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했던 유현진은 순간 강한서의 뜻을 알게 되었다.그는 아마도 인터넷에 올라온 부정적인 댓글을 본 게 틀림없었고 그녀가 걱정되어 바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유현진이 물었다.“페이스북 본 거야?”“응.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강한서가 답했다.“난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신경 안 써.”그녀가 졸업할 때 선생님이 학생에게 해줬던 말씀이 있었다.‘강한 멘탈과 마음이 없이 뭐든 잘해 낼 생각을 하지 말아라.'그녀가 신경 쓰는 댓글은 바로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는 댓글과 연기력에 관한 댓글이었고 이런 오합지졸들이 남긴 댓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마음이 놓인 강한서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서 실검을 없애라고 했으니까 일단 당분간은 페이스북 하지 마.”유현진은 바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왜 그런 곳에 돈을 써? 차라리 그 돈을 나에게 줘!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그 사람들에게도 언론 자유가 있잖아. 그리고 이것 또한 무료로 내 존재를 알릴 기회인데 그걸 왜 없애려고 해?”“...”강한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넌 신경 안 쓰지만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넌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내가 잘 아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리고 자꾸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 네 남편은 돈이 아주 많아! 인지도가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당장 돈을 써서라도 인지도를 높여줄 테니까. 이런 어그로 형식의 인지도는 필요 없어.”“...”유현진은 순간 카리스마가 넘쳐흐르는 강한서에 살짝 당황했다.그리고 이내 그녀는 자신이 전에 읽었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남주의 소설을 떠올리며 웃기 시작했다.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누그러진 강한서가 나직하게 말했다.“내 말이 그렇게 웃겨?”“아니, 그게 아니라.”유현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갑자기 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나서.”“뭐?”비록 강한서는 로맨
‘결혼하고 싶은 사람...'‘아 진짜... 이 남자는 이혼 후에야 날 여러 번 설레게 만드네.'유현진의 가슴이 한참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그럼 첫사랑 상대가 정말로 송민영 씨가 아니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곰곰이 생각하던 강한서는 전에 수혈하러 자주 은서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확실히 송민영과 마주친 적이 아주 많았고 욕심이 많았던 송민영은 몰래 언론사를 찾아가 두 사람의 모습을 찍으라고 했었다.그때 당시 아주 화가 났던 그는 그 일로 그 언론사를 파산시켜 버렸으며 언론사의 파산으로 송민영에게 경고한 셈이었다.그러나 송민영의 인지도는 점점 높아졌고 대부분 기사도 전처럼 쉽게 막을 수 없었다.하지만 언론사들은 그의 기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그는 유현진이 자신과 송민영이 바람피우고 있다며 오해를 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그녀는 심지어 송민영이 그의 첫사랑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유현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결혼식 며칠 전, 웨딩사진을 찍을 때 이미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었어.”“네가 어떤 인지도가 없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그 무명 연예인이랑 떨어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맞선 보러 나간 거라고 그러던데. 나와 결혼을 선택한 것도 사실은 맞선 상대 중에서 집안 조건이 제일 나빴다고, 마침 집안에 복수하기 위해 나랑 결혼한 거라던데?”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강한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도대체 네 눈엔 나는 어떤 사람이야?”유현진이 바로 답했다.“양다리를 걸치고, 남의 그릇을 탐내고, 성격도 더럽고, 말도 예쁘게 못 하고, 쪼잔하고, 질투 많고, 고집도 아주 센...”강한서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너한테 평가해달라고는 안 했어.”“아, 그래.”유현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강한서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네가 방금 한 말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집안에서 내가 무명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넌 그때 나이가 어렸잖아. 그래서 순진했고.”“... 그럼 왜 결혼한 그 날밤, 나에게 손도 대지 않은 건데?”“... 이건 사적인 문제야. 너무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 말아줄래?”유현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우리 두 사람만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못 물어봐?”“그런 거 아니야.”강한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이런 말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 이런 대화를 이어갔다간 내가 너를 희롱한다며 또 감점할 것 같아서 그래.”‘이럴 때만 신경 쓰는 거야? 전에 망사옷을 입어 보여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럴 때만 감점될까 봐 신경 쓰는 거야?'유현진이 말했다.“감점 안 할게. 대신 가산점을 줄게.”“얼마나 줄 건데?”“200점.”강한서가 말했다.“500점으로 해줘. 사적인 문제잖아.”강한서가 점수 흥정에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현진이 말했다.“그럼 됐어.”“??? 안... 궁금해?”“응, 생각해 보니 네 개인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너에게도 프라이버시는 있을 거 아니야.”“... 사실 200점도 괜찮은 것 같아.”그는 일단 200점이라도 받기로 했다.“무리하는 거 아니야?”“그럴 리가.”유현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럼 말해 봐.”강한서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소 오랫동안 망설이며 말했다.“사실 그날은 준비가 안 되어있었어.”“??? 내가 널 덮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준비가 필요해?”“... 앞으로 말 좀 가려서 해줄래?”유현진도 헛기침하며 말했다.“다음엔 가려서 할게. 일단 빨리 말해 봐.”강한서는 순간 말하고 싶지 않았다.‘왜 현진이가 이토록 궁금해하는 거지?'“별거 아니야.”강한서는 나직하게 이어서 말했다.“사실 그냥 그 방면에 관한 지식이 적어서 책으로 일단 배워두고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어.”한참이나 말이 없었다던 유현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래,
