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설아는 몸이 굳은 듯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성도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연인 사이였던 것이 아니라 깊은 사랑을 나눴던 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차설아는 그가 그녀를 잊을까 봐 두려웠는데 그가 그녀를 떠올릴까 봐 더 두려웠다. 그때 문이 열리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여자가 성가의 사람과 연인 사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이 말을 한 건 당연히 그녀의 주변에서 줄곧 서성이는 성진이었다.차설아는 어색해 허리춤에 있던 성도윤의 손을 재빨리 떼며 거리를 뒀다.그러나 이런 행동은 성도윤이 보기에는 두 남녀가 몰래 정을 나누다가 들킨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정도 성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그 뜻은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건가? ”남자의 눈빛은 냉엄했고 나지막한 어조로 물었다. “역시 우리 도윤이는 똑똑하네...”성진은 당황하지 않고 차설아 곁으로 가서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이었다.“나와 내 여자 친구는 지금 좀 사이가 안 좋아. 그래서 일부러 날 질투 나게 하려고 네 품에 안긴 거니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성진 그만해,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차설아는 이 치근덕거리는 놈에게 질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흉악하게 그를 노려보고는 팔꿈치로 그를 세게 찍었다.성진은 비록 아팠지만 마음만은 매우 행복했다.여자가 그를 거칠게 대할수록 그는 더욱 중시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본인도 자신이 너무 변태적이라고 느꼈다.“자기야, 나한테 화내지 마.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그래도 도윤이를 갖고 장난치지는 마, 이미 너무 힘든 애 감정까지 갖고 놀면 애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성진은 얄밉게 말했다.이렇게 큰 모욕이 항상 자부심이 있던 성도윤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그 누구도 그보다 더 잘 알지는 않을 거다.“성진,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해.”차설아는 성도윤 앞에서 말을 너무 명확하게 할 수도 없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
발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정도 안정적이고 긍정적이기까지, 마치 성진의 그런 말들은 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했다.말도 안 돼!“그래요, 내가 당장 가서 옷을 찾아서 갖다 줄게요. ”여자는 감격스러워 울먹이며 말했다.역시 성도윤, 눈 사납게 노는 사람들을 대응하는 방법이 정말 대단하다.이번에는 성진의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그는 냉정하게 성도윤을 주시했다.성진은 마치 성도윤을 연구하는 듯했는데 남자의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했다.말도 안 돼, 천하의 성도윤이 이렇게까지 모욕당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 걸까?성도윤이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 셈이 되었다.아니, 그는 분명 그의 진실한 감정을 숨겼을 거야. 성진은 그가 폭발할 때까지 계속 모욕해야겠다고 생각했다.“양말은 빨지 않고 왜 여기 박혀 있어?”차설아는 옷장에서 깨끗한 옷 한 벌을 꺼내 성도윤에게 갈아 입히려다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성진를 보고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성진은 차설아와 성도윤의 사이를 가로막고 냉랭하게 말했다.“도윤아, 내가 말했잖아, 내 여자친구라고, 너 제수씨한테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아?”“그만하라고 했지?”차설아는 참다못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성진의 입을 찢으려 했다.“너도 말했잖아, 난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으니 욕구도 갈망하는 것도 없어, 당연한 거 아니야?”“너!”성진은 한동안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비켜, 돌보겠다며 입방아만 찧고 뭐 하는 거야? 양말 빨러 빨리 안 가!”차설아는 성도윤이 갈아 신은 양말을 주워들고는 성진의 얼굴에 던졌다.“!!!”성진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하지만 그는 차설아와 함께 남으려고 뻔뻔스럽게 양말을 주워 담으며 말했다.“빨아, 어. 빨 거야. 나 빨래도 잘해.”푸!차설아는 순식간에 성진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성진은 중요한 순간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주 일품이었다.“아, 너 이 수염 정말 안 어울려. 그냥
