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차를 한 대 부르고는 별장 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극심한 고통에 몸을 휘청거렸다. 성도윤이 언제 따라왔는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확 잡고는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는 거야?”“당신 애인 때문에 화가 나서!”차설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녀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허약하고 힘이 없어 전혀 뿌리칠 수가 없었다.“괜찮아? 병원으로 데려다줄게.”성도윤은 혼자 떠나려는 차설아가 걱정되어 운전할 차를 가지러 가려고 했다.“선심 쓰는 척할 필요 없어!”차설아는 성도윤의 모든 행동들이 가식으로 느껴져 그에게 눈길 한 번 주고 싶지 않아 피식 웃으며 말했다.“만약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당신 애인 잘 설득해서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안 그러면 더 비참해지게 만들 거니까... 아무튼 이 일은 내가 반드시 끝까지 추궁할 테니 임채원은 이 일을 쉽게 넘기지 못할 거야!”차설아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몸이 워낙 허약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큰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그래, 당신 좋을 대로 해, 그럴 자격 있으니까. 지금은 먼저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어.”성도윤은 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차설아를 설득하고 있었다.그는 긴 팔로 휘청거리는 차설아의 몸을 부축하고는 슈퍼카가 멈춰 선 곳으로 걸어갔다.“내가 말했었잖아,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이거 놔!”차설아는 고집을 부리며 발버둥 쳤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다. 분명 상처를 입은 건 자신인데 이 녀석은 원칙 없이 차설아를 보호하질 않나, 괜히 그녀만 악독한 여자 신세가 되고 말이다.그래서 성도윤이 갑작스레 베푼 관심에 차설아는 그 억울함이 분출되었다...‘그래, 이 녀석 그래도 양심은 있네. 아직 구제불능의 지경에 이른 건 아니라고.’두 사람이 마침 슈퍼카 앞에 다다랐을 때, 성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바로 임채원을 데려간 두 경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성도윤 씨, 얼... 얼른
차설아는 민이 이모를 보자 마치 엄마를 본 듯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민이 이모, 배가 너무 아파요!”그녀는 아이처럼 민이 이모의 품에 와락 안기고는 거침없이 울기 시작했다.4년 동안 차설아는 집안에 변고가 생겨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심지어 성도윤과 이혼을 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도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녀도 겨우 스무 살 넘은 여자애일 뿐이었고, 더는 강인한 척을 하고 싶지 않았다!“아가씨...”민이 이모는 어리둥절했다.어쩌다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차설아를 보며 가슴이 아파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차설아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괜찮아요, 아가씨. 힘든 일은 다 지나갈 거예요. 민이 이모가 여기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영원히 아가씨 곁에 있을 거니까요!”차설아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민이 이모의 품에 쏙 안겨 있었다.이런 편안함을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기에 차설아의 몸도 덩달아 긴장이 풀리면서 고통이 덜해졌다.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유모였다. 출산 육아 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차설아의 배를 보고 또 차설아의 안색을 보더니 대충 짐작이 갔다.“아가씨, 혹시 임신하셨어요?”민이 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게...”차설아는 민이 이모에게 알려줄지 고민하고는 부인하려고 했다.하지만 민이 이모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맥박을 살피더니 말했다.“제 짐작이 맞는다면 이제 곧 임신 3개월 되죠?”“민이 이모는 속일 수 없을 줄 알았어요.”차설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민이 이모는 의학 가문 출신이라 뛰어난 의술을 익히 알고 있었다.엄마한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민이 이모는 할머니께서 직접 차씨 가문으로 모신 분이시라고 한다. 차씨 가문의 여러 가지 사무를 관리하고 임신한 엄마와 나중에 태어난 차설아를 보살펴 출산과 육아 방면으로는 많은 의사들보다도 더 경험이 풍부했다.민이 이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차설아의 맥박을
