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웅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어르신들 앞에 있는 휴대폰 거치대에 올려두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유현진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응원 피켓을 들고 있는 노부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송민준이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누군지 아시겠어요?”입술을 달싹이던 유현진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고 송민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민준 오빠, 호칭은 어떻게 부르면 돼요?”“우린 같은 또래니까, 제가 부르는 대로 부르면 돼요.”그러자 유현진은 바로 눈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현진이에요.”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에 두 사람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힐 뻔했다.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반짝이는 큰 눈과 오똑한 코, 전부 람이랑 똑 닮았어.’한태진의 흐릿하던 눈동자가 유현진을 보는 순간 촉촉해졌다. 공영선이 그의 등을 꽉 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공영선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하지만 공연선은 감정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 나이 든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온 세월이 묻어있어 자애롭고 부드러웠다. “예뻐요. 화면보다 더 예뻐.”직설적인 칭찬에 유현진의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도 우아하세요.”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공영선은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주름도 많았지만 그녀는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공영선은 한 손엔 응원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단정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굉장히 품위 있고 우아해 보였다. 공영선을 보면 미인은 세월도 비껴간다는 것이 무슨 말이 이해되었다. 그와 반대로 한태진은 다부지게 생겼다. 짙은 눈썹과 큰 눈에 근엄해 보이는 그는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었다. “현진 씨는 말도 예쁘게 하네요.”공영선은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화면 속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녀의 집안에 대해 물었다가,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
“일 봐요. 일을 그르치면 안 되니까.”가볍게 대꾸한 유현진은 한태진과 공영선에게 인사를 하고나서야 휴대폰을 송민준에게 돌려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전 먼저 가서 옷 좀 갈아입을게요.”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가져왔다. 안방으로 돌아온 유현진은 문을 닫고 갑자기 털썩 자리에 앉았다. 한태진과 공영선 두 어르신은 자상했고 유현진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느낌은 그녀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유현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민준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차를 타 주는 루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유현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티셔츠와 긴바지에 얇은 외투를 입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머리는 높게 포니테일을 묶었다. 진희연이 얼른 몸을 일으켜 유현진의 옷을 정리했다. “송 대표님, 이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요?”이준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에 출발해.”아직 10여 분 남아있었다. 송민준이 갑자기 물었다. “이 꼬마 쇳덩이는 어디서 구해 온 거예요?”‘꼬마 쇳덩이?’유현진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루나가 먼저 발끈했다. “전 꼬마 쇳덩이가 아니라 AI 집사예요. 저 이름 있어요. 제 이름은 루나에요. 루-나!”루나의 말에 침묵이 흘렀다. 송민준은 노크하듯 루나의 겉면을 툭툭 두드렸다. “꼬마 쇳덩이.”루나: ...“오빠, 이러는 건 매너가 아니에요.”송민준이 루나를 놀리며 말했다. “매너는 사람한테나 하는 거지. 넌 로봇이잖아. 쉽게 말해면 도구. 밥 먹을 쓰는 밥그릇, 물 마시는 컵처럼 그냥 쓰는 거잖아. 밥그릇이랑 컵에 예의 차리는 거 본 적 있어?”루나는 송민준의 논리에 낚이지 않았다. “루나는 도구가 아니에요. 저는 인간의 생활 파트너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인간도 예의있게 절 대해야 해요.”송민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예전에 그가 갖고 놀던 것들보다 똑똑했다. 그가 전에 샀던 로봇들은 내리는 지시는 거의 정확히 수행했지만 논리적인 사고나 이
유현진이 조금 망설였다. 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루나는 아직 테스트 단계라, 어떤 기능은 송민준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녀가 말이 없자 송민준이 물었다. “제가 이걸 뜯어서 복제라도 할까 봐 그래요?”“당연히 아니죠.”루나가 비싼 것은 탑재된 포로세서와 프로그램의 설정 때문인데, 이런 것들은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유현진이 말했다. “루나가 아직 출시 테스트를 통과한 게 아니라서요.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이거든요.”송민준이 전혀 개의치 않고 웃었다. “로봇일 뿐이잖아요. 해결이 안 되면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이죠.”송민준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유현진도 더 이상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 그래요. 그럼 일주일 뒤에 돌려주세요.”“알겠어요.”그 시각, 강한서와 한성우가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7동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민경하가 얼른 강한서를 불렀다. “대표님, 왔습니다.”