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한성우는 유현진을 힐금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보면 볼수록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이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른 듯했다.“아, 혹시...”말을 마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앉아도 될까요?”고개를 돌린 한성우의 시야엔 조준과 차미주의 모습이 들어왔다.차미주는 평소에도 잘 안 하던 화장까지 하고 예쁜 드레스까지 입고 왔다. 큰 눈에 활기찬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발랄한 소녀 같았고 평소의 보이시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한성우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차미주가 조준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에 순식간에 표정이 차갑게 굳어져 버렸다.그는 조준을 흘겨보다가 이내 차미주에 시선을 옮겼다.“네가 여긴 웬일이냐? 너도 진성 형이랑 아는 사이였어?”차미주는 당연히 신진성과 친분이 없었다. 그녀가 친분이 있는 쪽은 바로 신부 쪽이었다. 예전에 그녀는 신부와 함께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고 사이도 나쁘지 않은 친구기도 했다. 신부가 그녀에게 청첩장을 보낸 것이었기에 그녀가 결혼식에 온 것이었고 조준과는 정말로 우연히 호텔 로비에서 만난 것이었다.차미주는 그를 훑어보았다.“너도 오는 곳을 내가 왜 오면 안 되는데?”최근엔 왠지 모르게 한성우만 보면 그녀는 짜증이 밀려왔다.한성우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만 보면 짜증이 확 났다.그녀는 원래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조준을 만나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성우를 보게 되자마자 바로 기분이 더러워지게 되었다.한성우는 눈썹 사이를 구겼다.“알지도 못하는 사람 결혼식에 지금 하객 행세하며 저녁 먹으러 온 거냐?”차미주는 순간 아주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누가 하객 행세를 하고 저녁 먹으러 와? 나도 축의금을 냈거든? 그리고 누가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왔다고 너한테 말했어? 내가 누구를 알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정말 어이가 없어!”말을 마친 그녀는 조준의 팔을 끌어당겼다.“
‘비행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낙하산이라도 타고 왔나?'‘설마 내가 남긴 문자를 못 본 건가? 나인 줄도 모르는 거 아니야?'유현진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너 왜 혼자 왔냐? 형수님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고쳤다.“난 싱글이야.”아마도 자신이 주강운처럼 누군가에게 끌려가 여자를 소개받을 것이 두려웠던 그는 바로 한마디 보태었다.“지금도 마음을 되돌리는 중이고.”“...”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그녀와 한 약속대로 둘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은 것이었다.하지만 그가 한 말은 밝히나 마나 딱히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한성우는 원래 그를 놀릴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유현진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때 강한서는 항상 그에게 사소한 다툼이라며 ‘부부 사이의 소소한 취미'와 같은 말로 그가 아직 유현진과 헤어지지 않았음을 알렸다.그런데 현재 강한서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싱글이라고 말했다. 그럼 단 한 가지의 가능성밖에 없었다. 바로 강한서가 이미 유현진의 마음을 되돌렸다는 것이다.‘제기랄!'‘조금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한성우는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특히 주강운마저 여자친구를 사귄 모습을 보니 더 짜증이 났다.그는 차미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차미주는 현재 조준과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다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을 보니 그는 순간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그는 시선을 옮겨 유현진을 보았다.“차현진 씨, 혹시 학교에 여교사가 많아요? 괜찮은 여교사가 있으면 저한테도 좀 소개해 주세요.”차미주는 순간 멈칫하더니 그를 훑어보았다.“여자친구가 있는 거 아니었어?”“뭐? 누가 그래?”한성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난 솔로야.”“아니, 분명...”말을 하던 차미주는 순간 주위에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뒷
“강운아, 이젠 좀 말해주라.”한성우는 턱을 괴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두 사람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한성우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한 사람이 바로 주강운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여자친구를 결혼식에 데려왔으니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주강운은 멈칫하곤 유현진을 보았다.이 문제에 대해 입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유현진은 오히려 덤덤한 표정으로 주스를 홀짝이더니 말했다.“주변 친구 찾기로요.”“푸흡--”차미주는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어낼 뻔했다.그녀는 맞은 편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았다.‘이 말투, 그리고 헛소리까지. 왜 전부 현진이랑 닮아 보이는 거지?'예전에 동창회에서도 누군가 유현진에게 남편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유현진은 아주 덤덤한 얼굴로 말했었다.“소개팅 앱에서 추천해 줬어.”한성우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하늘중학교에서 근무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거긴 강운이의 변호사 사무실과는 거리가 꽤 있을 텐데요? 이삼십 킬로미터 떨어진 거로 알고 있는데요?”유현진은 아주 침착한 얼굴로 답했다.“전에 강운 씨 사무실 근처에서 다른 변호사님께 이혼 소송을 맡기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근처에서 좀 오래 살았었어요.”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주강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강운은 혹시라도 유현진이 아는 사람들 앞이라 행여라도 들킬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유현진은 마치 이곳이 자신의 무대인 것 마냥 뻔뻔하게 연기를 했다.“이... 이혼 소송이요?”한성우는 믿기지 않았다. 주씨 가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주강운이 감히 이혼녀와 사귀고 있을 줄은 몰랐다.유현진이 침착하게 말했다.“저 말고 제 다른 가족이요.”“...”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무슨 말을 이렇게 오해하게 해?'강한서는 자리에 앉은 후부터 별다른 말을 하지
