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의 매니저는 송민준이 이렇게나 빨리 고담시에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송민준은 다리를 뻗어 의자를 당겨오더니 이내 앉았다.“그래서 안창수 감독의 작품을 하기로 했다고?”한열을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알면서 묻는 거야?”송민준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 작품 하지 마. 내가 다른 작품 다시 찾아줄 테니까.”한열은 바로 거부했다.“싫어!”송민준은 그를 훑어보았다.“네 팬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잖아. 드라마 찍기도 전인데 지금 우리 회사 배우를 악플로 실검에 올려버렸어. 이 작품은 무조건 상을 받아야 하는 작품이니까 넌 방해하지 말고 다른 작품 골라.”“누가 방해했다고 그래?”한열은 볼멘소리로 말했다.“누군가가 일부러 이간질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내가 이미 페이스북에 입장 글도 올렸잖아.”“그걸 지금 입장 글이라고 하는 거야?”송민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건 빈정댄다고 하는 거야. 네 글이 누구를 저격하고 있는지 정말로 모를 것 같아?”한열이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 글이 누구를 저격하고 있는지 너무 분명하게 느껴졌고 그가 저격한 사람은 바로 송민영이었다.더욱 중요한 건, 한열이 유현진의 페이스북 계정까지 태그했다는 것이었다.‘도대체 현진 씨보고 어떻게 대응하라고 그런 짓을 한 거지?'지금 상황에 유현진이 대응하지 않으면 한열을 무시하는 것이 되었고 대응하면 송민영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었다.송민영을 무시하게 되는 것은 별로 큰일은 아니었지만, 송민영의 팬덤이 너무나도 짜증스러웠다.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강한서 그 자식을 욕하고 싶어졌다. 이 모든 건 강한서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때때로 그의 일에 방해했다!한열은 딱히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누구를 저격했는지 알면 뭐 어때? 난 그저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 우는 연기할 때마저 인공눈물을 넣고 흘리는 배우를 도대체 왜 계약한 거야?”송민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나도 계약할 생각이 없었어. 그 여자는 가람이가 계약한 거야.”“
그는 바로 송민준을 경계했다.“설마 현진 누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되지! 안돼, 못 도와줘!”송민준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어쩐지 외삼촌과 외숙모가 연세 40대가 넘어서도 왜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지 알겠네. 너 같은 아들을 보니 가업을 이어가기엔 분명 글렀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네가 가업을 이으면 한씨 가문은 망할 게 뻔하니까.”한열은 눈썹을 치켜떴다.“그건 나라에서 새로 나온 출산 정책 때문이야.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내 말에 토 달지 마. 내가 방금 한 말 기억했지?”유현진에 관한 일은 한열도 당연히 알아야 했다.이윽고 그가 다시 물었다.“왜 나한테 현진 누나를 지켜주라고 한 거야? 회사에 여배우가 현진 누나 한 명만 있는 거 아니잖아. 왜 현진 누나에게만 특별하게 구는데?”송민준은 원래 유현진의 정체를 바로 말해줄 생각이었지만 다시 고민했다.한열의 오늘 상태는 아주 이상했고 예전에 그가 시킨 일이라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도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던 그가 유현진을 위해 입장 글까지 올렸다.생각을 정리한 송민준이 되물었다.“너와 유현진 씨는 무슨 사이야? 왜 네가 현진 씨를 대신하여 나서주는 건데?”한열이 말했다.“난 원래부터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송민준은 그의 말을 흘려듣고 바로 매니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죠?”한열이 막기도 전에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유현진 씨가 바로 선셋 스타시거든요. 그리고 선셋 스타는 열이의 꿈에 그리던 여신님이고요.”“젠장.”한열은 어두워진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송민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너한테 현실 여신님도 있었냐?”한열은 코웃음을 쳤다.“내 일에 참견하지 마!”“현진 씨가 네 여신님이라고 했으니까 더욱 도와줘야겠네.”송민준은 잠깐 생각하더니 한열에게 유현진의 정체를 잠시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현진 씨에게 사랑이 싹트고 있는 거지? 그래, 일단
“강 대표님의 여동생은 사실 유현진 씨에게 뜨거운 물을 부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이가 대신 몸으로 막아줬으니 아마 강 대표님께서는 전처인 유현진 씨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송민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잘 주시하세요. 절대 열이가 게시글을 올리게 해서는 안 되고요. 열이 상처가 완벽하게 다 나으면 다시 촬영을 시키세요. 제작진에게는 제가 말해둘 테니까.”“네, 알겠습니다.”한열의 집에서 나온 송민준은 바로 회사의 법무팀 팀장에게 연락했다.“손 팀장, 늦은 시간에 연락하게 되어 죄송하네요. 일단 실검을 보셨겠죠? 어떻게든 유현진 씨를 그 사건에서 제외하세요. 손 팀장이 플랜을 세우면 한열한테도 잘 협조하라고 말해둘게요.”손슬기가 답했다.“대표님, 플랜을 세우는 건 가능합니다. 다만 너무 유현진 씨를 다소 과보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실검은 어차피 며칠 후면 바로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배우에겐 별거 아닌 일이죠. 유현진 씨 같은 아직 내놓을 만한 대표작이 없는 배우를 과보호했다간 오히려 안 좋은 기사가 날 수 있습니다.”송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지켜만 보고 있으란 말인가요?”손슬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님, 유현진 씨는 송민영 씨와 다릅니다. 유현진 씨는 연기에 진심인 사람이고 유현진 씨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절대 팬들의 악플이나 이간질이 아니고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더 큰 스포트라이트와 무대에요. 하지만 저도 유현진 씨를 힘든 길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공으로 가는 길엔 역경이 없을 수는 없죠. 현진 씨는 연예계로 이제 막 들어섰고 인지도가 아주 높은 배우들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톱스타들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될 거고 팬들도 더욱 엄격한 시선으로 유현진 씨를 보게 되겠죠. 그러니 유현진 씨는 이런 고난도 어느 정도 이겨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런 사소한 실검도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지를 만들고, 소
