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표님, 송지아 씨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아마 일주일 정도 지나면 퇴원해도 될 거예요.”송지아 주치의가 조심스럽게 상황을 보고했다.“하지만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지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고...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살고 싶어 하는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대표님 말씀대로 준비한 최고급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셨고 영양 주사로 버티고 있어요. 대표님이 송지아 씨를 설득해 주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성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했어요.”“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의사와 주치의들이 성도윤과 함께 송지아가 있는 병동으로 향했다. 성도윤은 이제는 그만 가봐도 좋다고 말하려 하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라서 물었다.“차설아라는 여자는 왜 갑자기 이 병원에 온 거죠?”“차설아 씨라면...”병원 원장은 차설아와 같이 온 선우 시원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선우 시원 도련님과 함께 오셨는데 차설아 씨 오빠가 수술받던 중에 사고가 난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병원에 이송되었고 선우 시원 도련님이 직접 배정한 주치의와 저희 병원 의사들이 모여서 응급팀을 구성했어요.”“수술받던 중에 사고가 났다고요?”성도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물었다.“어떻게 되었는데요?”“흉터 회복 수술은 받던 중에 환자분이 마취제에 심한 반응을 보이다가 혼수 상태에 빠졌고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어요.”응급팀에 참여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런 일이 있었군요.”성도윤은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차성철이 혼수 상태에 빠져서 차설아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선우 시원이 나서서 도와주었고 감동한 차설아가 고마운 마음에 선우 시원을 안아주었던 것이다. 성도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여자는 쉽게 감동해서 다른 사람이 조금만 도움을 주어도 은인처럼 모신다고 생각했다. 선우 시원이 별로 도움 되지 않았는데도 감동한 차설아가 우스웠다. 만약 성도윤이 명의를 데리고 온다면 차설아가 성도윤의 여자로 살
병원 원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그 유명한 의사를 알고 있긴 하지만 응급팀은 이미 구성되었고 선우 시원 도련님이 매일 보고받고 있기에 갑자기 해산하면 저희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요.”“내 부탁을 거절하면 병원에 준 투자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요?”성도윤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반문하자 병원 원장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죄, 죄송해요. 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세요.”“나는 속도와 효율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선우 시원보다 더 빨리 대처할 수 있게 하세요.”“성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 다해서 맡겨주신 대로 할게요.”병원 원장은 모든 인맥을 총동원할 생각이었다. 해안시는 성씨 가문이 주름잡고 있는 곳이었기에 선우 가문을 등지고 성씨 가문에 잘 보여야 했다. 그제야 성도윤은 환하게 웃었고 머릿속은 차설아 생각으로 가득 찼다.‘차설아, 너무 감동해서 나랑 결혼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차설아는 다시 차성철이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고 기다리고 있던 바람과 마주쳤다. 바람은 차설아를 자세히 훑어보다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차설아는 소름이 돋아서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할 말 있으면 빨리할 것이지,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바람은 입술을 깨물더니 싱글벙글 웃으면서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차설아는 곧바로 주먹을 들었고 바람의 멱살을 잡았다.“다시 한번 말해볼래?”“아, 잘못했어!”바람은 차설아의 손목을 잡고는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나는 네가 그놈이랑 멀어진 것 같아서 기분 좋아. 예전처럼 그놈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지 않으니 네 마음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거든. 지금은 네 마음이 몇 퍼센트 나에게로 향하고 있어?”차설아와 성도윤 사이에서 주도권은 늘 성도윤이 잡고 있었다. 진도를 나갈지 말지, 오늘 만날지 말지는 전부 성도윤이 정했고 차설아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지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차설아는 성도윤을 쥐락펴락했고
차설아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아니, 난 그 사람이랑 뜨겁게 사랑한 적 없어.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으니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차설아는 성도윤한테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지만 서로 엇갈리면서 사랑이 점점 옅어지게 되었다. 차설아는 그저 가족이 건강하길 바랐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이때 장태호가 사복 차림을 하고서 늘 지니고 다니던 상자를 들고 걸어왔다.“장 선생님, 오늘 우리 오빠 수술 맡으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차설아는 장태호를 바라보면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차설아 씨, 도련님... 정말 죄송해요, 이 수술은 못할 것 같아요. 병원에서 이미 다른 의사를 배정했고 그 주치의가 곧 찾아올 거예요. 저는 집에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볼게요.”“그게 무슨...”차설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장 선생님이 저의 오빠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왜 갑자기 주치의를 바꾸게 된 거죠?”바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장 선생님, 무슨 일인지 알려주세요. 제가 준 돈이 부족하다면 원하는 만큼 드릴게요.”