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당장이라도 진무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져?”“그러게요. 저희 진짜 낱낱이 찾아봤어요. 하지만 차설아 씨가 어디로 떠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참... 차설아 씨와 함께 민이 이모라는 분도 사라졌어요...”여기까지 말한 진무열은 한숨을 푹 쉬고는 석고대죄를 지은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제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찾아보세요!”성도윤은 한시라도 지체하지 않았다. 개인 비행기를 타고는 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종적을 감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당연히 이 모든 건 차설아가 아직 해안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그래서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인맥과 힘을 총동원해 그녀를 찾아내려고 했다.성도윤은 더 많은 수색 인원을 파견했다. 해안의 구석구석을 수색했고, 또 강진우와 사도현에게도 도움을 부탁해 합법적인 수단과 불법적인 수단 모두 사용했다.지금의 사도현은 이미 완쾌되어 퇴원했고, 강진우와 같이 성씨 가문 저택에서 성도윤과 합류했다.“무슨 소식이 있어?”성도윤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미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진우와 사도현을 향해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도윤 형,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겼는데, 설아 쨩이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어? 남은 평생 영원히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기세인데?”사도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화재 사고에서 차설아가 그의 목숨을 살렸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기도 전에 차설아가 사라져버렸으니 그는 마음속으로 아쉬움이 남았다.“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잔말 말고 얼른 사람이나 찾아!”성도윤은 마음이 초조해 그들과 잡담을 나눌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차설아를 찾아내고 싶었다.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차설아를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인가?“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말 그대로야.”성도윤이 잔잔한 목소리로 별 표정 없이 말했다.어차피 아이도 죽었고, 차설아도 사라졌으니 이 비밀을 더는 지킬 필요도 없었다.“뭐... 뭐?”사도현은 놀란 마음에 입을 떡 벌렸다.강진우도 그처럼 최소 10분 뒤에야 머릿속으로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도윤아, 왜 그랬어? 그나저나 너도 힘들겠어.”성도윤이 차가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내가 왜 힘들겠어? 내 이 목숨도 도현 형 덕분에 건진 건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도현 형 소원을 들어줘야지. 하지만... 내가 너무 못났어!”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성도현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도윤 형이 뭐가 힘들어? 힘든 건 당연히 설아 쨩이지!”사도현은 저도 모르게 차설아의 편을 들었다.“형님을 위해 책임을 지면 책임을 질 것이지, 왜 설아 쨩을 괴롭히냐고. 도윤 형이 임채원과 아이를 위해 책임진다고는 하지만 형이 설아 쨩을 위해 책임진 적은 있어? 4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설아 쨩이 뭘 잘못해서 형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그만해!”강진우가 사도현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그때는 도윤이랑 설아 씨가 맨날 이혼하길 노래 부르더니, 왜 이제 와서 설아 씨 편을 들어? 불난 집에 부채질할 셈이야? 도윤이가 힘든 게 안 보여?”“그 말이 아니라. 그냥 설아 쨩이 불쌍해서 그러지. 설아 쨩이 뭘 잘못했어...”“난 도윤이 마음이 이해가 가!”강진우는 애처로운 얼굴로 안색이 짙은 성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윤이는 그저 채원 씨랑 아이가 성씨 가문에 남을 명분을 주고 싶었던 거야. 아이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랐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때 도윤이는 전혀 설아 씨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설아 씨도 도윤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았고.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누가 견딜 수 있겠어? 두 사람은 결국 이혼했을 거야. 채원 씨와 아이는 이혼에 빌미를 제공했던 거고...”사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목 졸라 죽일 뻔했잖아, 너무했냐고?”성도윤이 물었다.“너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사도현은 제삼자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말했다.“도윤 형 평소 행동 스타일로 봤을 때 충분히 상대방을 목 졸라 죽일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설아 쨩이라면 도윤 형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긴 해.”성도윤과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사도현은 평소 명석하고 이성적인 성도윤이 이렇게 넋을 잃은 모습은 처음이었다.성도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또 안타깝기도 해 사도현은 더 심한 말을 하지도 못했다.“자업자득이야!”덤덤한 얼굴의 성도윤은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죽였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너무한 것 없어!”사도현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는 입을 삐죽이며 매를 벌었다.“그래, 너무한 것 없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설아 쨩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도윤 형이 이번에는 제대로 목을 조르려고 그러는 거지?”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사람 찾고 말해!”사도현과 강진우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들은 누구보다도 성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은 차갑게 해도 분명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럼 더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먼저 사람부터 찾는 게 좋겠어.”강진우가 침착하게 분석했다.“내가 알아낼 수 있는 행적 데이터에 의하면 설아 씨는 사라지기 전에 차씨 저택, 서산 공동묘지, 천신 그룹 본사, 성대 그룹 본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씨 저택 본가로 갔어.”성도윤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그러니까 데이터에 의하면 본가로 간 뒤로 사라졌다는 거야?”“응, 데이터로는 그렇게 나타나고 있어. 지금까지 총 51시간 지났어.”강진우는 입수한 데이터를 프로젝터로 투영하고는 차설아가 다녀간 곳을 하나하나씩 성도윤에게 짚어줬다.사도현이 말했다.“51시간이면 이틀 조금 넘
