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산부인과 입원 병동.임채원은 병원 침대에 누워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그녀의 절도죄는 이미 증인과 증거가 확실하여 현재 보석 대기 단계에 있으며, 문밖에는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차설아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경우, 재판 후, 그녀는 최소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임신과 수유 기간에는 감옥에 갈 필요가 없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가장 심각한 것은, 일단 그녀가 형사 범죄를 선고받으면 후반생은 완전히 끝장이라는 것이다!차설아가 이렇게 만만치 않은 여자인 줄 알았다면, 임채원은 꼬리를 잘 숨기고, 절대 차설아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임채원은 성도윤에게 많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그녀의 죄를 씻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임채원은 이익을 취하려다 도리어 손해만 크게 보게 되었다.이때, 그녀의 주치의가 들어오면서 문을 닫고,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임채원 씨,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상황이 좀 복잡해서 직접 얘기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왜요?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문제가 좀 생기긴 했어요. 대표님이 오시면 같이 해결 방안을 상의하는 게 어떨까요?”임채원은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괜찮아요, 먼저 저한테 말씀해도 똑같아요. 어차피 제 아이이니까, 저 혼자 감당하고, 혼자 결정할 수 있어요.”“알겠습니다.”의사는 한숨을 쉬며 방금 나온 검사 결과를 건넸다.“임채원 씨, 아이의 유전자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태어나면 지적 장애의 가능성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저희가 건의를 드리자면...”“뭐라고요? 지적 장애?”임채원은 매우 흥분했다.“불가능해요. 아이는 항상 건강했어요. 아이의 아빠, 엄마도 정상인데 왜 갑자기 지적 장애가 생겨요? 분명 검사가 잘못됐어요!”“일단 진정하세요...”의사는 임채원을 달래며 설명했다.“유전자 문제이기 때문에 태아가 작을 때는 발견할 수 없어요. 지금은 임신 중기
의사가 떠난 후, 임채원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분노와 실망감이 몰려왔다.“너 참 못났어. 하늘이 너에게 성가의 핏줄이 될 기회를 줬는데 하필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니... 어차피 넌 스스로 발육을 멈출 테니, 이 엄마를 탓하지 마!”의사의 뜻은 분명했다. 이 아이는 스스로 발육을 멈추든, 피동적으로 발육을 멈추든, 어쨌든 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임채원은 당연히 이 아이가 피동적으로 발육을 멈추기를 바란다. 그럼 그녀의 문제가 아니니.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를 유산시킬 것인가?임채원의 눈에는 독기가 서렸다.‘차설아가 날 죽을 만큼 미워하잖아? 그럼 이성을 잃고 내 아이를 유산시키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지?’그때가 되면 성도윤은 분명, 자기 형의 핏줄을 잃게 만든 자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차설아는 분명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임채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아가야, 엄마를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니, 잘 부탁해.”“임채원 씨, 누가 찾아왔어요.”밖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관이 병실 문을 두드리고, 차갑게 말했다.“누가요?”임채원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성도윤! 분명 성도윤이 그녀를 보러 왔을 것이다!임채원은 감격에 겨워 거울에 빗질을 하고 나서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밖에는 그녀가 처음 보는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임채원의 얼굴은 바로 싸늘해졌고 차갑게 물었다.“누구시죠? 절 아세요?”“안녕하세요, 임채원 씨, 저는 차씨 가문의 집사예요. 저를 민이 이모라고 부르시면 돼요.”민이 이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차씨 가문의 집사?”임채원의 안색이 더욱 나빠지더니 쌀쌀맞게 말했다.“차설아 가 보냈어요?”“제가 채원 씨를 찾아온 거예요. 설아 아가씨는 모르세요.”민이 이모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제가 오늘 채원 씨를 찾아온 이유는, 앞으로 채원 씨 자신을 위해서라도 도련님의 곁을 떠나달라고 말하고 싶어서예요. 도련님과 설아 아가씨는 아직 서로에 대한 감