장태호가 머쓱하게 웃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저는 선우 가문 어르신의 주치의로서 선우 가문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상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여서 저에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으니 실력 있는 의사한테 수술을 맡기게 되었어요.”“상대가 강압적이라고요?”차설아가 다가가면서 물었다.“그 상대가 누군데요? 장 선생님을 협박하던가요?”“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예요. 아무튼 상대도 환자분 치료를 위해 더 유명한 의사를 배정해 주었으니 틀린 선택은 아니죠. 걱정하지 마시고 새 주치의한테 맡기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장태호는 상자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바람아, 이제 우리 오빠 어떡해? 장 선생님이 떠나면 응급팀도 해산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오빠는 아직 중환자실에 있는데
“원장님, 왜 갑자기 장 선생님을 응급팀에서 제외한 거예요? 저의 오빠 주치의 선생님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다고 약속했는걸요.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세요.”차설아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 차성철이 이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병원 원장 오태섭한테 큰 소리로 따져 물었을 것이다.“환자분을 위해서 더 훌륭한 의사를 찾았어요. 환자분께서 빨리 깨어날 수 있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저희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오태섭은 진행 중인 일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고 성도윤의 뜻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장 선생님도 충분히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저는 장 선생님을 믿기에 그분 말고 다른 의사는 필요 없어요. 장 선생님께 계속 맡겨보는 건 어때요?”차설아는 장태호가 주치의로 남기를 원했다. 차성철이 마취제에 반응을 보이면서 혼수 상태에 빠진 건 의료사고거나 체질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차성철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라고 의심했었다. 그래서 바람의 소개로 와서 차성철을 살려낸 장태호가 아니라면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차설아 씨, 저를 믿어주세요. 장 선생도 훌륭한 의사지만 신경과에서 전설로 불리는 의사가 한 명 있어요. 환자분이 깨어나지 못하는 건 마취제 불내증뿐만 아니라 뇌신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신경과 의사는 이 영역에서 아무도 능가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분이고요. 그 의사라면 환자분을 빨리 깨어나게 할 수 있을 거예요.”오태섭은 차설아의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어떤 일이 일어나도 제가 책임질 테니 믿어주세요. 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하지만...”차설아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때 바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원장님, 그 신경과 의사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어요?”“바로 박성훈이에요. 신경과 의사 중에서 제일 유명한 분이세요.”오태섭이 말을 이었다.“박성훈은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젊은이예요. 각 병원에서 의학 강연을
“그, 그게...”오태섭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식은땀을 흘렸다. 모든 일이 끝나기 전까지 성도윤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들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차설아한테 들키기 일보 직전이었다.“사실 병원에 데이터 수집팀이 있어요.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에 의하면 완치율이 99퍼센트였고 병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박성훈을 설득하겠다는 뜻이에요.”오태섭은 재빨리 다른 핑계를 대서 위기를 넘겼다. 차설아는 단단히 믿는 눈치였고 박성훈을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원장님, 박 선생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세요? 만약 병원 측에서 설득해도 소용없다면 제가 직접 가려고요.”차설아는 다른 사람에게 빚지고 싶지 않아서 직접 가려고 했다.“박성훈의 친구 말에 의하면 평소에 바다 낚시하는 걸 좋아해서 오늘도 낚시하러 갔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물고기가 잘 잡혀서 기분이 좋으면 설득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힘들 거예요.”오태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성훈은 병원과 계약한 의사가 아니라 여러 병원의 부탁을 받아 가끔 환자를 보러 가곤 했지만 돈과 권력에도 끄떡없는 사람이라 종잡을 수 없었다. 병원 원장 오태섭의 전화를 받지 않는 박성훈이 연약해 보이는 차설아의 말에 넘어갈 리 없었다. “해안시에서 바다 낚시할 만한 곳은 남교구밖에 없죠.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볼게요.”차설아는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나랑 같이 가자.”바람이 차설아를 붙잡았다.“아니, 넌 남아서 성철 오빠를 보살펴야 해. 만약 누군가가 일부러 오빠를 죽이려고 했다면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릴 거야.”“배를 타고 바다까지 나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너 혼자 보내려니까 마음이 안 놓여.”“상어만 아니라면 두려워할 것 없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괜찮아.”“넌 정말...”바람은 한숨을 내쉬더니 미간을 매만졌다. 강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바람은 도와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다.차설아는 재빨리 남교 부뚜막으로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차설아는 당장 출발하고 싶었다. 늦게 출발할수록 차성철의 상태가 악화할 것이다. “모터보트면 운전 요금을 더 지불해야 하거든요.”센터 담당자가 차갑게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직접 운전하면 돼요.”“직접 운전한다고요? 여자가 보트를 운전한다는 건 처음 들어봐요.”“요트 면허증도 땄는데, 뭐 문제 있어요? 센터 직원보다 제가 운전을 더 잘할 거예요.”“당신처럼 이상한 여자는 처음이에요. 열쇠 가져가세요.”