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당장이라도 진무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져?”“그러게요. 저희 진짜 낱낱이 찾아봤어요. 하지만 차설아 씨가 어디로 떠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참... 차설아 씨와 함께 민이 이모라는 분도 사라졌어요...”여기까지 말한 진무열은 한숨을 푹 쉬고는 석고대죄를 지은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제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찾아보세요!”성도윤은 한시라도 지체하지 않았다. 개인 비행기를 타고는 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종적을 감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당연히 이 모든 건 차설아가 아직 해안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그래서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인맥과 힘을 총동원해 그녀를 찾아내려고 했다.성도윤은 더 많은 수색 인원을 파견했다. 해안의 구석구석을 수색했고, 또 강진우와 사도현에게도 도움을 부탁해 합법적인 수단과 불법적인 수단 모두 사용했다.지금의 사도현은 이미 완쾌되어 퇴원했고, 강진우와 같이 성씨 가문 저택에서 성도윤과 합류했다.“무슨 소식이 있어?”성도윤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미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진우와 사도현을 향해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도윤 형,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겼는데, 설아 쨩이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어? 남은 평생 영원히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기세인데?”사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화재 사고에서 차설아가 그의 목숨을 살렸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기도 전에 차설아가 사라져버렸으니 그는 마음속으로 아쉬움이 남았다.“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잔말 말고 얼른 사람이나 찾아!”성도윤은 마음이 초조해 그들과 잡담을 나눌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차설아를 찾아내고 싶었다.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차설아를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인가?“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말 그대로야.”성도윤이 잔잔한 목소리로 별 표정 없이 말했다.어차피 아이도 죽었고, 차설아도 사라졌으니 이 비밀을 더는 지킬 필요도 없었다.“뭐... 뭐?”사도현은 놀란 마음에 입을 떡 벌렸다.강진우도 그처럼 최소 10분 뒤에야 머릿속으로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도윤아, 왜 그랬어? 그나저나 너도 힘들겠어.”성도윤이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내가 왜 힘들겠어? 내 이 목숨도 도현 형 덕분에 건진 건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도현 형 소원을 들어줘야지. 하지만... 내가 너무 못났어!”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성도현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도윤 형이 뭐가 힘들어? 힘든 건 당연히 설아 쨩이지!”사도현은 저도 모르게 차설아의 편을 들었다.“형님을 위해 책임을 지면 책임을 질 것이지, 왜 설아 쨩을 괴롭히냐고. 도윤 형이 임채원과 아이를 위해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형이 설아 쨩을 위해 책임진 적은 있어? 4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설아 쨩이 뭘 잘못해서 형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그만해!”강진우가 사도현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그때는 도윤이랑 설아 씨가 맨날 이혼하길 노래 부르더니, 왜 이제 와서 설아 씨 편을 들어? 불난 집에 부채질할 셈이야? 도윤이가 힘든 게 안 보여?”“그 말이 아니라. 그냥 설아 쨩이 불쌍해서 그러지. 설아 쨩이 뭘 잘못했어...”“난 도윤이 마음이 이해가 가!”강진우는 애처로운 얼굴로 안색이 짙은 성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윤이는 그저 채원 씨랑 아이가 성씨 가문에 남을 명분을 주고 싶었던 거야. 아이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랐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때 도윤이는 전혀 설아 씨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설아 씨도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았고.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누가 견딜 수 있겠어? 두 사람은 결국 이혼했을 거야. 채원 씨와 아이는 이혼에 빌미를 제공했던 거고...”사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목 졸라 죽일 뻔했잖아, 너무했냐고?”성도윤이 물었다.“너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사도현은 제삼자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말했다.“도윤 형 평소 행동 스타일로 봤을 때 충분히 상대방을 목 졸라 죽일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설아 쨩이라면 도윤 형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긴 해.”성도윤과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사도현은 평소 명석하고 이성적인 성도윤이 이렇게 넋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성도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또 안타깝기도 해 사도현은 더 심한 말을 하지도 못했다.“자업자득이야!”덤덤한 얼굴의 성도윤은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죽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너무한 것 없어!”사도현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는 입을 삐죽이며 매를 벌었다.“그래, 너무한 것 없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설아 쨩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도윤 형이 이번에는 제대로 목을 조르려고 그러는 거지?”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사람 찾고 말해!”