민이 이모는 의학 집안 출신이라, 아이를 지키는 방법은 물론, 지우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민이 이모는 이런 잔인한 짓을 한 적이 없었다.만약 이것으로 성도윤이 차설아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민이 이모는 죽어서 지옥으로 간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임채원 씨,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진짜 이 아이를 지우고 싶다면,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릴 수 있어요.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앞으로 출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민이 이모는 재차 임채원에게 확인했다.임채원이 기꺼이 물러나고, 주동적으로 아이를 지워야만 민이 이모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아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영원히 산모이기 때문에 민이 이모는 강요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옆에서 부채질을 하는 정도이다.“결정했어요.”임채원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제 아이가 사랑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아이를 사랑할 뿐만아니라, 엄마도 사랑해야 진짜 행복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아이는 지금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모두를 위해서 아이가 떠나는 게 맞아요.”“정말 사리에 밝은 분이네요. 지혜로운 생각이세요.”임채원의 대답에 민이 이모는 마음의 짐을 완전히 내려놓았다.임채원은 차설아가 말한 것처럼 악랄하지 않고, 오히려 사리 분별이 명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역시 도련님은 보는 눈이 있으셔!’“제가 곧 약을 지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민이 이모는 말을 마치고 근처 한의원에 가서 유산하는 약을 처방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민이 이모는 달인 약을 텀블러에 담아 병실에 갇혀 있는 임채원에게 건넸다.“임채원 씨, 약을 달였으니 안심하고 마시세요. 경미한 복통이 있을 테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에요. 화장실 한 번 다녀오시면 해결됩니다.”민이 이모는 임채원의 마음을 달랬다.민이 이모 집안의 의술은 뛰어나서, 약의 안전성은 보장할 수 있었다.임채원은 민이 이모가 건네준 텀블러를 보며 받지 않고 갑자기 목청을 높여서
민이 이모는 고개를 돌려서야, 병실 입구에 서서 냉혹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성도윤을 발견했다.“도련님, 전...”민이 이모는 해명하려 했지만, 손에는 낙태약이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임채원은 성도윤의 뒤에 숨어 다시 억울한 모습을 하고 흐느끼며 말했다.“이모, 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제가 확실히 잘못했고, 도윤이 곁은 떠나겠지만, 아이는 낳아야 한다고요.”“제 목숨과 같은 아이예요. 그 누구도 해칠 수 없어요. 제발 돌아가서 설아 씨한테 전해주세요.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 벌은 제가 받겠다고요.”임채원의 말에 민이 이모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지고 감정이 격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금까지 아이를 지우겠다고 했잖아요. 왜 이제 와서 피해자인 척하는 거죠? 새빨간 거짓말을 하네요.”“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건 당신이죠! 제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멀쩡한 아이를 왜 지워요? 오히려 저를 협박한 건 당신이죠! 제가 아이를 지우지 않으면 설아가 절 감옥에 보낼 거라고. 제가 약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니, 강제로 마시게 했잖아요. 문밖에서 경찰과 도윤이가 직접 봤어요!”“너...”민이 이모는 임채원만큼 연기를 훌륭하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화가 나서 가슴이 막힐 것 같았다.그제야 차설아의 말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임채원은 정말 뼛속까지 악랄한 사람이고, 하는 짓은 음흉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민이 이모는 서둘러 성도윤에게 말했다.“도련님, 믿지 마세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전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그만!”성도윤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압박하는 눈빛으로 민이 이모를 보며 물었다.“차설아가 시켰어요?”“아닙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아가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오늘 여기 찾아온 줄도 모르고 있어요. 절대 설아 아가씨를 오해하지 마세요.”“당신 혼자만의 생각이라고?”성도윤의 눈빛이 더 차가워지더니, 위