사실 성도윤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는 성씨 저택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나도 참 웃겨. 그렇게 단호하고 결단력 있던 내가 왜 이렇게 주춤주춤 망설이는 거야? 이성적이지 않은 모습이 전혀 나답지 않잖아.’성도윤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긴 손가락으로 이불 위를 살짝 스쳤다. 마치 그녀의 머리카락, 그녀의 얼굴, 그녀의 뽀얀 피부를 스치듯이 말이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차설아 생각뿐이었다.그를 향한 웃는 모습, 화내는 모습, 도발하는 모습, 수줍은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담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모습...가슴 한편이 구멍 난 것처럼 공허했고, 마음이 괴로웠다.“젠장!”성도윤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더는 이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결국 여자 하나가 떠나갔을 뿐인데 내 삶은 전혀 영향받지 않을 거야. 이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고. 게다가 상대는 마음이 독하고 잔인한 여자야!’그렇게 원한을 품고 성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설아로 가득 찬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다만 고개를 돌렸을 때, 서랍에 있던 크라프트지 표지의 노트에 마음이 이끌렸다.노트는 자물쇠로 잠겨졌는데 왠지 모르게 비밀이 가득 담긴 일기장 같기도 했다.‘설마 차설아의 일기장인가?’성도윤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곧장 노트를 꺼내고는 어떻게 자물쇠를 열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비밀번호는 모두 정확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아예 손으로 자물쇠를 ‘찰칵’ 비틀어 열었다.일기장을 펼치기 전에 성도윤은 잠깐 멈칫했다.아무래도 일기는 프라이버시이고,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건 허용되지 않은 일이라 그는 떳떳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윤은 이 두꺼운 일기장을 몽땅 읽어보기로 했다...‘어차피 잘못을 저질렀으니 열어봤던 김에 다 봐야지.’하지만 뜻밖에도 노트에는 일기가 아닌 소설 원고가 쓰여 있었다.바로 한때 인기를 끌어모았던 성도윤과
“나는 몰랐다, 이 세상에는 정말 ‘첫눈에 반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났지만,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서로와 함께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해야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나를 차갑게 대하는지도 조금 이해할 것만 같았다...”“아마 그 사람 마음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꿈이라든가, 시라든가, 먼 곳이라든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든가... 하지만 유독 나만 없는 것 같다. 다만 주례해 주시는 분께서 ‘반지를 교환하면 신랑 성도윤 군과 신부 차설아 양은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라는 말씀하실 때, 나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어느 날 나도 그 사람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를 바랐다.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다!”“나는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 눈물 콧물 뒤범벅이 되었고 그 사람은 잔뜩 놀란 모양이었다. 분명 죽을 만큼 싫었을 텐데도 나를 위해 눈물을 닦아주고 반지를 끼워주었다. 차갑고도 부드러운 얼굴로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제3화, 기다리다.“난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봤었다. 같이 소파에 틀어박혀 로맨스 영화를 본다거나, 같이 복잡한 레고로 아름다운 성을 쌓는다거나, 같이 게임을 하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거나,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를 그 사람이 끝까지 다 먹는 것을 본다거나, 손을 잡거나, 또 서로 껴안은 채 잠이 든다거나...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결혼 후의 삶은 계속 ‘기다림’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그가 밥 먹기를 기다리고, 그가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하지만 비참한 건, 수많은 ‘기다림’ 중에서 그를 맞이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어느 외롭고 쓸쓸하던 밤, 나는 홀로 잠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도 점점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사랑이 거의 메말
