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카드를 받고 쓱 긁자 모니터에 뜬 알림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12번 테이블은 이미 계산하셨어요.”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유현진을 바라봤다.유현진도 당황하였다.“가자.”차미주가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이미 계산 완료에요.”그녀는 지갑을 다시 한성우에게 돌려주면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역시 성우 오빠는 통도 커.”한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다.결제한 대신 들은 “성우 오빠”라는 호칭에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밖으로 나온 유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주강운에게 사과했다.“강운 씨, 아까는 죄송했어요.”주강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현진 씨가 저를 밀친 것도 아니잖아요. 사과 안 하셔도 돼요. 현진 씨, 현진 씨는 지금 온전히 현진 씨 거예요.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니라.”유현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 “부속품”이라는 세 글자가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부속품이라… 예전의 그녀는 다른 사람들 눈에 아마 강한서의 부속품으로 보였을 것이다.지금은 적당한 위치도 없고 생부도 불분명한 그녀가 강한서의 곁에 서 있으니 더더욱 그의 부속품 같아 보였다.그녀는 시선을 내리깔며 그저 대답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이때 주강운의 휴대폰이 울렸다.“통화 좀 하고 올게요.”주강운은 휴대폰을 들고 전화 받으러 구석으로 갔다.뒤따라오던 강한서가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데려다줄게.”유현진은 그에게 잡힌 팔을 빼냈다.“난 그냥 성우 씨 차를 타고 가면 돼. 같은 방향이거든.”“쟤 집 안 간대.”강한서는 이내 한성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그렇지?”그의 뜻을 알아챈 한성우가 답했다.“전 다시 회사로 돌아가 봐야 해요. 형수님, 한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세요.”“그럼, 그냥 택시 타고 갈게요.”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강한서가 잔뜩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혹시 아까 내가 주강운을 밀쳐서 화가 난 거야? 난 사실 힘 안 줬어. 걔가 그렇게 나약한 줄도 몰랐단 말이야.”유현진은
점수는 어차피 그녀가 기분에 따라 추가하는 것이기에 매번 0.1점씩 추가하면 노인이 되어서도 100점을 채우지 못할 것이었다.유현진은 아주 열심히 노력했지만, 나중에 고작 0.1점을 받게 될 강한서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그녀는 심지어 강한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격려하면서 말했다.“그럼, 힘내~”강한서는 원하던 바를 얻고 잔뜩 거만해진 그녀의 모습이 순간 너무나도 귀엽게 보였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이내 그녀를 조수석에 앉히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노력할게.”깜짝 놀란 유현진은 얼른 목을 빼 들고 친구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다행히 친구들은 서로 얘기하느라 그 둘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그녀는 이를 악물더니 강한서를 노려보면서 말했다.“내 동의 없이 나한테 터치했으니까 마이너스 100점!”강한서의 눈가가 떨려왔다.“거기서 더 감점될 수 있는 거였어?”“당연하잖아! 가산점이 있으면 감점도 있지!”강한서가 또 물었다.“그럼, 어떤 상황에서 감점당하는 건데?”유현진은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하였다.“내 기분에 따라.”강한서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같은 이유로 누적되어 감점하는 건 아니지?”유현진은 속으로 어차피 점수가 누적되든 말든 어차피 마이너스라고 생각하며 답했다.“누적되지 않아.”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의 다른 한쪽 볼에도 입을 맞추었다. 그는 마치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누적되지 않는다고 네가 말한 거야.”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방금 마이너스 만점을 외쳤어야 했다고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주강운은 의뢰인과 통화를 마친 후, 그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먼저 돌아갔다.한성우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강한서는 차미주와 유현진을 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강한서의 차를 겨우겨우 얻어타게 된 차미주는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유현진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강한서가 그녀를 불렀
그녀의 행동에 송민영의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곧이어 「냉혈 인간 유현진」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실검에 올랐다.「뒤로 물러나는 유현진 실화냐?」「부축하지 못해도 굳이 피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도 같은 작품 출연하는 동료인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다른 사람들은 가서 괜찮은지 확인도 하고 그러는데, 유현진은 왜 저래? 설마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야? 그렇게나 멀찍이 있으면서?」「민영 언니 너무 불쌍해. 드라마를 찍으면서 이런 동료도 만나고.」「피하지 말고 민영 언니를 받아주기만 했어도 저 정도로 넘어지진 않았을 거다. 저분 너무 매정하네.」「전에 연기도 엄청나게 잘하길래 구독까지 했었는데, 이런 사람인 줄 몰랐네? 얼른 구독 취소해야지.」「인정, 굳이 이런 사람까지 구독하려 하지 말아요.」「이분이 그 선셋 스타 아니에요? 전에 민영 언니가 맡은 캐릭터에 더빙해 줬던 성우로 알고 있었는데, 은퇴했다더니 배우로 전향하면 그게 은퇴인가?」「새로운 노이즈 마케팅인가 보죠. 연기는 하고 싶은데 성우 하면서 쌓인 인지도를 포기할 순 없으니 일단 은퇴한다고 하면서 배우로 다시 데뷔하는 거죠.」「드라마 제작팀에서 CCTV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영원히 유현진이 이런 사람일 줄은 모르고 있었겠네요!」「대박, 사람이 쓰러졌는데 피해버린다고? 이런 인성으로 도대체 어떻게 연예계에 데뷔한 거야? 나도 오늘은 악플러가 되어야겠네! #유현진 연예계 퇴출 #방관자 유현진.」「먼저 인성부터 고치고 배우를 하세요. #유현진 연예계 퇴출.」...송민영이 쓰러진 소식이 실검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유현진 연예계 퇴출」, 「방관자 유현진」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렸고 실검에 올랐다.촬영을 마친 방이진은 휴대폰을 들고 기사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실검을 보며 아주 활짝 웃고 있었다.비록 가위로 옷을 잘라버린 걸로 유현진을 곤란하게 할 순 없었지만, 송민영이 쇼크로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된 일로 유현진이 욕까지 먹고 실검에 오를 줄은 몰랐다.