차설아의 집.차설아는 2층 창가에 앉아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보았지만 민이 이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민이 이모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이상하네. 날이 저물어 가는데 이모는 왜 아직도 안 오지? 대체 어디 갔지?”오늘 아침, 차설아는 식탁에 민이 이모가 남긴 쪽지를 보았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 외출을 하니,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하지만 꼬박 하루가 지났지만 민이 이모는 연락 두절이었다. 너무 이상했다.최근 차설아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민이 이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되었다.날이 완전히 저물자, 차설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외투를 걸치고 나가서 찾아보려 했다.문을 나서자마자 차설아는 눈에 익은 은색 스포츠카가 별장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훤칠한 키의 남자는 무심코 차에 기대고 있었다. 어둑한 가로등 아래서 그의 그림자는 유독 길어 보였다.그의 긴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있었고, 연기를 내뿜는 그는 차갑고 거리감 있는 느낌을 주어 온몸에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차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설렜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이 남자는 바로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성도윤이었다. ‘여긴 또 왜 왔지?’손에 든 담배꽁초 길이로 보아 온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차설아는 궁금했지만, 성도윤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무표정으로 그의 옆을 지나갔다.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도 화를 내지 않고 담배꽁초를 눌러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잠자코 여자의 뒤를 따랐다.키가 큰 성도윤의 그림자는 아주 길었고, 곧 차설아와 겹쳐져 두 사람이 포옹을 한 것 같았다. 공기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차설아는 성도윤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 두려 했다. 하지만 거의 1킬로미터를 따라온 남자를 보고 이유 없이 화가 났고, 갑자기 걸음을 멈춰 돌아섰다.“당신 변태야? 왜 계속
“그건 중요하지 않아.”성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어떤 비밀들은 그가 평생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숨겨두어야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당신은 그냥, 내가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만 알면 돼. 그러니까 질투심 때문에 채원이를 궁지에 몰아넣을 필요 없어!”“하하!”차설아는 웃음을 터뜨렸다.남자의 오만함과 무정함에 웃음이 났다.이 남자는 어떻게 전처를 앞에 두고 이런 뻔뻔한 말을 할 수 있을까?분명 악독한 짓을 한 건 임채원인데, 이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채원을 옹호하고, 오히려 차설아를 가해자 취급하고 있다.“성도윤, 당신 참 재밌네. 설마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서, 질투에 눈이 멀어 임채원을 감옥에 보내려 한다고 생각해?”“아니야?”성도윤은 싸늘하게 반문했다.그는 비록 연애 경험은 적지만, 겪어본 여자는 적지 않아, 이 정도 잔머리는 보아낼수 있다고 생각했다.“절대 아니야. 당신이랑은 상관없고, 순전히 내 마음이 좁아서 그래.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니까. 임채원이 날 몇 번이나 모함했는데, 당연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차설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녀는 성모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괴롭힘을 당했으면 당연히 갚아줘야 한다.차설아를 보는 성도윤의 눈빛은 복잡해지고, 깊어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당신 변했어.”“전에는 내가 멍청하고 눈이 멀었지. 그리고 예전의 내 모습은 전부 연기야!”마음이 제대로 상해버린 차설아는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늘어놓았다.“사실, 나도 당신 마누라로 사는 거 이미 지쳤어. 단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당신이랑 잉꼬부부 행세하는 것도 싫고, 당신의 그 오만하고 까칠한 엄마도 싫고, 감옥 같은 당신네 집도 싫고, 매일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밤은 더욱 싫어!”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 차가운 날들을 차설아는 추억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난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독한 마음을 먹은 이상, 당신 그 내연
