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강한서는 회의실에서 벗어났다.직원들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서로 눈빛 교환하고 있었고 이내 민경하에게 물었다.“민 실장님, 도대체 어떤 천사가 우리 대표님을 저렇게 만드신 거죠? 천사님 정보 좀 알려주세요.” 민경하는 직원들을 쓱 한번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비밀입니다.”‘사모님 라인은 내가 먼저 탈 거야.’회사에서 벗어난 강한서는 민경하에게 지시를 내렸다.“한세 한식당에 연락해서 각종 요리들을 만들어 오라고 하세요.”강한서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보탰다.“느끼한 요리는 빼주시라고 해주세요. 현진이는 내일도 연습해야 하거든요.”“알겠습니다.”민경하는 바로 한세 한식당의 사장님에게 연락을 넣었다.사실 지금, 이 시각은 한세 한식당도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심지어 한세 한식당의 자리도 예약하기 어려웠고 배달도 하지 않았다.물론, 누가 배달을 원하는지에 따라 달랐다.강한서가 배달을 원하면 그들은 아무리 영업이 끝난 깊은 밤이라도 바로 주방장을 깨워 요리시킬 것이었다.강한서가 탄 차는 곧바로 유현진이 합숙 훈련을 하는 장소에 도착했다.강한서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그녀에게 2000만 원을 계좌 이체하였다.「내려와.」마침 일어나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로 돌아가 휴대폰에 뜬 계좌이체 문자를 보고 하마터면 입안의 물을 뿜어낼 뻔하였다.그녀는 강한서에게 100원을 계좌 이체하였다.「?」강한서는 다시 2000만 원을 그녀에게 돌려보냈다.「안 받으면 내가 들어갈 거야.」유현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그녀는 또다시 100원을 계좌 이체하였다.「밤중에 또 왜 난리야?」강한서는 계속 2000만 원을 그녀에게 보냈다.「3분 줄게.」유현진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다시 또 100원을 보냈다.「미친놈!」강한서는 또 그녀에게 같은 금액을 보냈다.「10초 남았어.」‘젠장!’유현진은 침대에서 몸을 확 일으키더니 쿵 소리가 났다. 2층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천장에 머리를 박
유현진이 숙소에서 나올 때 경비 아저씨가 그녀를 붙잡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경비 아저씨는 자리에 없었고 그녀도 수월하게 나올 수 있었다.그녀가 막 대문에서 벗어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깜빡이를 켜고 있는 차량을 발견했다.곧이어 그 차량은 천천히 그녀의 앞까지 왔고 차창이 열리면서 강한서의 얼굴이 보였다.“타.”유현진은 움직이지 않았다.“난 그냥 나와서 너한테 말만 하려고 했을 뿐이야. 얼른 돌아가! 여기까지 와서 방해하지 말고!”강한서는 민경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민경하는 바로 빠방 소리를 냈다.소리는 아주 컸고 텅 빈 도로에 크게 울려 퍼졌다.경비실에 있던 아저씨도 얼른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큰 소리로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 왜 아직도 숙소로 안 돌아가는 거예요!”경비 아저씨는 이내 손전등을 들고 유현진 쪽으로 비췄다. 유현진은 창피함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민경하는 얼른 차 문을 잠갔다.한편,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방이진이 휴대폰을 들고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그래, 우리한테는 깨끗한 척 굴더니, 너도 다를 바 없구나? 한밤중에 몰래 남자 만나러 달려오고 말이야!’그녀는 벤츠 차량을 연속 몇 장이나 찍었다. 원래 그녀는 차량 번호를 찍고 싶었지만 차가 이내 시동을 걸고 떠나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유현진은 차 안에서 강한서를 노려보고 있었다.“도대체 이 밤중에 또 왜 난리인 거야?”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점점 다가갔다.깜짝 놀란 유현진은 서둘러 밀어내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강한서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려는 것이었고 이내 민경하에게 말했다.“출발해요.”정신을 차린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일 아침 점호한단 말이야. 지금 도대체 어디 가려는 건데?”강한서가 말했다.“지난번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오늘 같이 다시 먹으려고. 안 그러면 계속 생각날 것 같아.”유현진은 눈썹을 치켜떴다.‘이 자식 설마 내가 저번에 집 밖으로 쫓아냈다고 이러는 거야?
