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 미친 금욕적인 공대 출신 남자와 연예계 매혹적인 보이스의 성우 만남.극도로 반대 성향인 두 사람이 함께하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강한서는 평소에도 기자회견에 참여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대부분 사진은 마치 태주대 세미나 같은 그저 업무와 관련된 단체 사진들뿐이었다.사람들은 온갖 기사들을 뒤져서 강한서의 단체 사진을 모아 “법역”에 출연했던 유현진의 사진과 같이 합성해 버렸다.그렇게 합성해 놓고 보니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렸다. 정장을 입은 강한서의 금욕적이고 섹시한 모습은 마치 유현진이 주도권을 갖고 그의 셔츠를 벗겨버릴 것만 같았다.매혹적이고 고혹적인 유현진이 주도적인 성향이 더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이내 두 사람에겐 그렇게 찐한 커플이라는 커플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유현진의 이름과 강한서의 이름을 하나씩 따와서 찐한 커플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비록 유현진은 팬이 적었지만, 대부분은 이성적인 팬들이었고 그 팬들이 댓글을 남겼다.“강 대표님께선 이미 가정이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남매사이로 봐주시면 고맙겠네요.”“그래도... 전 정말 이 커플 응원하고 싶네요!”“저도요... 하지만 현진 언니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포기할래요. 괜히 현진 언니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합성된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던 강한서는 다정한 남매사이로 보는 팬들에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그는 얼른 휴대폰을 들고 “찐한 커플”을 지지하는 글을 리트윗할 생각이었지만 민경하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대표님, 올리시면 안 됩니다. 대표님께서 정말 그 글을 올리신다면 사람들은 사모님을 불륜녀라고 오해할 겁니다. 아직 대중들에겐 대표님은 이미 결혼하신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한서는 얼굴 가득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다정한 남매사이로 몰아가는 팬들에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민경하가 그런 그를 보며 위안했다.“남매사이도 좋잖아요. 대놓고 사모
안자연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다 같은 회사 소속의 연예인이고, 심지어 너보다 인지도도 낮아. 넌 주인공이고 걔는 조연이라고. 그런 유현진 씨가 굳이 널 왜 해치려고 하겠니?”송민영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게졌다. 그녀는 당연히 예전에 강한서와 유현진의 결혼 생활을 망친 일에 대해 안자연에게 말해주지 않았다.안자연이 이어서 말했다.“회사가 너에게 보상으로 유명 브랜드의 광고 모델 잡아줬으니까 그냥 하면 돼. 경찰 측에서도 이미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을 내렸어. 만약 딴생각하다가 송 대표님께 들키기라도 하면 그땐 누구도 널 지켜주지 못할 거야.”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는 배우였기에 뭐든 원하는 대로 해줘야 마땅했지만, 송민준은 송민영을 아주 싫어했고 송민영의 이번 일로 안자연도 그걸 눈치챘다.회사에서 그녀에게 송민영을 케어하라고 할 때 그녀는 회사가 송민영을 중시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송민영을 넘겨준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보니 그저 대충 그녀에게 떠넘긴 것이었고 회사에서도 송민영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그러나 이미 송민영이 자신의 손에 맡겨진 이상 안자연도 최선을 다해 송민영을 케어할 것이었다. 담당 연예인의 수입은 매니저의 수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송민영이 사고를 안 치고 계약 위반을 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인기를 얻는 건 시간문제였다.안자연의 말을 들은 송민영의 눈빛이 더욱 음침해졌다.그녀는 당시 제발 브랜드 뉴 엔터와 계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누군가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현재 한 달 만에 그녀는 후회하기 시작했다.지금 그녀의 인지도라면 어느 회사에 가도 실력 좋은 매니저를 붙여주고 그녀를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줬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녀는 자신이 왜 굳이 브랜드 뉴 엔터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송민준은 그녀 같은 톱스타를 그냥 내버려 두고 오히려 아무 인지도도 없는 신인 배우를 밀어주었다. 그래서 송민영은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을
신미정은 화가 났다. 신씨 가문의 일엔 무관심하던 강한서가 이혼한 전처의 일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강한서가 이혼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서가 유현진에게 푹 빠져 그녀가 끼어들 틈도 없었으리라 생각했다.이른 아침부터 신미정은 본가로 왔다.그녀의 시어머니인 정인월이 생일잔치에 있었던 일로 그녀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이번 달의 스케줄은 아주 적었다. 생신 잔치에서 상처를 입은 손님들의 병문안을 가는 것 빼고는 본가로 돌아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했다.정인월은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녀가 매번 찾아올 때마다 아예 못 들오게 하거나 그녀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신미정이 강씨 가문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혼전임신을 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끈질기게 버틴 끝에 강씨 가문의 일원으로 될 수 있었다.당시 임신했던 신미정에게 정인월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이 강했던 신미정은 끈질기게 매일 본가로 찾아와 정인월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안부 인사를 매일 물었다. 그리고 정원의 잔디를 관리해 주며 정인월이 키우는 말과 물고기들의 먹이도 매일 같이 챙겨주었다.마음 약했던 강씨 가문의 어르신은 이미 임신까지 한 여자를 계속 이렇게 내버려 두는 건 강씨 가문의 명성에도 흠이 갈 거라며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정인월은 그제야 신미정과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30년이 지난 지금도 신미정은 본가로 오게 되면 마당의 잡초도 뽑아주고 비료도 뿌려주었다.당시의 신미정은 강씨 가문에 시집을 오는 데에 급급했을 때라 어떤 더러운 잡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했었다. 하지만 강씨 가문의 일원이 되고 몇십 년이 지나니 그녀는 그 잡일들이 더럽게 느껴졌다.그녀는 심지어 정인월이 왜 굳이 시중에서 파는 채소들을 사 먹지 않고 이렇게나 큰 정원에 각종 채소와 과일을 심어 매주 직접 비료까지 뿌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신미정은 비록 자신이 도와주겠다고는 했지만, 정원에 오자마자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3개의 마스크와 장갑을 가져오라고