센터 담당자가 빌려준 모터보트는 아주 작았고 오래된 보트라 액셀을 밟자마자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가장 저렴한 보트를 렌트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차설아는 검은 연기 때문에 계속 기침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다급히 출발했다.그리고 센터 담당자가 알려준 위치로 향했고 보트 뒤로 물결이 출렁거렸다. 파도를 가르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28마일 정도면 바다로 멀리 나간 것이었기에 값비싼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출항 비용이 많이 들었기에 사람이 적었다. 차설아는 어렴풋이 보이는 고급 요트를 바라보면서 그 요트에 박성훈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차설아는 재빨리 요트 쪽으로 향했고 요트 갑판 근처에서 멈추었다. 그러고는 요트 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안녕하세요. 낚시하러 오셨나 봐요?”요트는 두 층으로 된 구조였고 호화로운 장식과 작은 수영장이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요트 옆에 세워진 차설아의 보트는 한없이 초라했다. 요트의 수영장 옆에 누워있던 여자들은 차설아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저건 또 뭐야? 요트 센터에서 보낸 직원 아니야?”“요트를 운전하는 여자는 처음 봐. 설마 여장한 남자 직원은 아니겠지?”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은 계속 떠들어대자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보디가드가 입을 열었다.“두 분이 낚시할 때는 조용히 하세요.”그러자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서로 눈치만 보기
“당연히 어디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이겠지.”단발머리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휴대폰으로 해안시 8대 명문가 중 제일 명문가 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검색해 봐. 성대 그룹 대표 성도윤이잖아!”“서, 설마 박 선생님 옆에 있는 남자가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좋아했다는 그 성도윤이라고?”긴 생머리 여자가 입을 틀어막은 채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야 말을 이었다.“성 대표님과 이렇게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 예전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많았잖아. 여자가 아무리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왜 갑자기 요트 아가씨인 우리를 불러서 바다 낚시하는 거래?”“재벌가 사람은 뻔하지 뭐... 이제는 아무 여자나 안고 싶은 거겠지.”“그럼 우리도 이제는 부자 될 일만 남은 거야?”“그렇긴 한데 우리가 아니라 물고기한테만 집중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괜찮아. 저 남자들은 물고기를 유혹하고 우리는 두 남자를 유혹하면 돼.”두 여자는 귓속말로 작전을 짜고는 비키니 끈을 헐렁하게 묶은 채 갑판 앞으로 걸어갔다.“박 선생님, 술 한잔하실래요?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많이 낚으신 거예요?”“성 대표님, 배고프지 않으세요? 금방 씻은 딸기 드셔보세요.”단발머리 여자가 술잔을 든 채 박성훈 곁에 앉았고 긴 생머리 여자는 성도윤 옆에 앉아 딸기를 입에 넣어주었다. 하필 이때 차설아가 그 상황을 보게 되었다.‘나쁜 놈, 여자들과 놀 거면서 왜 나한테는 그랬던 거야!’차설아는 오늘 재수가 없는 날이라서 성도윤과 마주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성훈을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참아야만 했다. 차설아는 오태섭이 준 사진을 들고 성도윤 곁에 앉아 바다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그 남자가 박성훈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차설아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박 선생님, 여기 참치가 엄청 많아요! 저의 보트에서 낚으실래요?”차설아는 요트 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구조 요청 연막총을 하늘에 대고 쏘
“저야 너무 영광이죠. 감사해요!”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계단을 올랐지만 속으로는 성도윤을 엄청나게 욕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와 노는 것도 모자라서 박성훈한테도 요트 아가씨를 배정해 주었다. 이 요트 위에 얼마나 많은 아가씨가 탔을지, 얼마나 더럽고 비겁한 짓을 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박성훈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절대 이 요트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차설아가 요트 위에 올라가자마자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비웃었다.“어머, 언니는 옷차림이 왜 이래? 없는 가슴 드러내기 두려워서 그런 거야?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지레 겁먹는 꼴이 더 웃겨.”“우리는 성 대표님과 박 선생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올라왔어. 당신은 보트를 타고 쫓아왔으면서 뭘 또 아닌 척하고 그래? 가식 그만 떨어.”“성 대표님, 분위기 흐리는 이 여자를 쫓아내면 안 돼요?”성도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차설아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 내가 너무 섹시해서 남자들이 줄을 설 때, 너희들은 성형병원에서 가슴 수술이나 받았겠지. 박 선생님을 즐겁게 해주겠으면 개그 코너나 하나 짜든지 그래? 그리고 가식 떠는 건 나보다 너희들이 너 잘하지 않아? 남자 품에 안기고 싶어서 안달 난 년들이 뭔 말이 많아!”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은 말문이 막혔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성 대표님, 저 여자 좀 보세요. 오자마자 분위기나 흐리는 걸 보면 성 대표님과 박 선생님 심기를 건드리러 온 게 분명해요. 아무래도 쫓아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성도윤에게 딸기를 먹여주던 긴 생머리 여자가 성도윤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딸기를 건넸을 때 성도윤이 거절하지 않았기에 이미 넘어온 줄 알고 주제넘은 요구를 했던 것이다. 성도윤은 긴 생머리 여자를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 내 심기를 건드리는 건 너야.”그러자 긴 생머리 여자가 깜짝 놀라더니 손을 거두고는 말했다.“죄, 죄송해요. 성 대표님의 뜻에 따를게요.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말해서 죄송해요.”“지금부터 그 입 다물어. 내 허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