신진성은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마 차현진 씨가 낯이 익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나 봐요.”문다은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강운 씨한테 얘기하려는 걸 말려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어색해질 뻔했어.”신진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마누라가 현명해요.”문다은이 신진성을 가볍게 툭 치자 그제야 그는 음식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안부를 전하더니 손님 접대를 하러 갔다. 신랑 신부가 가자 누군가 주강운에게 다가와 몇 마디 나누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잠깐 가서 도와주고, 곧 올게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난처한 듯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메이크업을 받은 얼굴을 보며 여러 사람이 요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강한서를 놀리는 데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술잔을 채우고 사람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강한서도 하루 종일 바삐 다녔으니 배가 굉장히 고픈 상태였다. 그러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을 때, 그는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젓가락이 갈비를 집으려 할 때, 또 다른 젓가락이 다가와 그 갈비를 집었다.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현진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죄송해요.”강한서는 말 없이 집었던 갈비를 놓고 다른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유현진은 방금 집은 갈비를 강한서의 접시에 올려주며 말했다. “드세요.”강한서는 그녀의 젓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 ‘이 사람은 선을 지킬 줄 모르는 건가? 음식을 집을 때는 공용 젓가락을 사용해야 하는 것도 몰라?’강한서는 그 갈비를 건드리지도 않고 다른 음식을 집어 먹었다. 차미주는 유현진을 흘겨보며 생각했다. ‘어디서 온 여우야, 이건. 감히 내 친구 남자를 건드려? 죽으려고.’유현진에게 고발하려던 그녀는 가방을 만지고 나서야 휴대폰이 밖에
유현진: ...맞은 편에서 웃음을 참고 있는 신우는 볼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고여정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거봐, 내가 못 알아본다고 했지?”고여정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나지막이 말했다. “한서 씨, 시력 안 좋잖아. 웨딩홀 조명이 어둡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까지 하니까,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야.”그러더니 그녀는 한 마디 더 보탰다. “유현진 씨가 위장을 잘하기도 했어.”자유자재로 바뀌는 유현진의 음색은, 일반인은 정말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실, 고여정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강한서는 눈이 나빴기에 눈썰미도 나쁜 편이었다. 그는 애초에 유현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 준 인상이라고는 짙은 화장에 이목구비가 선명했고, 그리고 얼굴이 굉장히 낯에 익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주강운이 기억을 되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유현진을 자세히 들여볼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유현진은 그런 강한서가 조금 답답해졌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강한서 이 개자식은 아직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전엔 강한서를 놀릴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영원히 못 알아보는 일은 없다며? 역시 순 거짓말쟁이!’유현진은 머리를 숙이고 밥을 먹는 남자를 흘겨보더니 갑자기 발로 강한서의 다리를 쓸었다. 강한서는 정전된 것처럼 “척”하고 몸을 일으켰다.그의 동작이 어찌나 컸던지, 테이블도 흔들릴 지경이었다. 유현진은 순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화가 난 것 같았지만,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결국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화장실 좀.”그는 의자를 뒤로 밀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유현진은 눈을 반짝이며 굴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실례할게요.”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미주도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한성우에게 손목이 잡혔다. “나와, 할 얘기가 있어.”차미주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냈