“큰사모님 얘기가 궁금한 거예요?”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그럼 미안하게 되었네요, 저도 큰사모님에 대해선 잘 몰라요. 한 번밖에 보지 못했거든요...”“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요?”“네!”민이 이모는 회상에 잠기더니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저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받았어요. 모씨 가문은 평생 성씨 가문을 모시며 살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큰사모님께서 저를 찾아오시고 저에게 차씨 가문의 집사일 외에 그당시 임신한 사모님과 곧 태어날 아가씨를 돌볼 것을 제의하셨죠. 저는 무조건 큰사모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큰사모님은 워낙 신비로운 분이셨어요. 그 어떤 공식 석상에서도 얼굴을 비추시지 않으셨고 저를 만날 때도 베일을 쓰고 계셨어요. 큰사모님을 뵌 건 딱 그 한 번뿐이었어요.”“큰 사모님께선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셨죠. 단지 ‘아름답다’는 말로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가지셨어요.”“제가 처음 차씨 가문으로 왔을 때 큰사모님께서는 이미 떠나셨어요. 어디로 떠나셨는지는 어르신,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 모두 함구하셨어요. 그 이후로 아무도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죠...”차설아가 의기소침하게 말했다.“그래요, 할아버지도 할머니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으셨잖아요. 집에는 할머니 사진도 없고요. 하지만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모두 할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동안 할머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부득이하게 떠나야 했는지 알고 싶어요.”민이 이모한테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어쩌면 민이 이모가 알고 있는 것이 그녀보다도 많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여러 가지 경로로 겨우 짜깁기하여 조금의 정보를 알아냈었다.할머니 성이란은 머나먼 해주시의 가장 오래되고 신비로운 가문인 성씨 가문 출신이었다.이 가문은 한때 무한의 영광을 누렸지만 어떤 특별한 이유로 지금은 세월의 연륜 속으로 사라져 아무도 감히 언급할 수 없는 존재로 되었다.“아
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배를 보더니 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뱃속의 아이를 안정시키고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 거예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차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민이 이모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차설아는 민이 이모를 굳게 믿고 있었다, 민이 이모도 워낙 입이 무겁기에 차설아의 허락을 받지 않은 한 이 비밀을 영원히 지킬 것이다.그 후 며칠간, 차설아는 모든 활동을 미루고 아이의 안정을 위해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민이 이모도 그녀를 정성껏 보살폈다.민이 이모는 역시 의학 가문 출신이었다. 탕약을 몇 첩 마시더니 차설아의 사소한 병들은 다 나았다. 더는 걸핏하면 피곤해지는 일이 없었고 전보다 활력이 넘쳤다. 심지어 입맛도 살아 하루에 식사를 여러 끼나 먹었다.이날, 민이 이모는 아침 일찍이 장을 보러 나갔다. 차설아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따스한 햇빛이 몸에 내리쬐어 편안함을 안겨줬다.그렇게 차설아는 다짐했다, 이제 비즈니스가 안정기에 들어서면 그녀는 아이와 민이 이모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생활할 계획이었다.그때면 차설아는 전혀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온종일 느릿느릿 여유롭게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쾌적한 기분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집 밑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겁내지 말고 다 부숴!”“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나? 오늘 여기 제대로 부수지 않으면 너희들 다 나한테 죽도록 맞을 각오해!”차설아는 미간을 구기더니 불만의 표정을 지으며 눈을 떴다.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래서 차설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누군가가 집에 쳐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있다.그녀는 묵묵히 침대에서 일어나 아무 가디건을 밖에 걸치고는 슬리퍼를 신은 채 상황을 살피러 나갔다.아래층에는 흰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쇠 파이프를 든 건달 네, 다섯 명을 지휘하며