“그 여편네의 변호사야.”도석문은 영상 속 주강운의 시선을 따라 유현진을 보게 되었다.“이 여자도 어딘가 익숙한데?”방이진은 도석문이 유현진에게 관심을 보일까 봐 얼른 눈웃음을 지으며 도석문의 그곳에 손을 올렸다.“예쁜 여자만 보면 다 익숙해 보이죠?”도석문은 야릇한 눈빛으로 방이진을 눕혔다. “그럴 리가, 오빠는 우리 이진이밖에 없어...”“아잇 참...”그렇게 방안에서는 또 한 번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한편 한성 그룹.민경하는 페이스북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강한서는 그에게 파일을 넘기며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이 파일을 복사해서 보내세요.”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강한서는 고개를 들고 휴대폰만 붙잡고 뚫어져라 보고 있는 민경하를 쳐다봤다.그는 민경하의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휴가라도 내드릴까요? 집에 돌아가서 편하게 휴대폰 보시죠?”“휴가”라는 두 글자에 민경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강 대표님, 사모님께서 실검에 오르셨습니다.”강한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어떻게 된 일이죠?”민경하는 휴대폰을 그에게 건넸다.“송민영 씨가 지금 응급실에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사모님께서 쓰러지는 송민영을 지켜보기만 했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스폰서까지 있다고 하더군요.”실검을 확인한 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군요! 얼른 언론사에 연락해서 이 기사들을 모두 내리라고 하세요.”“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조회수가 엄청나거든요. 지금 기사를 내리면 사람들은 아마 진짜라고 확신할 겁니다.”강한서는 아랫입술을 살짝 씹으면서 진정하려고 했다. 그도 민경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지금 실검을 내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고 이미 여론에 퍼져 아무런 쓸모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찌라시에 대한 대중들의 추측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잠시 사색을 하던 강한서가 이내 입을 열었다.“사이버수사대로 연락해서 반사 시스템을 미리 추진한다고
그녀에게 이상한 소리만 해대던 차미주가 물었다.“그럼, 어젯밤 그곳에서 나올 때 송민영 그년에게 동영상 찍힌 거 아냐?”“아마 송민영 씨는 아닌 것 같아. 언론사에서도 병원에서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다고 했잖아.”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영상을 찍은 사람이 송민영이 아니라면 방이진일 가능성이 아주 컸다.그녀는 송민영이 쇼크로 쓰러진 일로 자신이 실검까지 오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팔로워가 200만 정도 되는 그녀의 계정 마지막 게시물 아래엔 이미 몇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쇼크로 쓰러지는 송민영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느니, 몸 팔아 배역을 따냈다느니, 얼른 나와서 공개 사과하라는 댓글이 수두룩하였다.다행히 그는 처음부터 페이스북 메시지 기능을 켜두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메시지 함엔 욕설들로 가득했을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이미 만 명이라는 팔로워들을 잃었다.그녀가 송민영을 피했던 행동이 아마 팬들을 자극한 것 같았다.예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지고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가서 부딪힌 것도 아닌데 왜 도와줘야 하냐”라는 댓글을 달면서 본인들의 차가운 태도에 핑곗거리의 만들어냈다.비록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의 핑곗거리가 되고 있었다.그런 그들은 현재 유현진이 송민영을 부축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본인들이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고작 영상 하나로 그녀를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그녀와 송민영 사이의 악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부축하는 것은 호의이고 부축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호의를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었기에 상황을 봐가며 호의를 베푸는 것도 중요했다.“현진아, 보지 마. 보면 화만 나니까.”차미주는 예전에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유현진이 혹시라도 악플러들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
“알았어요.”유현진은 머뭇거리며 물었다.“혹시 제 친구한테도 경찰이 방문하는 건가요?”“당연하죠. 송민영 씨의 영향력이 아주 크거든요. 경찰 측에서도 엄청 중시하고 있어요.”“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끊을게요.”유현진은 전화를 끊자마자 주강운에게 연락을 넣었다.주강운은 사무실에서 사건 자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유현진의 연락에 그는 사건 자료를 내려놓았다.“강운 씨, 송민영 씨가 코코넛 워터 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쇼크래요.”주강운은 멈칫하였다.“송민영 씨가 코코넛 알레르기라고요?’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유현진이 말했다.“저도 방금 매니저를 통해 전해 들었어요. 송민영 씨 측에서는 누군가가 일부러 커피에 코코넛 워터를 넣었다고 의심하고 있다더군요. 신고했다고 그랬으니 아마 경찰이 강운 씨도 찾아갈 거예요.”그녀는 미안한 듯 말을 이었다.“저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되셨네요.”주강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현진 씨 탓이 아니에요. 그냥 송민영 씨가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제가 그렇게나 많은 커피를 들고 갔는데 하필이면 코코넛 워터가 들어간 커피를 마셨잖아요. 