그 말을 들은 차설아는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결국, 당신이었어... 당신 민이 이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당신이야말로 이모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성도윤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잔뜩 흥분한 차설아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모님은 채원이를 유산시키려고 했어. 당신 정말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할 수 있어?”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우린 한때 부부였잖아.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하자고. 난감하게 안 할 테니까 너도 이만 채원이를 놔줘.”성도윤은 자신이 차설아를 충분히 너그럽게 대해준다고 생각했다.임채원 뱃속의 아이는 형님의 유일한 핏줄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민이 이모와 같은 짓을 했다면 그는 진작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었을 것이다.“그럴 리가 없어!”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민이 이모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민이 이모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난... 임채원이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보내길 원하는 건 맞아. 하지만 난 임채원 뱃속의 아이를 해칠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 형량이 확정되어도 임산부는 바로 수감되지 않잖아. 아이를 낳고 수유 기간까지 지나서야 수감할 거라고. 그동안 아이에게는 그 어떤 위험한 상황도 생기지 않을 거야.”차설아도 엄마였기에 절대 아이한테 못된 마음을 먹을 리가 없다.그 말을 듣던 성도윤의 싸늘한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는 차설아가 분명 자신이 말한 것처럼 독한 사람이 아닐 줄 알았다. 차설아는 그저 자신을 화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당신을 믿어, 이모님도 믿고. 그러니까 이번 일은 여기까지 하는 거 어때?”성도윤은 다시 한번 제안했다.“당신이 고소를 취하하면 이모님도 다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거야.”차설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남자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성도윤 씨, 참 마음이 너그러우시네요. 왜 당신이
두 사람이 유치장에서 나오고 차설아는 다급히 성우에게 물었다.“변호사님, 방금 민이 이모를 빼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채원의 형량을 추가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죠?”“사실 엄청 간단해요.”성우가 말을 이어갔다.“만약 이모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모님이 임채원을 해쳤다는 주관적 동기가 성립되지 않아요, 그럼 당연히 형사범죄가 성립되지 않겠죠. 반대로 임채원을 명예훼손으로 역으로 고소할 수 있고요.”“만약 이때 민이 이모의 몸까지 좋지 않다면 마침 임채원의 명예훼손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주장할 수 있어요. 그럼 임채원은 형사범죄로 형량을 추가할 수 있고요. 형법상 정신적 피해에 대한 형량은 절대 일반 신체적 피해보다 가볍지 않아요.”차설아는 집중해서 성우의 말을 듣고는 다급하게 물었다.“그러니까 제가 지금 해야 하는 건 바로 민이 이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임채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야 승소할 수 있다는 거죠?”“정확해요!”성우가 말을 이어갔다.“제가 생각하기론 임채원이 거짓말했다는 걸 증명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명예훼손이 성립되거든요. 비록 그 두 명의 경찰이 인증으로 채택되었지만 법률상 인증은 아주 주관적이라 물증보다는 효력이 약해요. 보스가 물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린 소송에서 100% 이길 수 있을 거예요!”“그거야 쉽죠,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차설아가 듣고는 성우에게 엄지를 척 내밀었다.“역시 성 변호사님은 다르네요. 정말 훌륭한 방법인 것 같아요!”그녀는 지금 성도윤과 이혼하고 성운 법률사무소를 얻게 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세 명의 변호사가 그녀의 편이었으니 행정 영역이든 민사 영역이든, 아니면 형사 영역이든 그녀는 막힘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다음 날.차설아는 일찍이 임채원이 있는 병원에 찾아왔다.여전히 두 경찰이 병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임채원은 곧 자유를 되찾을 생각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도윤이가 이미 결정을 내린 거지. 어차피 쟤 인생인데 나도 쟤 뜻 존중해주기로 했어.”소영금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사실 예전의 소영금은 사사건건 아들을 속박하려 들며 성도윤의 결혼까지 간섭했었다.그래서 차설아와 함께 살 때도 둘 사이에 자꾸 끼어들며 둘의 감정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쳤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제 아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인데 그냥 내버려 뒀으면 임채원 같은 여자가 꼬일 일도 없을 것 같아 소영금은 그 일이 늘 후회스러웠다.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의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주기로 한 것이다.