강한서는 살짝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멀리서 보기만 할게.”유현진은 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어 부탁하는 모습이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성우 씨랑 같이 와. 혼자 오면 다른 사람들이 또 이상한 글을 올릴 거야.”강한서는 순간 아주 기뻤다.“알았어. 그럼 얼른 대본 봐. 너무 늦게까지는 보지 말고.”“응.”통화가 종료되어 살짝 아쉬웠지만, 유현진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였다.너무 즐겁게 통화한 탓에 전혀 대본을 훑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병원에서 돌아온 한열은 실검을 보자마자 순간 화가 났다.그는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얼른 페이스북에 로그인하고 게시글을 올렸다.「좋은 대본을 놔두고 굳이 그런 관종짓을 할까요? 그래서 언제 같이 대본을 맞춰 볼까요? #유현진」원래 강한서는 이미 기사를 대부분 삭제해 버린 상태였지만 한열의 게시글에 다시 실검으로 오르게 되었다.한열은 지금 유현진을 감싸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게다가 ‘인지도는 없지만 관종인 연예인'을 자신으로 비유하면서 그가 유현진의 인지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말했다.그러자 그의 팬들은 난리가 났다.한열은 데뷔한 후부터 지금까지 페이스북에서 다른 여자 연예인을 위해 나선 적도 없었고 소통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그는 지금 여자 연예인과 소통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려 남친미가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런 글을 올렸으니 그의 팬들도 분명 그의 편을 들 것이었다.이윽고 유현진의 ‘인지도는 없지만 관종인 연예인'이라는 실검은 사라졌고 대신 ‘유현진에게 대본 리허설 신청한 한열'라는 실검이 올라왔다.팬들은 비록 한열의 대응에 불만을 품었지만, 불만은 그저 팬들 내부의 불만이었고 그들은 한열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한편 방이진은 자신이 일으킨 여론이 뒤집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이 일은 당연히 그녀가 벌인 일이었다.공식 계정이 단체 사진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바로 다른 한 장의 단체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송민준은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지금 어디에 있죠?”매니저가 말했다.“위층에 있습니다.”송민준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송 대표님이 갑자기 왜 오셨지? 고담시에 가셨다고 하지 않았나?'매니저는 생각을 비우고 어른 따라갔다.한편 한열은 헬스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들려오는 헤비메탈 음악 소리에 송민준은 하마터면 다시 방 밖으로 나갈 뻔했다.‘뭐 이딴 노래를 듣는 거지?'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바로 스피커의 전원 코드를 확 빼버렸다.음악 소리가 사라지자 한열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시선이 닿는 그곳엔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송민준이 있었다.“어쩐 일이야?”송민준이 말했다.“네 아버지가 너한테 연락했는데 받지 않는다고 나한테 와보라고 하셨어.”한열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 그렇게 매를 때리시더니 다른 사람이 손찌검하니까 갑자기 인제 와서 착한 아버지 코스프레를 하신대?”“그런 건 아니실 거야.”송민준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아버님께서 네가 그런 모습이 되니까 나보고 어떤지 확인하라고 하셨어.”말을 마친 그는 바로 한열의 옷을 올려 확인하더니 이내 혀를 찼다.“쯧, 이건 별로 심각하지도 않잖아.”한열의 이마에 빠직 힘이 들어갔다.“다 봤어? 다 봤으면 얼른 꺼져.”말을 마친 그는 바로 아령을 들고 운동하려 했다. 그러자 송민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그의 엉덩이를 확 차버렸다.한열은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질 뻔하자 고개를 돌려 바로 소리를 질렀다.“내 얼굴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그래서 얼굴은 안 차버렸잖아.”송민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다시는 나한테 꺼지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거야.”한열은 코웃음을 쳤다.“흥, 형이랑 말 안 해.”문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던 매니저가 한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말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럴 담이 없는 거겠지.'그는 한열의 데뷔 때부터 쭉 지켜봐 온 사람이