운이 나빴던 거죠.”비록 맞는 말이긴 했지만, 송민영의 무시무시한 팬덤에 그녀는 주강운에게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부디 몸조심하세요.”주강운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답했다.“현진 씨도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제게 연락해주세요. 자신을 잘 보호하시고요.”유현진은 간단하게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주강운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컴퓨터 모니터엔 송민영의 데뷔 때 인터뷰 자료가 켜져 있었다.“어떤 종류의 커피를 좋아하세요?”“전 아메리카노만 마셔요.”“싫어하는 음식, 혹은 절대 안 먹는 음식이 있나요?”“고수랑 코코넛이요. 제가 코코넛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전에 코코넛 알레르기로 입원한 적도 있었어요.”기자와 송민영의 대화였다....한편 병원.송민영은 아직도 응급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송민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애초에 송민영과 계약하는 게 아니었는데. 난 팬들이 소란을 피우는 게 너무 싫어!”송가람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주먹을 꽉 쥔 채 땅을 내려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오빠.”송민준은 멈칫거리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뜻이 아니었어. 됐다. 일단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자.”그는 안자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그 커피는 누가 준 거죠?”안자연이 답했다.“스타라이트 엔터의 방이진이라는 여배우님께서 주셨습니다. 하지만 커피는 방이진 씨가 사 온 것이 아니었어요. 감독님의 친구가 사 온 것이었어요.”송민준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사색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그 여자의 개가 다른 사람을 물고 뜯도록 송민영의 입원 사유를 계정에 올리세요.”안자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송민준의 수법은 사람들의 관심을 단숨에 돌리는 아주 음험한 수법이었다.그리하여 방이진은 한밤중에 매니저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전화를 받게 되었다.“송민영 씨 커피 네가 준 거야?”아직 잠이 덜 깬 방이진이 답했다.“커피라니요?”“송민영 씨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래. 병원 측에서 코코넛 알레르기로 쓰러진 거래. 송민영 씨가 그날 마신 커피 속에 코코넛 워터가 들어있었다고! 드라마 제작진들이 공개한 영상에 네가 커피를 송민영 씨에게 건네주는 장면도 찍혀있었어. 지금 송민영 씨의 팬들이 난리 났고 회사로 전화가 엄청나게 오고 있어. 심지어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으로 신고까지 당했다고!”순간 방이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요? 전 민영 언니에게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몰랐다고요. 그리고 그 커피 내가 산 거 아니에요. 전 그냥 전해주기만 했다고요.”매니저는 방이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방이진은 평소에도 무명 배우나 신인 배우만 괴롭혔다. 송민영 같은 톱스타에게 아부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위해를 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한 그녀의 행동에 매니저는 머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강한서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현진아.”유현진은 순간 손가락을 멈추었다.“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강한서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유현진이 머뭇거리면서 답했다.“응... 너도 안 자고 있었어?”유현진의 한 마디에 강한서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그는 검지를 입에다 가져다 대며 민경하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휴게실로 들어가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마침 자려고 했어.”유현진은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응.”강한서가 물었다.“왜 갑자기 나한테 전화한 거야?”유현진이 답했다.“잘못 눌렀어.”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연스럽게 이어서 말했다.“혹시 잠이 안 와?”유현진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아니.”그녀의 대답에 강한서는 미소를 지었다.“난 잠이 잘 안 오더라.”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넌 예전에도 그랬잖아. 나이가 많아서 그래. 수면 시간과 나이는 반비례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대.”강한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넌 매일 10시간 이상을 자는 거야? 16살처럼 보이려고?”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언제 10시간을 잤다고 그래?”강한서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가 지금 너 동안이라고 칭찬해 주고 있잖아. 넌 학교 다닐 때 열독과 이해 문제를 어떻게 풀었냐?”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헛기침했다.“그 정도는 아니야. 대충 18살? 16살은 너무 어려. 아무것도 못 하잖아.”강한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확실히 16살은 너무 어리네. 그것도 못 하고.”유현진은 하마터면 침에 사레 걸릴 뻔했다. 그녀는 붉게 물든 얼굴로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그거라니?”강한서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만 18세 이상이 되어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