“그럼 제 생각은 안 하시는 거예요? 도윤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기억을 회복하든 저는 어차피 다 상처받는 거잖아요.”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 서은아는 허무한 마음에 소영금을 보며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주머니도 아시잖아요, 제가 도윤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도윤이 때문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다 아시면서 어떻게 이래요? 쟤가 실명해서 성대 그룹 이사들한테 공격받을 때도 모든 자원, 인맥 동원해서 도윤이 일으켜 세운 것도 저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더러 모든 걸 포기하라고요?”“은아야, 일단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소영금은 그런 서은아를 달래며 말했다.“그냥 뇌수술하는 것뿐이지 죽는 것도 아니고 너랑 있었던 일을 다 잊는 것도 아니야. 네가 한 희생 도윤이도 알고 나도 알아, 쟤가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잖니.”“저는 안 잊겠지만 바로 차설아를 찾아가겠죠. 그러면 저는 바로 버려지는 거잖아요, 아니에요?”“그럴 리가 없잖아. 도윤이랑 설아는 이미 지나간 인연이야.”“누가 그래요! 도윤이는 그냥 차설아를 잠시 잊어서 저를 그 여자로 생각하고 곁에 두는 거예요. 지금 나한테 다정했던 만큼 기억만 돌아오면 바로 매정해질 거라고요! 그리고 모든 사랑은 또 차설아한테 퍼주겠죠.”“그럴 수도 있지만...”엉엉 우는 서은아를 보며 측은지심이 생겨난 소영금은 그녀를 다독이
“유감일 것도 없어요. 내어준 게 아니라 갚은 거니까.”차설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나 위해서 말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손해 볼 건 없는 거래에요.”“알겠어요... 설아 씨가 비밀로 해주길 원하신다면 저희도 당연히 말은 안 하죠. 떠나고 싶으실 때 저한테 알려주시면 제가 서영 언니한테 물어볼게요. 하지만 언니도 별말 없이 보내줄 거에요.”“아직은 급하지 않아요.”차설아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진이 아직 안 깨어났다면서요, 일어나서 눈은 제대로 보이는지 확인한 뒤에 기회 봐서 나갈게요. 만약 수술이 성공적이지 않아서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내가 여기서 지내는 게 더 효율적이긴 하잖아요.”“설아 씨는 어쩜 이렇게 착해요? 우리 도련님을 이렇게 다 생각해주시고, 설아 씨는 우리 도련님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차설아의 말에 제대로 감동받은 현이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도련님도 설아 씨한테만큼은 진심이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회복 마치고 나면 성대 그룹 주권도 성도윤 손에서 빼앗아 오실 거에요. 그때는 도련님이 성도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을 테니 설아 씨한테도 꼭 제대로 보상해주실 거예요.”“그런 생각까진 안 해봤는데...”차설아도 자신의 행동이 성대 그룹의 내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눈이 보이지 않아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긴 했지만 성진은 그리 쉽게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필시 성도윤에 대응할 방도를 마련했을 것이다.그런 성진과 맞서려면 성도윤도 한동안 바빠질 것 같았다.하지만 차설아는 그래도 멀어버린 눈 덕분에 그 꼴사나운 모습들을 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렇게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돌리는 게 바로 차설아였다.---그 시각, 성도윤의 뇌수술도 한창 준비 중이었다.이미 수술복으로 환복을 마친 성도윤은 수술실에 들어가 있었고 문밖에는 소영금, 서은아, 진무열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주머니, 아직 시간
“아, 아니야!”똑똑한 원이가 눈치라도 채면 집요하게 캐물을 걸 알기에 차설아는 당황하며 다급히 부인했다.“엄마 아무 일도 없이 잘 있어. 엄마한테 언제 무슨 일 생기는 거 봤어? 걱정 말고 동생 잘 챙기고 민이 이모 말씀 잘 듣고 있어.”말을 마친 차설아는 바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원이는 그렇게 놔두질 않았다.“엄마한테 생긴 일이 적진 않죠.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데요,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니까 영상통화 못 하는 거잖아요. 1초만 켜요, 아무 일 없다는 거 내 눈으로 확인하면 믿어줄게요.”“그게...”원이를 속이지 못한다는 걸 알아챈 차설아는 핸드폰을 멀리 놓고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원아, 뭐라는지 잘 안 들리네? 엄마 지금 친구랑 등산 하고 있어서 신호가 안 좋아. 나중에 통화하자!”말을 마친 차설아가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보고 있던 현이가 감탄하며 말했다.“설아 씨는 정말 행복하겠어요. 아들딸 다 저렇게 귀엽고 똑똑한데 엄마도 엄청 사랑하는 게 눈에 보여요!”“나는 행복한데 애들은 행복하지 않아요...”“나 따라다니면서 겁도 많아졌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어요.