사도현과 강진우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들은 누구보다도 성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은 차갑게 해도 분명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럼 더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먼저 사람부터 찾는 게 좋겠어.”강진우가 침착하게 분석했다.“내가 알아낼 수 있는 행적 데이터에 의하면 설아 씨는 사라지기 전에 차씨 저택, 서산 공동묘지, 천신 그룹 본사, 성대 그룹 본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씨 저택 본가로 갔어.”성도윤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그러니까 데이터에 의하면 본가로 간 뒤로 사라졌다는 거야?”“응, 데이터로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어. 지금까지 총 51시간 지났어.”강진우는 입수한 데이터를 프로젝터로 투영하고는 차설아가 다녀간 곳을 하나하나씩 성도윤에게 짚어줬다.사도현이 말했다.“51시간이면 이틀 조금 넘
사실 성도윤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는 성씨 저택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나도 참 웃겨. 그렇게 단호하고 결단력 있던 내가 왜 이렇게 주춤주춤 망설이는 거야? 이성적이지 않은 모습이 전혀 나답지 않잖아.’성도윤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긴 손가락으로 이불 위를 살짝 스쳤다. 마치 그녀의 머리카락, 그녀의 얼굴, 그녀의 뽀얀 피부를 스치듯이 말이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차설아 생각뿐이었다.그를 향한 웃는 모습, 화내는 모습, 도발하는 모습, 수줍은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담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가슴 한편이 구멍 난 것처럼 공허했고, 마음이 괴로웠다.“젠장!”성도윤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더는 이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결국 여자 하나가 떠나갔을 뿐인데 내 삶은 전혀 영향받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고. 게다가 상대는 마음이 독하고 잔인한 여자야!’그렇게 원한을 품고 성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설아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다만 고개를 돌렸을 때, 서랍에 있던 크라프트지 표지의 노트에 마음이 이끌렸다.노트는 자물쇠로 잠겨졌는데 왠지 모르게 비밀이 가득 담긴 일기장 같기도 했다.‘설마 차설아의 일기장인가?’성도윤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곧장 노트를 꺼내고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비밀번호는 모두 정확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아예 손으로 자물쇠를 ‘찰칵’ 비틀어 열었다.일기장을 펼치기 전에 성도윤은 잠깐 멈칫했다.아무래도 일기는 프라이버시이고,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건 허용되지 않은 일이라 그는 떳떳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윤은 이 두꺼운 일기장을 몽땅 읽어보기로 했다...‘어차피 잘못을 저질렀으니 열어봤던 김에 다 봐야지.’하지만 뜻밖에도 노트에는 일기가 아닌 소설 원고가 쓰여 있었다.바로 한때 인기를 끌어모았던 성도윤과
“나는 몰랐다, 이 세상에는 정말 ‘첫눈에 반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났지만,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서로와 함께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해야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차갑게 대하는지도 조금 이해할 것만 같았다...”“아마 그 사람 마음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꿈이라든가, 시라든가, 먼 곳이라든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든가... 하지만 유독 나만 없는 것 같다. 다만 주례해 주시는 분께서 ‘반지를 교환하면 신랑 성도윤 군과 신부 차설아 양은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라는 말씀하실 때, 나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어느 날 나도 그 사람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를 바랐다.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다!”“나는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었고 그 사람은 잔뜩 놀란 모양이었다. 분명 죽을 만큼 싫었을 텐데도 나를 위해 눈물을 닦아주고 반지를 끼워주었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얼굴로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제3화, 기다리다.“난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봤었다. 같이 소파에 틀어박혀 로맨스 영화를 본다거나, 같이 복잡한 레고로 아름다운 성을 쌓는다거나, 같이 게임을 하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거나,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를 그 사람이 끝까지 다 먹는 것을 본다거나, 손을 잡거나, 또 서로 껴안은 채 잠이 든다거나...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결혼 후의 삶은 계속 ‘기다림’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그가 밥 먹기를 기다리고, 그가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하지만 비참한 건, 수많은 ‘기다림’ 중에서 그를 맞이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어느 외롭고 쓸쓸하던 밤, 나는 홀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도 점점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사랑이 거의 메말
