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주 대표님의 말에 의하면 당시 유상수는 여유가 있고 자신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혀 허세 같지 않았고 게다가 대표님과의 각별한 관계도 있으니, 바로 거절하지는 않았고 주주들과 상의해 보고 답변드린다고 했다고 합니다.”강한서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유상수가 요즘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고 뭘 하고 다니는지 알아봐 주세요.”“네, 알겠습니다. 주 대표님 쪽은 어떻게 할까요?”“개발 연구에만 신경 쓰라고 하세요. 다른 일은 제가 처리한다고 전해주시고요.”“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민경하는 업무보고를 마치고 이만 나가보려고 했다. 바로 그때, 강한서가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민경하는 멈칫했고 강한서는 담담하게 물었다.“사진 찍을 줄 알아요?”민경하는 천천히 대답했다.“... 네!”강한서는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여기 옷들 사진 좀 찍어줘요, 예쁘게 찍어주세요.”민경하는 어리둥절했지만 더 묻지 않고 강한서의 휴대폰을 건네받고는 간단히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강 대표님, 이 정도면 될까요?”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사무실을 떠날 때, 민경하는 머리가 어질했다.‘강 대표님이 언제부터 촬영에 흥미를 느끼셨지?’이때, 미녀와 시간을 보내던 한성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대폰 잠금 화면을 해제한 그는 자칫 휴대폰 액정에 물을 뿜을뻔했다.강한서는 새로 선물 받은 셔츠 사진을 보내주었고, 지나친 것은 곧이어 보내온 메시지였다.“30년 살면서, 엄마 말고 너한테 옷 사준 사람 있었어?”“난 있지!”한성우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자랑은! 고작 누더기 셔츠 두 벌 가지고! 나도 있어!’그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언짢았다. 최근 몇 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기에 주변에 늘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엔 오래도록 머무른 사람은 없었고 모두 떠나갔다. 때문에 그를 챙겨주고 옷까지 사주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잠깐 한성우의 옆에 머물다 떠났던 여자들은 아마 그의 옷 사이즈를 모르고, 아예 관심조
그 여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그를 잡았다.“이렇게 가운 내렸는데, 정말 갈 거야?”한성우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냉정하게 말했다.“그리고 앞으로 연락하지 마, 여기서 끝내.”그 여자는 마침내 안색이 변했고 다시 샤워가운을 걸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한성우, 그렇게 살지 마! 그러고도 사람이야?”한성우는 그저 차가운 코웃음을 지었다.“서로 좋았으면 그만이야, 스스로가 피해자인 척 하지 마.”이어서 그는 수표 한 장을 꺼내어 그녀의 샤워가운에 넣어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딱한 건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말이야, 이거로 보상받아.”여자의 안색이 살짝 변했고 수표를 받으면서도 욕설을 퍼부었다.“나쁜 새끼! 지질한 놈! 반드시 업보를 받을 거야!”한성우는 예상했단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떠났다.한편, 강한서는 식사를 마치고 미팅에 참석했다. 유현진은 먼저 가려다가 강한서가 스타일링하러 가야 한다며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다. 먼저 가면 이혼 위자료는 한 푼도 없을 것이라고 못까지 박았다.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협약서에 사인한 뒤로부터 유현진은 2000억에 묶여 살았다. 오늘도 그저 집무실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강한서의 사무실은 정말 단조로웠다. 책상과 소파, 그리고 책장이 인테리어의 전부였고 심지어 색상도 블랙, 화이트 그리고 그레이 세 가지였다.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거의 반은 영어 서적이었고 나머지들은 전문적인 서적이었는데 그 중간중간 세계적인 명작들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소설은 단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유현진은 한참을 뒤척이더니 결국엔 “자치통감”이라는 중국 송대 역사 서적을 한 권 들고 소파로 가서 시간을 보내려 했다.하지만 책을 펼친 순간, 그녀는 머릿속이 몽롱해졌다.이 책은 조금도 번역되지 않아 알아볼 수가 없었다.한 페이지를 넘겼지만 머릿속엔 “지호자야”라는 몇 글자만 겨우 남아있었다.강한서 유죄 인간!유현진은 다시 책을 덮어두고 휴대폰을 꺼냈다.그제야 본인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이상의 댓글들은 그나마 완곡하게 작성된 악성 댓글들이다. 