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에요.”“그런 말씀 마세요. 애들한테 설아 씨처럼 착하고 대단한 엄마가 있어서 행복할 거예요. 설아 씨는 애들이 설아 씨랑 살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생각해도 애들은 엄마랑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을 거예요.”아직 어리지만 아이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현이는 아들딸을 모두 둔 차설아가 부러웠다.그렇게 아름다운 가정인데 엄마가 시각장애인이 돼버렸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가슴 아플지 눈에 선해 현이는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집에... 모셔다드릴까요?”동정심이 차오른 현이는 차설아에게 앞으로의 생각을 물었다.“나 나갈 수 있어요?”그에 차설아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당연하죠, 설아 씨는 도련님한테 빛을 보게 해준 은인인데 하늘의 별을 따달라 해도 다 드려야죠. 자유를 원하시면 두말없이 보내드릴
상대방이 악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숨 돌린 차설아가 말했다.“수술은 다 끝난 거죠? 잘 됐어요? 진이는 어때요? 이제 보인대요?”“언니가 그러는데 수술은 잘 끝났고 일주일 뒤에 실 빼면 도련님은 볼 수 있대요. 그런데 설아 씨는...”현이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은 창백한 얼굴의 차설아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설아 씨는 앞으로 어떡해요...”“난 괜찮아요. 눈만 잃었지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살아지겠죠. 세상에 시각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들도 잘살고 있잖아요.”자신의 상황이 더 고통스러울 텐데 차설아는 이 와중에도 현이를 위로해주고 있었다.그래서 현이는 그런 차설아를 보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요 며칠은 제가 잘 보살펴드릴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릴게요.”착하고 긍정적인 차설아를 보며 현이는 아까부터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넘게 감탄하고 있었다.이런 좋은 사람에게 가혹한 일이 생긴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그럼 나 부탁하나 있는데 좀 도와줄래요?”현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보아낸 차설아는 사양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내 핸드폰으로 민이 이모한테 전화 좀 해줄래요?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해서 아마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알겠어요.”침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찾아낸 현이는 차설아의 말대로 핸드폰 잠금을 풀고 ‘민이 이모’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왜 이제야 전화하세요! 어디 가셨던 거에요 그동안? 갈 만한 데는 다 찾아봐도 없어서 원이랑 달이가 얼마나 놀랐는데요.”민이 이모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어제는 경찰서에 신고까지 했다고 말했다.“저 친구 집에서 놀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잘 지내고 있어요. 원이랑 달이는 잘 있어요? 통화라도 하고 싶은데.”“방금 일어난 것 같아요. 진짜 하루종일 아가씨 얘기만
이틀 뒤, 차설아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성진과 함께 별장의 무균 수술실로 들어갔다.“두 분은 수술대에 누워주세요.”안과 교수는 둘을 데리고 간단한 검사를 진행한 뒤 마취 테스트를 마치고는 간호사더러 그들을 수술대에 눕히게 했다.차설아는 검사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모자만 푹 눌러쓰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수술대에 멍하니 누워있었다.엄청 큰 수술대 위에는 환한 전등이 아주 많이 달려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도 눈부셔서 차설아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광환이 감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차설아는 그제야 자신이 지옥문 앞에 와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후회돼요?”그때 옆에서 성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후회되면 지금이라도 가요.”“후회 안 해요.”하지만 차설아는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다.“눈 하나로 그렇게 많은 돈을 얻는데 제가 왜 후회하겠어요.”“그래요. 절대 손해 본다고 느끼지 않게 내가 달라는 거 다 줄게요.”성진이 확신에 찬 약속을 하자 마취제 배합을 마친 의사가 차설아와 성진을 향해 말했다.“이제 마취 시작할 건데 전신 마취라서 두 분 다 의식을 잃으실 거예요. 깨어나는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3시간에서 6시간 사이로 의식 차리실 겁니다.”“네.”“시작해주세요.”“시작하시죠.”의사의 말에 차설아와 성진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자신의 등을 통해 약물이 주입되는 걸 느끼던 차설아는 빠르게 의식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차설아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건 자신의 세상이 비로소 어두워졌다는 것이다.“거... 거기 누구 있어요?”처음 겪어보는 암흑에 심연에 빠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던 차설아는 허공에 대고 손을 저어보았다.“깨어났어요? 어때요, 눈은 안 아파요? 의사 선생님이 적어도 일주일은 있어야 상처가 다 낫는다고 하셨어요. 엄청 아프죠...”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박서영이 아님을 알아챈 차설아는 잔