“정말이야?”성도윤은 사도현을 보더니 차갑던 눈동자는 다시 불처럼 환하게 반짝였다.“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설아 쨩이 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에 나타났대. 이건 보내온 사진들이고.”사도현은 재빨리 휴대폰을 켜고 사진 한 장을 확대해서 성도윤에게 보여줬다.사진 속의 여인은 옆모습일 뿐이었는데, 오뚝한 콧날부터 턱선까지, 차설아와 똑같이 완벽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차설아가 전에 입었던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흐릿한 옆모습 사진만으로도 성도윤의 모든 열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보자고.”두 사람은 차를 타고 영흥 부둣가로 향했다. 강진우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성씨 본가에 남아 있었다.사도현은 성도윤은 가는 내내 노트 하나를 꽉 쥐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도윤 형, 이 노트는 뭐야? 기밀문서야? 왜 계속 쥐고 있는 거야?“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와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하지만 사도현은 꼬치꼬치 캐물었다.“기밀문서가 아니면 뭔데?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쥐고 있어? 나 봐도 돼?”그는 손을 뻗어 노트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성도윤의 차가운 눈빛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분명 여자가 쓸 것 같은 노트인데 말이야. 그리고 자물쇠를 차고 있는데 도윤 형이 억지로 비틀어 연 거 아니야?”사도현이 주절주절 분석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나 알겠어. 이거 일기장이지? 설아 쨩 일기장?”“오호, 도윤 형, 왜 남의 일기를 훔쳐보고 그래? 너무한 거 아니야?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게 불법이라는 걸 알아? 도윤 형처럼 떳떳한 사람이 이런 짓도 하는구나. 역시 설아 쨩을 너무 사랑해서 이성을 잃은 건가?”“닥쳐!”성도윤은 불쾌한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사도현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사도현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이렇게 품위 없는 짓을 도윤 형 혼자 할
성도윤보다도 더 심한 감정 기복을 겪게 되었다.“응? 이대로 끝이야?”사도현은 노트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가슴을 치켜 울부짖기 시작했다.“이제 곧 야한 장면이 그려질 텐데, 왜 이대로 끝이야? 작가가 누군데? 당장 가서 재촉해야겠어!”성도윤은 그에게 봉변당할까 봐 저도 모르게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사도현은 또 노트의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이 물었다.“도윤 형, 설마 이게 형이랑 설아 쨩 얘기야?”성도윤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니면 뭐겠어?”“그럼 이거 설아 쨩이 쓴 거야? 내용이 다 사실이야?”“반반이라고 할 수 있지!”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소설 속의 일들은 실제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 패턴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사도현은 깜짝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보물을 품듯 노트를 소중히 다루면서 말했다.“설아 쨩이 글까지 잘 쓰는지 몰랐네. 너무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두 사람 얘기를 풀어냈잖아, 나 너무 슬프다고!”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마치 칭찬받은 사람이 자기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내가 말했었잖아, 차설아 공부 엄청 잘했었다고. 문과든 이과든.”“역시 대단하네!”사도현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도윤 형, 아무리 봐도 설아 쨩이랑 이혼한 건 형이 잘못한 것 같아. 이렇게 대단한 와이프를 그냥 내보내다니. 설아 쨩을 다른 남자에게 그냥 넘겨주겠다는 거 아니야?”성도윤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른 남자들이 차설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차설아를 다루기 쉬운 줄 알아?”“그럼 설아 쨩을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설아 쨩을 넘겨도 된다는 거야?”성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쿨한 척해다.“안 될 것도 없지.”“그럼 그 사람이 나라면?”사도현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보았다.“너 진심이야?”성도윤이 예리한 눈빛으로 사도현을 보며 말했다.“차설아가 네 스타일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차는 영흥 부둣가에 도착했다.사도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성도윤을 보며 말했다.“도윤 형, 한 번 시합해 볼래? 만약 형이 먼저 설아 쨩을 찾아낸다면 나 앞으로 평생 설아 쨩을 형수님으로 모시고 살면서 절대 다른 마음 품지 않을게. 하지만 내가 먼저 찾는다면... 나 정말 설아 쨩한테 다가가기 시작할 거야!”성도윤이 싸늘한 얼굴을 보이고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든지.”“역시 해안 성씨 가문의 도련님이야, 시원시원해.”사도현이 말하고는 재빨리 차 문을 열어 백 미터 달리기하듯 차에서 뛰어내리며 서둘러 차설아를 찾기 시작했다.성도윤은 느긋하게 차에서 내리고는 고급 양복의 주름을 잘 정리하고는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도도하고 시크한 모습은 마치 황제가 행차하는 것 같았다.영흥 부둣가의 골동품 시장은 해안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이었다.여러 나라 항구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값비싼 보물들이 밀수되어 여기서 되팔렸다. 덕분에 많은 부자들이 생기긴 했지만 당연히 범죄도 늘어났다. 불법 조직들은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었다.성도윤은 긴 다리로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쳤다. 그는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구경하고는 마침내 작은 노점 앞에 걸음을 멈췄다.노점상은 흰 수염에 피부가 거무스름한 노인이었다. 바닥에는 린넨 재질의 거친 천이 깔렸고, 그 위로는 다양한 유형이 보물이 놓여 있었다.동전, 옥기, 고화, 토용 등 보물 하나하나가 오래되어 보였는데 무덤에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골동품 시장에 이런 노점들은 많고도 많았고, 바닥에 놓인 보물들도 비슷했기 때문에 노점 앞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젊은이, 뭐 사려고 그래?”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릿느릿 말했다.“내가 파는 물건은 시장에서 도매로 생산되는 물건들과 달라. 여기 놓인 보물들이 모두 내가 무덤에서 직접 파낸 것들이라고. 마음 놓고 사면 돼!”성도윤이 대답했다.“저 물건 사러 온 건 아닌데요.”“나 알겠어,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