사실 그녀는 그때 이미 화가 풀린 상태였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을 집에 두고 나갔던 강민서가 돌아오고 그녀를 비꼬자 순간 욱한 마음이 들어 그녀는 자기 힘으로도 살 수 있다며 받지 않았었다.그리고 강민서는 그 선물 상자를 가져갔다. 그랬기에 그녀는 선물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의 기억력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유현진은 멋쩍은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얼른 다른 일을 생각해 내려 애를 썼다.“아, 그래. 내가 실수로 네 포크로 화분에 꽃 심었을 때 내가 바로 새것으로 사줬는데 네가 아무 말도 없이 버렸잖아.”포크 얘기가 나오자 강한서는 혀끝이 아파지기 시작했다.“그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네가 싸구려 포크를 사 오는 바람에 내 혀끝에서 피가 났었잖아. 그건 기억 안 나?”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찔린 구석이 있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건 괜찮던데.”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네 몫까지 내가 피를 흘렸으니까.”“...”“그, 그러면 아가씨가 예전에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난 너랑 같이 식구들과 식사하러 가려고 했었어. 그런데 넌 돌아오는 길에 날 길에다 버렸잖아. 내가 고작 이혼하자고 했다고 날 길에다 버렸잖아!”유현진은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 그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었다!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그녀를 흘겨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할 말 없지? 넌 그냥 무조건 복수하는 사람인 거야!”“사모님.”민경하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사실 그날, 대표님께서는 사모님께 기사님을 불러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는 가방을 꼭 안으면서 혹시라도 운전 기사님이 사모님의 가방이라도 가져갈까 봐 타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날, 강한서는 그녀의 가방도 그녀와 함께 길가에 버리자마자 민경하에게 연락해 운전기사를 보내 그녀를 데려다주라고 지시했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6억 원의 가방을 꼭 끌어안으면서 혹여
캠핑카에 들어선 유현진은 깜짝 놀랐다.안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테이블 중간엔 심지어 촛대도 있었고 촛대 옆 흰색 꽃병엔 흰색 장미꽃들이 꽂혀 있었다. 유현진은 마치 토할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으엑, 너무 촌스러워. 누가 이런 촛대도 준비한 거야?”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배가 먼저 꼬르륵 소리를 내었다.강한서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면서 말했다.“너의 배가 입보다 더 성실한 것 같군.”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머리커락을 한 움큼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그녀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강한서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고 심지어 그녀는 강한서에게 로맨스 세포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강한서의 어느 생일날, 그녀는 강한서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으로 버니걸 세트를 샀었다.당시 그녀는 이미 바니걸 세트를 이미 갈아입은 상태였지만 강한서는 오히려 그녀가 입은 옷이 토끼를 모티브로 한 옷인가, 아니면 여우를 모티브로한 옷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었다.그녀가 머리 위에 하고 있던 동물 귀 모양의 머리띠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강한서는 여우걸 세트가 아니냐고 물었었다.유현진은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옷에 달린 꼬리만 보아도 여우가 아닌 버니걸 세트라고 말했다.그러자 그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에서 대량의 자료들을 찾아 그녀의 앞에 내밀면서 아무리 봐도 그 귀는 여우 귀라고 말했다.그리고 엉덩이에 달린 꼬리가 왜 토끼 꼬리인지는 아마도 업체에서 잘못 보내준 것이라고 판단했다.증거들을 잔뜩 내민 강한서의 추측이 맞았고 옷과 머리띠는 확실히 한 세트가 아니었다.하지만!누가 그 상황에서 아이패드를 끌어안고 도대체 버니걸인가, 여우걸인가 연구를 하겠는가?강한서는 원래부터 로맨스가 체질이 아닌 사람이었다. 강한서와 전생과 현생에 관해
하지만 항상 그를 피할 수는 없었다.이런 이유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유현진은 끊임없이 음식을 입속에 넣었다.강한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먹어.”유현진은 순간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녀는 입속의 음식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네가 마음대로 준비해 놓고, 이젠 나보고 그만 먹으라고?”강한서는 보리차를 그녀에게 따라주면서 말했다.“넌 이미 많이 먹었잖아. 더 먹으면 이따 잠들기 힘들 거야.”강한서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너 지금 나랑 대화하기 싫어서 일부러 꾸역꾸역 먹고 있는 거잖아.”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티가 나?’식탁만 내려다보고 있던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컵을 들고 차를 마셨다.사실 그녀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만약 강한서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체하게 될 것이었다. “현진아.”강한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미련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나랑 송민영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가 그 여자를 띄워주고 있는 건 그 여자가 나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서야. 그리고 난 나중에 너에게 그 사람을 소개 해줄 생각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미 그 일에 연루된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너까지 연루되게 하고 싶지 않아.”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들고 입가에 가져다 대더니 이내 살짝 손등 키스를 하였고 아주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남편으로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누군가의 남편은 처음이었어. 내 인생에서도 아마 좋은 경험이 될 거고… 나도 좋은 남편으로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를 찾지 못했어. 그러니까 나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돼? 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유현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 순간, 그녀는 너무나도 울고 싶었지만 그녀는 꾹 참았다.그녀와 강한서의 사이는 이미 용서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
