심에 끊임없이 도전했다.“닥쳐!”성도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애써 화를 억눌렀다.그는 차설아의 잔인함에 실망했지만, 사실 자신의 무능함에 더 실망했다.형이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핏줄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그 무고한 생명을 대신해 복수할 용기조차 없는 그는 정말 철두철미한 겁쟁이였다.그는 차가운 눈을 들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부터 나랑 당신은 완전히 끝이야. 다시는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 영원히 보고 싶지 않으니까!”아팠다!차설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오만한 자세로 등을 곧게 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좋아. 그렇게 해. 우리는 다시 볼 일 없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더욱 쿨하게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하지만,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독
이날, 성도윤은 회사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진정제로 겨우 잠잠해진 임채원은 약효가 지나자 다시 큰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나 죽게 놔둬! 죽게 놔두라고!”그녀는 미친 듯이 벽에 부딪혀 머리는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또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아이가 없어졌으니 나도 살지 않을 거야. 나 죽겠다고!”간호사들은 너무 놀라 재빨리 성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성도윤은 회사 일을 잠시 놔두고는 최대한 빨리 달려왔다.그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임채원을 꽉 끌어안고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임채원은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성도윤을 꼭 끌어안고는 억울한 얼굴을 보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도윤아, 아기가 없어졌어. 도현 오빠가 나에게 남겨준 유일한 생명인데 이렇게 사라져버렸어...”“나 간호사한테서 들었는데 내 자궁도 잘려 나갔다고 하던데, 앞으로 계속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 이번 생은 망한 건가?”성도윤은 묵묵히 임채원을 침대에 내려놓고는 뜨거운 수건으로 벽에 부딪힌 그녀의 머리를 찜질하며 속삭였다.“넌 절대 망하지 않았어. 성씨 가문은 영원히 널 지켜줄 거니까.”“정말이야?”임채원은 계속 울먹이는 얼굴로 물었다.“그거 알아? 설아 씨가 나를 찾아와서 도발했어. 성씨 가문에서는 나를 아이 낳는 도구로만 생각한다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이용 가치가 없어서 바닷물에 지워지는 모래처럼 나도 성씨 가문에서 지워질 거래...”“그리고 설아 씨가 자기는 나보다 더 가치가 있대. 어머님도 나보다 설아 씨를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두 사람 재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나 너무 속상해서 설아 씨 손을 잡고 다시 설명을 잘 들으려고 했는데 설아 씨는 화가 났는지 날 바닥으로 밀쳐냈어. 아기는 그렇게 없어져 버렸고!”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차설아가 어떻게 그녀를 다치게 했는지 반복했다.성도윤은 그저 묵묵히 들으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임채원이 겨우 진정한 것 같아 보이자 성도윤은 그제야 천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성도윤은 임채원의 말대로 이 모든 일이 차설아 때문에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려고 해수 리조트 CCTV 화면을 계속해서 돌려봤다.한 번 또 한 번 되감으면서 차설아가 어떻게 임채원을 모욕하고, 또 어떻게 임채원을 밀쳐내고, 또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피범벅이 된 임채원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지 확인했다.“젠장!”성도윤은 신경을 온통 화면에 집중했다.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굳어졌고, 차설아에 대한 실망스러운 감정으로 저도 모르게 조용한 어둠 속에서 속마음을 뱉어냈다.그는 차설아가 절대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제멋대로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라고만 생각했지.하지만 동영상을 확인한 성도윤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한 여자가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이 정도로 매정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까지 죽일 수 있으니!성도윤은 통제 불능이 될 것 같은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휴대폰을 꺼내 진무열에게 전화를 걸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당장 차설아를 S시로 데려와. 꼭 임채원에게 사과해야만 해. 그리고 나에게도, 성씨 가문에게도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전화기 너머의 진무열은 성도윤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대표님, 너무 늦었어요. 사모님... 아니, 차설아 씨는 이미 떠났습니다.”“떠났다고?”성도윤이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물었다.“어디로 갔는데? 또 어디로 갈 수 있는데?”“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진무열이 말을 이어갔다.“아마 일주일 전쯤에 저에게 찾아와서 작별 인사를 고했어요, 곧 해안시를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다시는 해안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저에게 성대 그룹 분들에게 대신 작별 인사를 해달라며 부탁했어요. 모든 직원들에게 선물까지 준비했고, 대표님에게도 말을 전하라고 했어요...”그 말을 들은 성도윤은 분노가 끓어올랐다.‘이 여자가 잘못을 저질러놓곤 도망을 가? 아무 얘기도 없이
성도윤은 당장이라도 진무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져?”“그러게요. 저희 진짜 낱낱이 찾아봤어요. 하지만 차설아 씨가 어디로 떠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참... 차설아 씨와 함께 민이 이모라는 분도 사라졌어요...”여기까지 말한 진무열은 한숨을 푹 쉬고는 석고대죄를 지은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제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찾아보세요!”성도윤은 한시라도 지체하지 않았다. 개인 비행기를 타고는 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종적을 감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당연히 이 모든 건 차설아가 아직 해안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그래서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인맥과 힘을 총동원해 그녀를 찾아내려고 했다.성도윤은 더 많은 수색 인원을 파견했다. 해안의 구석구석을 수색했고, 또 강진우와 사도현에게도 도움을 부탁해 합법적인 수단과 불법적인 수단 모두 사용했다.지금의 사도현은 이미 완쾌되어 퇴원했고, 강진우와 같이 성씨 가문 저택에서 성도윤과 합류했다.“무슨 소식이 있어?”성도윤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미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진우와 사도현을 향해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도윤 형,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겼는데, 설아 쨩이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어? 남은 평생 영원히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기세인데?”사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화재 사고에서 차설아가 그의 목숨을 살렸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기도 전에 차설아가 사라져버렸으니 그는 마음속으로 아쉬움이 남았다.“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잔말 말고 얼른 사람이나 찾아!”성도윤은 마음이 초조해 그들과 잡담을 나눌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차설아를 찾아내고 싶었다.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차설아를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인가?“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