“어, 아니요!”차설아는 웃음은 금세 거두고 얌전하게 서 있었다.성도윤이 병약하긴 하지만 타고난 아우라는 여전히 강했는데 그가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그녀도 적당한 선에서 놀림을 멈추었다.“그... 내가 일부러 수염을 남겨 두려고 한 건 아녜요... 아, 아직 다 못 깎았어요.”차설아은 긴장이 흐르는 공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으면 내가 지금 다시 깎아줄까요?”뭐 어차피 사진은 찍어뒀으니까 나중에 꺼내서 되새길 수 있으니 이 정도로도 족하다.“그럴 필요 없을 것 같네요.”성도윤은 면도칼을 더듬어 턱을 빙빙 돌며 깨끗이 깎지 않은 수염뿌리까지 긁어내었는데 전반 과정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차설아는 얼떨떨해져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혼자서도 면도 잘하네요? 나보다 훨씬 부드럽잖아요, 왜 나보고 해달라고 했어요?”그녀가 보기에 여자가 남자의 면도를 도와주는 것은 매우 애매한 일이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말려주는 것과 같이 오직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그는 분명히 직접 할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녀에게 부탁했을까? 이것은 그녀와 썸을 타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설마 그가 무슨 생각이 난 걸까 아니면...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마음이 끌린 걸까? “당신이 깎아주는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요.”성도윤은 잘생긴 얼굴로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차설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설렘을 거두고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말했다.“당신도 방금 들었겠지만 나는 성진의 여자친구예요. 면도 같은 친밀한 일은 앞으로 나를 찾지 말아요, 남자친구가 오해할까 봐요.”“그래요?”성도윤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쉽게 차설아를 꿰뚫어 보았다.“왜 거짓말을 해요?”“거짓말 안 했어요. 성진은 정말 내 남자친구예요, 만약 남자친구가 아니었다면 내가 저렇게 때릴 때 이미 반격했을 거예요.”차설아는 진지하게 허튼소리를 계속했다.그녀도 사실 성도윤을 속이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을 느끼지
“당신과 성진이 커플인지 아닌지는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예요. 난 심지어 당신들이 조금 더 금실이 좋아지길 바래요. 이렇게 하면 성진도 매일 나를 귀찮게 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을 거고 그러면 나도 더 좋죠.”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면서 깨끗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성도윤은 담담했다.“가요, 나랑 나가서 햇볕 좀 쬐죠.”그는 이미 오랫동안 밖에 나가서 햇빛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차설아가 곁에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낙관적이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성도윤을 부축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뒤뜰로 향했다.봄날의 향기가 은은히 풍겼고 온 정원을 가득 메운 작약이 유난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공기는 비 온 뒤의 흙과 풀의 맑은 향기를 머금었으며 아침 햇살이 그들의 머릿결과 뺨에 내리쬐었는데 삼라만상이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러나 차설아는 유난히 말이 없었고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없었다.성도윤의 축복을 들은 그녀는 어쩐지 마음 한쪽이 먹먹했다.분명히 그녀가 원하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정말 이 상태라면 그녀는 온몸이 불편할 것이다.성도윤은 정자 난간을 잡고 눈을 감은 채 깊이 숨을 들이쉬며 봄날을 만끽했는데 완벽한 이목구비에 햇빛이 드리운 것이 마치 그에게 필터를 씌운 듯했다.“쯧쯧, 정말 잘 생겼네.”차설아는 비록 찝찝했지만 마침내 남자의 절묘한 얼굴을 보고는 다시 신이 나서 속으로 감탄했다.왜 남자를 찾을 때 반드시 멋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아무리 당신을 화나게 해도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화가 싹 사그라지니 말이다.여인이 남자의 미모에 도취한 사이 성도윤은 차설아를 곁눈질하며 물었다.“성진이랑은 얼마나 사귀었어요?”그 물음에 차설아는 순간 굳어졌다.“?”차설아는 이 녀석이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건 아닌지 순간 의심했다.갑자기 그 재수 없는 자식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성도윤은 소탈하게 말했는데 아무 상관없는 듯했다.차설아는 이를
