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주는 길을 건너자마자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그리고 그녀는 주위를 살피더니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병원으로 들어갔다.차미주는 바로 백혜주의 옆에 서 있었다. 검은색 뿔테안경에 머리를 푼 그녀는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고등학생 같아 보였기에 백혜주도 당연히 그녀를 눈치채지 못했다.백혜주는 원래부터 차미주와 별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하지만 차미주와 유현진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기에 차미주는 이미 백혜주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고 있었다.백혜주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산부인과를 찾았다.차미주도 그녀를 따라 산부인과로 향했다.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 타는 순간까지도 차미주의 머릿속엔 물음표들로 가득 찼다.‘뭐야, 설마 임신이라도 한 거야?’차미주는 유상수의 나이와 허약해진 모습을 떠올리며 전혀 그럴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요컨대 강한서도 아직 유현진을 임신시키지 못했으니까.그녀는 절대 유상수가 임신시켰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백혜주는 자신과 같은 층을 누르는 차미주를 힐끔 바라봤다.차미주는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였다.“응, 자기야. 나 병원에 도착했어. 응, 지금 엘리베이터 탔어. 사람 엄청 많은 거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예약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어. 응응... 알았어. 그럼, 일찍 와야 해.”백혜주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차미주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이 몇 년 동안 드라마 스태프들을 따라다니며 능구렁이들 속에서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속이는 재주는 많이 배운 것 같았다.그녀의 연기는 전문가가 보기엔 아주 어색해 보일지 몰라도 일반인들을 속이기엔 딱 적합하였다.산부인과에 온 사람은 아주 많았다. 복도에도 임산부들이 잔뜩 줄을 서고 있었고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남편과 같이 온 사람도 있었다.그녀는 백혜주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순간 옆에 있던 임산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검진하러 오셨어요?”“네? 아, 네.”차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그러면 지금 연락해서 물어보는 건 어때요? 최근에 할인 행사하거든요. 그쪽이 선해 보이니까 제가 이렇게 알려드리는 거예요. 며칠 후면, 이 가격에 가입 못 한다니까요.”차미주는 백혜주가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시선이 마주친 느낌에 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바로 이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한성우였다. 곧 들킬 것 같은 예감에 차미주는 얼른 전화를 받아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했다.전화를 받고 한성우가 입을 떼기도 전에 차미주가 말했다.“어, 자기야. 나 지금 7층 산부인과에 있지. 그냥 올라와. 나 지금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아니 근데, 어떤 분이 지금 나한테 보험 가입하겠는지 물어보더라고. 들어보니 꽤 괜찮은 것 같아서 그러는데 자기도 얼른 와서 들어 봐 봐.”한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도둑아, 지금 뭐 하냐?”차미주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계속 이어서 말했다.“그럼 빨리 와. 나 먼저 끊을게.”한성우는 그녀가 뜬금없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7층으로 왔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차미주가 임산부들 속에서 대기 번호를 들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를 발견한 차미주는 “자기야”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방금 내 옆에 앉아있던 그 여자가 유상수의 불륜녀야. 몰래 산부인과 온 것 같길래 내가 일단 따라왔어. 아직 날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니까 일단 날 좀 도와줘.”한성우는 빠르게 백혜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내 다시 차미주를 보면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여보, 잠깐 안 봤다고 내가 그렇게 그리웠어?”차미주의 입가가 떨려왔다.‘제대로 안 하냐?’“응, 엄청나게 보고 싶었어.”차미주는 거의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보험을 소개해 주던 사람은 한성우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백혜주가 들어가자마자 차미주는 한성우를 밀어냈다.“뭐야, 왜 찜질방에 들어간 것처럼 이렇게 더워?”한성우는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날이 이렇게나 더운데 너라면 안 덥겠냐?”사실 그리 더운 건 아니었다. 같이 안고 있으니 시원하고 마치 푸딩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차미주는 의자 위에 있던 전단지를 들더니 부채질하면서 말했다.“저 불륜녀 말이야. 대충 40대는 된 것 같지 않아? 현진이 아빠는 50대 초반이란 말이야. 정말 임신했을까?”“며칠 전 뉴스에선 60세에 산모가 된 여성도 있다고 했는데 40대라고 안 될 건 없지.”한성우는 차미주 손에 든 전단지를 뺏어 들고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그는 차미주의 오른쪽에 앉아있었고 게다가 남자의 힘은 여자보다 더 세기에 그가 부채질할 때마다 차미주의 얼굴에도 바람이 불어 아주 시원하였다.“아니지.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아. 만약 정말로 임신했다면 그 사람은 아주 기뻐했을 거야. 그런데 저 여자가 굳이 왜 몰래 병원에 온 것 같아? 그건 아마... 아마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겠지!”