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야.”성도윤이 잔잔한 목소리로 별 표정 없이 말했다.어차피 아이도 죽었고, 차설아도 사라졌으니 이 비밀을 더는 지킬 필요도 없었다.“뭐... 뭐?”사도현은 놀란 마음에 입을 떡 벌렸다.강진우도 그처럼 최소 10분 뒤에야 머릿속으로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도윤아, 왜 그랬어? 그나저나 너도 힘들겠어.”성도윤이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내가 왜 힘들겠어? 내 이 목숨도 도현 형 덕분에 건진 건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도현 형 소원을 들어줘야지. 하지만... 내가 너무 못났어!”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성도현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도윤 형이 뭐가 힘들어? 힘든 건 당연히 설아 쨩이지!”사도현은 저도 모르게 차설아의 편을 들었다.“형님을 위해 책임을 지면 책임을 질 것이지, 왜 설아 쨩을 괴롭히냐고. 도윤 형이 임채원과 아이를 위해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형이 설아 쨩을 위해 책임진 적은 있어? 4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설아 쨩이 뭘 잘못해서 형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그만해!”강진우가 사도현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그때는 도윤이랑 설아 씨가 맨날 이혼하길 노래 부르더니, 왜 이제 와서 설아 씨 편을 들어? 불난 집에 부채질할 셈이야? 도윤이가 힘든 게 안 보여?”“그 말이 아니라. 그냥 설아 쨩이 불쌍해서 그러지. 설아 쨩이 뭘 잘못했어...”“난 도윤이 마음이 이해가 가!”강진우는 애처로운 얼굴로 안색이 짙은 성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윤이는 그저 채원 씨랑 아이가 성씨 가문에 남을 명분을 주고 싶었던 거야. 아이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랐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때 도윤이는 전혀 설아 씨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설아 씨도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았고.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누가 견딜 수 있겠어? 두 사람은 결국 이혼했을 거야. 채원 씨와 아이는 이혼에 빌미를 제공했던 거고...”사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목 졸라 죽일 뻔했잖아, 너무했냐고?”성도윤이 물었다.“너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사도현은 제삼자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말했다.“도윤 형 평소 행동 스타일로 봤을 때 충분히 상대방을 목 졸라 죽일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설아 쨩이라면 도윤 형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긴 해.”성도윤과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사도현은 평소 명석하고 이성적인 성도윤이 이렇게 넋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성도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또 안타깝기도 해 사도현은 더 심한 말을 하지도 못했다.“자업자득이야!”덤덤한 얼굴의 성도윤은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죽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너무한 것 없어!”사도현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는 입을 삐죽이며 매를 벌었다.“그래, 너무한 것 없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설아 쨩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도윤 형이 이번에는 제대로 목을 조르려고 그러는 거지?”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사람 찾고 말해!”사도현과 강진우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들은 누구보다도 성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은 차갑게 해도 분명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럼 더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먼저 사람부터 찾는 게 좋겠어.”강진우가 침착하게 분석했다.“내가 알아낼 수 있는 행적 데이터에 의하면 설아 씨는 사라지기 전에 차씨 저택, 서산 공동묘지, 천신 그룹 본사, 성대 그룹 본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씨 저택 본가로 갔어.”성도윤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그러니까 데이터에 의하면 본가로 간 뒤로 사라졌다는 거야?”“응, 데이터로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어. 지금까지 총 51시간 지났어.”강진우는 입수한 데이터를 프로젝터로 투영하고는 차설아가 다녀간 곳을 하나하나씩 성도윤에게 짚어줬다.사도현이 말했다.“51시간이면 이틀 조금 넘
사실 성도윤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는 성씨 저택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나도 참 웃겨. 그렇게 단호하고 결단력 있던 내가 왜 이렇게 주춤주춤 망설이는 거야? 이성적이지 않은 모습이 전혀 나답지 않잖아.’성도윤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긴 손가락으로 이불 위를 살짝 스쳤다. 마치 그녀의 머리카락, 그녀의 얼굴, 그녀의 뽀얀 피부를 스치듯이 말이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차설아 생각뿐이었다.그를 향한 웃는 모습, 화내는 모습, 도발하는 모습, 수줍은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담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가슴 한편이 구멍 난 것처럼 공허했고, 마음이 괴로웠다.“젠장!”성도윤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더는 이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결국 여자 하나가 떠나갔을 뿐인데 내 삶은 전혀 영향받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고. 게다가 상대는 마음이 독하고 잔인한 여자야!’그렇게 원한을 품고 성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설아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다만 고개를 돌렸을 때, 서랍에 있던 크라프트지 표지의 노트에 마음이 이끌렸다.노트는 자물쇠로 잠겨졌는데 왠지 모르게 비밀이 가득 담긴 일기장 같기도 했다.‘설마 차설아의 일기장인가?’성도윤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곧장 노트를 꺼내고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비밀번호는 모두 정확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아예 손으로 자물쇠를 ‘찰칵’ 비틀어 열었다.일기장을 펼치기 전에 성도윤은 잠깐 멈칫했다.아무래도 일기는 프라이버시이고,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건 허용되지 않은 일이라 그는 떳떳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윤은 이 두꺼운 일기장을 몽땅 읽어보기로 했다...‘어차피 잘못을 저질렀으니 열어봤던 김에 다 봐야지.’하지만 뜻밖에도 노트에는 일기가 아닌 소설 원고가 쓰여 있었다.바로 한때 인기를 끌어모았던 성도윤과