정인월은 대답 대신 신미정에게 물었다. “단한이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지?”신미정이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16년이요.”“16년 7개월 9일.”정인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믐 하루 전에 갔지.”신미정의 얼굴에도 슬픔이 일렁였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정인월이 말했다. “자넨 16년 동안 재혼하지 않았으면서, 한서는 2개월 만에 새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건, 어미로써 걔 마음을 생각하고 내린 결론인가?”신미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머님. 저랑 한서가 어떻게 같아요? 저랑 단한 씨가 지낸 세월이 얼만데요. 한서랑 그 아이는 한서도 합의 하에 이혼한 거잖아요.”정인월이 신미정을 흘겨보았다. “단한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깊은데, 실험실에 불이 나던 그때, 어디 있었어?”정인월의 말에 신미정은 가슴이 꽉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머님, 아직도 절 원망하세요?”정인월은 가위를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단한이 자네한테 잘해주라고 하기에, 그 아이 뜻대로 했지. 재혼을 마다하고 우리 집안에 남겠다고 하니, 그러라고도 했고. 하지만 선은 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네는 한서를 키우지도, 부모로써 뭘 가르치지도 않았어. 인제와 무슨 자격으로 한서 결혼에 이래라 저래라하는 거지?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와 결혼하든 그건 한서 일이야. 한서 결혼으로 자네 욕심 채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마.”“어머님—”정인월은 차가운 말투로 신미정의 말을 가로챘다. “난 피곤하니 자네도 돌아가게. 내 야채 망가뜨리지 말고.”신미정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굳은 얼굴을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씨 아주머니가 정인월에게 말했다. “어르신, 그래도 한 식구인데…”진씨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정인월에게 말했다. “어르신, 차 준비됐습니다.”정인월이 고개를 끄덕이고 장갑을 벗으며 밭을 벗어났다. 진씨가 이씨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
신미정은 신씨 가문을 매정하게 대하는 강한서를 원망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녀는 한 번도 강한서를 보러 가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은 같은 도시에 가까이 살면, 하루가 멀다고 이혼한 아들에게 찾아가 집안일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신미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한서의 생활이나 근황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강한서가 이혼한 지 1개월 만에, 그녀는 끊임없이 강한서에게 있는 집안 규수들의 자료를 보내주며 그가 얼른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그녀는 이혼한 아들에 대한 걱정보다, 그의 재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두어 번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은 강한서는 신미정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무음 모드로 설정하거나 민경하게 휴대폰을 넘겼다. 강한서는 신미정이 보내온 소개팅 자료도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는 그 자료들을 전부 송병천에게 보내 송민준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라고 했다. 그덕에 송민준은 요즘, 선을 보느라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민경하는 어제도 송민준이 인스타그램에 “강한서, 네가 솔로인 데는 다 이유가 있어!”라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강한서는 자신의 골칫거리를 라이벌에게로 자연스럽게 전이시켰다. 그 방법은 꽤 참신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신미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얼른 전화 바꿔요!”민경하가 예의를 잃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정말 바쁘세요.”신미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7시에 히비스커스 호텔로 오라고 해요. 걔 아버지 오랜 친구분께서 한주시에 오셔서 식자 자리를 마련했다고요.”민경하가 물었다. “어느 친구분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신미정은 화가 난듯한 말투로 냉랭하게 말했다.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신미정이 뚝 전화를 끊었다.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민경하가 낮은 목소리로 그런 강한서에게 물었다. “대표님, 가실 건가요?”강한서가 머뭇거렸다. 강단한의 옛 친구들은 모두 강씨 가문과 사이가 좋았다. 그 친구분들이 도와준 덕에 강