만약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그녀가 백혜주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유상수 앞에서 밝히기만 해도 굳이 그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되면 아마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게 될 것이고 어쩌면 뜻밖의 사실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한성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이 머리에 상상력 하나는 풍부하네. 불륜녀가 또 다른 불륜을 저지른다고?”차미주는 그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백혜주는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고 손에 돈도 많은데 정말 현진이 아빠 한 명으로 만족할 것 같아 보여?”한성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넌 이런 묘사를 어디서 배워? 평소에 하도 거칠게 말하길래 난 네가 문맹인 줄 알았잖아.”차미주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나와 현진이는 동창이기도 해. 너 설마 정말로 내가 태주대에서 대충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말
차미주가 그제야 그에게 물었다.“어때, 백여우 임신 맞아?”한성우는 아직도 손에 든 검사 결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하고 있었다.‘딱 한 번이었는데 임신했다고?’차미주의 물음에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임신이더라.”“젠장,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나 심지어 방금 고통 없는 유산 광고 전단지를 가져가는 것까지 다 봤다니까! 누가 임신했다고 이런 걸 가져가. 백여우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분명 현진이 아빠의 아이가 아닐 거야!”한성우는 그 순간까지도 백혜주의 배 속의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고 그는 계속 차미주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한성우는 그렇게 한참 생각에 빠졌고 차에 타려고 할 때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아이... 어떻게 할 생각이야?”“뭐?”“내가 먼저 말할게. 난 일단 결혼할 생각은 없어. 아이도 그렇게 갖고 싶은 것도 아니야. 하지만 네가 낳겠다고 하면 나도 아이를 지우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아이는 네가 낳고 네가 키워, 내가 양육비는 꼬박꼬박 잘 챙겨줄 테니까. 네가 키우기 싫다면 내가 키울게.”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차미주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지금 내가 자기 아이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래서 지금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말하고 있는 거야?’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한성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차미주는 이를 콱 깨물며 말했다.“난 앞으로 널 갈아버릴 생각이야. 갈아서 변기에 버릴 거야!”“누가 너 같은 개자식의 아이를 가졌대? 그건 내가 다른 사람의 소변을 훔친 거라고!”그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임신 아니야?”“누가 임신이야! 나 어제 생리 금방 끝났어!”차미주가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미친놈!”한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시동을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미주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이따
한참을 운전하던 한성우가 갑자기 물었다.“근데 현진 씨 어머님께선 이미 돌아가셨잖아. 그리고 현진 씨도 더 이상 유상수 씨의 딸도 아닌데 이걸 조사해서 뭐 하게?”유현진은 유씨 가문의 재산을 두고 분쟁을 벌일 인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요컨대 그녀는 강한서가 주겠다던 위자료도 받지 않았던 사람이니 어찌 유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겠는가.유현진과 유상수는 더 이상 부녀 사이가 아니었고 심지어 이 기회에 가족의 연마저 깔끔하게 끊어낼 수 있는데 굳이 왜 다시 유씨 가문을 물고 늘어지려 하는지 그는 이해되지 않았다.차미주가 입을 열었다.“사람이 죽었다고 복수하지 말란 법 있어? 그 두 사람은 함께 어머님의 교통사고를 사주하고 식물인간으로 만들었어. 어머님은 그 두 사람 때문에 7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버티시다가 결국 돌아가셨지. 근데 왜 그 두 사람이 잘 살게 놔둬야 해? 이건 공평하지 않잖아?”한성우는 순간 깜짝 놀랐다.“현진 씨 어머님이 사고 나신 게 유상수 씨가 사주한 거라고?”“그럼? 어머님께서는 이미 유상수를 알몸으로 쫓아낼 준비를 하고 계셨어. 근데 교통사고가 나버렸지. 어머님이 사고를 당하면 제일 큰 이익을 볼 사람은 누구겠어? 그것만으로도 유상수가 용의자일 가능성이 아주 커!’“왜 신고하지 않은 거야?”“현진이가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거든. 근데 사고 차량은 이미 그때 처리가 되었다더라.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서 사건을 뒤집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래. 그래서 현진이가 탐정 사무소를 찾아갔거든? 근데 탐정이 말하길 유상수와 백여우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와해시키라고 하더라. 그럼 어쩌면 뜻밖의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될 수도 있대.”차미주는 순간 멈칫거렸다.“이거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안 그러면 널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야!”한성우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입 무거운 남자야.”차미주를 회사로 데려다준 후 한성우는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뜻이 있는 자, 반드시 이룬다.”그는 이 한마디 좌우명을 갖고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한성의 설립 과정, 회사의 히스토리와 현재 상품의 특점과 판매 현황 등을 포함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그다음 해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그는 다시 입사 면접에 도전했고 일사천리로 면접을 통과했다. 마지막 면접은 바로 강한서와의 일대일 면접이었다. 민경하는 이제껏 그런 긴장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한 강한서는 바로 그를 통과시켰다. 강한서와 조금 편한 사이가 된 후 민경하는 강한서에게 그때의 일을 언급했다. 