“나는 몰랐다, 이 세상에는 정말 ‘첫눈에 반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났지만,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서로와 함께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해야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차갑게 대하는지도 조금 이해할 것만 같았다...”“아마 그 사람 마음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꿈이라든가, 시라든가, 먼 곳이라든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든가... 하지만 유독 나만 없는 것 같다. 다만 주례해 주시는 분께서 ‘반지를 교환하면 신랑 성도윤 군과 신부 차설아 양은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라는 말씀하실 때, 나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어느 날 나도 그 사람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를 바랐다.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다!”“나는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었고 그 사람은 잔뜩 놀란 모양이었다. 분명 죽을 만큼 싫었을 텐데도 나를 위해 눈물을 닦아주고 반지를 끼워주었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얼굴로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제3화, 기다리다.“난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봤었다. 같이 소파에 틀어박혀 로맨스 영화를 본다거나, 같이 복잡한 레고로 아름다운 성을 쌓는다거나, 같이 게임을 하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거나,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를 그 사람이 끝까지 다 먹는 것을 본다거나, 손을 잡거나, 또 서로 껴안은 채 잠이 든다거나...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결혼 후의 삶은 계속 ‘기다림’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그가 밥 먹기를 기다리고, 그가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하지만 비참한 건, 수많은 ‘기다림’ 중에서 그를 맞이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어느 외롭고 쓸쓸하던 밤, 나는 홀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도 점점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사랑이 거의 메말
“정말이야?”성도윤은 사도현을 보더니 차갑던 눈동자는 다시 불처럼 환하게 반짝였다.“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설아 쨩이 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에 나타났대. 이건 보내온 사진들이고.”사도현은 재빨리 휴대폰을 켜고 사진 한 장을 확대해서 성도윤에게 보여줬다.사진 속의 여인은 옆모습일 뿐이었는데, 오뚝한 콧날부터 턱선까지, 차설아와 똑같이 완벽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차설아가 전에 입었던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흐릿한 옆모습 사진만으로도 성도윤의 모든 열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보자고.”두 사람은 차를 타고 영흥 부둣가로 향했다. 강진우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성씨 본가에 남아 있었다.사도현은 성도윤은 가는 내내 노트 하나를 꽉 쥐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도윤 형, 이 노트는 뭐야? 기밀문서야? 왜 계속 쥐고 있는 거야?“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와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하지만 사도현은 꼬치꼬치 캐물었다.“기밀문서가 아니면 뭔데?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쥐고 있어? 나 봐도 돼?”그는 손을 뻗어 노트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분명 여자가 쓸 것 같은 노트인데 말이야. 그리고 자물쇠를 차고 있는데 도윤 형이 억지로 비틀어 연 거 아니야?”사도현이 주절주절 분석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나 알겠어. 이거 일기장이지? 설아 쨩 일기장?”“오호, 도윤 형, 왜 남의 일기를 훔쳐보고 그래? 너무한 거 아니야?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게 불법이라는 걸 알아? 도윤 형처럼 떳떳한 사람이 이런 짓도 하는구나. 역시 설아 쨩을 너무 사랑해서 이성을 잃은 건가?”“닥쳐!”성도윤은 불쾌한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도현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사도현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이렇게 품위 없는 짓을 도윤 형 혼자 할
