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유현진은 사치품에 눈을 뜨지 못했던 지라 이 가방이 얼마나 비싼 가방인지 몰랐다. 다만 강한서가 선물한 가방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녀를 감동하게 했다. 그 때문에 유현진은 늘 어디를 가도 그 가방을 잘 메고 다녔다.결국 유현진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행동은 의도치 않게 상류 사회의 아가씨들과 사모님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를 머릿속이 텅 빈 개념 없는 여자, 돈 자랑과 과시욕에 찌들어 사는 이른바 된장녀라고 수군거렸다.그녀는 뒤늦게 이 가방의 가격을 알게 되고 나서는 그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시선도 자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들은 또 다른 핑곗거리를 찾아내어 트집 잡기 시작했다.차츰 유현진은 그녀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그녀의 옷차림도, 그녀의 과시적인 행동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그녀가 분명히 가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별 볼 일 없는 여자인 주제에 홀가분하게 한주 강씨 가문으로 시집가 남들이 꿈꾸던 보통의 서민에서 상류 사회에 몸을 담게 되는 계급의 도약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그것을 알게 된 후로, 유현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마음에 내키는 대로, 기분이 좋을 때는 SNS에 비싼 명품 주얼리를 올렸고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날에는 또 다른 종류의 진귀한 보석을 피드로 올렸다. 그녀의 기분이 어떻든지를 떠나,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혈압이 거꾸로 치솟게 하는 것은 확실히 그녀를 속 시원하게 했다. 물론 그렇게 SNS를 통해 재력을 과시한 일들로 인해 그녀는 “돈 지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다.그녀의 이런 “돈 자랑”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강한서에게서 물든 것이었다. 그렇게 비싼 가방을 주면서 오다가 길가에서 대충 샀다고 했고 작은 액세서리 같은 선물은 고객사에서 선물 받은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유현진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강한서는 차마 그의 호의를 뿌리칠 수 없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잔을 들고 걸어갔다. 상인회 회장이 그에게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올해 막 해외 각지에서 돌아온 화교들이었고 막 한주시에 정착한 비즈니스맨들이었기에 앞으로 오다가다 마주칠 사람들이었다.상인회 회장은 강한서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소개하지 않더라도, 이 사람들은 강한서에 대해 익히 들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한성 그룹 비즈니스는 일찍이 해외에 진출했기에, 그는 많은 글로벌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매년 고액 연봉으로 직접 해외 각지에서 인재를 채용했기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매우 유명했다. 모두 술잔을 기울이며 인사말을 나누었다.이때, 강한서는 조금 전보다 더 심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헛구역질은 오히려 조금 완화되었지만,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눈앞이 침침했고 사지가 무기력한 증상은 오히려 심각해졌다. 이러한 증상 외에, 몸속에서 불씨가 타오르는 듯, 그는 목이 말랐고 계속되는 갈증을 느꼈다. 그의 상태는 어딘가 좀 이상했다.강한서는 버티고 있다가 마침내 상인회 회장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회장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강한서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면서 민경하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전화가 채 걸리기도 전에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쳐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휴대폰은 마침 얼음이 반쯤 녹은 얼음통에 떨어졌고 그렇게 물에 반쯤 잠겼다.웨이터는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허겁지겁 다가와 죄송하다며 거듭 사죄했다.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눈앞에 무언가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웨이터를 밀어내고 터벅터벅 걸어가 휴대폰을 얼음통에서 건져냈다. 이미 물에 흠뻑 젖은 휴대폰은 이미 고장 났고 더 이상 전화를 걸 수 없게 되었다. 강한서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지끈 감았고 순간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두통을 느꼈다.“한서 오빠?”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차미주가 소개한 변호사가 하필이면 강운 씨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였던 거야? 왜 나한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던 걸까? 진작 알았더라면 차라리 바로 강운 씨한테 자문을 구할 걸 그랬네... 그렇게 알게 됐으니, 오히려 더 난처하게 됐잖아...’그녀는 머리를 움켜쥐고 열심히 어떻게 상황을 모면할지 머리를 굴렸다.“그냥... 작은 문제라서, 그리고 강운 씨가 요즘 워낙 바쁘셔서야 말이죠. 게다가 그저 자문했을 뿐인걸요. 만약 소송까지 가게 된다면 당연히 강운 씨를 찾아갔겠죠.”주강운은 그녀가 혹시나 말실수하여 자기를 민망하게 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현진 씨를 탓할 뜻은 없습니다. 우리 법률사무소 직원의 전문성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셨으니, 오히려 저를 대신하여 트레이너 역할을 해주신 셈이시죠.”유현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만약 주강운의 표정이 진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주강운이 그녀를 조롱하는 것으로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도석문은 유현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유현진은 다름 아닌 그의 애인이 혼쭐 내달라고 부탁했던 그 여자인 것 같았다. 그는 어쩐지 유현진이 눈에 익었다. 지난번에도 이곳에서 그녀를 마주쳤던 것 같았다.주강운의 차갑고 도도하던 얼굴이 그녀를 본 순간 사르르 녹아내린 것을 보고 도석문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돈을 줘도 여자를 소개해 줘도 씨알도 안 먹히던 양반이.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었던 거였구나... 그럴 만도 하지, 이렇게 예쁜 여자라면 혹할 만도 해.’도석문은 사람이라면 모두 욕망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껏 먹히지 않았던 것은 그가 주강운의 욕망을 제대로 타겟팅 하지 못했던 이유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를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혀를 찼다. 그리고 방이진을 지나칠 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틈을 타서 그녀의 엉덩이를 한 움큼 뭉켜 쥐었다. 그러고 나서 주강운과 몇 마디 인사