이런 것들 외에도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댓글, 피 냄새나는 협박 글들이 득실거렸다.유현진은 순간 혈압이 치솟았다.‘어떻게 이 정도로 뻔뻔하게 대놓고 호박씨를 까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아닌가!’‘강한서, 이 멍청한 자식! 사업은 그렇게 성공했으면서 여자 보는 눈은 어떻게 장인이나 다름없는 거야?’밑으로 내려 댓글을 읽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던 그녀는 참지 못하고 차미주한테 문자를 보냈다.“야, 송민영이란 여자 대체 무슨 매력이 있어? 강한서는 왜 아직도 그 여자한테 미련을 갖고 있는 거야!”차미주는 대본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가출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유현진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그저 담담하게 회신했다.“제 버릇 개 못 준다잖아!”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지만 차미주의 무례한 말에서 조금의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았다.송민영이 먼저 도발했으니, 아주 독기를 품고 짓밟아 주리라 다짐했다.‘누군 비겁하게 굴 줄 몰라서 가만히 있었나? 딱 기다려!’‘가만히 있으니 사람을 등신으로 아나 보지?’십분 뒤, 유현진은 음성 파일 하나를 업로드하며 아래와 같이 코멘트를 달았다.“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확실히 ‘정상에서’ 더빙 배역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탈락했습니다. 떠도는 글처럼 계약을 체결하려다 해지한 건 아니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정상에서’ 제작팀은 제가 본 가장 프로페셔널한 제작팀이니, 분명 심사숙고를 거치고 오디션 결과를 공표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팀과 다시 협력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송민영 씨한테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제가 본 가장 노력하는 여배우거든요. 그저 오디션장에서 그녀와 마주치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첨부된 파일은 저의 오디션 과정이 녹화된 음성 파일이니, 재미 삼아 들어주시고 너무 민감하
강한서 앞에서 신분이 폭로된 그녀를 보며 강한서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그는 너무 궁금했다. 최근 2년 사이에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송민영은 이번에 오히려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데뷔했을 때부터 그녀가 가진 자원은 훌륭했다. 하지만 연예계의 파이는 딱 그만했고 그녀가 많이 가져가는 만큼, 타인에게 차려지는 파이는 줄어들었다. 같은 유형, 같은 라인의 배우들은 그녀가 너무나 미웠으나 또 하필 송민영의 팀은 겸손이라곤 모르고 제멋대로인 팀이었다. 실시간 검색 조작, 가짜 뉴스로 명예 망가트리기, 부정당한 언론 수법으로 여자 연예인 모욕하는 것 등, 안 하는 짓이 없었다.지난번 교통사고 사건 때도 그녀가 실시간 검색을 꿰차고 조작한 일로 인해 비호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며칠 되지도 않아 또 이런 일이 터졌으니 모두가 말이 많았다. 그녀의 팬들마저 댓글 창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너무 화가 났던 송민영은 마구 욕을 날리고 싶었으나 매니저가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 댓글 창을 닫은 후, 조금씩 실시간 검색에서 그녀의 이름을 아래 순위로 밀어 내렸다.한바탕 화를 낸 유현진의 속은 아주 후련해졌다. 아직 이른 시간임을 확인한 그녀는 아예 소파에 누워 졸기 시작했다.‘꼴에 편한 건 아네. 소파 한 번 죽여준다. 편안해... 사무실 온도도 딱 적당한데 공기가 밖보다 더 신선한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그녀는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각하다가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꿈에서 그녀는 솜사탕 위를 사뿐사뿐 밟으며 뛰어다녔고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기분이 좋았다.하지만 점점 주위가 뜨거워졌으며 몸이 시큰하면서도 나른해져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실내 온도 때문일 수도, 아니면 그녀의 체온이 올라갔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손이 굉장히 차게 느껴졌으며 피부에 닿는 순간 불편한 느낌에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그러자 그 손이 멈칫하더니 엄지로 그녀의 뜨거운 입술을 힘껏 문질렀다. 거친 손
