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는 수많은 유명한 부잣집 딸들을 위해 서비스해봤지만 강민서처럼 막무가내인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다.다행히 매니저가 제때 현장에 도착해 수습하려고 애썼다.“아랫사람이 아직 일에 서툴러서 말을 잘못했네요. 민서 씨, 화 푸세요~ 이 옷은 어때요? 오늘 새롭게 도착한 최신 스타일인데 올해 봄 시즌 런웨이에서 우승한 디자인이 바로 이 옷이에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매니저가 말을 마친 순간, 유현진이 탈의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가 입은 예복은 고급진 와인 레드 컬러에 비단 질감이라 바닥으로 우아하게 늘어져 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의 굴곡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워낙 하얀 얼굴이 강한 색조의 대비로 더 하얗게 보였으며 요염한 자태를 한껏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녀를 몇 초 동안이나 바라보던 강한서가 고개를 돌렸다. 유현진이 예복을 입은 모습을 본 강민서는 이 예복이 더더욱 탐났다. 그녀는 주강운이 자신을 어린 소녀로만 보는 이미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가 자신을 여자로 봐주길 바랐다. 유현진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난 저거 싫어.”강한서 앞으로 달려간 민서가 애교를 부렸다.“오빠, 나 형수 드레스 입어보고 싶어.”“너에게 안 어울려.”강한서가 담담하게 답했다.그러자 강민서는 불만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어보지도 않고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어떻게 알아? 나랑 형수는 몸매도 비슷하잖아.”강한서는 대답 대신 유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내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마지막엔 너 강한서의 말 한마디에 결정되는 거 아냐?’마치 지난해 그녀의 생일에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케이크를 눈으로 보기도 전에 그는 강민서에게 줘버렸다. 집에 돌아와 서운하다고 하니 강한서는 오히려 짜증만 냈고 고작 케이크 하나에 성화냐고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그는 왜 모르는 걸까?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하나의 케이크 혹은 옷 한 벌이 아니라 강한서가 그녀를 중요하게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자신은 모른다는 듯, 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너한테 안 맞아.”이런 성의 없는 대답이라니. 유현진은 웃겼다. “내 사이즈에 맞춰 만든 옷이 안 맞는다고? 강한서, 너 둘러대기 싫다고 해도 약간은 그럴듯한 대답으로 하지 그래?”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내려는 듯한 느낌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래도 성질을 죽이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곳의 가장 좋은 예복에서 마음껏 골라. 하지만 이 옷은 안 돼.”그는 지금 그녀를 많이 봐주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유현진은 이대로 넘어가기 싫은 듯이 그에게 맞섰다. “내가 꼭 이 옷을 원한다면?”결국 강한서도 인내심을 잃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안 된다고 했잖아!”유현진이 입을 일자로 꾹 닫자 강민서의 눈 속에 득의양양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유현진, 옷은 네 사이즈에 맞춰 만들었지만 돈은 오빠가 냈어. 그러니까 오빠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거야.”유현진이 강한서를 바라봤지만 그는 여동생을 말리려는 뜻이 없어 보였다. 그에 대한 마음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신이 난 강민서가 말을 이었다. “불만 있으면 유씨 집안 돈으로 사면 되잖아. 너의 그 입양한 여동생은 아직도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종일 바삐 돌아치며 연구하는 것 같던데. 넌 하는 일 없이 우리 집안의 돈만 쓰고 놀고먹으려고 하잖아. 할머니께서 왜 너를 우리 집안으로 들이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가 안 돼.”“닥쳐!”사람이 너무 많아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체면 깎이고 신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강한서가 강민서를 막았다. 곧이어 그가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메이크업 해줘.”매니저는 바로 두 명의 어시를 데려왔다. 강민서는 입술을 샐쭉하며 거기서 멈췄다. 떠나기 전에 한껏 으쓱거리며 유현진을 한 번 바라봐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유현진의 안색이 흐려졌다. 조금 전 그에게 날을 세우던 모습은 강민서의 모욕을 듣고 사그라진 것 같았다. 그녀가 예전처럼 강민서에게 맞서지
“마음대로 고르라고 했잖아요?”유현진이 대답했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매니저가 머뭇거리다가 완곡하게 에둘러 말했다. “사모님, 이번 자선 이브닝 파티엔 한주시 상류층의 귀부인들과 규수들이 한껏 차려입고 올 거예요. 정장 수트를 입는 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정장 수트 입을 거예요.”유현진은 매니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기에 한마디 더 했다.“강한서가 당신을 찾으면 내가 기어코 입으려 했으니 나를 찾아오라고 전해줘요.”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매니저도 더 할 말이 없었고 결국 그녀를 데리고 정장을 보러 갔다.사람은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유현진은 걸어 다니는 옷걸이였다. 그 어떤 옷이든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유현진은 흰색 정장 수트 한 세트를 선택하고 안에 타이트한 블랙 로우컷 나시를 입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꾹 묶으니 조금 전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냈는데 지적이면서도 세련돼 보였다. 스타일리스트는 그녀의 얼굴에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간단한 데일리 메이크업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으니까.그녀의 얼굴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강한서는 심심한 듯 잡지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등 뒤로 “타다닥”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곧이어 검은색 하이힐이 그의 시선에 나타났다. 손에 든 잡지를 잠시 덮어두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엔 흰색 정장 수트를 입은 유현진이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그를 보고 있었다. 강한서는 잡지를 내려놓고 입술을 꾹 닫으며 그녀를 바라봤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엔 화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약간 실망한 유현진은 손을 뻗어 일부러 정장을 곧게 펴며 물었다. “예뻐?”강한서는 진지하게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평가했다. “괜찮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 왜 이런 반응인 걸까?일부러 정장 수트를 골라 그에게 맞서는