유현진은 주강운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다고 그와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적정한 선을 지키지 않는다면, 순수한 우정이 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유현진이 차미주에게 주의를 줬다. “한성우는 친구로는 괜찮지만, 남자친구로는 잘 고민해 봐야 해.”차미주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순둥아, 너 너무 갔어. 다른 사람 다 좋아해도 한성우는 아니야. 생긴 것도 바람둥이처럼 생겼는데, 그런 애를 내가 어떻게 감당해? 난 오를 수 없는 나무는 바라보지도 않는 사람이야.”유현진이 차미주의 말에 웃어버렸다. “한성우든 조 선생님이든, 더 알아간 다음에.”유현진은 이미 실패를 겪었기에 차미주는 그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어~ 빨리 가.”신을 갈아신은 유현진이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문을 나섰다. 유현진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벨 소리가 울렸다. 양치하고 있던 차미주가 입안의 물을 뱉고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뭐 두고 갔어?”차미주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한성우가 수트 차림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헤어까지 완벽하게 한 한성우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눈부신 자태로 차미주 앞에 섰다. 차미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한성우가 “쯧.” 소리를 냈다. “보고도 모르겠어? 너 데리고 데이트하러 가려고.“차미주가 말했다. “안 가.”한성우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조준 씨랑.”차미주가 금방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디?”한성우: …‘얘가 표정 관리 학원이라도 다니는 거야?’자기한테는 불퉁한 표정만 짓고 있고, 조준이라면 바로 표정이 바뀌었다. 한성우는 병아리를 잡듯이 차미주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 다음에 또 나한테 그딴 표정 지으면, 다시는 너 데리고 조준 만나러 안 가!”차미주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면서도 얼굴엔 함박웃음을 띠고 한성우의 어깨를 눌러주며 아양을 떨었다.“내가 너한테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 금방 일어나서 잠이
조준을 만난다는 말에 차미주는 치마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심지어 유현진의 고데기로 머리도 만졌다. 메이크업을 잘하지는 못했던 차미주는 파운데이션과 립스틱만 발라 피부톤을 정돈했다. 그러고는 운동용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한성우는 거실에서 《어린 왕자》를 읽고 있었다. 《어린 왕자》 중의 한 구절이 그의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출을 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 노을이 질 때까지 기다리다 후회하지 말고.”차미주가 방에서 나오자 한성우가 물었다. “네 책이야?”차미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도 좋아해?”“안 좋아해.”한성우가 책을 덮어 구석에 놔두었다. “내 화원에 어떻게 한 송이의 장미만 있을 수 있겠어?”그의 말에 차미주는 티가 나지 않게 어이없어했다. “네가 키우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리 많아 봤자 단 한 송이도 네 것이 아니잖아.”“힘들게 길들인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면 나만 억울하잖아.”한성우가 씩 웃었다. “그래서 난 길들이기보다는 뺏는 걸 좋아하지.”차미주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 같은 사람은 저런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보면 안 돼. 넌 가서 형법이나 읽어. 어느 날 잡혀들어갈지 모르니까.”한성우는 차미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넌 어떻게 네가 조준을 길들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차미주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그런 자신감을 가진 적은 없어. 난 단지 내가 후회할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최선을 다했으면, 사귀지는 못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서.”한성우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가자.”길이 조금 막혀 겨우 히비스커스 호텔에 도착한 한성우는 문을 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신미정이 그를 완전히 속인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옛 친구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전부 가족들과 함께였고, 그중에는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보아하니 일 때문에 한주시에 온 게 아니라, 동창회 때문에 모인
서해금은 오히려 태연하게 설명했다.“가람이는 저와 전남편 사이의 아이예요. 병천 씨가 저한테 너무 잘해줘요. 가람이도 친딸처럼 대하고요.”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최이숙이 화제를 돌렸다. “병천이가 워낙 딸바보잖아. 해외로 지사 옮긴 것도 가람이 치료 때문이었고. 정말 친딸처럼 생각하나 봐.”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최이숙의 말에 맞장구쳤다. “가람이 눈매도 병천을 닮은 것 같아. 깊은 인연이야.”그 일은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동창들은 모두 지천명이 넘은 나이였다. 결혼을 늦게 한 사람도 이젠 자식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결혼을 일찍 한 사람은 이미 손주를 본 사람도 있었다. 어른들은 한자리에 모이면 자식들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구 딸은 외교관과 결혼했다는 둥, 어느 집 아들은 해외에 살면서 외국 여자와 결혼했다는 둥, 어느 집은 또 손주를 봤다는 둥 그런 얘기들이었다. 어쨌든, 전부 강한서는 관심이 없어 하는 주제였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동창회인 줄 알았더라면 강한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가람은 냉랭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있는 강한서를 보더니 먼저 그에게 국을 떠줬다. “한서 오빠, 이거 국물 맛있어요. 드셔보세요."강한서는 무미건조하게 송가람의 말에 대답하고는 휴대폰을 들어 유현진에게 2천만 원을 송금했다.「배 안 고파?」유현진은 지금 다른 룸에 있었다. 그녀는 안창수가 말한 식사 자리가 그저 제작진들과 함께하는 자리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착하니 제작진은 몇 명 없었고 전부 안창수의 업계 친구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유현진은 조금 어색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한 사람이 없었던 유현진은 구석에 앉아 음식도 별로 먹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낯을 가리며 누군가 말을 걸면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안창수와 그의 업계 친구들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들은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몇 잔이 오고가자 안창수도 술기운이 살짝 올랐다. 그의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