강한서가 고개를 들자 유현진과 그녀의 일행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막 올라가던 그의 입꼬리가 곧 축 처졌다. ‘송민준이 왜 여깄어?’송민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네 사람 뒤에는 루나도 함께였다. 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그를 감쌌다. 한성우는 어젯밤 배탈에 시달렸다. 항문에 새빨간 인두를 끼고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오늘에야 겨우 살만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루나를 보고는 의아해했다. “쇳덩이 데리고 어딜 가는 거야?”하지만 곧, 그 의문이 풀렸다. 네 사람이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박해서가 BMW를 몰고 왔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꺼내 루나를 안에 넣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루나를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박해서가 운전을 하고 휙 가버렸다. 강한서: ...“세상에, 송민준이 쇳덩이를 납치해 간 거야?”강한서
진희연이 본 배우 중, 이렇게 팬들의 마음을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녀가 전에 제작진과 함께 일할 때, 배우의 팬들을 많이 봤었다. 그들은 멀리서 자기 배우를 보기 위해 왔고 엄동설한에 패딩을 입고 밖에서 길게 줄을 섰다. 추위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어도 그들은 자기 배우가 춥지는 않은지, 촬영장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닌지, 촬영이 언제 끝나서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걱정했다. 사실, 그들의 배우는 따뜻한 대기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편히 쉬고 있었다. 심지어 춥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간단한 요구도 들어주기 싫어했다. 많은 연예인들에게 팬이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그들은 한낱 데이터의 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진희연이 말했다. “그거 알아요? 팬들이 오래 기다릴수록 인기가 많고 골수팬의 능력이 좋다는 뜻이에요.”유현진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더운 날에, 저도 서 있기 힘든데, 그건 너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아니에요? 일찍 돌아가라고 해요.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진희연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요.”11시가 되자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둘 모였고 11시 20분에 크랭크인이 시작되었다. 제를 지내고, 폭죽을 터뜨렸다. 피어오르는 연기의 냄새와 함께 유현진의 첫 블록버스터가 정식 촬영 시작을 알렸다. 크랭크인 행사가 끝난 후,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송민영과 한열의 팬들은 익숙하게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하나씩 무대 위로 올렸다. 송민영의 팬들은 특별히 파란 장미로 곰돌이 푸를 만들었다. 굉장히 예뻤다. 그녀의 공식 색은 하늘색이었고 곰돌이 푸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유현진은 별로 부럽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 아이돌의 웃는 모습을 위해 돈과 정력을 쏟아 덕질하는 팬들에게 감탄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파스텔 장미로 만든 2M가 넘는 거대한 망고가 휘청이며 무대 위로 올려졌다. 장미로 만들어진 망고는 마치 진짜 같았다. 위에는 잎과 과일
파란 장미로 만든 곰돌이 푸는 한열의 팬들이 보낸 커다란 꽃바구니보다 훨씬 더 호화로웠다. 크랭크인 행사는 그녀의 체면을 한껏 살려주었다. 하지만 “거대한 망고”가 오면서,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전부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망고”는 하필이면 곰돌이 푸 옆에 놓여 있었다. 곰돌이 푸는 1M 30cm는 넘었고, “망고”는 적어도 2M 30cm은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비기니 마치 난쟁이가 NBA 선수 옆에 서 있는 것처럼 초라해, 그녀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언론사들은 “망고” 사진을 찍으면서 유현진을 인터뷰했다. “유현진 선생님,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크랭크인 행사에 참석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유현진 선생님...유현진은 어쩐지 자신을 “유현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강한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그의 질문은 일반적인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현진은 목청을 가다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편하게 이름 불러주세요.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전 갓 영화계에 발을 딛은 신인이에요. 아직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그리고, 안 감독님 같은 유능하신 감독님과 훌륭한 배우분들, 제작진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요. 너무 큰 영광이죠. 촬영 중 그 분들과의 ‘케미’가 굉장히 기대돼요.”언제부터인지 연예계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생겼다. 유현진에게 선생님이란 교육에 종사해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국악 대가에게만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그녀는 그 호칭과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언론사도 얼른 호칭을 바꿨다. “현진 님,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사진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유현진은 진작 이 질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앉아서 생각했어요.”갑자기 훅 들어온 아재 개그에 현장은 침묵이 흘렀다가 이내 곧 웃음소리가 터졌다. 유현진은 그제야 웃