강한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고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유현진은 마치 모래 같았다. 그가 손에 쥐려고 하면 할수록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후로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고 불안하고, 또 무서웠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께 너도 물어봤잖아. 할머니께서도 신경 안 쓰셔.”유현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그냥 떠본 거였잖아. 할머니께서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셨을 거야. 너도 생각해 봐. 너의 가문에서는 절대 아이가 없을 수는 없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도 널 이상한 눈빛으로 보게 될 거라는걸.”강한서는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넌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할지만 말하고 있잖아.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뭐가 중요해? 그럼 넌? 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데?”“그래, 네 말이 맞아. 난 할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가 중요해. 하지만 난, 나랑 평생을 같이 살아갈 사람은 너야. 그래서 네 대답이 제일 중요해. 아이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네가 갖고 싶다면 나도 같이 병원에서 노력해 볼 수도 있어. 네가 낳는 걸 원치 않으면 입양해도 돼. 네가 복수하고 싶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 나랑 앞으로 평생 함께 있어 줄래?”민경하는 캠핑카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대표님도 참… 뭐, 그래도 진보는 있네. 적어도 핵심을 파악했으니까.’아이가 있든 말든 자신의 아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강한서는 부족한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세심하지 못하고, 다정하지도 못하다. 심지어 직설적으로 말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짓을 해도 말 한마디 때문에 망치기 일쑤였다.하지만 그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었다. 강민서가 그녀를 괴롭히면 그는 남몰래 뒤에서 꼭 복수를 해줬다. 비록 그녀는 아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는 자신이 유현진
강한서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주강운? 아니면 송민준?”한성우가 유현진에게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 강한서는 온몸이 굳어졌다. “설마, 한성우?”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 곁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의심하려고 이러는 걸까?“대체 누구야?”유현진을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걸 묻는 게 의미가 있어? 그게 누구든, 너는 아닐 텐데.”“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게 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강한서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대체 왜 그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건데.”유현진이 짜증을 내며 머리를 흩트렸다. 강한서는 왜 상식선에서 행동하지 않을까?그의 성격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런 말들을 하다 거절을 당했으니, 원래대로라면 화를 내며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녀에게 그게 누군지 따지고 있는 걸까?강한서는 유현진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했다. “송민준이지. 네가 나랑 이혼하자마자 송민준이 너랑 계약했어. 그리고 너랑 관계되는 모든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고. 너랑 내가 재결합이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지?"유현진: …강한서의 상상력은 과하게 풍부했다. 어딜 봐서 송민준이 유현진을 좋아한다는 말인가?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송민준을 방패로 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유현진이 대답했다. “맞아. 송 대표님은 성격도 좋으시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도 아셔. 내가 제일 힘들 때 날 도와주셨고. 게다가 잘생겼잖아. 여자라면 누구든 흔들려.”그녀의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거짓말! 그건 네 스타일이 아니잖아!”“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몰라?”유현진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넌 나랑 이렇게 오래 지냈으면서, 아직도 몰라? 나 원래 잘생긴 사람 좋아해. 그때 내가 널 선택했던 것처럼.”강한서의 눈빛에 우울함이 가득 찼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송민준에게 전화해서 말해. 네가 송민준 좋아한다고.”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내가 동의했어? 강한서, 너 지금 이런 행동,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이런 걸 질척댄다고 하는 거야.”강한서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현진은 이 정도면 강한서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겠다고 판단해 자리를 뜨려는데, 강한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거짓말쟁이!”유현진: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해?”강한서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탔다. “역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네.”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뭘?”‘뭐야, 쌩뚱맞게.’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가 나한테 한 말은, 하나도 진심이 아니었던 거야?”강한서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 유현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도무지 강한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했었는데?”강한서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만약 어느 날엔가 네가 날 밀어내면, 나더러 너한테 질척거리라며. 그러면 네가 마음이 아파서 나 못 밀어낸다며. 그러더니, 이제는 질척거리지도 말라고?”유현진: ...‘그게 언제 적 일이야? 왜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지?’기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한서가 뱉은 대사는 어쩐지 귀에 익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유현진은 드디어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녀가 어떤 드라마를 보던 때였을 것이다. 그 드라마는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서로 사랑했지만 각자의 집안과 꿈 때문에 결국 헤어졌다. 유현진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통곡하며 드라마를 봤었다. 남자 주인공이 못났다고 생각했다가, 또 어떨 때는 여자 주인공이 못났다고 생각하면서.서로 사랑하는 데 왜 함께하지 못할까? 누구 한 명이라도 끈질기게 다가가 본다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쉽게 끝낼까?그녀가 하도 큰 소리로 통곡하니 옆에서 자고 있던 강한서도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