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고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유현진은 마치 모래 같았다. 그가 손에 쥐려고 하면 할수록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후로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고 불안하고, 또 무서웠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께 너도 물어봤잖아. 할머니께서도 신경 안 쓰셔.”유현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그냥 떠본 거였잖아. 할머니께서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고 계셨을 거야. 너도 생각해 봐. 너의 가문에서는 절대 아이가 없을 수는 없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도 널 이상한 눈빛으로 보게 될 거라는걸.”강한서는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넌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할지만 말하고 있잖아.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뭐가 중요해? 그럼 넌? 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데?”“그래, 네 말이 맞아. 난 할머니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가 중요해. 하지만 난, 나랑 평생을 같이 살아갈 사람은 너야. 그래서 네 대답이 제일 중요해. 아이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네가 갖고 싶다면 나도 같이 병원에서 노력해 볼 수도 있어. 네가 낳는 걸 원치 않으면 입양해도 돼. 네가 복수하고 싶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 나랑 앞으로 평생 함께 있어 줄래?”민경하는 캠핑카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대표님도 참… 뭐, 그래도 진보는 있네. 적어도 핵심을 파악했으니까.’아이가 있든 말든 자신의 아내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강한서는 부족한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세심하지 못하고, 다정하지도 못하다. 심지어 직설적으로 말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짓을 해도 말 한마디 때문에 망치기 일쑤였다.하지만 그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었다. 강민서가 그녀를 괴롭히면 그는 남몰래 뒤에서 꼭 복수를 해줬다. 비록 그녀는 아주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는 자신이 유현진
강한서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주강운? 아니면 송민준?”한성우가 유현진에게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 강한서는 온몸이 굳어졌다. “설마, 한성우?”유현진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 곁에 있는 모든 남자를 다 의심하려고 이러는 걸까?“대체 누구야?”유현진을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걸 묻는 게 의미가 있어? 그게 누구든, 너는 아닐 텐데.”“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게 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강한서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대체 왜 그 사람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건데.”유현진이 짜증을 내며 머리를 흩트렸다. 강한서는 왜 상식선에서 행동하지 않을까?그의 성격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런 말들을 하다 거절을 당했으니, 원래대로라면 화를 내며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녀에게 그게 누군지 따지고 있는 걸까?강한서는 유현진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했다. “송민준이지. 네가 나랑 이혼하자마자 송민준이 너랑 계약했어. 그리고 너랑 관계되는 모든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고. 너랑 내가 재결합이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지?"유현진: …강한서의 상상력은 과하게 풍부했다. 어딜 봐서 송민준이 유현진을 좋아한다는 말인가?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송민준을 방패로 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유현진이 대답했다. “맞아. 송 대표님은 성격도 좋으시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도 아셔. 내가 제일 힘들 때 날 도와주셨고. 게다가 잘생겼잖아. 여자라면 누구든 흔들려.”그녀의 말에 강한서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거짓말! 그건 네 스타일이 아니잖아!”“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몰라?”유현진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넌 나랑 이렇게 오래 지냈으면서, 아직도 몰라? 나 원래 잘생긴 사람 좋아해. 그때 내가 널 선택했던 것처럼.”강한서의 눈빛에 우울함이 가득 찼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송민준에게 전화해서 말해. 네가 송민준 좋아한다고.”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내가 동의했어? 강한서, 너 지금 이런 행동,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이런 걸 질척댄다고 하는 거야.”강한서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유현진은 이 정도면 강한서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겠다고 판단해 자리를 뜨려는데, 강한서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거짓말쟁이!”유현진: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해?”강한서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탔다. “역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네.”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뭘?”‘뭐야, 쌩뚱맞게.’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가 나한테 한 말은, 하나도 진심이 아니었던 거야?”강한서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 유현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도무지 강한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했었는데?”강한서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만약 어느 날엔가 네가 날 밀어내면, 나더러 너한테 질척거리라며. 그러면 네가 마음이 아파서 나 못 밀어낸다며. 그러더니, 이제는 질척거리지도 말라고?”유현진: ...‘그게 언제 적 일이야? 왜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지?’기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한서가 뱉은 대사는 어쩐지 귀에 익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유현진은 드디어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녀가 어떤 드라마를 보던 때였을 것이다. 그 드라마는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서로 사랑했지만 각자의 집안과 꿈 때문에 결국 헤어졌다. 유현진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통곡하며 드라마를 봤었다. 남자 주인공이 못났다고 생각했다가, 또 어떨 때는 여자 주인공이 못났다고 생각하면서.서로 사랑하는 데 왜 함께하지 못할까? 누구 한 명이라도 끈질기게 다가가 본다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쉽게 끝낼까?그녀가 하도 큰 소리로 통곡하니 옆에서 자고 있던 강한서도