그는 감격스러운 말투로 만약 이력서 뒤에 써준 말이 아니었다면 그가 한성에 다시 도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한서에게 말했다. 강한서가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민경하의 말에 멈칫하던 강한서가 말했다. “그건 민 실장 능력이었죠.”나중에야 민경하는 매년 면접 후 마지막 라운드까지 진입한 사람의 이력서 뒷면에 글을 써주는 것이 강한서의 습관임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응원의 메시지였으나 한성이 워낙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였고, 면접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 역시 명문대 출신이었으니 면접에 떨어지면 불만들을 늘어놓을 뿐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강한서는 매년 이력서에 응원의 메시지를 써주었지만 민경하처럼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고 인사팀의 부장이 알려주었다. 강한서의 업무 스타일은 많은 사람에게 냉정하고 보수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가로 그의 방식은 사실 더 많은 구직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꽃 도착했어요?”강한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딴생각에 잠겼던 민경하가 그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음… 그리고 조금은 사랑꾼인 것 같아.’“오늘 받으셨어요.”민경하의 대답에 강한서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보낸 꽃을 전부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라고 하던가요?”민경하가
이준은 그런 유현진의 태도를 아주 만족했다. 연기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이준은 생각했다. 오디션 당일, 이준은 빈해시에 신인배우를 캐스팅하러 가야 했다. 때문에 유현진과 함께 오디션장이 갈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다른 동료에게 그녀를 데리고 오디션 장소에 가주기를 부탁했다. 원래 매니저였던 진희연은 그녀가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다른 배우를 케어하러 갔다. 비록 송민준은 유현진을 특별히 신경써줬지만 회사의 내부 규칙도 지켜야 했다. 지금 유현진 정도로는 아직 전담 매니저의 케어를 받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녀의 휴식기 동안 진희연이 다른 연예인의 일정을 함께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준은 그녀에게 동료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동료의 이름은 서영이었고 그녀는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가 킹 엔터에서 스카우트해 온 매니저였다. 예전엔 차미주와 같은 회사에 다녔다. 차미주의 말로는 서영도 굉장히 실력 있는 매니저라고 했다. 많은 유명 연예인을 데리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회사 대표와 사이가 틀어져 다른 매니저에게 일을 인계하고 퇴사했었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가 설립 후, 그녀는 킹 엔터를 그만두고 이쪽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녀는 회사 제일 먼저 계약한 매니저였다. 유현진은 일찍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지만 저녁 6시 40분이 되어도 서영의 전화가 없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영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을 울려서야 서영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냉담했다. 유현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서영 씨, 도착하셨어요?""아뇨, 길이 좀 막혀서요."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딥블루 클럽까지 가려면 차가 막하지 않아도 삼사십 분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영은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다. 서영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출발한다면 시간을 맞춰 오디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서
유현진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폰은 신호가 없었다. 딥블루 클럽에는 수많은 연예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고객의 신상정보를 지키기 위해 클럽에서는 5층에 신호 차단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유현진은 전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유현진은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이 방에는 창문조차 없는 것을 발견했다. 왼쪽 상단에 있는 환풍구가 유일한 출로였다. 창문으로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제기랄!’‘내가 대체 서영에게 뭘 잘못했길래.’유현진을 가둔 후 서영은 오디션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녀를 본 송민영이 직접 물을 떠주며 물었다. “서영 언니, 어떻게 됐어?”“걱정 마요.”서영이 웃으며 송민영이 건네는 물을 받았았다. “오늘 이 오디션 현장에 절대 나타나지 못할 거예요.”차미주가 알아 온 신상정보에 착오가 있었다. 서영은 송민영을 영입하려고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영입에 실패했지만 그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송민영이 먼저 서영에게 자기 매니저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제일 핫한 연예인의 매니저가 될 수 있는데,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살의”의 오디션은 사실 송민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영향력과 팬을 고려해 제작사에서는 그녀가 영화의 흥행을 책임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는 주인공 역할에 두 명의 배우를 추천했다. 한 명은 송민영이었고, 다른 한 명은 유현진이었다. 서영은 처음부터 인지도가 없는 연예인을 견제 상대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전날 송민영이 찾아와 유현진과 송민준이 특별한 사이이고 그 때문에 자신이 오디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바람에 생각이 바뀌었다. 서영은 송민준과 유현진의 사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