완전히 어이가 없어진 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아, 너희 집 비즈니스는 다 이런 식으로 하나 봐? 그래서 이렇게 크게 키울 수 있었구나? 아예 그냥 돈을 뺏어가지, 그래?”“그건 범죄잖아. 난 법을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라고.”강한서가 답했다. 그런 그를 한참이나 노려봤으나 유현진은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강한서는 그녀의 도망치듯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소파가 푹 파인 흔적을 보더니 손을 뻗어 자신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회사에서 나온 강한서는 먼 길을 돌아 강민서를 데리러 갔다. 강민서는 이런 이벤트엔 예나 지금이나 별로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 모인 사람이 가식적이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녀의 말투 자체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지라 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쉬웠다. 신미정 역시 그녀에게 나와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고 강민서도 자신의 재벌 집 딸 친구들과 함께 쇼핑이나 하고 디저트를 먹는 것이 더 좋았다. 집안 어른들은 한주 강씨 가문의 유일한 손녀인 강민서를 특별히 예뻐해 주고 오냐오냐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가 스스로 나서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강한서는 차가 막혀 길에서 멈춰있었고 강민서는 전화로 짜증을 냈다. 민서의 이런 나쁜 버릇을 참아줄 강한서가 아니었기에 전화를 받다가 말고 바로 끊어버렸다. 한주 대학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저 먼 곳에서 강민서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유현진을 본 순간 뾰로통해서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꾸물대나 했더니 소~중한 와이프도 함께 데리고 있었던 거였구나?”유현진은 머릿속에 물음표가 연달아 뜨는 기분이었고 강한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흘긋 보며 답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차에 타.”‘지금 부인하지 않았어? 소중한 와이프라니? 이게 무슨 뭐 같은 호칭이지?’어딘가 많이 이상한 듯한 상황에 유현진은 어색하게 몸을 꿈틀거리며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그런 그녀를
스타일리스트는 수많은 유명한 부잣집 딸들을 위해 서비스해봤지만 강민서처럼 막무가내인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다.다행히 매니저가 제때 현장에 도착해 수습하려고 애썼다.“아랫사람이 아직 일에 서툴러서 말을 잘못했네요. 민서 씨, 화 푸세요~ 이 옷은 어때요? 오늘 새롭게 도착한 최신 스타일인데 올해 봄 시즌 런웨이에서 우승한 디자인이 바로 이 옷이에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매니저가 말을 마친 순간, 유현진이 탈의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가 입은 예복은 고급진 와인 레드 컬러에 비단 질감이라 바닥으로 우아하게 늘어져 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의 굴곡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워낙 하얀 얼굴이 강한 색조의 대비로 더 하얗게 보였으며 요염한 자태를 한껏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녀를 몇 초 동안이나 바라보던 강한서가 고개를 돌렸다. 유현진이 예복을 입은 모습을 본 강민서는 이 예복이 더더욱 탐났다. 그녀는 주강운이 자신을 어린 소녀로만 보는 이미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가 자신을 여자로 봐주길 바랐다. 유현진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난 저거 싫어.”강한서 앞으로 달려간 민서가 애교를 부렸다.“오빠, 나 형수 드레스 입어보고 싶어.”“너에게 안 어울려.”강한서가 담담하게 답했다.그러자 강민서는 불만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어보지도 않고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어떻게 알아? 나랑 형수는 몸매도 비슷하잖아.”강한서는 대답 대신 유현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내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마지막엔 너 강한서의 말 한마디에 결정되는 거 아냐?’마치 지난해 그녀의 생일에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케이크를 눈으로 보기도 전에 그는 강민서에게 줘버렸다. 집에 돌아와 서운하다고 하니 강한서는 오히려 짜증만 냈고 고작 케이크 하나에 성화냐고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그는 왜 모르는 걸까?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하나의 케이크 혹은 옷 한 벌이 아니라 강한서가 그녀를 중요하게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자신은 모른다는 듯, 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너한테 안 맞아.”이런 성의 없는 대답이라니. 