“됐어요.”주강운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유현진은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그녀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강운의 손수건을 힐끔 쳐다보더니 너무 놀란 나머지 험한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악! 제기랄 뭐야!”주강운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손수건으로 감싸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여치 한 마리였는데, 주강운이 있는 힘껏 움켜잡고 있음에도 여치는 다리를 파닥거렸고 머리 위에 달린 가늘고 긴 더듬이 두 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것을 본 유현진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마치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빨리 저리 치워요!”그녀는 더는 자기 이미지를 고려할 여유가 없었고 주강운에게 벌레를 빨리 처리하라고 그의 팔뚝을 밀어냈다. 그러자 주강운은 가볍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 여치를 숲으로 보내주었다.주강운이 돌아왔을 때, 유현진은 웨이터가 건네준 물티슈를 건네받고 머리를 닦고 있었는데, 그녀의 안색이 여전히 창백한 것을 보니,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방금 그녀와 함께 있던 여배우들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아마 모두 위층으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주강운이 돌아온 것을 본 유현진은 그에게 물티슈 두 장을 건네주며 손을 닦으라고 했다. 주강운은 그녀가 건네주는 물티슈를 받고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여치는 독이 없거니와 사람을 물지도 않아요.”“하지만 너무 무서운걸요.”유현진은 조금 전에 봤던 여치를 떠올리자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다리가 길고 더듬이가 머리카락처럼 긴 곤충을 가장 무서워했다. 여름에 집에 그런 곤충 한 마리가 날아들면 그녀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곤충을 싫어했고 한밤중에라도 강한서를 깨워 그 곤충을 잡게 해야 비로소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한 번은 강한서가 집에 들어온 곤충을 잡고 나서 그녀에게 보여 주려다 실수로 놓쳐서 곤충이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달려든 적이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강한서에게 평생 다 못할 욕설을 퍼부었고, 일주일 내내 강한서를 침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유현진은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주강운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제가 유상수 씨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것 때문에 더 이상 저에게 믿고 맡길 수 없다고 하는 건가요? 그래서 저보다는 차라리 수습 기간 변호사 한 명에게 자문하려는 건가요?”유현진은 서둘러 아니라고 하며 오해를 풀려고 했다.“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 소송은 우리가 진 것도 아니고, 고소를 취하한 것뿐입니다. 절대로 강운 씨를 탓할 수 없어요. 누가 저와 유상수가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주강운은 고개를 들고 머뭇거리다 물었다.“그러면 왜 저를 피하는 거죠?”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피한 적 없어요...”유현진은 갑자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단도직입적으로 강한서가 질투한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아직 재결합하지 않았거니와 재결합하더라도 그녀는 남들에게 굳이 시시콜콜 알리고 싶지 않았다.“제가 이 사건을 의뢰하게 되면 강운 씨에겐 깨알만큼의 수임료밖에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강운 씨가 주로 맡는 재벌가의 이혼 사건 수임료와는 전혀 비교가 안 될 겁니다. 저는 그저 강운 씨의 시간과 정성을 뺏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그렇게 제안한 것뿐입니다. 강운 씨는 순전히 친구로서 저를 도와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강운 씨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주강운은 한참 동안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는 지금까지 현진 씨의 일에 귀찮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는 줄곧 현진 씨를 도와 어머님의 유산을 되찾지 못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어요. 만약 이번 기회에 현진 씨를 도울 수 있다면 저의 무력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니 저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톱클래스 변호사의 자신감인가? 절대로 패소의 굴욕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일까?’주강운은 유현진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 준 것부터 시작하여 유현진을 도와