“아니요.” 강한서는 시선을 거두었다.“얼른 민서를 본가로 데려다주세요.”“네, 알겠습니다.”강한서의 차는 강민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가는 길에서 강한서는 유현진이 보낸 문자를 받게 되었다.「우리 회사에서 차로 데려다주기로 했으니까 너와 성우 씨는 바로 현장으로 오면 돼.」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데리러도 못 가게 하다니, 그럼 멀리서 지켜봐도 되겠지?'9시 정각, 901호의 초인종이 울렸다. 유현진은 아직도 메이크업하던 중이었고 그녀가 현관문을 열어주려고 일어서는 순간 진희연이 급히 일어났다.“제가 가서 열게요.”문을 열자 진희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준 오빠, 송 대표님?”송민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준비가 다 되었나요?”“거의 곧 끝나갑니다.”진희연은 얼른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송 대표님께서 왜 직접 오셨지?'세 사람은 그렇게 거실로 들어오게 되었고 유현진이 바로 방에서 나왔다.그녀는 방금 막 메이크업을 마친 상태라 머리도 정리하지 못했고 송민준의 등장에 진희연과 같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민준 오빠, 언제 돌아오셨어요?”그녀를 보자마자 송민준은 바로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이틀 전 밤에 돌아왔거든요. 마침 오늘 다른 일도 없겠다 싶어서 현진 씨 촬영하는 곳에 따라가 구경하려고요.”그는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크고 작은 쇼핑백을 가리키며 말했다.“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법역'을 보셨거든요. 그때 현진 씨를 아주 좋아하셔서 제가 현진 씨와 계약하신 걸 아시고 선물들을 챙겨주셨어요. 그리고 대신 사인 한 장을 부탁하셨는데 괜찮을까요?”유현진은 뜻밖의 선물 공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민준 오빠, 정말 정말 고마워요. 외할아버님과 외할머님께서 사인을 원하시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이런 선물까지 주실 필요 없어요. 선물은 도로 가져가세요. 제가 이따가 사인 여러 장 해드릴 테니 외할아버님과 외할머님에게 고맙다고 인사만 전
한준웅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어르신들 앞에 있는 휴대폰 거치대에 올려두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유현진은 소파에 앉아 자신의 응원 피켓을 들고 있는 노부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송민준이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누군지 아시겠어요?”입술을 달싹이던 유현진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고 송민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민준 오빠, 호칭은 어떻게 부르면 돼요?”“우린 같은 또래니까, 제가 부르는 대로 부르면 돼요.”그러자 유현진은 바로 눈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현진이에요.”할아버지, 할머니라는 호칭에 두 사람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힐 뻔했다.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반짝이는 큰 눈과 오똑한 코, 전부 람이랑 똑 닮았어.’한태진의 흐릿하던 눈동자가 유현진을 보는 순간 촉촉해졌다. 공영선이 그의 등을 꽉 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공영선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하지만 공연선은 감정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 나이 든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온 세월이 묻어있어 자애롭고 부드러웠다. “예뻐요. 화면보다 더 예뻐.”직설적인 칭찬에 유현진의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도 우아하세요.”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공영선은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주름도 많았지만 그녀는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공영선은 한 손엔 응원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단정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굉장히 품위 있고 우아해 보였다. 공영선을 보면 미인은 세월도 비껴간다는 것이 무슨 말이 이해되었다. 그와 반대로 한태진은 다부지게 생겼다. 짙은 눈썹과 큰 눈에 근엄해 보이는 그는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었다. “현진 씨는 말도 예쁘게 하네요.”공영선은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화면 속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녀의 집안에 대해 물었다가,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
“일 봐요. 일을 그르치면 안 되니까.”가볍게 대꾸한 유현진은 한태진과 공영선에게 인사를 하고나서야 휴대폰을 송민준에게 돌려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전 먼저 가서 옷 좀 갈아입을게요.”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가져왔다. 안방으로 돌아온 유현진은 문을 닫고 갑자기 털썩 자리에 앉았다. 한태진과 공영선 두 어르신은 자상했고 유현진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 느낌은 그녀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유현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민준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차를 타 주는 루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유현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티셔츠와 긴바지에 얇은 외투를 입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머리는 높게 포니테일을 묶었다. 