깜짝 놀란 유현진이 그의 가슴을 때리며 화를 냈다. “강한서, 뭐 하는 거야?”강한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주었다. 유현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개자식, 설마 거절당해서 화가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는 손바닥으로 침대를 짚고 경계하는 유현진의 눈빛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유현진이 거절도, 반항도 하지 않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거절해도 돼. 하지만 거절은 나도 거절이야.”유현진: ...‘이 자식이 지금 나랑 말장난하는 거야?’강한서가 유현진 옆에 누웠다. 침대가 그리 넓지 않아 덩치가 큰 강한서는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누워야 했다. 유현진은 자신과 가까이 있는 강한서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쿵쾅쿵쾅 뛰어대는 그의 심장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두근두근, 평온해 보이는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그런 강한서에 유현진은 심장이 떨려왔다. “나 내일도 연습있어.”강한서가 말했다. “내일 아침 데려다줄게.”“나 지금 가야 해.”유현진이 몸을 일이키려 하자 강한서가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오늘 밤만큼은, 내 옆에 있어 줘.”명령하는 말투가 아니라, 부탁이었다. 유현진은 또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그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렸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거 떼쓰는 거야.”“응.”강한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대꾸했다. 전혀 화가 나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유현진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전엔 내가 너무 참았어. 네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어.”유현진의 목소리가 조금 울먹거렸다. “내가 송민준 씨를 좋아해도, 괜찮아?”강한서의 몸이 굳어졌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송민준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거야. 넌 날 좋아하게 될 거야.”유현진은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강한서는 잠시 앉아있다가 차에서 내렸다. 민경하는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강한서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얼른 담배를 끄려 했다. 민경하는 강한서가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님 접대를 할 때를 제외하곤 강한서는 담배를 손에 대지도 않았다. 그랬던 강한서가 담배를 끄려는 민경하를 제지하고 담담하게 물었다. “더 있어요?”민경하는 담배 한 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바닷바람에 의해 라이터 불이 흔들리자 민경하가 손으로 바람을 막았다. 강한서가 숨을 들이마셔 담배를 태웠다. 강한서는 담배 연기를 내뱉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민경하와 함께 차에 기대어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민경하가 말했다. “대표님, 왜 사모님께 수술하셨다고 얘기하지 않으세요?”민경하가 말하는 수술은 정관수술이었다. 강한서는 말이 없었다. 그가 대답하기 싫어하는 줄 안 민경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담배를 절반쯤 태웠을 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수술은 내 선택이었어요. 현진이를 옭아맬 수단이 아니라. 그냥 나를 선택해 주기를 바랐어요. 그냥 나라는 사람을 원하기를. 그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강한서의 대답에 민경하가 행동을 멈췄다. 그러더니 씩 웃음을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혼은 유현진에게만 상처를 남긴 것이 아니었다. 강한서도 이혼으로 PTSD를 겪고 있었다. 분명 유현진을 곁에 둘 방법이 많이 있었지만 그는 그녀에게 강요할 수도, 강박할 수도 없었다. 강한서의 늦은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사랑을 늦게 안 것이 아니라, 그건 아마 그가 겪은 일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표현할 줄 몰랐던 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민경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경민시에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강한서가 움찔했다. 심장이 살며시 아파졌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홧김에 떠나는 게 아니라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둔 다음 떠났더라면, 그녀가 필요한
은서는 강한서만큼 하얗지 않을 뿐, 절대 까만 피부를 가진 아이가 아니었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은 어린애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휴대폰을 뒤지던 강한서가 민경하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만경하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고개를 든 강한서가 손을 들어 입에 지퍼를 잠그는 흉내를 냈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알겠죠?”민경하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서가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고 담배를 껐다. “차에 들어가서 좀 자요. 날이 밝으면 현진이 데려다줘요.”다음 날 아침, 유현진은 민경하의 부름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이미 차 안이었고, 밖은 합숙 장소였다. 민경하가 운전석에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모님, 7시 30분에요. 들어가셔서 준비하셔야죠.”유현진이 눈을 꿈벅였다.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 비몽사몽인 채로 차에서 내렸다. 침실에 도착하자 모두 방금 일어난 것 같았다. 다 씻은 유현진이 무용복으로 갈아입으려는데, 옷이 누군가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침실의 배우들에게 물으려고 했으나, 우왕좌왕하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유현진은 ‘물을 필요도 없겠구나’ 생각했다. 송민영 아니면 방이진이 그런 것이 확실했다. 한 명은 오랫동안 원망을 산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새로 생긴 적이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어린 배우들이 감히 미움을 살 수 없는 배우가 그 두 명뿐이었다. ‘초등학생이나 할 짓을, 아직도 세 살짜리 애야?’안창수는 어제 특별히 오늘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단체복을 입고 오라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바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사라는 극 중에서 꽤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러니 유현진이 카메라 테스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찢긴 옷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옷을 둥글게 말아 휴지통에 버렸다. 은정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현진 씨, 내가 테이프로라도 붙여 줄게요.