“두 사람... 아이도 있어요?”성도윤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들었고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상한 것이 차설아는 이미 남편, 아이가 있는 사람이니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마음속 한쪽이 찌릿해 왔다.성도윤, 제발 정신 좀 차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여자를 이렇게 신경 써서 뭐 하려고? 이건 은아에게 미안한 일이잖아.“네, 그 사람은 나쁠지 몰라도 두 아이는 엄청 귀여워요. 그래서 그 사람과 사랑을 했던 게 후회되지는 않아요.”장난은 장난이고 이 말은 진심이었다.그녀는 성도윤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진 것을 느꼈는데 성도윤은 그런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언제 한번 보면 좋겠네요.”“...그럼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애들 삼촌 되네요?”차설아는 웃음을 참으며 계속 남자의 한계에 도전했다.그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화가 나 죽을 것 같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녀는 퍽 재미있었다.“삼촌...”성도윤은 두 글자를 계속 되새기었는데 왜인지 기분이 안 좋았다.성진 같은 미친놈이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지?“너무 부러워하지는 말고요. 이제 다 나으면 은아 씨랑 노력해봐요, 1년도 안 돼서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차설아는 비록 마음은 아팠지만 이성적으로 성도윤을 달랬다.다 나으면 그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올라가 그 당당하고 눈부신 성도윤이 될 거고 서가는 그에게 가장 좋은 뒷받침이 될 거다.그는 서은아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사업과 인생의 정상을 향해 나아갈 거고 그녀는 영영 그의 세상에서 사라져 새로운 삶을 살아갈 거다. 두 사람은 엉키고 엉켜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사이였지만 앞으로는 사귈 수 없는 두 평행선이 될 거다. 이런 결말이야말로 두 사람한테 다 좋은 결말이 아니겠는가.“그래요, 나랑 은아의 아이는 분명 제일 완벽할 거예요.”성도윤도 차설아의 축복에 맞장구를 쳤다.“...”차설아는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속상할 것 없잖아
“성도윤!”차설아는 노란 살구를 안고 정자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살구 많이 땄는데 먹어볼래요?”성도윤은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여인의 뜨거운 목소리가 들려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졌다.“달아요?”“당연히 달죠. 첫사랑보다 달걸요.”차설아는 얼른 가장 큰 살구를 골라 깨끗이 닦은 뒤 남자에게 정성스럽게 건넸다.“자, 먹어봐요.”이와 함께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을 포착할 준비를 했다.요즘 그녀의 핸드폰에는 이미 성도윤의 엽사와 각종 동영상이 많이 수집되어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무의식적으로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기록해서 나중에 꺼내 볼 수 있도록 하려 했다.만약 두 사람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최대한 아름다움을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녀의 남은 인생을 그 아름다움으로 버텨낼지도 모르니.“고마워요.”살구를 받아든 성도윤은 우아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어때요?”차설아는 눈을 부릅뜨고 남자가 과장된 표정을 짓기를 기대했다.“나쁘지 않은데요?”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즐기는 듯한 입 더 깨물었고 얼굴은 우아하고 평온했다.“나쁘지 않아요?”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성도윤이 먹은 건 단 건가?“맛 좀 볼래요?"성도윤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반쯤 물어뜯은 살구를 차설아에게 건넸다.“윽!”차설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살구는 그녀의 입에 쑤셔 넣어졌고 침샘을 자극하는 시큼함이 다시 그녀의 입안을 가득 메웠다.“당신 일부러 그랬죠!”“첫사랑보다 달콤하죠?”성도윤은 마침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신걸 못 먹는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런 거죠!”차설아는 남자의 그 말에 참지 못하고 한 대 툭 쳤다.성도윤을 놀리려다가 제 발등을 찧은 셈이었다.하지만 그녀가 툭 치자 성도윤이 종잇조각처럼 가볍게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차설아는 쓰러진 남자를 보며 어리둥절했다.그녀