진희연이 얼른 몸을 일으켜 유현진의 옷을 정리했다. “송 대표님, 이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요?”이준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에 출발해.”아직 10여 분 남아있었다. 송민준이 갑자기 물었다. “이 꼬마 쇳덩이는 어디서 구해 온 거예요?”‘꼬마 쇳덩이?’유현진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루나가 먼저 발끈했다. “전 꼬마 쇳덩이가 아니라 AI 집사예요. 저 이름 있어요. 제 이름은 루나에요. 루-나!”루나의 말에 침묵이 흘렀다. 송민준은 노크하듯 루나의 겉면을 툭툭 두드렸다. “꼬마 쇳덩이.”루나: ...“오빠, 이러는 건 매너가 아니에요.”송민준이 루나를 놀리며 말했다. “매너는 사람한테나 하는 거지. 넌 로봇이잖아. 쉽게 말해면 도구. 밥 먹을 쓰는 밥그릇, 물 마시는 컵처럼 그냥 쓰는 거잖아. 밥그릇이랑 컵에 예의 차리는 거 본 적 있어?”루나는 송민준의 논리에 낚이지 않았다. “루나는 도구가 아니에요. 저는 인간의 생활 파트너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인간도 예의있게 절 대해야 해요.”송민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예전에 그가 갖고 놀던 것들보다 똑똑했다. 그가 전에 샀던 로봇들은 내리는 지시는 거의 정확히 수행했지만 논리적인 사고나 이
유현진이 조금 망설였다. 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루나는 아직 테스트 단계라, 어떤 기능은 송민준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녀가 말이 없자 송민준이 물었다. “제가 이걸 뜯어서 복제라도 할까 봐 그래요?”“당연히 아니죠.”루나가 비싼 것은 탑재된 포로세서와 프로그램의 설정 때문인데, 이런 것들은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유현진이 말했다. “루나가 아직 출시 테스트를 통과한 게 아니라서요.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이거든요.”송민준이 전혀 개의치 않고 웃었다. “로봇일 뿐이잖아요. 해결이 안 되면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이죠.”송민준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유현진도 더 이상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 그래요. 그럼 일주일 뒤에 돌려주세요.”“알겠어요.”그 시각, 강한서와 한성우가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7동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민경하가 얼른 강한서를 불렀다. “대표님, 왔습니다.”강한서가 고개를 들자 유현진과 그녀의 일행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막 올라가던 그의 입꼬리가 곧 축 처졌다. ‘송민준이 왜 여깄어?’송민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네 사람 뒤에는 루나도 함께였다. 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그를 감쌌다. 한성우는 어젯밤 배탈에 시달렸다. 항문에 새빨간 인두를 끼고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오늘에야 겨우 살만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루나를 보고는 의아해했다. “쇳덩이 데리고 어딜 가는 거야?”하지만 곧, 그 의문이 풀렸다. 네 사람이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박해서가 BMW를 몰고 왔다. 그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꺼내 루나를 안에 넣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루나를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박해서가 운전을 하고 휙 가버렸다. 강한서: ...“세상에, 송민준이 쇳덩이를 납치해 간 거야?”강한서
진희연이 본 배우 중, 이렇게 팬들의 마음을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녀가 전에 제작진과 함께 일할 때, 배우의 팬들을 많이 봤었다. 그들은 멀리서 자기 배우를 보기 위해 왔고 엄동설한에 패딩을 입고 밖에서 길게 줄을 섰다. 추위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어도 그들은 자기 배우가 춥지는 않은지, 촬영장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닌지, 촬영이 언제 끝나서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걱정했다. 사실, 그들의 배우는 따뜻한 대기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편히 쉬고 있었다. 심지어 춥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간단한 요구도 들어주기 싫어했다. 많은 연예인들에게 팬이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그들은 한낱 데이터의 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진희연이 말했다. “그거 알아요? 팬들이 오래 기다릴수록 인기가 많고 골수팬의 능력이 좋다는 뜻이에요.”유현진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더운 날에, 저도 서 있기 힘든데, 그건 너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아니에요? 일찍 돌아가라고 해요.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진희연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요.”11시가 되자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둘 모였고 11시 20분에 크랭크인이 시작되었다. 제를 지내고, 폭죽을 터뜨렸다. 피어오르는 연기의 냄새와 함께 유현진의 첫 블록버스터가 정식 촬영 시작을 알렸다. 크랭크인 행사가 끝난 후,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송민영과 한열의 팬들은 익숙하게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하나씩 무대 위로 올렸다. 송민영의 팬들은 특별히 파란 장미로 곰돌이 푸를 만들었다. 굉장히 예뻤다. 그녀의 공식 색은 하늘색이었고 곰돌이 푸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유현진은 별로 부럽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 아이돌의 웃는 모습을 위해 돈과 정력을 쏟아 덕질하는 팬들에게 감탄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파스텔 장미로 만든 2M가 넘는 거대한 망고가 휘청이며 무대 위로 올려졌다. 장미로 만들어진 망고는 마치 진짜 같았다. 위에는 잎과 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