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우연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 그녀는 분명 강한서의 화를 돋우려고 일부러 도발한 것인데 커플룩으로 입게 되었을 줄은 몰랐다.강한서가 그녀를 흘기더니 되물었다.“너라면 믿을래?” 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어떻게 해명해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유현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럼 바꿔 입을게.” 그러자 강한서의 목소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우연이라며 왜 그렇게 신경 써?” 유현진의 입꼬리가 떨렸다.“내가 뭘 신경 쓴다고 그래? 네가 자꾸 오해하니까 그러지.” “내가 뭘 오해했는데?” “너는...” ‘내가 아직 널 좋아해서 일부러 커플룩을 입었다고 생각하잖아.’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보지 않았다. 찰랑이는 귀걸이는 그녀의 길고 흰 목에 그림자를 남겼다.그녀의 귀는 아주 빨갰는데 방금 강한서와 싸웠기 때문이었다.그녀 스스로도 매번 다른 사람과 화를 내며 싸울 때면 귀가 빨갛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강한서는 그녀의 빨개진 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순간 유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강한서, 마지막으로 강민서를 용서할 거야. 예전에는 어려서 그런 짓들을 했다지만 앞으로 다시 나한테 함부로 말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네가 강민서를 감싸줘도 상관은 없지만 나도 이젠 잃을 것 없는 몸이야. 절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현진에게 강민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물으려고 했지만 그의 등 뒤로 강민서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 나 준비 다 됐어.” 그녀는 치맛자락을 들고 강한서의 앞에서 돌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어때, 예뻐?” 아주 성숙해 보이는 드레스였기 때문에 헤어 디자이너는 그녀의 코디에 맞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었다.그녀의 유치한 모습을 감춰 주고 몹시 아름답기까지 했지만 유현진의 앞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한껏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신분으로 인해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
강한서가 전화를 받았고 상대가 뭐라고 말했는지 그는 미간을 세게 찌푸리다가 전화를 끊고 기사님에게 말했다.“세기 빌딩에 세워요.” 강민서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차는 왜 세워? 오빠, 무슨 일이야?” 유현진 역시 그를 바라보았는데 걱정하는 강민서와는 달리 그녀의 눈빛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강한서가 담담하게 답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 너희들 먼저 가.” 유현진이 시선을 돌렸다.‘급한 일이라고? 송민영이 불렀겠지.’ 송민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에게는 몹시도 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유현진은 손목이 잡혔고 그녀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강한서가 얼른 결혼반지를 그녀의 손가락에 끼웠다.유현진은 반지를 보자 화가 치밀어 비아냥거렸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내가 할 수는 없지. 찾지 못하면 또 신고하려고?” 뒤끝이 심한 여자라고 생각한 강한서는 피식 웃더니 유현진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걱정 마. 신고 안 해. 만약 잃어버리면 다른 걸로 갚아.” 유현진이 흠칫하며 물었다.“날 어떻게 할 생각이야?” 강한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훑어보며 말했다.“유현진, 다음번 건강 검진에서는 머리도 한 번 검사해 봐.” 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강민서가 물었다.“오빠, 둘이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뭘 신고해?” 강한서가 손을 거두며 덤덤하게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너한테 초대장 있지? 이따가 도착하면 현진이 데리고 먼저 들어가. 난 기다릴 필요 없어. 일 마치고 갈 테니까.” 강민서는 마지못해 알겠다고 답했다.차는 아주 빨리 세기 빌딩에 도착했고 민경하는 이미 차 안에서 강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에서 내린 강한서는 원래 유현진에게 당부할 말이 있었지만 유현진이 고개를 돌리고 이어폰을 낀 채 대화를 거부했다. 그녀의 모습에 강한서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쾅 닫고 떠났다.차에 탄 강한서를 본 민경하는 단번에 그의 기분이 언짢