“성도윤 씨, 그만 해요, 나 놀리지 말아요?”차설아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고 수척한 볼은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웅크리고 앉아 남자의 콧김을 살폈다.괜찮아, 아직 호흡이 있어. 그냥... 약간 미약했다. 성도윤이 그녀와 장난치는 게 아니라 정말 허약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저기요, 거기 사람 없어요?”그녀는 허둥지둥 소리를 질렀다.곧 병원 직원들이 달려와 성도윤을 응급실로 보냈다.차설아가 숨이 턱턱 막히며 따라왔고 머리가 하얘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 자신도 큰 병이 막 나아서 몸이 매우 불편했는데 정신없이 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왜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깨어났고 이미 잘 회복된 성도윤이 병이 이렇게 심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설이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거의 다 나았다면서요? 왜...”차설아는 평소 성도윤의 식생활을 돌보는 간병인 설이를 붙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설이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여인의 시선을 피했다.전에 민이 이모가 특별히 부탁한 적이 있는데 약이 부족한 것을 차설아에게 알리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대로 말해요. 이로 인해 성도윤의 병세가 더 악화하면 결과는 더욱 심각할 거예요.”차설아는 설이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그럼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설아 씨 혼수상태인 요 며칠 동안 성도윤 님의 약이 부족했어요. 이모님께서 설아 씨를 지키기 위해 채혈을 계속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성도윤 님의 병세가 악화하셨어요.”설이는 말을 마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저희의 추측일 뿐, 반드시 약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그럼 그렇지, 약이 진작에 모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차설아는 의료실 문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설이에게 당부했다.“나 대신 잘 돌봐줘요, 또 무슨 일이든 바로 알려주고.”그리고 그녀는 서둘러 약 처방을 하러 갔다.그러던 중 차설아는
“그게...”민이 이모는 차설아가 이미 모든 것을 알았다고 짐작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안돼요, 정말 목숨을 잃고 싶지 않으면 더는 피를 뽑을 수 없어요.”“괜찮아요. 난 조혈 능력이 뛰어나니까... 일단 빨리 뽑아요. 사람부터 구해야죠.”차설아가 이 말을 할 때도 매우 무기력한 상태였다.그녀의 몸은 예전엔 허약하지 않았지만 두 아이를 낳고부터는 줄곧 기혈이 좋지 않아 계속 보양을 해도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어쩌다 거의 낫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성도윤에게 약을 주기 위해 피를 너무 많이 뽑아서 갑자기 기운이 또 없어졌다.“아가씨, 정말 뽑으면 안 돼요...”“민이 이모, 이제는 꾸물거리지 마세요. 그 사람은 더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 이에요.”차설아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아가씨, 이렇게 하면 제가 돌아가신 사모님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그녀의 명령을 거절하지 못한 민이 이모는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채혈 장비를 꺼내 차설아의 피를 다시 뽑아주려 한다.“내 피를 뽑아요.”성진은 어느 틈에 들어와 차설아를 뒤로 당기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민이 이모에게 찬 목소리로 말했다.“너...”차설아는 성진의 의리에 감동하였지만 여전히 냉랭하게 그를 밀어냈다.“네 피랑 내 피가 같아? 꼭 사랑하는 사람의 피여야만 된대.”“혈연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의 혈육이니 당신 피보다 내 피가 더 유용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성진은 전에 없던 엄숙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차설아가 막 반박하려고 할 때 민이 이모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맞아, 맞아요. 내가 어떻게 그걸 잊었지? 사랑하는 사람의 피뿐만 아니라 혈육의 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어요.”“쓸데없어도 사람이 죽진 않겠죠?”성진이 물었다.“아뇨, 소용없어도 약효가 떨어질 뿐 부작용은 없습니다.”“그럼 지체 말고 뽑으시죠!”성진은 이미 결정했고 어조는 냉혹했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