성도윤보다도 더 심한 감정 기복을 겪게 되었다.“응? 이대로 끝이야?”사도현은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가슴을 치켜 울부짖기 시작했다.“이제 곧 야한 장면이 그려질 텐데, 왜 이대로 끝이야? 작가가 누군데? 당장 가서 재촉해야겠어!”성도윤은 그에게 봉변당할까 봐 저도 모르게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사도현은 또 노트의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이 물었다.“도윤 형, 설마 이게 형이랑 설아 쨩 얘기야?”성도윤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니면 뭐겠어?”“그럼 이거 설아 쨩이 쓴 거야? 내용이 다 사실이야?”“반반이라고 할 수 있지!”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소설 속의 일들은 실제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 패턴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사도현은 깜짝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보물을 품듯 노트를 소중히 다루면서 말했다.“설아 쨩이 글까지 잘 쓰는지 몰랐네. 너무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두 사람 얘기를 풀어냈잖아, 나 너무 슬프다고!”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마치 칭찬받은 사람이 자기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내가 말했었잖아, 차설아 공부 엄청 잘했었다고. 문과든 이과든.”“역시 대단하네!”사도현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도윤 형, 아무리 봐도 설아 쨩이랑 이혼한 건 형이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대단한 와이프를 그냥 내보내다니. 설아 쨩을 다른 남자에게 그냥 넘겨주겠다는 거 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른 남자들이 차설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차설아를 다루기 쉬운 줄 알아?”“그럼 설아 쨩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설아 쨩을 넘겨도 된다는 거야?”성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쿨한 척해다.“안 될 것도 없지.”“그럼 그 사람이 나라면?”사도현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보았다.“너 진심이야?”성도윤이 예리한 눈빛으로 사도현을 보며 말했다.“차설아가 네 스타일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차는 영흥 부둣가에 도착했다.사도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성도윤을 보며 말했다.“도윤 형, 한 번 시합해 볼래? 만약 형이 먼저 설아 쨩을 찾아낸다면 나 앞으로 평생 설아 쨩을 형수님으로 모시고 살면서 절대 다른 마음 품지 않을게. 하지만 내가 먼저 찾는다면... 나 정말 설아 쨩한테 다가가기 시작할 거야!”성도윤이 싸늘한 얼굴을 보이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든지.”“역시 해안 성씨 가문의 도련님이야, 시원시원해.”사도현이 말하고는 재빨리 차 문을 열어 백 미터 달리기하듯 차에서 뛰어내리며 서둘러 차설아를 찾기 시작했다.성도윤은 느긋하게 차에서 내리고는 고급 양복의 주름을 잘 정리하고는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도도하고 시크한 모습은 마치 황제가 행차하는 것 같았다.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은 해안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이었다.여러 나라 항구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값비싼 보물들이 밀수되어 여기서 되팔렸다. 덕분에 많은 부자들이 생기긴 했지만 당연히 범죄도 늘어났다. 불법 조직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었다.성도윤은 긴 다리로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쳤다. 그는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구경하고는 마침내 작은 노점 앞에 걸음을 멈췄다.노점상은 흰 수염에 피부가 거무스름한 노인이었다. 바닥에는 린넨 재질의 거친 천이 깔렸고, 그 위로는 다양한 유형이 보물이 놓여 있었다.동전, 옥기, 고화, 토용 등 보물 하나하나가 오래되어 보였는데 무덤에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골동품 시장에 이런 노점들은 많고도 많았고, 바닥에 놓인 보물들도 비슷했기 때문에 노점 앞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젊은이, 뭐 사려고 그래?”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릿느릿 말했다.“내가 파는 물건은 시장에서 도매로 생산되는 물건들과 달라. 여기 놓인 보물들이 모두 내가 무덤에서 직접 파낸 것들이라고. 마음 놓고 사면 돼!”성도윤이 대답했다.“저 물건 사러 온 건 아닌데요.”“나 알겠어,
사도현은 순식간에 기운이 쭉 빠졌다.차설아는 정말 보통 여자와는 달랐다. 머리가 너무 똑똑했기에 그의 속셈을 단번에 꿰뚫어 볼 것이고, 쉽게 사도현에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게다가 그는 방금 호들갑을 떨며 부둣가 주위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차설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게 성도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와 소식을 알아보려고 한 거였다.그는 어색한 마음에 애써 화두를 돌리며 말했다.“도윤 형, 지금 뭐 하는 거야? 손에 왜 대나무 통을 들고 있어? 요술이라도 하려는 거야?”성도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대나무 통을 열심히 흔들기 시작했다.대여섯 번 흔들더니 스틱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노인은 스틱을 줍더니 그 위에 쓰인 글을 보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젊은이, 자네 무엇을 알고 싶은가?”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과 더 인연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그 사람’은 당연히 차설아였다.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바람은 불다가 멈추고를 반복하고, 인연은 사람의 마음에 달린다.”성도윤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자네와 그 사람의 인연은 허무맹랑한 바람과 같아 기복이 심하고 아무것도 정해졌다고 말할 수 없지. 인연이 다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운세를 풀어보자면 앞으로 4년 동안은 더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네. 4년 뒤의 상황은 당신들에게 달렸고. 서로 그리워한다면 인연을 더할 기회가 있을 것이야. 하지만 한쪽이라도 포기한다면 인연은 다한 거나 다름없지.”노인은 자세하고도 솔직하게 말했다.“...”성도윤은 그 말을 듣더니 곰곰이 생각에 잠기면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사도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쳇, 거짓말쟁이 아니야. 아무 얘기도 안 한 거나 다름없는데. 인연이 다했는데 또 계속될 수 있다는 건 뭔 말이야?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겠네.”그는 성도윤을 위로하며 말을 이어갔다.“도윤 형, 저 늙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