“내가 몸조리를 다 하고 당신들을 찾아가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찾아오다니... 눈치는 있네.”차설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단을 내리면서 말했다. 손가락에서는 ‘뚝뚝’ 소리까지 났다.그녀는 4년 전에 민이 이모를 생매장한 사람이 바로 소씨 그룹 사장인 소건우의 심복, 한진규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냈었다.그녀는 한진규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있는 흰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바로 한진규였다.한진규와 건달들은 소리를 듣고 시선을 차설아에게로 돌렸다. 그러고는 피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하하, 누군가 했는데 겨우 살아남은 천한 차씨 집안 핏줄 아니야?”“우리 사장님은 일찍이 차씨 집안의 뿌리를 뽑고 싶어 하셨는데 4년 전에 성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한 번 봐줬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 넌 이미 성도윤과 이혼한 사이지. 그 누구도 네 뒤를 봐줄 수 없을 것이라고. 마침 네년의 목숨을 끊어 사장님한테서 상을 받아야지!”차설아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개도 간식을 얻고 싶으면 주인한테 재롱을 떨어. 당신한테는 그런 재주라도 있어? 입을 함부로 놀리기 전에 먼저 옷을 처리하는 게 좋을 텐데...”“아까 오줌을 싼 멋진 모습은 이미 동영상으로 녹화했어. 소건우는 심복인 당신이 관건적인 시각에 이렇게 겁에 질려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더군다나 당신은 방금 소건우를 배신하기까지 했어.”차설아가 말하고는 휴대폰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음량으로 방금 한진규가 민이 이모을 보고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린 동영상을 반복 재생했다.“푸하하하!”건달들은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겁쟁이가 따로 없네!”민이 이모도 배를 끌어안으며 깔깔 웃었다.아마 고생만 4년 동안 하다가 처음으로 이렇게 마음 놓고 웃었을 것이다.한진규의 안색은 한껏 어두워졌다. 그는 표독스러운 얼굴로 차설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X발, 감히 나한테 장난을 쳐? 내가 오늘 반드시 널 다리 하나 못 쓰게 만든다!
그 누구보다도 단순하고 난폭한 수법은 누가 봐도 해안시 절대적인 일인자인, 얼음장처럼 차가운 성도윤이었다.하지만 그런 귀하신 분이 도대체 왜 ‘누추한 흉가’로 온 것인가? 차설아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한진규는 차설아에게 당해 엉덩이가 깨졌고, 또 다른 사람에게 걷어차여 뼈가 부서질 고통이 전해왔으니 화가 치밀어 올라 그 누구보다 흉악한 표정으로 상대에게 따지려고 했다.하지만 얼음장처럼 싸늘한 성도윤와 눈을 마주치자 그는 얼굴이 바로 새하얗게 질리더니 하마터면 또 오줌을 지릴 뻔했다.“성... 성 대표님. 여, 여긴 어쩐 일이세요?”성도윤은 개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한진규를 내려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어조로 물었다.“당신, 소건우 쪽 사람 아니야?”전에 소건우와 비즈니스를 할 때부터 한진규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한진규는 소건우의 경호원들 중에서 서열 1위였는데 소건우는 어디든 그를 데리고 다녔다.“맞습니다. 저는 한진규라고 하고 저희 사장님 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습니다. 전에 소씨 그룹과 장기 계약을 하실 때도 제가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했죠. 대표님은 워낙 배울 점이 많으신 분이라 항상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한진규는 한껏 낮은 자세로 말하더니 성도윤에게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성도윤의 신분이나 지위가 모두 소건우보다 높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절대 그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다.차가운 얼굴의 성도윤은 한진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거실을 쭉 한 번 훑어보더니 난장판이 된 집안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그게...”한진규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사장님께서 차씨 집안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어요. 이 때문에 많은 이웃들이 불안한 마음을 느꼈고요. 그중에는 사장님 친구분들도 적지 않게 계셨습니다...”“사장님은 워낙 의리