기자들은 한열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열이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도 같았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그 사람이 단연 한열이 저격한 첫 사람이었다. 머리 회전이 빠른 기자는 얼른 마이크를 송민영 앞으로 가져갔다. “민영 님, 네티즌들은 한열이 말한 대사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민영 님이라고 추측하고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유현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기자의 마이크에 붙은 로고를 확인했다. 피싱 미디어. 이 질문은 확실히 송민영을 낚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용기가 대단한 기자였다. 송민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하마터면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주고 감정을 조절하고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너무 뻔한 질문이네요. 이런 재미없는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요.”연예부 기자들은 이쪽 일을 하면서 일찍 강철 멘탈을 단련했다. 그는 송민영이 대답을 회피하자 화도 내지 않고 연이어 다음 질문을 했다. “전에 떠돌던 소문에 의하면 민영 님께서 극 중 커플 케미로 작품 홍보를 하시려다 한열의 스태프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두 분 투톱 주연이신데, 화해하신 건가요?”송민영은 이를 악물고 표정 관리를 했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첫째, 기자님도 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이런 소문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가지가 만들어져요. 제가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요? 둘째, 여긴 ‘살의’의 크랭크인 행사에요, 기자님들께서 작품에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전혀 관련 없는 질문들 말고요.”기자가 계속 질문했다. “민영 님 전 작품들은 전부 후시 녹음을 하셨잖아요. 이번 ‘살의’ 작품은 동시 녹음으로 진행하신다면서요? 혹시 민영 님 전속 성우가 배우로 전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신 선택인가요? 전에 공개된 현장 녹음본은 더빙과 차이가 컸는데, 본인 전속 성우와 합을 맞춰
강한서는 한성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너랑 현진이랑 같아?”한성우: ...‘이 개자식 좀 보게. 현진 씨가 여지를 좀 주니까 바로 날 쌩까네.’그는 차미주에게 고자질하고 나서도 마음 편히 한성우를 부려 먹었다. “네 와이프 심보가 얼마나 나쁜지, 네가 몰라?”강한서가 말했다. “여기서 루머 퍼뜨리지 마. 현진이가 얼마나 착한데.”한성우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콩깍지가 씐 거야? 네 와이프가 착하다는 단어랑 어울려? 너한테 속을 잔뜩 넣은 막창해줬던 거, 다 잊었어?”강한서: ...이미 다 잊은 일이었지만, 한성우의 말에 다시 기억이 떠오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다만... 한성우가 어떻게 알았지?강한서는 순간적으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민경하는 그의 시선에 멈칫하더니 마른기침을 했다. “그날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셨잖아요. 한 대표님이 여쭤보시길래, 조금 얘기했어요.”강한서는 민경하에게 “팔이 밖으로 굽냐?”는 눈빛을 보내더니 고개를 돌려 한성우에게 말했다. “나 화 돋우려고 말만 그렇게 한 거야. 현진이가 날 어떻게 그렇게 대하겠어?”한성우가 “허허”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넌 네 상상만으로 현진 씨를 꼬시는 거야? 현진 씨가 정말 널 신경 쓴다면, 왜 너랑 화해 하지 않는 건데?”말을 하던 한성우의 눈에 송민준이 들어오자 그는 바로 새로운 ‘공격’ 방법을 찾았다. “너랑 스캔들이 날까 봐 두려워서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왜 송민준은 가까이하고 송민준이 데려다주게 하는 거야? 송민준이랑 스캔들이 나는 건 두렵지 않대? 네가 로봇을 주자마자 바로 송민준에게 줘버렸잖아.”“그리고 한열. 네 전 부인이 아직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페이스북에 현진 씨 실드를 쳐줬잖아. 두 사람, 극 중에서는 심지어 연인이고. 매일 붙어있다 보면 정도 들고 그럴 텐데. 네 전 부인이 뭐 자제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도 아니고. 안 그래도 잘생긴 남자 좋아하잖아.”“지금 널 거절하지 않
“망고하다”는 그가 유현진에게 알려준 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망고”의 의미도 정확하게 맞추었다. ‘이 정도면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아?’무대 위의 사람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송민준이 그의 앞에 똑바로 서 마침 유현진을 보는 그의 시야를 가렸다. 강한서의 입꼬리가 내려왔다. 송민준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 대표, 한 대표. 한가한가 봐. 크랭크인 행사 보러 다 오고?”강한서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송 대표도 한가한 것 같은데? 회사 실적이 별로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야?”멈칫한 송민준은 더 크게 웃었다. “실적은 꽤 괜찮은데. 우리 회사 배우가 처음으로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출연하는 거라, 마음이 안 놓여서 보러 왔어. 강 대표는 뭘 보고 있는 거야?”강한서가 말했다. “여자친구.”“풉—”한성우는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송민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며칠 못 본 사이, 이 개자식의 낯가죽은 더 두꺼워졌다. “오.”송민준이 말했다. “강 대표, 송민영 씨랑 공개 연애하시려고?”그의 말에 강한서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송민준 이 자식, 뺏지 못하니까 루머라도 퍼뜨리려는 거야?’“내가 누굴 말하는지, 송 대표가 제일 잘 알 텐데. 송 대표, 내가 무상으로 투자해 준거 아니잖아. 큰돈 들여가며 밀어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현진이를 힘들게 만든다면, 용서하지 않아.”유현진이 송민준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강한서는 그를 매너 있게 대할 수가 없었다. 송민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개자식, 감히 날 협박해?! 현진이와 다시 잘 되고 싶으면 먼저 내 허락부터 거쳐야 할 거야!’“그럼 나도 하나만 알려줄게. 유현진 씨는 우리 회사 연예인이야. 현진 씨가 5년 이내에 연애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체결했으니 네가 정말 남자친구라면 현진 씨에게 위약금 청구를 해야 할 것 같네.”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