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유현진 앞에 다가와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장이 짙었고 눈가의 아이라인도 일부러 길게 빼내어 그렸다. 콧등 양쪽의 하이라이터는 광대를 돌출되어 보이게 만들었고 턱의 섀도는 다른 곳보다 선명하게 짙었다. 특히... 귓불에 있는 그 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현진의 점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그녀의 두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어쩐지 그를 어떻게 놀려먹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입술을 앙다물고 태연하게 그녀를 훑어보았다. “주강운과 사귄 지 얼마나 됐어요?”유현진은 아직 자신의 정체가 들킨 줄 모르고 거짓말을 댔다. “1,2 개월쯤 됐어요.”강한서가 ‘허’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의 반응에 유현진이 흠칫했다. ‘왜 이 자식이 비웃는 것 같지?’강한서는 확실히 냉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도 아직 연애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거짓말이라고 해도 그는 기분이 더러웠다!하지만 유현진의 시선에 강한서에게 향하자 그는 표정 관리를 하고 언제나 그렇듯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한두달... 주강운한테 마음이 크지는 않은가 봐요. 아니면 왜 계속 저를 꼬시겠어요?”유현진은 계속 죽음의 문턱에서 강한서를 시험했다. “전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인데, 강한서 씨처럼 조건 좋고 잘생긴 이성에게 끌리는 것이 당연하죠.”그녀는 말하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리고 친구 몰래 이러는 거, 더 자극적이지 않으세요?”강한서: ...그는 위험한 눈빛으로 유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얼굴을 바꾸더니, 성격까지 바꿔버렸네. 가벼운 말도 아무렇게나 내뱉고.’강한서는 그윽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 “뭐 하자는 거죠?”유현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강한서 씨, 아실만 한 분이, 왜 모른 척하세요?”유현진은 그에게 다가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제가 강한서 씨랑 자고 싶다고요.”말을 마친 유현진은 강한서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유현진은 그의 손등을 툭 치고 흘겨보며 말했다. “너한테 카톡 했잖아. 못 봤어?”“나더러 잘 쉬라며?”유현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가 문자 여러 개 보냈는데? 강운 씨 상황 모면하는 거 도와줘야 한다고, 너 푹 쉬고 나중에 만나자고.”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잘 쉬라는 것만 봤어.”아마 휴대폰 전원을 끄면서 메시지가 제대로 보내지지 않거나 지연된 것 같았다. 유현진은 또 전후 사정을 강한서에게 얘기했다. “어떤 분이 강운 씨에게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고 여러 번 말해서,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대. 신진성 씨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결혼식에 참석하라고 했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 부탁했어. 네가 오해할까 봐 전화했었는데, 휴대폰이 꺼져있더라고.”‘도와줄 사람이 없어?’강한서가 코웃음을 쳤다. “넌 너무 원칙이 없는 거 아냐? 넌 남편이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그런 걸 도와줘?”“인턴제 남자친구야.”유현진이 강한서의 말을 정정했다. 그녀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장례식도 강운 씨가 도와줬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해?”유현진의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그녀는 손가락을 뻗어 그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널 속인 것도 아니잖아. 전화도 하고 문자도 했는걸.”강한서는 당연히 유현진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주강운이 유현진에게 기분 나쁜 화장을 해준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유현진이 주강운에게 진 그 신세 때문이었다. 그는 이혼 전 자신의 했던 그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만약 조금 더 소통하고 성질을 조금 덜 부렸다면, 주강운에게 그런 기회를 내주어 유현진이 신세를 지게 만들고 또 그 일로 매번 유현진이 마음 약해지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한서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유현진의 귓불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물었다. “누가 너한테 이런 메이크업 해줬어?”유현진이 말했다.
강한서는 못 들은 척 몸을 돌렸다. “갈게.”유현진이 그를 따라나서며 말했다.“다시 말해 봐.”강한서는 여전히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유현진이 그의 팔에 매달려 칭얼거렸다. “한 번만 다시 불러줘, 한 번만.”강한서는 이렇게 닭살 돋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커플 사이에 하는 닭살스러운 호칭은 더더욱.예를 들어 그는 절대 유현진을 “여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제일 다정한 호칭이라고 해봐야 “현진이”거나 “현진아”정도였다. “자기”,“애기” 이런 호칭은 단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유현진이 생전 들은 적 없던 호칭을 들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예전에 유튜브에서 한 남자 인플루언서가 카메라를 향해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자기”라고 했을 때 소름이 쫙 돋았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에게 주방용 세제를 보내 기름기 좀 제거하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호칭을 강한서에게서 들으니 전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특히 무심코 그 호칭을 들으니 그녀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느끼한지 아닌지는,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하든, 강한서의 입은 봉인된 것처럼 다시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말 안 해?”유현진이 화난 척 연기했다. “너 안 하면 인턴 기간 지금 바로 끝이야, 해고할 거야!”강한서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나 그날 많이 말했어.”유현진이 의아해했다. “어느 날?”‘강한서가 말했었다고?’‘왜 아무 기억이 없지?’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속이는 거지?”강한서가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텔에서, 우리 여러 번 했던 그날. 내가 너한테 많이 불러줬어. 기억 안 나?”유현진: ...그는 강한서를 밀어내고 귀를 붉힌 채 그를 째려보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닥쳐!”그러더니 그녀는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강한서는 작게 웃더니 성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