성도윤은 차설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혼자 별장을 둘러봤다.“이 별장 구조가 별로네. 거실도 너무 작고, 층고가 높지 않아. 그리고 계단도 좁아서 다시 공사해야겠는걸?”“그리고 인테리어도 너무 낡아빠졌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선시대 때 남겨진 집인 줄 알겠어.”“그리고 집안의 기둥 꽃무늬도 정교하지 않아.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좋을 거야.”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성도윤은 거만한 자세로 별장 안팎 모두 한 번씩 흠을 찾았으니 말이다.‘이 녀석 제정신인 거야? 왜 남의 집에 훈수를 둬?’“도윤 씨, 많이 한가해? 언제부터 디자이너로 전향했어? 우리 집이 어떤지는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거 없어.”성도윤은 허리를 곧게 편 채 거실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차설아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벽에 걸린 산수화를 전념해서 감상하고 있었다.“이 그림 좋네. 아마도 오도자의 ‘목동만가도’겠지? 만약 진품이라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할 거야.”성도윤의 날카로운 안목에 차설아는 흠칫 놀랐다.그녀는 돈밖에 모르는 성도윤이 그림이나 서예에도 조예가 깊은 줄은 몰랐다.이 그림은 별장에서 가장 고가의 물건이 맞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 그림의 가치를 몰라봤다. 그래서 이 그림은 차씨 집안의 여러 차례 변고 끝에도 보존될 수 있었다.이 그림은 차설아의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그림이라 항상 벽에 걸려 있었다. 차설아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곤 했다.신기하게도 그녀는 성도윤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더니 그에게서 아버지와도 같은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산처럼 말이다. 그가 있는 한 그녀의 세상은 안전할 것이고, 하늘이 무너져도 그는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차설아, 너 미쳤지. 그래, 단단히 미친 거야!’옆에 있던 민이 이모는 차설아를 보다가 다시 성도윤을 보더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그녀는 성도윤을 처음으로 보는 거지만 차설아가 말한 ‘냉혈하고 무정한 놈’의 이미지는 아니었다.적어도 방금 망설임 없이 차설아
하지만 생각해 보니 불편한 사람은 차설아 자신이었다.성도윤은 자기 집에 있는 듯, 심지어 차설아보다 더 편해 보였다.얼굴이 충분히 두꺼우면 부끄러운 건 타인의 몫이었다.거실 전체는 한진규 패거리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었고, 소파 구역만 그나마 온전한 편이었다.성도윤은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포개고 덤덤하게 물었다.“여기서 지내는 건 괜찮아?”“괜찮지 않으면? 여긴 내 집이야. 당연히 편하지.”차설아는 주위를 둘러보고 웃으며 말했다.“4년 동안 방랑하다가 이제 겨우 집에 돌아왔어. 역시 자기 집이 최고야!”성도윤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말한 것처럼, 별장의 절반은 당신 거야.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들어가도 돼. 어차피 당신 집이니까!”성도윤의 말에 차설아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름답고 온화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어이없는 표정이 어렸다.“성도윤, 그런 말은 너무 위선적이라는 생각 안 해? 내연녀 때문에 한밤중에 날 집에서 내보낼 때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대?”뒤늦은 후회는 약이 없다지만, 이 남자는 후회가 아니라 목적을 가진 방문이었다.차설아는 성도윤이 자신을 찾으러 온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남자를 답답하게 만들고 싶었다.“전에는 내가 확실히 잘못했어. 임채원이 그런 억지스러운 여자인 줄은 몰랐으니까.”성도윤의 눈에 증오가 스쳤다.임채원을 처음 본 순간을 생각하면, 확실히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보기에는 한없이 연약하고 착하게 생겼지만, 그 두 눈에는 꿍꿍이들로 가득 차 결코 단순한 여자가 아니다.반대로 차설아는 맑고 깨끗한 눈을 지녔다. 평온한 계곡의 맑은 샘처럼 끝까지 바라보아도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순수했다.그런 차설아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성도윤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만약 임채원이 우리 집안을 이렇게 만들 줄 알았다면, 절대 집에 안 들였어.”성도윤은 성가네 별장에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정원에 만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