“정말이야?”성도윤은 사도현을 보더니 차갑던 눈동자는 다시 불처럼 환하게 반짝였다.“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설아 쨩이 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에 나타났대. 이건 보내온 사진들이고.”사도현은 재빨리 휴대폰을 켜고 사진 한 장을 확대해서 성도윤에게 보여줬다.사진 속의 여인은 옆모습일 뿐이었는데, 오뚝한 콧날부터 턱선까지, 차설아와 똑같이 완벽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차설아가 전에 입었던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흐릿한 옆모습 사진만으로도 성도윤의 모든 열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보자고.”두 사람은 차를 타고 영흥 부둣가로 향했다. 강진우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성씨 본가에 남아 있었다.사도현은 성도윤은 가는 내내 노트 하나를 꽉 쥐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도윤 형, 이 노트는 뭐야? 기밀문서야? 왜 계속 쥐고 있는 거야?“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와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하지만 사도현은 꼬치꼬치 캐물었다.“기밀문서가 아니면 뭔데?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쥐고 있어? 나 봐도 돼?”그는 손을 뻗어 노트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분명 여자가 쓸 것 같은 노트인데 말이야. 그리고 자물쇠를 차고 있는데 도윤 형이 억지로 비틀어 연 거 아니야?”사도현이 주절주절 분석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나 알겠어. 이거 일기장이지? 설아 쨩 일기장?”“오호, 도윤 형, 왜 남의 일기를 훔쳐보고 그래? 너무한 거 아니야?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게 불법이라는 걸 알아? 도윤 형처럼 떳떳한 사람이 이런 짓도 하는구나. 역시 설아 쨩을 너무 사랑해서 이성을 잃은 건가?”“닥쳐!”성도윤은 불쾌한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도현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사도현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이렇게 품위 없는 짓을 도윤 형 혼자 할
성도윤보다도 더 심한 감정 기복을 겪게 되었다.“응? 이대로 끝이야?”사도현은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가슴을 치켜 울부짖기 시작했다.“이제 곧 야한 장면이 그려질 텐데, 왜 이대로 끝이야? 작가가 누군데? 당장 가서 재촉해야겠어!”성도윤은 그에게 봉변당할까 봐 저도 모르게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사도현은 또 노트의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이 물었다.“도윤 형, 설마 이게 형이랑 설아 쨩 얘기야?”성도윤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니면 뭐겠어?”“그럼 이거 설아 쨩이 쓴 거야? 내용이 다 사실이야?”“반반이라고 할 수 있지!”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소설 속의 일들은 실제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 패턴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사도현은 깜짝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보물을 품듯 노트를 소중히 다루면서 말했다.“설아 쨩이 글까지 잘 쓰는지 몰랐네. 너무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두 사람 얘기를 풀어냈잖아, 나 너무 슬프다고!”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마치 칭찬받은 사람이 자기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내가 말했었잖아, 차설아 공부 엄청 잘했었다고. 문과든 이과든.”“역시 대단하네!”사도현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도윤 형, 아무리 봐도 설아 쨩이랑 이혼한 건 형이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대단한 와이프를 그냥 내보내다니. 설아 쨩을 다른 남자에게 그냥 넘겨주겠다는 거 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른 남자들이 차설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차설아를 다루기 쉬운 줄 알아?”“그럼 설아 쨩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설아 쨩을 넘겨도 된다는 거야?”성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쿨한 척해다.“안 될 것도 없지.”“그럼 그 사람이 나라면?”사도현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보았다.“너 진심이야?”성도윤이 예리한 눈빛으로 사도현을 보며 말했다.“차설아가 네 스타일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차는 영흥 부둣가에 도착했다.사도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성도윤을 보며 말했다.“도윤 형, 한 번 시합해 볼래? 만약 형이 먼저 설아 쨩을 찾아낸다면 나 앞으로 평생 설아 쨩을 형수님으로 모시고 살면서 절대 다른 마음 품지 않을게. 하지만 내가 먼저 찾는다면... 나 정말 설아 쨩한테 다가가기 시작할 거야!”성도윤이 싸늘한 얼굴을 보이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든지.”“역시 해안 성씨 가문의 도련님이야, 시원시원해.”사도현이 말하고는 재빨리 차 문을 열어 백 미터 달리기하듯 차에서 뛰어내리며 서둘러 차설아를 찾기 시작했다.성도윤은 느긋하게 차에서 내리고는 고급 양복의 주름을 잘 정리하고는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도도하고 시크한 모습은 마치 황제가 행차하는 것 같았다.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은 해안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이었다.여러 나라 항구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값비싼 보물들이 밀수되어 여기서 되팔렸다. 덕분에 많은 부자들이 생기긴 했지만 당연히 범죄도 늘어났다. 불법 조직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었다.성도윤은 긴 다리로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쳤다. 그는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구경하고는 마침내 작은 노점 앞에 걸음을 멈췄다.노점상은 흰 수염에 피부가 거무스름한 노인이었다. 바닥에는 린넨 재질의 거친 천이 깔렸고, 그 위로는 다양한 유형이 보물이 놓여 있었다.동전, 옥기, 고화, 토용 등 보물 하나하나가 오래되어 보였는데 무덤에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골동품 시장에 이런 노점들은 많고도 많았고, 바닥에 놓인 보물들도 비슷했기 때문에 노점 앞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젊은이, 뭐 사려고 그래?”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릿느릿 말했다.“내가 파는 물건은 시장에서 도매로 생산되는 물건들과 달라. 여기 놓인 보물들이 모두 내가 무덤에서 직접 파낸 것들이라고. 마음 놓고 사면 돼!”성도윤이 대답했다.“저 물건 사러 온 건 아닌데요.”“나 알겠어,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