유현진은 그의 말에 잔뜩 감동했다.‘이렇게 만취할 정도로 마시고도 나를 걱정해 주다니...’유현진은 내심 흐뭇했지만 담담하게 대답했다.“이제 택시 부르려고 합니다. 이 근처에서는 택시가 잘 잡히거든요.”안창수는 알았다고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내일 늦지 말고요.”유현진은 그의 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누가 늦을지는 모르는 일이죠.’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나서 유현진은 휴대폰을 꺼내어 카카오택시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카카오택시 앱을 켜자마자, 회색 랜드로버 한 대가 길가에 멈춰 섰고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저기요, 택시 불렀어요?”유현진이 대답했다.“아닌데요, 전 아직 안 불렀어요.”기사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 휴대전화를 꺼내 고객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멀리서나마 기사가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객이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한 것 같았고 기사는 헛걸음했다며 그 사람과 말다툼했다. 곧이어 기사는 욕설을 퍼붓고 전화를 끊더니 다시 유현진에게 물었다.“아가씨, 어디로 가세요? 보다시피 빈 차인데 태워다 드릴게요, 저도 헛걸음하지 않을 겸...”유현진은 휴대폰을 들여다봤고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배차가 될 수 있다는 알림을 보고 고개를 들어 물었다.“클라우드 아파트로 가줄 수 있으시겠어요?”“당연하죠, 타세요.”유현진은 차 쪽으로 걸어가서 기사의 택시 회사 사원증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에 올랐다. 기사는 차를 돌리면서 계속해서 푸념했다.“카카오 택시는 예약 차량 취소라는 기능을 없애야 해요. 고작 몇 푼 안되는 보상으로 이게 말이나 됩니까? 여기까지 온 기름값도 안 되네요!”차 안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유현진은 불편한 기색을 숨지지 못하고 창문을 열었다.기사가 한참 동안 투덜거린 뒤에야 유현진이 물었다.“미터기는 없나요?”기사가 웃으며 말했다.“휴대폰에 미터기 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조금도 더 받거나 그런 거 없을 테니까요.”유현진도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
“어때?”운전기사가 물었다.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유현진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약발을 아주 잘 받네.”운전기사는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었다.“젠장, 어찌나 경계하던지. 하마터면 못 잡아 올 뻔했잖아. 얼른 도 대표님께 연락해. 잡았다고.”그러나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탄 랜드로버 뒤로 쉐보레 한 대가 딥 블루 클럽에서부터 줄곧 그들을 미행하고 있었다.랜드로버는 바로 어느 한 호텔로 멈춰 섰다. 두 사람은 함께 유현진을 들고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방으로 올라갔다.프리미엄 방을 잡은 두 사람은 유현진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유현진의 얼굴을 스윽 만졌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그의 손을 ‘탁' 쳐냈다.운전기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도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손대지 말라고. 죽고 싶어?”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아쉬운 눈빛으로 말했다.“보기만 해도 안 돼? 이렇게 예쁜 여자는 품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도 대표님이 시킨 일만 제대로 완성하면 갖고 놀 여자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 있겠어?”말을 마친 그는 침대를 정리하고 얼른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내보냈다.쉐보레를 탄 사람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에게 연락을 넣었다.“사람은 이미 칠지로 루이브 호텔로 옮겨 놨으니까 문을 열어줄 사람을 보내세요.”주강운은 딥 블루 클럽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방금 막 샤워를 마치자 집안의 도우미 아주머니가 노크했다.“왜 그러세요?”“도련님, 방금 누가 이걸 꼭 전해달라고 하셔서요.”주강운은 시선을 떨군 채 확인했다. 그것은 루이브 호텔의 방 키였다.그는 미간을 구겼다. 쓰레기통에 호텔 키를 버린 그는 바로 몸을 틀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도석문이 보낸 것이었다.「저의 작은 성의예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주강운은 가볍게 피식 웃었다. 그러나 순간 그의 머
정신을 잃은 강한서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호텔 방 침대로 옮겨졌다.송가람은 인사불성이 된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호텔 직원에게 말했다.“나가보세요.”두 사람은 간단히 대답한 후 방에서 나갔다.송가람은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강한서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호흡이 다소 거칠었으며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점점 호흡이 가빠지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옷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송가람은 그런 그의 손을 잡았다.“오빠, 지금은 어때요?”강한서의 체온은 아주 높았다. 정상적인 체온인 송가람의 손마저 그는 다소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낯선 촉감에 그는 다시 무의식적으로 손을 놓아버렸다.그가 손을 놓아버려도 송가람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 소리를 내며 빠르게 뛰고 있었고 얼굴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강한서의 이름을 불렀다. 반응 없는 그의 모습에 바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윽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지고 나온 그녀는 강한서의 몸을 닦아주려 했다.그녀는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수건으로 강한서의 얼굴을 닦아주었고 수건은 어느덧 서서히 강한서의 목까지 내려왔다.강한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턱선과 완벽한 호선을 자랑하는 목젖을 보니 섹시하게 느껴졌다.수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강한서의 셔츠 단추를 풀어버리려 했다.그러나 그녀가 풀기도 전에 강한서의 손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송가람은 깜짝 놀랐다. 여전히 몽롱한 그의 두 눈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러 확인했다.“한서 오빠.”강한서의 모든 감각은 이미 약에 지배를 당한 상태였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형체가 눈앞에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풍겨오는 낯선 향기에 그는 바로 거부감을 느꼈다.그는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약효가 돌고 있었기에 그는 힘을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