대단한 집안 아가씨가 평생 숨겨야 할 남자들에게 강간당한 일을 이렇게 수면 위로 꺼낸 건 다 진무열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였다.성도윤의 최측근이 진무열이 자신을 믿고 도와준다면 성도윤과의 관계발전도 아주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아가씨가 대표님을 그 정도로 사랑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모든 얘기를 들은 진무열의 마음에는 거센 파동이 일었다.성도윤을 향한 차설아의 사랑은 달빛처럼 부드럽고 깨끗하기만 하다면 서은아의 사랑은 뜨거운 태양처럼, 영원히 빛을 낼 것처럼 정열적이었다.둘 중에 어떤 사랑이 성도윤한테 더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뜨거운 편이 나은 것 같았다.“서은아 씨랑 대표님 감정은 아직도 전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걱정은 마세요. 대표님이 요즘 바빠서 그렇지 서은아 씨 생각은 항상 하고 계세요. 바쁜 일만 다 처리하면 예전처럼 더 좋아질 거예요.”상태가 안 좋은 저를 위로하기 위한 말임을 눈치챈 서은아는 진무열을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어린 애 달래요?”“도윤이가 누굴 생각하는지는 진 비서님이 더 잘 알잖아요. 그냥 잠깐 나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고 나중에 기억 돌아오면 또 차설아한테 가버릴 건데... 그럼 나는 비서님 말대로 그저 해프닝, 변수가 되어버리겠죠!”“수술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만약 대표님이 기억해낸 게 서은아 씨와 보냈던 행복한 일상이면 서은아 씨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그럴 리가요. 도윤이랑 그 여자가 얼마나 깊이 얽혔는데 기억만 돌아온다면 내 자리는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그럼 서은아 씨는 뭘 원하는 거예요?”진무열은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서은아를 슬쩍 떠보듯 물었다.“도윤이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니고 뇌가 다친 적도 있으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일단은 그냥 놔두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냥... 이 수술 하지 말고 계속 기억 안 나는 채로 살아도 되는 거잖아요. 내가 진짜 잘할게요!”한시가 급했던 서은아는 이 수술을 원하지 않
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표정을 굳히며 오만한 태도로 진무열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에요? 지금 도윤이에 대한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예요?”“아니요, 마음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대표님을 위해서 어떤 희생까지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한 거죠.”이기적이고 강압적인 보스라 할지라도 감정에서는 많은 시련을 겪었었기에 진무열은 서은아가 성도윤에게 정말 어울리는 짝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차설아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만약 서은아도 이상한 마음을 품는다면 성도윤이 또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진무열이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도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나는. 목숨까지도 내어줄 거에요.”진무열의 말에 서은아는 입술을 깨문 채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때 그 여자 오빠가 미친 사람처럼 도윤이 납치해갔을 때 내가 도윤이 구하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 진 비서님은 모르죠?”이 얘기는 처음 듣는 진무열은 호기심에 차 물었다.“무... 무슨 일을 겪었는데요?”“차설아 씨 오빠가 도윤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비서님도 알죠?”“대표님과 자정 살인마가 오랫동안 싸우기는 했죠.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지나간 일은 다 잊고 잘 지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두 사람의 원한에는 깊은 관여를 하지 않고 가끔 조언을 해준 게 전부였기에 진무열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둘 다 원한을 내려놓고 화해하는 게 서로에게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성대 그룹의 고위 간부들은 이 기회에 자정 살인마를 제대로 눌러놔야 한다며 성도윤을 부추겼지만 성도윤은 결국 박성훈을 보내 차성철을 구해주며 그와의 화해를 선택했다.타인에게 장미를 건네면 내 손엔 그 잔향이 남는다고 그 인연으로 성도윤도 이번에 박성훈에게 수술받아 기억을 되찾을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이렇게 보니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은 하늘도 굽어살펴 주는 것 같았다.“둘은 화해했지만 나는... 내가 받은 상처는