유현진은 웃겼다. “내 사이즈에 맞춰 만든 옷이 안 맞는다고? 강한서, 너 둘러대기 싫다고 해도 약간은 그럴듯한 대답으로 하지 그래?”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내려는 듯한 느낌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래도 성질을 죽이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곳의 가장 좋은 예복에서 마음껏 골라. 하지만 이 옷은 안 돼.”그는 지금 그녀를 많이 봐주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유현진은 이대로 넘어가기 싫은 듯이 그에게 맞섰다. “내가 꼭 이 옷을 원한다면?”결국 강한서도 인내심을 잃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안 된다고 했잖아!”유현진이 입을 일자로 꾹 닫자 강민서의 눈 속에 득의양양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유현진, 옷은 네 사이즈에 맞춰 만들었지만 돈은 오빠가 냈어. 그러니까 오빠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거야.”유현진이 강한서를 바라봤지만 그는 여동생을 말리려는 뜻이 없어 보였다. 그에 대한 마음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신이 난 강민서가 말을 이었다. “불만 있으면 유씨 집안 돈으로 사면 되잖아. 너의 그 입양한 여동생은 아직도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종일 바삐 돌아치며 연구하는 것 같던데. 넌 하는 일 없이 우리 집안의 돈만 쓰고 놀고먹으려고 하잖아. 할머니께서 왜 너를 우리 집안으로 들이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가 안 돼.”“닥쳐!”사람이 너무 많아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체면 깎이고 신분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강한서가 강민서를 막았다. 곧이어 그가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메이크업 해줘.”매니저는 바로 두 명의 어시를 데려왔다. 강민서는 입술을 샐쭉하며 거기서 멈췄다. 떠나기 전에 한껏 으쓱거리며 유현진을 한 번 바라봐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유현진의 안색이 흐려졌다. 조금 전 그에게 날을 세우던 모습은 강민서의 모욕을 듣고 사그라진 것 같았다. 그녀가 예전처럼 강민서에게 맞서지
“마음대로 고르라고 했잖아요?”유현진이 대답했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매니저가 머뭇거리다가 완곡하게 에둘러 말했다. “사모님, 이번 자선 이브닝 파티엔 한주시 상류층의 귀부인들과 규수들이 한껏 차려입고 올 거예요. 정장 수트를 입는 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정장 수트 입을 거예요.”유현진은 매니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기에 한마디 더 했다.“강한서가 당신을 찾으면 내가 기어코 입으려 했으니 나를 찾아오라고 전해줘요.”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매니저도 더 할 말이 없었고 결국 그녀를 데리고 정장을 보러 갔다.사람은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유현진은 걸어 다니는 옷걸이였다. 그 어떤 옷이든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유현진은 흰색 정장 수트 한 세트를 선택하고 안에 타이트한 블랙 로우컷 나시를 입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꾹 묶으니 조금 전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냈는데 지적이면서도 세련돼 보였다. 스타일리스트는 그녀의 얼굴에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간단한 데일리 메이크업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으니까.그녀의 얼굴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강한서는 심심한 듯 잡지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등 뒤로 “타다닥”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곧이어 검은색 하이힐이 그의 시선에 나타났다. 손에 든 잡지를 잠시 덮어두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엔 흰색 정장 수트를 입은 유현진이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그를 보고 있었다. 강한서는 잡지를 내려놓고 입술을 꾹 닫으며 그녀를 바라봤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엔 화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약간 실망한 유현진은 손을 뻗어 일부러 정장을 곧게 펴며 물었다. “예뻐?”강한서는 진지하게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평가했다. “괜찮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 왜 이런 반응인 걸까?일부러 정장 수트를 골라 그에게 맞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