한열의 매니저는 송민준이 이렇게나 빨리 고담시에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송민준은 다리를 뻗어 의자를 당겨오더니 이내 앉았다.“그래서 안창수 감독의 작품을 하기로 했다고?”한열을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알면서 묻는 거야?”송민준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 작품 하지 마. 내가 다른 작품 다시 찾아줄 테니까.”한열은 바로 거부했다.“싫어!”송민준은 그를 훑어보았다.“네 팬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잖아. 드라마 찍기도 전인데 지금 우리 회사 배우를 악플로 실검에 올려버렸어. 이 작품은 무조건 상을 받아야 하는 작품이니까 넌 방해하지 말고 다른 작품 골라.”“누가 방해했다고 그래?”한열은 볼멘소리로 말했다.“누군가가 일부러 이간질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내가 이미 페이스북에 입장 글도 올렸잖아.”“그걸 지금 입장 글이라고 하는 거야?”송민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건 빈정댄다고 하는 거야. 네 글이 누구를 저격하고 있는지 정말로 모를 것 같아?”한열이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 글이 누구를 저격하고 있는지 너무 분명하게 느껴졌고 그가 저격한 사람은 바로 송민영이었다.더욱 중요한 건, 한열이 유현진의 페이스북 계정까지 태그했다는 것이었다.‘도대체 현진 씨보고 어떻게 대응하라고 그런 짓을 한 거지?'지금 상황에 유현진이 대응하지 않으면 한열을 무시하는 것이 되었고 대응하면 송민영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었다.송민영을 무시하게 되는 것은 별로 큰일은 아니었지만, 송민영의 팬덤이 너무나도 짜증스러웠다.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강한서 그 자식을 욕하고 싶어졌다. 이 모든 건 강한서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때때로 그의 일에 방해했다!한열은 딱히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누구를 저격했는지 알면 뭐 어때? 난 그저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 우는 연기할 때마저 인공눈물을 넣고 흘리는 배우를 도대체 왜 계약한 거야?”송민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나도 계약할 생각이 없었어. 그 여자는 가람이가 계약한 거야.”“
그는 바로 송민준을 경계했다.“설마 현진 누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되지! 안돼, 못 도와줘!”송민준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어쩐지 외삼촌과 외숙모가 연세 40대가 넘어서도 왜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지 알겠네. 너 같은 아들을 보니 가업을 이어가기엔 분명 글렀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네가 가업을 이으면 한씨 가문은 망할 게 뻔하니까.”한열은 눈썹을 치켜떴다.“그건 나라에서 새로 나온 출산 정책 때문이야.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내 말에 토 달지 마. 내가 방금 한 말 기억했지?”유현진에 관한 일은 한열도 당연히 알아야 했다.이윽고 그가 다시 물었다.“왜 나한테 현진 누나를 지켜주라고 한 거야? 회사에 여배우가 현진 누나 한 명만 있는 거 아니잖아. 왜 현진 누나에게만 특별하게 구는데?”송민준은 원래 유현진의 정체를 바로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다시 고민했다.한열의 오늘 상태는 아주 이상했고 예전에 그가 시킨 일이라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도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던 그가 유현진을 위해 입장 글까지 올렸다.생각을 정리한 송민준이 되물었다.“너와 유현진 씨는 무슨 사이야? 왜 네가 현진 씨를 대신하여 나서주는 건데?”한열이 말했다.“난 원래부터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송민준은 그의 말을 흘려듣고 바로 매니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죠?”한열이 막기도 전에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유현진 씨가 바로 선셋 스타시거든요. 그리고 선셋 스타는 열이의 꿈에 그리던 여신님이고요.”“젠장.”한열은 어두워진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송민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너한테 현실 여신님도 있었냐?”한열은 코웃음을 쳤다.“내 일에 참견하지 마!”“현진 씨가 네 여신님이라고 했으니까 더욱 도와줘야겠네.”송민준은 잠깐 생각하더니 한열에게 유현진의 정체를 잠시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현진 씨에게 사랑이 싹트고 있는 거지? 그래, 일단
“강 대표님의 여동생은 사실 유현진 씨에게 뜨거운 물을 부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이가 대신 몸으로 막아줬으니 아마 강 대표님께서는 전처인 유현진 씨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송민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잘 주시하세요. 절대 열이가 게시글을 올리게 해서는 안 되고요. 열이 상처가 완벽하게 다 나으면 다시 촬영을 시키세요. 제작진에게는 제가 말해둘 테니까.”“네, 알겠습니다.”한열의 집에서 나온 송민준은 바로 회사의 법무팀 팀장에게 연락했다.“손 팀장, 늦은 시간에 연락하게 되어 죄송하네요. 일단 실검을 보셨겠죠? 어떻게든 유현진 씨를 그 사건에서 제외하세요. 손 팀장이 플랜을 세우면 한열한테도 잘 협조하라고 말해둘게요.”손슬기가 답했다.“대표님, 플랜을 세우는 건 가능합니다. 다만 너무 유현진 씨를 다소 과보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실검은 어차피 며칠 후면 바로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배우에겐 별거 아닌 일이죠. 유현진 씨 같은 아직 내놓을 만한 대표작이 없는 배우를 과보호했다간 오히려 안 좋은 기사가 날 수 있습니다.”송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지켜만 보고 있으란 말인가요?”손슬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님, 유현진 씨는 송민영 씨와 다릅니다. 유현진 씨는 연기에 진심인 사람이고 유현진 씨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절대 팬들의 악플이나 이간질이 아니고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더 큰 스포트라이트와 무대에요. 하지만 저도 유현진 씨를 힘든 길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공으로 가는 길엔 역경이 없을 수는 없죠. 현진 씨는 연예계로 이제 막 들어섰고 인지도가 아주 높은 배우들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톱스타들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될 거고 팬들도 더욱 엄격한 시선으로 유현진 씨를 보게 되겠죠. 그러니 유현진 씨는 이런 고난도 어느 정도 이겨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런 사소한 실검도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지를 만들고, 소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