그 모습을 보던 성도윤은 눈썹은 꿈틀거렸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됐어, 성훈이 형 실력이면 너희들이 아무리 숨겨도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뭐.”그 말을 들은 서은아는 저도 모르게 손이 떨려와 들고 있던 보온 용기까지 떨어트려 버렸다.“아! 아파...”뜨거운 국물에 덴 손이 아픈지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성도윤도 빠르게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녀에게로 향했다.“괜찮아?”“응, 그냥 살짝 데인 것뿐이야.”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서은아의 표정은 서러움 그 자체였다.“봐봐.”여자의 앞에 쭈그려 앉은 성도윤은 빨개진 손등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진무열을 향해 말했다.“진무열, 은아 보건실로 데려가.”“괜찮아, 나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하지만 서은아는 계속 괜찮다고 하며 바닥에 엎질러진 국물을 보며 말했다.“너 주려고 온 오후 끓인 건데 다 쏟아버려서 어떡해... 그리고 네 러그도 더러워졌네.”“그거야 다시 끓이면 되고 러그도 사람 불러서 청소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네가 여기서 다치면 내가 미안하잖아 괜히. 그러니까 말 들어.”“알, 알겠어.”성도윤의 다정한 모습을 다시 본 서은아는 밀려오는 행복감에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하지만 만약 수요일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성도윤은 다시는 자신에게 이토록 다정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기억을 되찾은 그라면 전에 자신이 의사를 매수해 뇌에 이상이 생기게 만든 걸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일 텐데 그래서 서은아는 지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마냥 불안했다.“아가씨, 저 따라오세요.”서은아를 데리고 성대 그룹 보건실로 향한 진무열은 의료진이 처치를 해주는 걸 보며 팔짱을 끼더니 서은아를 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우리 대표님 마음 사로잡기가 쉽지 않죠?”“진 비서님도 내가 너무 달라붙으니까 꼴사나워 보여요?”“아가씨가 대표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전혀 꼴사납지 않죠.”진무열은 또 옛날의 차설아를 떠올리며 말했다.“예전 사모님도 서은아 씨처럼 우리 대표님한테 지
보온 용기를 들고 들어온 서은아는 활짝 웃으며 성도윤에게로 다가섰다.“보신탕 끓여왔는데 이게 위에 좋대, 너 안 그래도 위 안 좋은데 얼른 마셔봐.”그녀가 뚜껑을 열자마자 향기로운 보신탕의 냄새가 확 풍겨오자 진무열은 감탄을 자아내기 시작했다.“와, 냄새 너무 좋은데요. 서씨 집안 아가씨로 살면서 요리는 언제 배우셨어요?”책상을 마주 앉아 계약서를 넘기던 성도윤은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말했다.“그렇게 좋으면 가져가서 마시던가.”“...”성도윤에게 보신탕을 덜어주려던 서은아는 매정한 남자의 말에 행동을 멈추었는데 진무열도 바보는 아닌지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가씨가 대표님 위해서 직접 만들어 오신 건데 제가 뭐라고 감히 그걸 마셔요, 저는 그냥 뜨거운 물 마실게요.”그 말에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은 서은아가 진무열을 보며 웃었다.“많이 해와서 괜찮아요. 드실 거면 덜어드릴게요.”“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그냥 장난이었어요. 대표님 요새 마침 속 안 좋으신데 대표님 다 드리세요. 앞으로 종종 해주시면 좋고요...”말을 하던 진무열은 갑자기 제 아내를 떠올리며 말했다.“대표님 이혼 전에는 사모님도 이런 보신탕 자주 해왔었는데 대표님만 드리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다 나눠줬었어요. 회사 복지라면서 곳곳에 놔두고 왔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우렁각시라는 별명도 얻었죠.”“그... 그래요?”자신을 난처하게 하는 진무열의 말에 서은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꾸했다.이렇게 눈치 빠르고 일 잘하는 사람이 성도윤 옆에 있으면 언젠가는 자신의 일을 방해할 게 분명했기에 서은아는 하루빨리 진무열부터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한편 일에 열중하며 진무열과 서은아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성도윤은 갑자기 들리는 ‘이혼’과 ‘사모님’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들며 물었다.“진 비서, 아까 이혼이라고 했어?”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캐묻기 시작했다.“내가 전에 결혼을 했었어?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