송민영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유현진의 옷에 시선을 돌렸다. 오늘 연습실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핑크와 화이트가 섞인 무용복을 입고 있었다. 유현진의 무용복은 확실히 너무 눈에 띄었다. 유현진이 튀어 보이려고 입고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단체 생활에서 사실 사람들은 이렇게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은 다른 사람을 딛고 올라서거나, 아니면 팀 전부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송민영의 말에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현진을 보기 시작했다. 유현진도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찢겨진 그녀의 옷에는 관심이 없고, 그에 따른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안창수 역시 송민영의 말을 듣고 말했다. “현진 씨, 왜 이렇게 입고 온 거죠? 팀복은요?”유현진은 안창수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말했다. “감독님, 제가 요즘 계속 이사라라는 캐릭터를 연구해 봤는데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대본에는 부잣집 출신에 집안이 좋고, 어렸을 때부터 고생이 뭔지 모르고 자라서 도도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재능을 타고난 윤여령을 이기지 못하니까 분노했던 거고요.”안창수는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기에 그는 유현진의 분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사라는 도도하지만 매우 노력하는 사람이죠. 집안이 좋다고 해서 놀고먹는 그런 사람이 아니죠. 이사라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했던 건 자신의 노력이 천부적인 재능에 져서 그런 거예요. 하지만 딱 그 재능이 부족해서, 이사라는 절대 윤여령을 초과할 수 없었던 거죠.”잠시 말을 멈춘 안창수가 물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건가요?”유현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의견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이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거든요. 이사라는 도도한 사람이라 사실은 조금 자기중심적이에요. 이런 사람은 말은
촬영 감독은 이렇게 화면발이 잘 받는 여배우를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각도에서 찍어도 유현진은 완벽에 가까웠다. 예전에 다른 배우를 찍을 때는 특정된 각도에서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우는 조명과 메이크업에 많이 의지했다. 심지어 어떤 유명 배우들은 화면발이 잘 안 받은 날엔 촬영 감독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찍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피사체가 완벽하지 않을 때는, 촬영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호박을 수박으로 둔갑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촬영 후 후시 작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후시 작업에 대한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한다면, 그들은 편집 스태프에게 자신이 나온 부분을 하나하나 다 수정해 주기를 부탁했고, 그 결과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그들이 나오는 영상은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정을 심각하게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유현진처럼 화면발이 잘 받는 배우는 촬영 스태프나 편집 스태프의 사랑을 받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그녀만 화면에 담고 싶어 했다. 두 번의 테스트 촬영을 마친 안창수는 영상을 모니터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송민영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와 유현진은 서로 가까이에 서 있었다. 유현진이 예쁘게 생겼다는 것은 송민영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송민영은 오늘 아침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잠에서 깨어나 정성을 들여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했다. 송민영은 너무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몇 년간 시술을 받으면서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졌고 그녀의 그런 순진무구한 얼굴은 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녀의 메이크업은 이미 여러 번 유행했었다.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같은 방식의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시스루 앞머리와 풍성한 올림머리는 그녀의 청순함을 더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유현진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송민영은 자신과 유현진 사이에 큰 격차가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