"고속도로에서 충돌 사고가 있던 날 사모님도 현장에 계셨습니다. 사모님의 포르쉐 역시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강한서는 흠칫하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민경하는 조수석에 있는 파일을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이건 사모님의 진료 기록입니다. 송민영 씨와 같은 병원에 있었어요.” 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파일을 살폈다.우측 11번째 갈비뼈 골절, 조직 부상으로 오른쪽 손목 인대 부상, 이마의 찰과상을 동반한 두통, 메스꺼움 등이 있으므로 입원을 권장함.그날 밤에 발생한 모든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며 강한서는 목이 타들어갔다.그녀는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강한서는 눈을 감았다.‘이게 바로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 이유인가?’ ...한편, 파티로 향하는 길에서 강민서는 메이크업을 고쳤다.그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가장 밝은 파운데이션을 쓰라고 했는데 메이크업 효과는 좋았지만 화장이 번지는 게 걱정이 되었다. 만약 화장이 번지면 그녀의 원래 피부색이 여실히 드러났기에 볼품이 없어진다.그녀는 부단히 파우더를 발라 화장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강민서는 거울을 통해 뒷좌석에 앉은 유현진을 보며 예쁜 그녀의 얼굴에 질투심을 느꼈다.유현진의 피부는 백옥같이 희고 섬세했는데 슈트를 입고 얇은 화장을 했다고 해도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웠다.그런 유현진과 함께 입장하면 분명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빼앗기고 말거라는 생각이 든 강민서는 점점 유현진이 고까웠다.차는 빨리 이번 자선회 파티가 진행되는 곳에 도착했다. 예신호텔이었다.예신의 사장은 이번 자선회 파티를 개최한 사람들 중 하나로서 한주시의 비즈니스 업계에서 인맥이 아주 넓었는데 초대한 사람들은 모두 정계와 상업계 엘리트와 대형 그룹의 고위 임원들이었다.자선회 파티라고는 하나 사실 각 계의 엘리트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파티였다.강민서는 한주시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는 별로 유명한 인사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엄마는 예전에 한주
유현진과 강한서의 결혼 소식이 전해진 그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떤 명문가의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한성우에게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실의 진위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강한서가 명문가 자제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었다.유현진은 강한서와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편함에서 익명의 러브레터를 발견하곤 했다. 아주 달콤한 말과 함께 자신의 외설적인 사진을 보내면서 말이다.그건 어느 날 그녀가 강한서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성우 파일을 수정할 때 발견한 것인데 그때 두 사람은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기로서 아직 잠자리를 하지 않은 때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녀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혹시 강한서가 외도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그땐 나이도 어렸고 순진했던 그녀는 혹시 자신과 잠자리를 하지 않는 이유가 강한서가 사진과 같은 섹시한 타입이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도, 속상하기도 했다. 해서 그녀는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데 성인용품점에서 사진 속의 여자가 입은 것과 같은 속옷을 사서 그날 밤 보드카를 마시고 대담하게 강한서의 품에 안겼다.그 뒤에 발생한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이튿날 깨어보니 강한서는 일찍 떠났고 홀로 남은 그녀는 몸이 구석구석 아팠지만 속으로는 흐뭇했다.그날 오후 강한서는 그녀에게 전화로 어제 입은 옷은 어디에서 산 것인지 물었다.유현진은 어젯밤이 마음에 들었던 강한서가 대낮부터 그녀를 유혹한다고 생각하고 쭈뼛댔지만 강한서가 이어서 말했다.“디자인 부서에서 며칠 전 나한테 디자인 시안을 보냈는데 우리 상품이 아직 출시되기도 전에 모조품이 시장에 나왔어. 지금 유포자를 찾는 중이야.” 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네가 말한 시안이 메일에 있던 그 사진이야?” 강한서가 멈칫하며 되물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유현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그 뒤에 유현진은 강한서에게 사적인 사진을 보내는 여자가 꽤 많았지만 그날 그녀가 봤던 사진은 회사에서 새 제품의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화장실 문에 노크했다.“강민서?” 안에서는 대답 대신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다.유현진이 다시 소리를 높여 말했다.“강민서, 장난치지 마. 들었으면 대답해.” 하지만 여전히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화장실에는 칸막이가 3개뿐이었는데 3개의 문이 모두 굳게 닫혀있었다. 그중 하나의 칸막이 너머로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른 소리도 섞였다. 유현진은 이거구나 생각했다.“민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안쪽으로 밀었다.무방비 상태였던 유현진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고 손에 있던 폰도 놓쳤다.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유현진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얼른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역시나 밖에서 문이 잠겼다.‘강민서 유치한 자식!’ 유현진은 이를 악물고 힘껏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강민서! 너 미쳤어?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얼른 문 열어!”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설마 이미 나갔어?’ 강민서가 그녀에게 했던 못된 행위들을 생각하니 이런 일을 벌이고도 남겠다는 확신이 들었다.호텔은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그녀를 발견하는 사람은 없었다.호텔 로비에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액정이 깨지는 바람에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그저 누군가 화장실에 와서 그녀를 구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유현진은 몰랐다. 강민서가 화장실을 떠날 때 문 앞에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놓았기 때문에 호텔 직원이 아닌 이상 화장실을 지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호텔의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악취 대신 디퓨저 향이 났지만 갇혀 있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만지며 기억을 더듬어 주소록에서 아무나 찾아서 전화를 하여 호텔 데스크에 연락을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하지만 전화를 걸기도 전에 화장실 옆 칸에서 “헉헉” 거리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